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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開拓者)★
[노숙 7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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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야?”
몸수색을 마친 사내가 김명천이 쥐고 있는 가방을 눈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김명천이 가방의 지퍼를 반쯤 열어 보였다. 안에든 달라 뭉치가 드러나자 사내는 입술끝을 비틀고 웃었다.
“좋아.”
사내가 비켜서더니 턱으로 벽쪽에 붙여진 의자를 가리켰다.
“저기서 기다려. 보스한테 보고할 테니까.”
벽쪽의 의자에 앉은 김명천은 심호흡을 했다.
항구 근처의 이곳까지 오는데 두 번이나 몸수색을 받았지만 가방 속에 든 돈은 건드리지 않았다. 마트로프에게 상납될 돈인 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얼마냐고 묻지도 않은 것이다. 보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보스의 여자에게 손을 댈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밖으로 나간 사내를 기다리면서 김명천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집 안에는 경호원 두명이 있다. 마트로프까지 포함하면 셋이다. 마트로프의 방에 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셋이다. 그때 방으로 경호원이 들어섰으므로 김명천이 머리를 들었다.
“이층 응접실로 가.”
경호원이 문을 열더니 턱으로 옆쪽 계단을 가리켰다.
“마트로프씨가 기다리고 계셔.”
“고마워.”
“천만에.”
검은 머리칼에 눈동자도 검은 경호원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미남이다. 방을 나온 김명천은 양탄자가 깔린 계단을 한 계단씩 확인하듯 밟으며 올랐다. 붉은색 양탄자는 깨끗하게 손질이 되었고 푹신한 느낌이 상쾌했다.
계단을 오른 김명천은 곧 2층 응접실에 둘러앉은 사내들을 보고는 조금 당황했다. 이또와 오가와를 본 것이다.
“여어, 김, 어서오게.”
마트로프가 조금 과장한 것처럼 큰 목소리로 김명천을 반겼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러면서 마트로프의 시선이 김명천이 쥐고 있는 검정색 비닐 가방으로 옮겨졌다. 가방 안에 달라 뭉치가 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보고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예, 드릴 것이 있어서.”
다가간 김명천이 힐끗 이또와 오가와를 보았다. 그러자 마트로프가 그들을 소개했다.
“참, 서로 모르고 계셨든가? 이분은 로니전자의 극동지역 사장이신 이또씨고 이분은 하바로프스크 지사장 오가와씨.”
마트로프가 이번에는 김명천을 가리켰다.
“이쪽은 아까 말씀드린 일성전자의 연락책인 마스터 김이요.”
“처음 뵙습니다.”
김명천이 이또와 오가와의 중간지점을 향해 머리만 숙였다.
그러자 이또와 오가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례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악수를 마친 그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마트로프가 물었다.
“김, 줄 것이 있다고 했는데, 뭔가?”
“예, 돈입니다.”
그리고는 김명천이 힐끗 이또쪽을 보았다. 괜찮겠느냐고 묻는 시늉이었다.
“아, 괜찮아, 서로 다 아는 사이니까.”
마트로프가 말했으므로 김명천은 머리를 끄덕이며 가방을 탁자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지퍼를 열고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마트로프는 웃음띈 시선으로 그것을 보았고 이또와 오가와는 예의상 외면하고 있다. 김명천은 다시 심호흡을 하고는 가방 밑바닥에 깔린 베레타 92-F 자동권총 손잡이를 쥐었다.
소음기까지 끼워져 있어서 총신 길이가 가방에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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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천은 베레타 92-F의 손잡이를 쥐었다. 약실에 넣어진 탄알까지 포함하면 15알이 넣어져 있다. 베레타를 꺼내든 김명천이 총구로 이마를 겨누었을 때 마트로프는 놀라 눈만 크게 떴다.
소음기가 끼워진 총신은 길어서 마트로프의 이마와 1m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앗.”
