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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작 : 몰락한 자린고비】
- 저자 주현중 -
≪제1부≫
1300평쯤 되었을까! ‘안목’으로 가는 지방도로 건너편으로 몇 백 년씩이나 되는 솔숲이 방풍림으로 늘어서 있는 송정동 갈빗집 ‘하늘공원’ 경내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사슴과 공작새를 기르는 자그만 농장이 있고 담장 밑에서 내실까지 대나무들이 지조를 자랑하며 푸름을 물들이고 여기저기 소나무들이 장승처럼 우뚝 솟아 있고,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아주 작은 산봉우리 밑으로 물레방아가 돌고, 물레방아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자라?붕어?잉어 그리고 각종 민물고기들이 서식하는 작은 연못이 운치를 더해주는 음식점 치고는 강릉 시내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하늘공원’이 나오는데 그 창업주 이영태의 일대기는 1970년 초부터 시작된다.
이영태는 5대 독자로 손아래 여동생과 양친부모님 슬하에서 상고를 졸업하고 다분히 건달기가 넘쳐흘러 대학을 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고등학교3년 내내 속된 말로 껄렁껄렁(불량학생) 대며 때웠으니 공부란 것은 아예 머릿속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이영태는 상고를 졸업하자마자 여고에 다니던 동갑네기 졸업생과 양가 부모 몰래 부산으로 도주를 한다.
“야 영태야, 이렇게 도망가다 반도 못가서 엄마 아버지한테 잡히면 어쩌지?”
“이 멍청아, 지금 한 밤중이야 그리고 심야열차 안에 있는데 어떻게 찼냐? 뒤를 밟아도 날이 밝아야 되겠지만, 우리가 어디로 튄 줄 알고 추격을 하겠어! 잔말 말고 잠이나 푹 자 둬, 부산까지 가려면 내일 점심때쯤은 되어야 할 테니!”
영태는 불안해하고 있는 영숙을 달래며 고향을 등지고 있었다. 혼자 몸이라면 당당히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떠날 것이었지만 평소 서로 좋아하는 사이었던 영숙이와 함께 가자니 몰래 도주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열차 차장의 안내방송이 들렸다.
“승객여러분! 긴 시간 동안 불편은 없었는지요? 마지막 종착지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잊어버리는 물건이 없도록 잘 챙기시고 하차하시기 바랍니다. 부산역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차장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하차한 영태와 영숙은 열차에서 내리긴 했지만 막상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야 영태야, 우리 그냥 집으로 가자. 돈도 얼마 없을뿐더러 거처할 곳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와서 어떻게 하려고?”
“야 영숙아, 니는 내 말만 들으면 된다. 우리 같은 갈 곳 없는 사람에게는 식당이 최고인기라. 알았나? 이 간나야.”
강원도 사람들은 젊으나 늙으나 좀 친하다 싶으면 ‘간나’라는 말을 곧잘 쓰곤 하였다. “간나”라는 호칭은 여자를 두고 부르는 말이다. 영숙은 좋아하는 영태를 스스로 따라 야반도주를 한 이상 죽으나 사나 영태의 말을 들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처지이다 보니 영태가 하자는 대로 따라 주었다. 영태와 영숙은 우선 배가 고팠기에 식당에 점원으로 취직하기로 결심하고 여기저기 음식점을 들쑤시며 다닌 끝에 어느 한식식당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야 이놈아들아, 느그들 몇 살이고? 그라고 부모님 허락은 받고 왔나?”
“나이는 열아홉 둘 다 동갑네기 친구래요. 어찌 하다 보니 허락을 못 받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허락 없이 왔다면 안 받아 줄라고요?”
“그거는 아이고, 기본으로 느그들 신상파악은 하고 있어야 주인이 안 되겠나? 고마 알았으니 영태는 저 방에 영숙이는 저어 쪽 방이 숙소다. 그러고 보이까네 성만 다를 뿐 영태, 영숙이 친오빠동생 같네! 우연에 일치겠지만 서도..., 그라고 영태 니는 내일부터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영숙이는 홀에서 식사손님 받아라. 알것제? 그리 알고 오늘은 늦었으니 쉬그라.”
영태와 영숙은 눈만 뜨면 반복되는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자그마한 분식집 하나 차릴 요량으로 이를 악물고 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간의 세월동안 돈도 작지 않게 벌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있는 강릉 양갓집에서는 십여 년 동안 행방불명 신고를 해 놓은 상태였다. 떠나 올 때 아무에게도 귀띔을 주지 않았기에 그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는 세월 동안 영태와 영숙은 틈틈이 저축한 돈으로 그렇게도 꿈꾸던 분식집을 개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영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욕심 많기로 유명한 영태였기에 조금 근사한 식당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영숙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럴싸한 한식당 하나 개업하자. 그 동안 분식집 하면서 벌어 놓은 돈으로는 턱도 없고 내가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런 줄 알아라.”
“무슨 수로 한식집을 차리려고? 시골에 가서 땅 팔아 오기 전에는 무슨 수로?”
“아니다. 내 다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다. 잠자코 구경이나 해라.”
영숙은 영태의 말이 얼토당토 않는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남편으로 따르는 처지라 그냥 믿고 볼 일이었다. 영태는 그런 영숙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한 말에 책임을 져야했다. 그렇게 또 세월은 무심히도 흐르고...
“희순아, 자잘치 시장에서 너네 오빠를 본 사람이 있다더라. 세월이 오래되어 앞에서도 못 알아보더란다.”
“뭐라고, 우리 오빠를...!”
“그래 틀림없다고 하던데.”
영태에게 하나 뿐인 여동생은 오빠의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부터 흘렀다. 오빠라고는 단 하나뿐이었으니 얼마나 핏줄이 그리웠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영태는 동생 희순이를 찾아온 것이었다.
“야 희순아, 나다 오빠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없어졌던 오빠다.”
“왜 이제 와 오빠야 죽은 줄 알았잖아. 너무했다 오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편지 한 장이라도 줄 것이지, 부산에 시집 와 사는 친구가 그러더라, 오빠를 자갈치 시장에서 누가 봤다고 하더라고.”
“희순아, 미안하다 할 말이 없구나. 아고야! 희순이 많이도 컸다. 이젠 업어 줄 수도 없겠다.”
“집 나간 지 십년 만에 와가지고 징그럽게 시리!”
영태와 희순은 십년 만에 상봉한 감회에 젖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그간의 쌓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생한 이야기며 아버지 돌아가신 이야기며... 희순 또한 부산으로 시집을 와서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신랑을 잘 만난 덕에 손에 구정물 하나 무치지 않으며 사는 동생을 보는 영태는 한시름 놓으며 동생에게 청을 하기에 이른다.
