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 주말이면 기륭 천막에서 잠을 잡니다.
어제도 기륭농성장을 찾아갔습니다.
농성장엘 가면 제일 먼저 옥상으로 올라가서 정확히 꼭 50일째 옥상 농성중인 두 누이를 알현 하는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어제는 그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고 있던,텐트 밖 연등이 여느 때보다 더 처연했습니다.
저 삭막한 시멘트 옥상 가시철조망 틈에 홀로 피어있는 연꽃 한 송이가 기륭누이들 같다는 생각에 셔터를 눌렀습니다.
▲ 어제는 농성장에 간이천막을 치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모쪼록 기륭 투쟁이 정의롭고 평화롭게 마무리되길 소망하는 미사입니다. 몸은 나뉘어져 있지만 저 ‘아랫것’들과 같은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한 컨테이너 위의 두 누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바람처럼 앉아 아무 데도 발을 디딜랴 하지 않았다.”
박용래 님의 시 한 구절도 떠올랐습니다.
▲ 미사를 이끌어주신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은 김정대 신부님이십니다. 성함처럼 참 공명正大하신 분인데, 신부님은 지하철 1호선 동암역 앞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수울∼찝? 읽는 순간, 율이아빠는 귀 솔깃, 눈 번쩍, 침 꼴깍 할 터인데 여느 술집과는 다른, 노동자들을 위한 술집입니다. 힘겨웠던 하루의 노동을 끝낸 노동자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홀 한 편에는 조그마한 무대와 통기타가 마련되어 있고 컴퓨러도 세 대 놓여 있습니다. 주방 일은 신도님과 수사님이 하시고 신부님께서는 서빙과 청소를 하십니다.
안주가 맛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양이 푸짐합니다.
상호는 ‘삶이 보이는 窓(창)’입니다.
▲ 옥상 두 누이 뒤의 공장 굴뚝을 보는 순간, 불현듯 ‘난쏘공’이 떠올려져 셔터를 눌렀습니다. 저 누이들과 우리 모두의 ‘낙원구 행복동’은 언제 만들어질까 생각했습니다.
▲ 컨테이너 농성장 앞에는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예술품이 있습니다. 비스켓 한 조각을 나누어 먹는 건지 빼앗아 먹는 건지 알쏭달쏭한 조각상인데 예술적 안목이 거시기한 분회원들은그 예술 작품을 설거지대로 쓰고 있습니다.
대단한 기륭분회입니다.
▲ 미사곡으로 ‘민들레처럼’, ‘그날이 오면’을 나직이 부른 후, 신부님께서 빵을 고루고루 주십니다. 한 발자욱 바깥의 천막 밖에서도 저처럼 가진 이들이 덜 가진 이에게 자기 몫의 빵을 조금 떼어주었음 좋겠습니다.
▲ 미사가 끝나고 중앙대 춤패 학생들이 기륭 승리를 응원하는 율동을 하고 있습니다. 영악하게 제 잇속 차리지 않고 투쟁 현장을 찾아와 비를 맞으며 온몸으로 활기를 불어넣어준 학생들이 기특하고 고마웠습니다.
▲ 짜∼안. 마무리도 깔끔합니다.
▲ 기륭 덕분(?)에 얻은 것도 있습니다. 세연이가 그렇습니다. 기나긴 시간을 치열하게 투쟁하는 동안 연대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역 노조 조합원과 靈肉(영육) 간에도 연대를 해서 얻은 귀한 아기인데 매일 밤 문화제를 할 때면 아장아장 무대 앞으로 나와 앙징스럽게 몸을 흔드는 재롱을 부려 귀여움을 독차지합니다. 훗날 자란 세연이가 자기 몫의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기륭 이모들이 힘차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옆의 빨깐 조끼 입으신 분은 기륭분회의 맏언니인 *란 누이입니다. 음식 솜씨가 출중하고 속정이 깊은 분입니다.
▲ 미사 후의 저녁 만찬 모습입니다. 와주신 분들이 많아서 세 팀으로 나뉘어 식사를 헸는데 요것은 천막 안 풍경입니다. 신부님과 함께 온 여신도님들은 처음 뵙는 분들이었지만 기륭조합원들을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따뜻한 밥만큼이나 분위기가 훈훈했습니다. 청국장이 아주 맛있었습니다.
▲ 여기는 기륭본사 뒤편입니다. 김소연 분회장 뒤로 보이는 붉은 건물이 기륭전자 신사옥이고 오른쪽의 벽돌건물은 경찰지구대 건물입니다.
기륭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지구대가 바로 옆에 있으니 이제는 노조원들이 집회를 못할 것이라고 회사 측 사람들이 좋아들 했다는데 분회원들은 분회원들대로 그동안 곤란을 겪었던 식수와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좋아했다고 하니 참 同床異夢(동상이몽)도 가지가지입니다.
매일 아침, 분회원들은 농성장에서 승합차로 10분 거리인 이곳으로 와 출근투쟁을 하고 투쟁이 끝나면 그날의 일용할 물을 이렇듯 받아갑니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은 출근투쟁은 안 하고 물만 받았습니다.
생수통을 옮기는 이는 기륭분회의 유일한 청일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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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쿠, 마지막으로 헤솔애비가 보내준 희양산 우렁쌀을 무사히 전달하고 인증샷을 했습니다.
‘들지(드시지) 말고 전달해 달라’고 해서 참 난감했습니다. (←ㅎㅎ... *수 바이러스에 감염?)
첫댓글 ㅎㅎ 날씨가 쌀쌀해져서.. 마음이 짠하네요...쩝~ 인증샷까지 안찍으셔도 되는뎅.... 아! 그리고, 그 김정대신부님도 여기 희양산우렁쌀 드신지가 벌써 5년은 되셨을 겁니다.... ....
형! 지금 비온다. 언제 떡이라도 해 이고 가 봐야하는데.... 비는 오고 마음은 젖고 술은 고픈데 밤은 깊고 잠은 안 오고... 앞으로는 이런 글 11시 이후에 보이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겠어.
언제 한 번 김정대 신부님이 한다는 '삶이 보이는 창'이란 술집에서 리트머스 오라버니 와 한 잔 했으면 좋겠구만요. 용맹한 우리 언니들 화이팅 ! 아자! 파숑! 신부님도 화이팅 ! 우렁쌀도 화이팅!
슬픔이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는 습이 생겼습니다. 전주에선가.... 천막농성하는 그분들의 천막을 들여다 본 적 있습니다. 머뭇대다가 지난 기억. 샘은 서울에서도, 그 복잡한 세상에서도 두리번거리지 않고 반듯하게 가시는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