옆쪽에서 놀란 오가와가 낮게 외마디 외침을 뱉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또는 눈만 치켜뜬 채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다.
“너, 김.”
그 때 마트로프가 겨우 그렇게 한마디 뱉았을 때였다.
“퍽!”
야구 뱃트로 모래주머니를 내려친 소음 같았다.
그런 소음이 들린 순간 마트로프의 이마에 연필 직경만한 구멍이 뚫리더니 화약 냄새가 맡아졌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마트로프는 뒤로 반듯이 넘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들은 여기에 그대로 있어.”
총구로 이또와 오가와를 가리킨 김명천 차분하게 말했다.
“앞으로 3분쯤만, 그 후에 소리를 지르던지 울던지 하도록.”
김명천이 문쪽을 힐끗 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이곳을 다시 탈출해서 나가야 될테니까 말이야.”
그리고는 김명천이 몸을 돌렸을 때였다.
“잠깐만.”
이또가 김명천을 불렀다. 물론 그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김명천이 멈춰서서 머리만을 돌렸을 때 이또가 물었다.
“혼자십니까?”
“이곳에는 혼자 들어왔어.”
“일행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집 안에는 경호원이 둘입니다. 이층으로 올라오는 입구에 하나, 현관 앞에 하나.”
“알고있어. 고맙소.”
“이또라고 합니다.”
경황중에도 이또는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조금 전에 인사를 했는데도 다시 하는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내가 무사히 나가고 나야 앞으로가 있을 것 아니요?”
뱉듯이 말한 김명천은 지퍼를 열어 놓은 돈가방 위에 다시 베레타를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와 조금 전에 들어갔던 방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있던 단정한 사내가 머리를 돌려 김명천을 보았다.
“벌써 끝났어?”
사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머리를 끄덕인 김명천은 가방에서 베레타를 꺼내어 겨누었다. 그 때 엉거주춤 일어섰던 사내가 질색을 하면서 가슴에 손을 넣었지만 늦었다.
“퍽! 퍽! 퍽!”
이번에는 세발을 연달아서 쏘았고 5m쯤 떨어져 있던 사내는 가슴에 두발, 배에 한발을 맞고 벽에 부딪치며 쓰러졌다.
이제 권총을 손에 쥔 김명천은 반대편 방문을 열고 방을 나왔다. 그러자 현관 안쪽에 서 있던 장신의 사내가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는 것이 보였다. 사내와의 거리는 7, 8m 정도, 사내는 소음기를 끼웠어도 방안의 발사음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내가 몸을 펴면서 가슴 안쪽 권총 홀더에서 권총을 꺼낸 순간에 김명천의 베레타는 발사음을 내었다. 0.3초쯤 빨랐을 것이었다.
“퍽! 퍽! 퍽!”
이번에는 사내의 머리를 겨누었던 한발만 빗나갔고 두발이 가슴에 명중되었다. 가슴에 충격을 받은 사내가 뒤로 날아가듯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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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다가온 사내는 빅토르 카잔스키였다. 카잔스키는 손에 리볼버를 쥐고 있었는데 은색으로 반들거렸다. 그래서 장난감 같이 보였다.
“김, 어떻게 되었어?”
다급하게 카잔스키가 물었으나 김명천은 대답대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가에 세워졌던 두대의 벤은 이미 양쪽 문이 닫친채 운전석에 앉은 사내는 카잔스키의 부하들이었다. 모두 처치한 것이다.
“안에 마트로프와 부하 두 명의 시체가 있어.”
눈으로 뒷쪽의 저택을 가리킨 김명천이 말하자 카잔스키가 두 눈을 부릅뜨고 몸을 굳혔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 해치웠군.”
“하지만 마트로프는 로니전자의 일본인 두 명하고 같이 있었어.”
“그놈들도 없앴나?”
“아니, 살려주었어.”
카잔스키의 시선을 받은 김명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자들도 마트로프한테 보호비를 내는 관계야.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처지라구.”