“희순아! 십년 만에 불쑥 나타나서 할 말은 아닌 줄 안다. 허지만 단 하나 뿐인 핏줄이 아니냐?”
“오빠 무슨 말이기에 서론이 길어, 본론만 말해.”
“알았다.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하기사 니가 고생하며 산다면 이런 말 못하겠지만, 보아하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사는 것 같구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 오빠에게 돈 천만 원만 빌려줘라 부탁이다. 희순아?”
“뭐라고 오빠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무슨 소린지 원!”
십년 만에 불쑥 나타난 오빠의 입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기가 막힐 만했다. 그러나 단 둘뿐인 형제이기에 실리보다 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태 또한 아무리 자기밖에 모르는 욕심꾸러기이기는 하지만 정이 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걸핏하면 울기도 잘 했고 웃기도 잘했다. 성정이 다혈질이라 변덕이 한여름 소낙비처럼 죽 끊듯 했지만...
“오빠, 어디다 쓰려고 그 많은 돈을?”
“그동안 분식집으로 틈틈이 저축은 하였지만 다른 장사를 하려고 하니 턱도 없지 뭐냐? 실은 한식집 하나 개업하려고 보니 자금이 좀 모자란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그래 무슨 한식집?”
“고향에 내려가서 갈빗집을 해 보려고 한다. 천만 원이면 있는 돈 합쳐서 송정동 솔밭 1000 평 정도만 살 생각이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시설은 돈 안 받고 해 준다고 했으니 걱정할 게 없다.”
“그런데, 언제 동창들에게 줄을 넣었는데?”
“이래 보여도, 오빠가 의리파인 줄 너도 잘 알잖니? 동창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날 보고 도와주겠다고 한다.”
“알았다. 오빠 내가 어렵게 사는 것도 아니고 하니 오빠 한사람 못 도와주겠나! 대신 돈은 어음이다. 신랑이랑 관리하는 돈이 다르니 걱정할 것은 없고 몇 년이나 쓰려고?”
“5년만 돌려쓰면 그 돈 천만 원 못 갚겠나! 강릉에는 아직 야외가든 식당이 없으니 지금이 적기가 아니겠나?”
“알았으니 약속 꼭 지켜야 해 오빠?”
“그래, 그래 지키마! 고맙다 십년 만에 오빠라고 찾아와 가지고 염치가 없구나! 내 꼭 5년 뒤에 갚으마.”
핏줄은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희순은 야반도주 후 십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 온 오빠의 청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런 희순에게 천만 원을 융통한 영태는 강릉으로 귀향하게 된다.
≪제2부≫
1980년 5월, 송정동 솔밭에서 가든 식당공사가 한창이었다. 중장비 대여를 하는 고등학교 동기가 포크라인으로 연못을 파고 조경 사업을 하는 동기가 근사한 야외가든 식당을 완성시켰다. 영태와 영숙 내외의 살림집인 내실을 1300평이나 되는 경내 맨 끄트머리에 짓고 13동이나 되는 손님을 받는 곳으로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었고 사면의 벽면은 싸리나무로 영을 엮어 세우고 지붕은 짚으로 올렸고, 민속관이라고 하는 단체손님을 받는 단칸짜리 방도 만들었다. 단 식당 본관 건물과 종업원 숙소는 현대식 건물로 지었다. 현대식 건물만 제외하면 마치 민속촌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고도 남았다. 삶에 찌들어서였을까! 찾아오는 손님 모두가 민속촌 같은 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의 정토를 그리워하게 된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다.
개업을 하자마자 강릉 유지를 비롯한 전국 각지 여행객들의 발길이 끝이 없었다. 강릉에서 단 하나뿐인 야외가든 식당이었으니 강릉을 찾는 여행객들은 모두 ‘하늘공원’이라는 가든 식당을 찾는 것이었다. 좁아 빠진 일반음식점은 여름철엔 후덥지근하였기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식사를 즐기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소갈비를 전문으로 했기에 두 서너 명이 한번 앉았다 일어나면 기본이 5만원이었다. 갈비 일인분에 9천 원이었으니 공깃밥과 술값을 합치면 그런 계산이 나왔다. 1300 평이나 되었지만 빈자리가 없어 줄을 서서 30분 이상씩 기다리는 일이 허다했다. 야외 결혼식장도 갖추어져서 봄가을이면 결혼식 단체 손님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각종 가정의 경조사는 물론 계모임까지 ‘하늘공원’에서 치루고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 날엔 하루 2000만 원 정도가 되었고 평균 1000만 원 이상이었다.
그런 영업실적으로 보아 영태는 이미 동생 희순에게 빌린 돈을 갚고도 남았으나 영태의 속셈은 달랐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개업을 하고 2년 정도 흐른 어느 여름에 희순이 오빠가 하는 가든 식당을 찾았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사가 얼마나 잘 되는지 보려고 온 것이었다. 자신의 돈으로 개업한 가든 식당이니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야 언니야, 이거 주방에 갖다 줘라.”
여종업원이 보니 영태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상추였다. 한줌도 아니고 달랑 한 잎이었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 자리에 떨어진 상추를 주워 물에 씻은 것이었다. 영태의 그런 행동을 본 종업원들이나 동생 희순이나 이해가 안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잔반통에 버리라고 준다면 이해를 하겠으나 그것을 다시 손님상에 올리라는 것이었다. 그런 영태의 행동이 어이는 없었지만 종업원은 묵묵히 받아 들고 주방에 갖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영태 동생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오빠 그게 뭐야 버려야지, 그깟 상추 한 잎에 인생 걸었어?”
“야 희순아, 그게 아니라 장사가 안 되니 난들 어쩌겠어! 상추 한 잎도 돈인데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쉰밥도 물에 씻어 먹었어. 희순이 너도 잘 알잖니?”
“하이고 기가 막혀서 원, 그때는 워낙 먹을 것이 귀해서 그랬을 뿐이지, 오빠 정신이 어찌 되지 않고서야... 말이 다 안 나오네!”
“야 희순아, 내가 어떻게 이 가든 식당을 개업했는지 너도 잘 알잖아? 장사가 워낙 안 되기도 하고 개업하고, 첫해는 그런대로 되는가 싶더니 금년 들어서부터는 영 안 된다. 희순이 너도 한번 봐라 어디 손님이 한 테이블이라도 있나?”
