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인터넷한국일보 뉴스본부장] 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11월을 맞아 새로운 정국 이슈들이 삼각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다른 이슈들은 모두 덮어졌었다. 여야가 지난달 31일 세월호 3법에 합의함으로써 다른 대형 이슈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개헌, 선거구제 획정·개편, 공무원연금 개혁, 남북관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공기업·규제 개혁과 경제 활성화, 민생 법안, 새해 예산안 처리 등….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화두는 개헌과 선거구제, 공무원연금 등이다. 세 가지 '뜨거운 감자'는 연말 정국의 최대 이슈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메가톤급 3대 이슈의 향배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권과 여야 정당의 명운을 가르는 이슈들이 될 수 있다.
개헌 문제는 국가의 틀과 룰을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이슈이다. 또 선거구제 개편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틀을 바꾸는 문제로서 개헌만큼이나 중요하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정치 지형 및 선거 지형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곧바로 여야 정당의 유불리로 이어진다. 정치권에 "선거구제 개편은 개헌보다도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거구제는 민감한 문제이다. 선거구제 개편으로 '밥그릇' 빼앗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일부 의원들이 몸으로 막아내면 선거법 개정은 이뤄지기 어렵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복지 및 재정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서 미래 사회 재편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개헌 문제=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는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고 개헌론에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현실적으로 워밍업 수준의 개헌 공론화 작업은 막기 어려울 것 같다. 박 대통령의 경고로 개헌론에 불을 지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일단 개헌 언급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 소속 의원들과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비박계의 일부 의원들은 정기국회 기간에도 종종 개헌론 점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소속된 의원들은 정기국회 기간에도 몇차례 모임을 갖고 개헌론을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는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과반수가 조금 넘는 150여명의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개헌 논의가 민생 문제 해결과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개헌론 군불 때기' 수준이지만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내년은 5년 단임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골자로 하는 '1987년 체제' 개편 논의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개헌을 추진할 경우 헌법 개정의 적기는 2016년 4월 총선 직전이 될 수 있다. 헌법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헌을 추진할 경우에는 총선 직전에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4월 총선 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해 국민의 뜻을 물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016년 초에 개헌안을 통과시키려면 2015년 하반기에는 개헌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기국회와 내년 초의 개헌 논의는 워밍업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내년 가을 이후의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지금 개헌 논의는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개헌특위 구성도 반대한다"고 못을 박으면서도 "내년 가을 이후에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문제에 대해선 정해진 입장이 없다"고 여운을 뒀다.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헌론자들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하면서 미국식의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내각제, 이원정부제 등으로 바꿔보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개헌 추진에 앞장서는 의원들 다수는 이원정부제와 유사한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외치, 총리가 내치를 맡는 이원정부제 개헌이 이뤄질 경우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외교안보 전문가가 대통령후보로, 유력 정치인이 총리 후보로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뒤 여러 차례 개헌론이 제기됐지만 한번도 힘을 얻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반수의 의원들이 개헌 추진에 동조하고 있고, 여야 정당의 대표가 개헌론자여서 정기국회 이후에는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활성화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국 실제 개헌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여전히 허들(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아직도 개헌에 소극적인데다 개헌에 앞장서고 있는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불신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직 대통령과 유력 대선주자들의 뜻이 맞아야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데, 주요 인사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결혼하기로 뜻을 모았는데도 누구를 신랑, 신부로 정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릴 수 있듯이 개헌 방향을 놓고 견해가 엇갈리면 성사되기 어렵다.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사람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요즘 이원정부제를 비판하면서 사실상 개헌론에 제동을 거는 것을 봐도 그렇다.
◆선거구제 개편 및 획정 =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3 대 1에서 2 대 1로 줄이라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국회는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하든지 선거구제 틀을 바꾸든지 해야 한다. '게임의 룰'로 불리는 선거구 획정은 반드시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므로 20대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 정기국회부터 내년 가을 정기국회까지 논의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구 획정은 정치 지형의 '빅뱅'을 가져올 수도 있다. 기존의 일부 선거구를 없애고, 새 선거구를 만들기도 하고 선거구 경계도 새롭게 그어야 한다. 또 이번 기회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 선거구에서 1위 득표자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는 양당 체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 선거구에서 2~6명 가량 당선되는 중대선거구제는 다당제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당제는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나 이원정부제와 친화성을 갖는다. 따라서 야당이나 진보 정당 내부에서는 중대선거구제-다당제-내각제 또는 이원정부제를 선호하는 세력이 상대적으로 많다. 최근 헌재 결정이 나온 뒤에 진보 성향 신문들이 중대선거구제 도입론을 적극 제기한 것은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남은 정기국회 기간을 그동안 지체됐던 경제활성화 법안과 내년도 예산 처리에 집중해야 할 시기로 보고 선거구 획정으로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꺼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구체적 대안까지 거론하며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서두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선거구제의 근본적인 개편은 개헌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난한 작업이어서 성사되기 어렵다. 따라서 여야는 소선거구제 틀을 유지하면서 지역구 인구 편차를 조정하는 수준에서 선거구를 획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여야 정당이 아닌 제3의 중립적인 전문가그룹에게 선거구 획정 초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연금 개혁 =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권의 명운이 걸린 작업이 될 수 있다. 최근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권을 거는 모험'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받은 혜택은 잊어도 뺏긴 기억은 오래 가는 법"이라며 연금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무원노조가 1일 여의도에서 주최한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 집회에 10만명 가량이 모인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이 심각하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여당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을 연내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여권 내부에 "연말까지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은 이같은 회의론을 잠재우고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개정안을 제출했다.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공무원뿐 아니라 군인, 교사 등 공적 연금 대상자까지 가세하면서 개혁 동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연금 개혁 반대 세력들이 결집하기 전에 개혁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무원들의 적극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로부터는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명분이 있는 개혁이란 뜻이다. 또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개혁이기도 하다. 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수년, 수십년 동안 수십조원, 수백조원의 돈이 펑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이 늦어져 2016년 총선이 가까워지면 공무원연금 개혁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된다. 야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야당은 다만 "작전 치르듯이 밀어붙이면 안된다.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 또 연말에 예산과 각종 법안을 처리하는 '밀고당기기' 협상 과정에서 야당이 연금 개혁안 처리 문제를 지렛대로 삼을 수도 있다. 야당은 최근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방산 비리 문제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데, 여야가 국정조사 문제와 공무원연금 개혁법안 처리를 연계해 협상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귀추가 어떻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공무원 연금 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는 모순 관계에 있는 듯한 '속도'와 '합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내에 처리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내년 이후로 미뤄지면 현실적으로 이뤄내기 어렵다. 또 공무원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을 잘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 여부가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