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부천시 지속발전협의회 고문과 시흥시의 장곡동 자치협의회 위원을 맡고 있다. 원래 2중 생활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부천에 산 것은 86부터 96년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린 40대 10년 뿐이었다. 그래서 호주에 살 때도 귀국하면 꼭 부천에 와서 일일이 만나기가 어려워서 한 장소에서 여러분들을 함께 만났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내 장례식에 참석해 줄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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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시청에서 지속협 행사가 있어서 그야말로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해서 잠깐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은 저녁에 줌 모임이 있어서 빨리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찍 가서 허원배 대표와 차를 마시고 강당으로 갔다.
5:30분 행사 시작이지만 시장이 와야 시작을 하는데 늦었다.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당 문을 나서는데 시장이 어디갔다 오는지 일행과 함께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시장이 나를 발견하고 내가 서있는 문쪽으로 오기에 농담으로 일부러 여러 사람들 듣게 “아니 시민들이 기다리는데 시장님이 이렇게 늦으면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
시장은 “죄송합니다”하며 악수를 하고는 강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었다. "어디를 가나?" 했더니 급하게 볼 일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정말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었다.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까지 지방의회가 구성되어 있고 말단 행정기관인 동단위에는 자치협의회라는 것이 있다.
21년도 귀국을 해서 부천에 자리가 없어 인근 시흥시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는데 눈치 빠른 여성 아파트관리소장이 내 성분을 파악하고 동자치협의회에 들어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들어가 보니 34명 가운데 내가 제일 낡았고 최신제품은 88년산이었다.
그런데 자치협의회 활동이 머리로 하는 것보다 자잘하게 몸으로 하는 일들이 많아서 많아서 내 년식에 일일이 쫓아다니기가 힘들어서 말년 병장처럼 임기가 끝나기만 기다리면서 3년 만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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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동안 나라의 최말단 행정기관인 동 단위의 행정을 보면서 배운 바가 많았다. 내가 해외에 있었던 20년 사이에 우리 나라가 놀랍게 발전을 해서 교회는 아직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천당만 강조하고 있는데 지방자치 속에서는 ‘약자 보호, 공동체성 강조’등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웃 사랑을 주둥이로만 하지만 행정기관은 돈과 몸으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정치가 종교보다 백 배는 중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