영태는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장사가 안 되니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의도였다. 그런 영태의 속셈을 희순이로서는 짐작도 못 했다. 동생 희순이가 어쩌다 놀러 온다고 전갈이 오면 장사 안 되는 날만 골라서 오라고 했으니, 희순이로서는 정말 장사가 안 되는 줄 알고 있었다.
“오빠, 그러고 보니 손님이 영 없네! 어떻게 해 이래가지고?”
“누가 아니래, 요즘은 죽을 맛이다. 희순아.”
영태 부인은 한 술 더 뜬다.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우는 것으로 보이려고 눈에다 안약을 넣고는 엉엉 소리를 낸다. 그럴 땐 영락없이 우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영태와 영숙 부부가 짜고서 하는 행동이란 것을 종업원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동생 희순이가 깜빡 속아 넘어갈 수밖에는 없었다. 모처럼 동생이 왔는데도 식사 한 끼 제대로 해 주지도 않았다. 주방에 들러 깍두기 한 접시와 배추김치 한 접시와 갈비탕 한 그릇을 내어 놓으며 그마저도 배가 아픈 척 해 대었다. 자린고비라지만 성질 못된 구두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태 동생 희순은 며칠도 못 견디고 부산으로 휑하니 내려가곤 했다. 가면서 한마디 일러 준다.
“오빠, 이렇게 쥐어짜지만 말고 일간지에 광고지라도 넣어 보라고, 그렇게라도 해서 손님을 끌어야지 서비스도 좀 내어주고 말이야. 요즘 서비스 안 주는 식당은 손님이 안 찾는다고 뭐! 그리 알고 간다 오빠, 다음에 또 올께 잘 있어.”
“그래 알았다. 멀리 못 나간다. 희순아~”
영태의 성품을 보면 다혈질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급한지 혀를 내 두를 지경이기도 했다. 손님이 식사가 늦게 나온다고 하면 늦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고 주인이 되어가지고는 손님보다 더 급한 듯이 설쳐대었다.
“이봐! 오부장, 된장찌개가 왜 이렇게 늦어 엉?”
오부장이라는 사람은 주방장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늘공원’에서는 부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영태 본인이 주문을 받아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늦는다고 야단법석을 떨어대기도 하였다. 그런 영태를 보고 주방장은 가끔 한마디씩 내뱉는데...
“귀신은 뭐 하는지 몰러, 저 화상 안 데려가고! 에이 꼴 보기 싫어 관두든지 해야겠어.”
주방장의 그만둔다는 말 한마디에 영태를 입을 쓱 다물고 만다. 주방장 손맛으로 영업을 하는 처지라 주방장이 바뀌어 음식 맛이 달라지면 단골손님은 물론, 어쩌다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주방장의 말에는 아무리 기분이 상해도 못 들은 척 넘어가곤 했다. 영태는 월래 마른체격이라 종업원들 사이에서는 꽁치란 호칭으로 통하였다. 면전에 있을 때만 사장님이라 부를 뿐 없는 자리에서는 꽁치라고 불렀다. 영태에 관한 에피소드 또한 재미있었다. 종업원들이 짜증나는 날에는 영태가 심심풀이 땅콩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야 오늘 말이야, 짜증도 나는데 꽁치조림이나 해 먹을까. 요즘 꽁치가 물이 한참 올라 맛이거든!”
“햐~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영태가 옆에서 들어도 모르므로 노골적으로 영태가 있을 때만 골라 꽁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르고 지지고 튀기고’ 종업원들끼리만 알아듣는 일명 3고 놀이를 했다. 꽁치가 반찬으로 나오는 날이면 영태는 꽁치가 그렇게도 맛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종업원들이 영태를 이렇게 비꼬아대는 이유는 소갈딱지가 너무 없어서였다. 영태 동생 희순이 다녀간 후 추석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이봐! 오부장, 장사는 안 되지만 그래도 추석 선물은 있어야겠기에 소고기 반근씩 포장했다. 차례음식에 요긴하게 쓰도록 하고 추석 하루만 쉬니까, 추석밤차로 모두들 와야 해 잘들 다녀오라고”
“----”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 처사였다. 소고기 겨우 반근을 주고 추석명절 잘 쉬고 오라는 영태의 말에 어느 누구 한 사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가치조차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종업원들이 모두 아무 말이 없자 하는 말이 도대체가 기본이 없다며 짜증을 내고 쪼르르 내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영태가 내실로 들어간 후 소고기 반근짜리 포장을 개봉해 보니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한 근도 아니고 겨우 반근을 주면서도 돈이 아까웠는지 전부 기름덩어리일 뿐 살코기는 십리가다 한 점씩 박혀 있질 않겠는가. 이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다. 종업원 모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뱉은 일갈은, 이것도 선물이라고 주는 거냐며 냅다 던지며 개나 주라고 내실 쪽을 향하여 이구동성으로 퍼부어 댄 일이 있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주방 종업원들이 단체손님을 치르느라 식사 시간을 넘겨서 배가 고픈 나머지 갈비탕 한 그릇씩을 먹었는데 언제 주방으로 들어왔는지 뒤통수에다 대고 하는 말인 즉은.
“야 오부장, 누가 갈비탕을 직원들 식사로 먹어도 된다고 했나?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주방에서 이렇게 먹어 조지니 남는 게 뭐가 있겠나?”
“아니 사장님, 오늘처럼 장사가 잘되는 날에 이깟 갈비탕 한 그릇 먹는다고 가게 문 닫는답니까유?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구만유? 알았어유 그람 앞으로는 하루에 한 끼만 먹지유 뭐.”
“뭐야 이 자식아, 고분고분 대답이나 할 것이지 어디다 말대꾸야 말대꾸가 얌마 일하기 싫으면 보따리 싸, 자식이 말이야!”
“네 알았구만유, 오늘을 끝으로 갈거구만유, 그러니께 그 동안 일한 거 계산이나 해 줘유 하루에 천만 원 이상씩 매상이 오르는데도 이게 장사가 안 되는 건 가유, 어이 참!”
“누가 봉급 안 준다했니? 보름 뒤에 받아 가, 싫으면 일하든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대며 종업원들의 등골을 착취하였다. 입사해서 한 달을 채우지 않고 그만두는 종업원은 아예 봉급 계산을 하지 않았다. 보름 뒤에 받아가라며 차일 피일 미루다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 끄는 것이었다. 이런 인사니 죄를 안 받고 배기겠는가. 개도 밥 먹을 때는 안 때린다고 했건만, 사람을 개만도 못하게 취급을 해대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남자 종업원 중 밥을 많이 먹는 종업원이 하나 있었다. 물론 누가 보아도 식충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공깃밥 세 네 공기를 비웠는데, 그 종업원이 먹는 밥도 아까웠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인격적인 말을 했던 일이 있다.
“너는 밥 먹기 위해 사는 가보구나! 무슨 밥을 그리도 많이 먹냐? 너 입으로 들어가는 쌀이 너 한 달 봉급보다 많겠다. 너 하루에 불판 몇 개나 세척 하냐?”
“어유, 정말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개도 밥 먹을 땐 안 때린다는데 뭐라고요. 밥 먹기 위해 살지 않냐 고요? 기가 막혀서 원, 아무리 사장이라지만 이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뭐야 임마, 이 자식이 버릇없이 어른이 하는 말끝에 대들어 대들기를...”
이영태는 정말 인간 이하의 몰상식한 사람이었다. 영태의 그런 횡포에도 가난이 죄였는지 당장 때려치우면 좁아 빠진 강릉 바닥에서 일자리를 쉽게 구하기도 힘들었고, 다른 식당 업주가 신입생의 근태성적을 알아보기 위해 영태에게 전화를 하면 불량한 종업원이라 해고한 아이라고 말을 하는 통에 아예 면접에서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연유로 그만 두었던 종업원은 마지못해 영태가 운영하는 ‘하늘공원’으로 재입사를 하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그 남편에 그 아내 김영숙의 행태 또한 가관假觀이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업이 번창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비를 내리시거든 밤에 내려주시고, 낮에는 밝은 햇살만 비추어 주시길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영태의 아내 김영숙은 기독교회 집사였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까마는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지켜야 할 인간적 도리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암튼 그녀는 기도 하나는 열심히 하였다. 차를 타도 기도요, 식사 전에도 기도요, 간식 전에도 기도요, 비가 내려도 기도요, 눈이 와도 기도요, 봉급날도 기도라 하루 종일 기도시간이 가게 나와 있는 시간보다 더 많았다. 어느 날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언니들아! 이번 달에도 밤에만 비가 내렸어, 왜인지 알아?”
“그걸 어찌 알아요. 날씨가 좋은 거겠지요!”
“이 바보들아! 그게 아니라 내가 밤낮으로 기도를 열심히 해서 그런 거야!”
“뭐라고 기도하는데요?”
“밤에만 비를 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해서 그 정성을 하느님이 알아 주신거야! 뭐 알고나 말해라.”
“네 그러셔요! 정말 하느님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나 봐요? 저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안 되던데...”
“이봐 언니, 그건 정성이 부족해서 그래, 형식으로 기도를 하니까 하느님이 안 들어 주시는 거지.”
“그런가요?”
영태 아내의 말은 누가 들어도 웃음밖에 안 나올 것이다. 마음이라도 천사라면 몰라도 심보가 비틀린 영숙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런 영숙을 보고 종업원들은 너도 나도 미쳤다고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영태 영숙 부부는 딸만 둘이고 아들이 없기에 아들을 낳기를 원했으나 나이가 들기도 했지만, 일 년이면 이백일은 백일기도를 하러 서울에 가서 사는 영숙이 언제 아이를 갖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신혼 초에는 금술이 좋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부 사이가 좋지도 않았다. 걸핏하면 부부 싸움을 하였고, 영숙은 백일기도를 핑계 삼아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는 일이 빈번했다. 한 남자도 아니고 여러 남자를 상대했다. 여성전용 안마시술소를 출입해 향락을 즐겼다. 여성전용 안마시술소는 주로 돈 많은 유부녀나 이혼녀들이 출입을 하였는데 그곳에 가면 안마사가 남자였다. 더 설명을 안 해도 번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 영숙은 백일기도를 다녀오면 생기가 혈기왕성한 20대 처녀들보다 좋았다. 그러다 집에서 한두 달 정도만 있으면 좀이 쑤셔대어서 못 견뎠는지 석 달을 집에 못 붙어 있었다.
기실은 영숙이 바람을 피게 된 동기는 생기지 않는 아들도 아들이었지만, 결혼 초에는 서로 성격이 잘 통하는 관계로 별 문제가 없었으나, 옛말에 ‘성격이 서로 같으면 못 산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슨 조화 속인지 해만 지면 낮에 생긴 일로 옥신각신 말다툼하는 게 일이라 서로 얼굴 맞대고 자는 날이 드문 탓도 있었다. 성격이 불과 물이라면 부부애가 좋았을 것이나, 영태와 영숙은 ‘불과 불’이었던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유가 이유가 되어 거의 일 년을 외도로 생활하는 거였다. 물론, 영태가 남편이긴 했지만 영숙이 기가 센 관계로 잡혀 사는 처지였다. 그러던 영숙은 겨울을 나고 봄을 맞아 영태에게 백일기도를 또 가야겠다고 했다.
“당신 마음은 알겠는데, 아이도 안 들어서는 기도를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어, 벌써 몇 년째 이기나 한 줄 알아?”
“아냐 내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걸 거야! 그런 줄 알고 있고 장사나 잘해 알았지, 자기?”
“그래 알았어. 당신 고집 누가 말리나! 몸조심하고 잘 다녀 와.”
영태 역시 그렇게 말은 하지만, 영숙에게 쥐어 사는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오히려 좋았다. 영업이 끝나면 시내 친구들이랑 고스톱도 마음대로 하고 술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영숙의 백일기도를 빌미로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두 딸 역시 이미 대학생이 되어 있었기에 자유로웠다.
≪제3부≫
영숙이 백일기도가 끝나고 나니 계절은 한 여름에 놓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밥을 먹던 영숙은 심한 구토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입덧이었지만, 영태는 눈치를 못 챈 듯했다.
“당신 왜 그래, 갑자기 어디 아픈 거야?”
“아니야, 어제 저녁 먹은 게 잘못 된 것 같아! 낮에 병원에 좀 가 봐야겠어.”
“그럼 그렇게 해 꼭꼭 씹어서 먹지 어쩐지 빨리 먹는다 싶더니!”
영숙은 스스로 임신이란 것을 알았지만 영태에게 임신이라고 바로 말하기가 속으로 켕겼던 것이었다. 시내 산부인과를 다녀 온 영숙은 그 날 밤...
“자기야! 병원에 갔더니 임신 3개월이 넘었다네! 자기야 나 좀 안아 줘 응?”
“아니, 채했으면 내과로 가는 것 아닌가?”
“물론 내과로 갔었어.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이 체한 게 아닌 뜻하니, 산부인과를 한 번 가보라는 거야. 그래서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이라잖아. 아들이었음 좋겠는데...”
“어 그래! 드디어 입신을 했구나? 고생 했어 기도하느라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영태의 속은 영 개운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임신을 했다고 하지만, 어떻게 합궁도 하지 않고 임신이 가능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백에 하나씩 기도를 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신문보도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가진 것도 아니라 더 더욱 그랬다. 그러나 광신자인 영숙이 기독 덕이라고 우겨대면 어쩔 도리가 없을 위인이었다.
“당신 고생 많았어. 한두 해도 아니고 백일기도 다니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고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홀에는 나오지 말고 몸조심이나 해.”
“그~으럼, 내가 얼마나 성심을 다해 기도를 했다고! 그러니까 자기도 교회 열심히 다니라고, 알았지 자기야?”
“그래 알았어.”
바람을 피워 아이를 밴 줄도 모르는 영태가 불쌍했는지 임신한 이후부터는 영태에게 고분고분하게 대해 주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영태 아내 영숙이보다 열 살 아래인 연하의 남자였다. 백일기도를 핑계로 몇 년씩이나 향락을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영숙의 나이가 40 중반에 다다르자 건장한 30대의 남자와 잠시 사랑에 빠졌다가 임신을 한 것이다. 그것도 계획적이었다. 그 30대의 남자가 워낙 미남이었던지, 그 남자를 닮은 아이라면 좋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일기장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상세하게 이름과 나이와 사는 곳까지 적혀 있었다. 영숙은 그렇게 남편 영태를 바보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 후 일 년이 지나 새 봄에 태진이란 남자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두 딸이 20세가 넘어서 아들을 보았으니 경사는 경사였다. 온 친지들이 모여 태진이의 출생을 환영한다. 그런데...
“태진아, 태진아?”
“응”
“태진이 아빠 어딨어?”
“저어기.”
“저기가 어디야?”
“저어기.”
영숙은 영태가 골프장에 가는 날이면 태진이를 대리고 홀로 나오는 것이었다. 태진이를 대리고 카운터에 앉아서 말을 시키곤 하는 것이었다. 왜 영태가 골프장에 가는 날만 골라서 나오는 것일까? 영숙이 태진이에게 아빠 어디 있냐고 물으면, 이상하게도 서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행동이었지만 영숙은 그런 태진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 태진아, 태진이 아빠는 거기 있지?”
“응.”
그런 모자(어미와 아들)의 행동이 수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여종업원이 그런 모자의 행동이 수상쩍어 영숙에게 묻는다.
“사모님, 사장님이 골프장에 가시는 날에만 태진이를 대려나오네요?”
“참 이상한 것도 많네! 태진이 아빠가 홀에 나오지 말라고 하니, 있을 땐 못나오는 게지 뭘”
“근데요. 사모님? 태진이가 아빠 있는 곳을 시내쪽을 가리키지요? 어쩌다 그럴수는 있지만 아무리 어린 세 살 아이라 해도 좀 이상하네요?”
“참! 언니야 겨우 세 살짜리가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말귀만 알아듣고 손짓만 해 대는 것이지, 별걸 가지고 참견하네! 그렇게 할일 없으면 유리창 청소나 하든지.”
“아녀요 사모님!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그럴 수도 있지요 뭐, 아직 어리니까!”
“그럼 당연하지.”
영숙은 종업원이 그렇게 말을 하면 버럭 소리를 질러대곤 하였다. 그렇게 또 세월은 흘러 가을 낯선 손님이 ‘하늘공원’으로 날아들었다.
“저 실례합니다.”
“네, 어서 오세요! 손님 몇 분이세요?”
“아뇨 식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사모님 안계시나요?”
“네, 내실에 계신데요. 누구시라고 할까요?”
“서울 기도원에서 온 전도사라고 전해 주시면 알겁니다.”
“네, 그러죠.”
서울에서 온 낯선 손님의 말에 종업원은 인터폰으로 서울에서 기도원 전도사라는 분이 찾아왔다고 전한다.
“네 사모님, 홀에 나와 보세요.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영숙은 인터폰 연락을 받기가 무섭게 월남치마를 펄펄 날리며 슬리퍼를 다다닥거리며 달려 나왔다. 사전에 통화가 있었는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종업원들이 있어서인지, 아이 친아빠가 찾아왔는데도 시종 평범한 얼굴로 대했다. 전도사는 바로 태진이 아빠였던 것이었다. 내실에서 나오자마자.
“아이고 전도사님,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시면 어떻게 해요? 전도사님도 참!”
“왜요? 집사님 그럼 도로 갈까요?”
“아이고 참! 전도사님도 반가워서 그냥 해본 말이에요. 호호~~”
“아들을 보셨다더니 축하드려요. 사모님”
“네, 전도사님의 덕분이지요 뭐. 호호~~”
“아이고, 별 말씀을요. 제가 뭘요?”
“아녀요. 전도사님, 기도도 해 주시고 백일기도 갈 때마다 잘 해 주시고 그만하면 덕이지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런데 사장님은 어디 가셨나봅니다. 사모님?”
“네 오늘 골프모임이 있다고 아침 일찍 나가셨어요.”
“네, 그러시군요.”
“아니 전도사님 이럴 게 아니라 시내 나가서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회 좋아하시죠?”
“네, 회 좋아합니다. 이참에 주문진 광어회나 맛보고 가야겠는걸요?”
“네, 그러셔요. 제 차로 가셔요. 언니야 사장님 오시면, 서울 기도원에서 전도사님이 오셔서 식사 대접하러 갔다고 전해 줘.”
“네, 다녀오세요. 사모님”
영숙은 태진이 친아빠와 주문진으로 회 먹으러 간 뒤에 영태로부터 가게로 전화가 왔다. ‘하늘공원’의 모든 전화는 도청이 가능했다. 내실에서 전화하는 내용이 홀에서 수화기만 들으면 다 들리곤 하였다. 그렇게 설치한 것은 영태였다. 종업원을 못 믿었던 관계로 취한 조처였던 것이다.
“네 사장님, 어디세요?”
“어, 여기 아직 골프장이다. 게임 끝나고 술 한 잔씩 하기로 했어. 태진이 엄마에게 그렇게 전해 줘라 언니야”
“네 그러죠, 사장님 사모님도 나가셨어요.”
“어디로?”
“서울에서 기도원 전도사님이 오셔서 식사하러 나가셨는데요. 사장님.”
“참, 괜히 돈을 써. 가게에서 갈비나 구워 대접하면 될 일을 알았어.”
“네, 몇 시에 들어오시나요?”
“늦는다고 그래. 단체모임이라 혼자 빠지기 어렵다. 그럼 장사 잘해라.”
“네, 사장님.”
영태는 골프장에서 영숙은 횟집에서 각자 따로 개인 여가를 즐겼다. 가게는 영숙이 친동생을 임시로 불러 놓은 상황이라 신경 안 쓰고 즐기고 있었다. 영숙이와 전도사라고 했던 태진이 친아빠는 횟집에서 몇 잔이 돌았는지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영숙 누님?”
“고와지셨습니다. 사장님이 좋은 보약 다려주셨나 봅니다.”
“싱거운 소리 말고 집에 있는 양반 이야기는 여기서 왜 꺼내고 그래 분위기 깨지게 시리.”
“하하~~”
“그런데 동생, 우리의 비밀이 영원할 수 있을까? 조금씩 두려워져!”
“왜요. 누님?”
“태진이가 아빠 어딨냐고 물으면 서울 쪽을 가리키지 뭐야, 그럴 때마다 사실은 가슴이 쿵쿵거려!”
“하하~ 고 녀석 저 핏줄은 알아보나 보네!”
“아이 참! 웃을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글쎄...”
“생각 좀 해 봐. 나 두렵단 말이야!”
“아참! 그러고 보니 누님 남편 여동생 돈 빌렸다고 그랬지?”
“그런데, 왜?”
“5년 기한이 얼마나 남았지?”
“아직 1년 남았어. 그런데?”
“좋은 수가 있어. 한번 생각해 보라고. 1년이 지나면 시누이가 빌린 돈 갚으라고 할 거 아냐?”
“그렇겠지 뭐!”
“1년 뒤에 적절하게 소송을 걸어주면 좋지 않겠어?”
“뭐야! 오빠 동생 사이에 소송을 건다고?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어차피 누님도 본 남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러니까 시누이 비위를 자꾸 긁어 놓으란 말이야. 그러면 소송을 걸게끔 되어 있어, 두고 보라고 소송을 안 걸고는 못 견딜 걸 천만 원이 누구 애 이름이야?”
“어어! 생각해 보니 그렇겠는데! 그래서?
“그래서긴 뭘 그래서야, 소송이 걸리면 백발백중 지게 되어 있어. 그러고 친 동생이 소송 거는 것보다 매제가 걸면 효력이 더 크지 암 크고, 말고!”
“맞아, 그런 수가 있었지! 알았어. 이제부터 시누이한테서 전화가 오면 돈 못 갚는다고 슬슬 약을 올려야겠다. 참, 동생은 그런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네!”
“그런데, 동생 시누이가 소송을 걸까?”
“무슨 소리.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거 몰라?”
“그래 그건 그래 동생 그럼 앞으로 이 작전대로 밀고 가자고 동생?”
“그야 물론이지.”
“그런데 동생 나취한다. 양반 들어오기 전에 몸이나 풀고 가야할 거 아냐 오랜 만에 와서 그냥 갈 거야. 아니지?”
“그건 내가 할 말이네요. 누님 비치호텔로 갈까?”
“그래 거기가 좋겠다. 오늘 많이 안아 줘야 해 동생?”
“두말 하면 잔소리지요. 우리 누~우님.”
영숙과 태진이 친아빠는 횟집에서 경포비치호텔로 향하고.
“이봐, 홀 홀?”
“왜요, 오 부장님?”
“꽁치하고 왈왈이 들어왔어?”
“아니요, 아직입니다요, 전화도 둘 다 없네요!”
“그래 잘됐다, 아예 들어오지 말라 그래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영태는 골프동료들과 술독 빠져 헤어나질 않았고, 영숙(일명 왈왈이)은 연하의 남자와 회포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시간은 첫닭이 울 시간이 훨씬 지나고 있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둘이 들어 왔지만 둘 다 외박을 한 처지이다 보니 서로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지나치고 있었다.
≪제4부≫
1980년대의 격동기의 시대가 서서히 역사의 뒤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온 국민이 열망하던 문민시대가 탄생하며 온 나라 전체는 민주화 물결로 흔들리고 있던 1997년. 영태와 영숙의 갈빗집 ‘하늘공원’에 서서히 먹구름이 깔리고 있었으니...
“여보세요? 여기 부산이야, 언니.”
“어 오래만이네! 그래 무슨 일로?”
“아니, 언니 돈 갚는다고 말만 하고 여태 아무 소식이 없어서 전화 했어 언니.”
“아이고 돈이고 뭐고 장사가 되어야지 와봐서 알겠지만 장사가 되던가, 어디?”
“언니, 그러지 말고 이자는 나두고 라도 원금은 줘야할 거 아닌가. 언니”
“누가 그걸 몰라요. 알지만 어떻게 알겠지만 소갈비 장사라는 게 앞으로 남고 뒤로 적자보는 장산 걸!”
“언니, 아무리 장사가 안 되기로서니 그깟 천만 원을 못 갚는대서야 어디 말이 돼, 벌써 약속한 기한이 몇 년이 지났는데 그래?”
“그래 알아 십년이 넘었지 1980년에 빌렸으니까 알지만 아직 더 벌어야 갚을 것 같네”
“언니, 정말 너무 한 거 아냐? 계속 그러면 우리도 생각이 다 있다우.”
“맘대로 해, 그럼 누군 갚기 싫어서 이라는 줄 알아, 돈이 안 되는 걸 어쩌라고.”
영태 영숙 부부는 사실 돈을 많이 벌어 놓았다. 강릉 시내 아파트를 한 동을 사 놓을 정도이니 벌어도 보통 번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부부는 빌릴 때와는 달리 거저 주는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기도 했지만, 영숙의 딴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소송이 걸려 가게를 처분한다고 해도 영태에게는 돌아갈 것이 얼마 없었고 모두 영숙이 명의로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아파트 역시 영숙이 영태 몰래 사 놓은 알짜박이였으니, 영숙은 그냥 몸만 빠져 나와도 죽을 때까지 먹고도 남을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었다. 불쌍한 건 영태였다. 그렇게도 애지중지해서 가꾼 ‘하늘공원’을 매제에게 넘겨주면 그야말로 알거지로 전략하고 말 운명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영태는 영숙이 사 놓은 아파트가 있는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영숙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공원’의 매상을 영숙이 관리를 하였기에 비자금을 빼 돌리기 쉬웠던 것이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가고 ‘국민의 정부’가 탄생되던 가을 어느 날...
“나다, 영태다.”
“어 오빠,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집 양반이 올해도 안 갚으면 가만 안 있는 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단 말이야.”
“야 희순아, 그 돈 신랑 몰래 빌려 주지 않았어?”
“그랬지, 처음엔 그런데 십년이 지나도록 갚지 않고 있으니 내가 신랑한테 다 말했어.”
“모르겠다. 올해도 어렵겠다. 어찌 된 장사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희순아.”
“뭐야 오빠, 정말 원금 반이라도 돌려주면 그냥 있으려고 했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십년이 넘도록 장사해서 돈 천만 원도 못 갚는다니 어디 말이 돼? 길가는 강아지도 웃겠네!”
“누가 모르나, 없는 걸 어쩌라고 은행돈 융자라도 받아서 줘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러게 반이라도 갚았으면 내가 없는 돈으로 친다고 했잖아. 벌써 몇 년이냐고, 도대체 이자만 해도 얼만지 알기나 해? 은행에다 맡겼으면 이자만 해도 그만은 하겠다. 사채놀이를 했으면 벌써 빌딩을 짓고도 남을 시간이야. 하여간 오빠 알아서 해 올 가을 넘기면 남매고 뭐고 필요 없는 줄이나 알라고. 쾅!”
영태 동생 희순이 화가 나도 단단히 날만했다. 집나간 후 연락 하나 없다가 불쑥 나타나서 오빠랍시고 돈 천만 원 빌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는 장사가 안 왼다는 핑계로 늘어지고 있으니, 그것도 원금의 반도 안 돌려주고 십년이 넘도록 있었으니 노발대발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영태와 동생 희순의 통화가 있은 후 무심하게도 시간은 빨랐다. 벌써 초겨울하고도 12월 성탄절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야 영숙아, 재산 관리를 어찌 하기에 통장 잔액이 천만 원도 안 되냐? 다 긁어 봐야 800을 겨우 넘는다.”
“아무리 절약을 해도 안 모아지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어쩌라고 그러게 처음에 돈을 빌린다기에 생각 좀 잘해 보라고 했잖아, 내가.”
“이거라도 주자고, 안 그러면 희순이가 가만 안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하자 영숙아?”
“참, 그거마저 주면 우린 뭐 먹고 살려고 그래. 주려거든 나 죽은 후에나 주든지 해, 난 몰라.”
“야 솔직히 묻겠는데, 혹시 따로 모아 둔 돈 없어?”
“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남이야 남이냐고 딴 주머니를 차게?”
“알았어, 알았어. 답답해서 해 본 소리야.”
“다시 그런 말하기만 해 봐, 동해바다에 콱 빠져 죽어 버릴 거니까. 혼자 살려면 맘대로 해. 부산에서도 그래 같은 핏줄인데, 그냥 준 걸로 치면 어디 덧난데?”
“그만해라. 됐다.”
“하여간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다니까!”
영태와 영숙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요절복통이었다. 영태는 진짜 돈이 없는 것으로 알고, 영숙은 아파트를 한 동씩이나 몰래 사 두고 시치미를 떼고 쇼를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영숙의 작전에 휘말려 영태의 알거지 신세가 될 날이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99년 1월 보름쯤에 한 통화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하늘공원입니다. 누구시죠?”
“네, 서울 기도원 전도삽니다. 사모님 계시나요?”
“네, 전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모님, 서울 기도원 전도사님이십니다. 전화 넘겨받으세요.”
종업원의 인터폰을 받은 영숙은 아무렇지 않게 영태 옆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접니다. 전도사님!”
“아이고 사모님, 오랜 만입니다. 편안하시죠?”
“네, 전도사님도 안녕하시죠?”
“네, 저야 덕분으로...”
“어디신가요? 전도사님!”
“네, 기도원입니다. 장사는 잘 되나요. 사모님?”
“네, 그럭저럭요. 전도사님 곧 봄이 오려나 봐요. 날씨가 푸근해졌네요. 전도사님.”
“그런가요? 하하~~~ 좋은 봄이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만 끊습니다. 사모님.”
전도사와 영숙은 전화선이 더블이 되어 있기도 했고 주위의 귀를 의식해 서로만 알아듣는 암호말로 통화를 주고받았다. 정말 감쪽같이 영태를 따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무럭무럭 자라는 태진이 어딘가 모르게 영태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변에서 감지하였지만 그렇다고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귀한 손자를 본 영태 엄마 역시 늦둥이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찜찜하다는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태야, 태진이 어미야?”
“네 어머니?”
“할말은 아니지만, 태진이가 애비도 안 닮고 어미도 안 닮은 것 같은데 너희들은 못 느꼈니?”
“에이, 어머니는 같은 형제라도 이종이나 고종사촌을 닮은 아이들도 있잖아요?”
“그래 맞아 그렇긴 해, 하지만 성격도 애비와는 딴 판이야 내 생각은!”
“어머니, 절 닮으면 어떻게 해요. 마누라한테 쥐여 살기나 하지요.”
“뭐라고. 영태야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게야? 쓸개도 없는 녀석아.”
태진이 할머니는 이상해서 물어 본다는 게 부부 싸움만 하게 만들고 보니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며느리나 아들이나 보기 싫어 옥천동 집(영태 본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영태에게는 낡아 빠진 옥천동 본가가 있어 부량아 신세는 면한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몇 년 후면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대학 다니는 두 딸들은 미국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간 후 그해 무더운 한여름 난데없이 검은 그랜저가 연 이어 세 대씩이나 들이 닥쳤다. 부산 동생네 부부 인척들이 세 대의 그랜저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온 것이었다.
“이봐요 웨이터, 내실에 가서 하늘공원인지 뭔지 사장하고 사모 좀 나오시라 전하게. 누구냐 물으면 부산에서 왔다고 말하면 알아들을 게요.”
“네, 손님!”
그랜저에서 검은 정장을 한 우람한 사내들과 양장차림의 여인들이 줄줄이 들이닥치는 걸 본 종업원들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감지한다. 안 그래도 알게 모르게 하늘공원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는 소문이 나돌아 일부는 보따리를 이미 싼 상태였고 나머지 종업들은 우리가 왜 보따리를 싸냐며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부산 손님들 중 한 여인은 이미 종업원들도 알고 있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한 번도 못 본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 중 대표로 사장과 사모를 찾은 건장한 40대 중반의 신사는 마도로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멋이 있었다. 양 귀 밑으로 구렛나루가 있었고, 작은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영락없이 마도로스를 연상케 했다. 종업원들이 부산 손님들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을 무렵, 영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왔고, 영숙은 모아 둔 제산이 있었기에 무덤덤하게 나와 있었다.
“이보! 매부 오늘부터 하늘공원은 우리가 영업할 것이니 짐 정리나 하시오.”
영태는 단 한 마디도 못 하였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었다. 겨우 한 마디 한다는 게 동생 희순이에게 마지막으로 1년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 뿐, 부산 손님들은 이미 모든 조치를 취해 놓고 들이닥쳤고 동생 희순이 역시 친 오빠이긴 하지만 더는 봐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미 남이 되어 있었다.
“댁이 날 언제 봤다고요. 흥! 뻔뻔해도 분수가 있어야지 원! 아무 말도 듣기 싫으니 어서 짐이나 챙기슈, 옥천동은 엄마 몫으로 있으니 손을 못 대겠고, 댁이나 알아서 살길 찾아 가슈.”
“알았다, 희순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구나! 있는 종업원들이나 거둬 줘라, 종업원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니? 부탁한다.”
돈을 빌린 당사자가 순순히 물러나자 영태 부인 영숙 또한 아무 말이 없었다. 기실은 영숙인 속으로 내가 빌린 것이 아닌데, 내가 무슨 책임이 있느냐며 먼 산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영숙이 아파트를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주변에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소름이 기칠 정도로 주도면밀하였다. 같이 살을 부비고 사는 영태마저 새까맣게 모르고 살았으니 귀신인들 알았겠는가. 세금 계산서도 ‘하늘공원’으로는 날아오질 않았다. 이따금 또 다른 행방을 알 수 없는 전화만 올 뿐!
“아이고! 가게를 얼마나 개떡같이 관리를 했는지 마룻바닥이 다 주저 않고 있고만 그래!”
“돈은 다 벌어서 입으로 처넣었나!”
영태 동생 희순과 희순 남편은 ‘하늘공원’을 인수받고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본관 건물을 완전히 털어내고 현대식 건물로 세웠고 야외예식장의 잔디를 파내고 적갈색 아스팔트로 바꾸었다. 그리고 영숙은 아들 태진이와 함께 30대 중반의 연하의 남자 태진이 친부와 합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고 영숙의 전 남편 영태는 일흔이 넘은 어머니와 옥천동 본가를 헐값에 처분하여 강릉바닥을 벗어나 동해에서 자그마한 농산물 야채상을 하며 살아갔다.
20년이 넘게 비지땀을 흘려 번 돈은 고스란히 영숙의 차지가 되어 버렸으니, 영태야 말로 옥천동 본가가 없었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알거지의 신세’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렇게도 노랭이(구두쇠) 짓을 하더니, 말년이 다 되어 승천하다 떨어진 이무기가 되고 만 셈이다. 검은 그랜저를 운전하고 골프를 즐기러 다니던 이영태. 그는 젊은 날 잠시 잘못 생각한 죄로 오토바이 한대 없이 손수레를 끌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갔다.
“자아~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여기 떨이 배추가 한포기에 500원~500원~ 시들기 전에 들여 들 가시오. 통통한 무 한포기에 1000원이요, 1000원~ 이봐요 아줌마 통통한 무가지고 소고깃국 끊이면 그만이오. 끝내 준다니까요. 자아~ 배추가 오백 원, 무가 천 원~어언!”
영태의 두 눈에선 어느 새 이슬이 한 방울 두 방울 고이고 있었다. 세월은 심산유곡의 폭포수라 했던가. 영태의 손거울에 비친 검었던 머리는 희끗희끗 벌써 서리가 내려 앉고 있었다. ♥♥♥♥
-끝-
- 2005년8월6일 계간 뜨락문학으로 당선 등단. -
『당선소감』
솔직히 내가 글쟁이가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 수필에 이어 소설이라니 운도 이런 운은 없을 것이다. 아니 작가라는 꿈조차 꾸지 않고 있었다. 학창시절이나 사회인으로서의 기라성 같은 작가님들의 저서를 그저 흥미위주로 읽고 “재미가 있네! 없네!” 어설픈 느낌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학창시절에 국어책 어느 줄거리 하나 뽑지 못해 참고서를 보고 쭉쭉 베껴내는 게 전부였다. 이 시점에 문득 생각나는 한 마디가 있다. 지금은 경상북도 교육청 과학산업교육과 장학사로 근무 하시는 ‘이희욱’ 스승님의 말씀이다.
“일기를 매일매일 쓰라곤 하지 않겠다. 2~3일에 한 번씩 몰아서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일기를 쓰는 습관을 길러라. 그리고 먼 훗날 너희들 스스로 기록한 나만의 일기장을 한번 읽어 보아라. 그 땐 아마도 오늘의 ‘나’라는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
그렇다.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기록하는 습관이 오늘에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소설이나 동화를 허구라고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역사소설이나 실화소설(체험기)은 허구라고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 공상과학자들이 만들어 내는 고체적 마징가 제트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가 살아가면서 잊어서는 안 될 눈에 보이는 찰나의 순간순간들을 담아 낼 것이다. 흐르는 물과 같이 액체적 실화소설을 쓸 것이다. 물론 소설을 언제까지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쓰고 싶을 때까지는 늘 초심의 정열로 임할 것이다.]
끝으로 너무도 부족한 소설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비가 내리나 눈이 내리나 늘 푸르른 사철나무처럼 더불어 정진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소설은 정말! 꿀맛인기라! 꿀맛! 꿀맛! 그래 맞다, 맞다! 꿀맛! 꿀맛인기라! 하하하~~~”
『심사평』
「특별한 소재를 찾아내어 주제의 의미화에 성공ㆍㆍㆍ」
제6회 뜨락문학 신인상에 응모한 여러 편의 작품 중에서 주현중님의 <몰락한 자린고비>를 選에 넣는다.
주현중님의 소설은 현대 문명을 풍자한 해학과 위트가 넘쳐난다. 구두쇠의 몰락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현대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에 신선한 자극을 던져주고 있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소재를 찾아내어 주제의 의미화에 성공했다. 작가의 의식이 돋보인다.
특히 주현중님은 이미 타 문예지를 통해 시와 수필로 등단을 할 만큼 탄탄한 문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그런데도 소설로 등단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함께 전방위 작가로서의 야심찬 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창작 열기가 본 작품 ,<몰락한 자린고비>에서도 돋보인다. 소재는 체험의 산물이고 주제의 심화는 그 작가의 정신적 역량이다. 영태와 주변인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을 것인지 전개하는 과정이 진지하고 흥미롭고 실전감 있다. 이런 전개과정은 그가 문학에 얼마만큼 노력을 쏟아 붇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점을 높이 사며, 앞으로 문단에서 대성하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문학평론가 ; 김희수) (시인 ; 박영원)
첫댓글 시인님~ 감사합니다~~새로운 한 주 내내 사랑안에서 행복하세요~~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