“좋아, 가자구.”
그들은 서둘러 마트로프의 벤에 올랐고 현장을 떠났다. 주택가여서 차량과 행인의 왕래가 뜸했지만 카잔스키는 저택 밖에서 경호하던 경호원 6명을 사살한 것이다. 벤 안에도 마트로프 부하들의 시체가 둘이나 있었고 흘러내린 피냄새가 역겨웠으므로 김명천은 유리창을 열었다.
“김, 넌 히어로다.”
카잔스키가 열기가 가득찬 눈으로 김명천을 보았다.
“넌 단숨에 시베리아 동북부의 마피아 두목을 없앴다.”
“뒷 수습은?”
김명천이 짧게 묻자 카잔스키는 금방 정색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마트로프는 2인자를 키우지 않았어. 몇 푼 안되는 보호비도 제가 직접 챙겼다. 그런 조직이었으니 마트로프만 없어지면 금방 붕괴된다.”
자신 있게 말했던 카잔스키가 김명천의 시선을 받고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차근차근 마트로프의 영역을 접수해갈 작정이야. 기간은 최대로 잡아도 열흘. 물론 마트로프의 부하들과 마찰이 있겠지만 내가 흡수하게 될거야.”
그리고는 카잔스키가 빙긋 웃었다.
“기업체들은 전화 한통이면 되지. 로니전자 같은 곳은 이미 그 꼴을 보았으니 전화를 할 필요도 없겠군.”
“나한테 보호비를 내려고 하겠지.”
“그러게.”
다시 웃었던 카잔스키가 곧 정색하고 김명천에게 물었다.
“김, 어떻게 할테냐? 회사에 그대로 남아있을 작정인가?”
카잔스키는 작전이 성공했을 경우에 동업자 관계로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작전이 성공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
카잔스키의 시선을 받은 김명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회사에 남아있을 작정이야.”
“아쉽군.”
이맛살을 찌푸린 카잔스키가 힐끗 뒷쪽을 보았다.
벤 한대가 바짝 붙어 따랐고 그 뒤에도 3대의 승용차가 이어져 있다. 모두 카잔스키 일파의 행렬이다.
“네가 회사에서 받는 수당보다 몇십배 몇백배 벌 수 있을텐데.”
카잔스키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김명천은 빙긋 웃었다.
“카잔스키, 당분간이라고 했어. 나는 더 큰 짓을 노리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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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천의 전화가 왔을 때는 오후 4시경이었는데 민경아는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민경아씨, 나 김명천입니다.”
김명천의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차분하게 울렸지만 놀란 민경아는 온몸을 굳혔다. 하루 종일 김명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입을 반쯤 벌렸던 민경아는 숨을 삼키고는 물었다.
“지금 어디세요?”
하마터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을 뻔한 것이다. 우문일 것이었다. 김명천이 살아있으면 된 것 아니겠는가? 그때 김명천이 말했다.
“일 끝났습니다.”
“네?”
“일이 끝났다구요.”
심장 박동이 갑자기 멈춘 민경아가 커피잔을 내려놓다가 엎질렀다.
“언, 언제요?”
“한 시간쯤 되었는데.”
김명천이 시간을 계산하는 듯이 뜸을 들였다가 곧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보고해 주십시오. 전화상으로 자세한 내막은 말할 수가 없어서요.”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민경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아까 엎질렀던 커피잔을 다시 건드리는 바람에 책상위로 커피가 쏟아졌다. 민경아가 허겁지겁 다가섰을 때 팀장 최경태는 모니터를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팀장답게 목소리는 차분했다.
“무슨 일이야?”
“김명천씨 한테서 금방 연락이 왔어요.”
최경태의 시선을 받은 민경아가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일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뭐라구?”
“일이 끝났다고 했다구요.”
“그, 그러면.”
마침내 최경태도 더듬었다.
“그, 그러면 마트로프를.”
“해치웠단 말 같습니다. 전화상으로 자세한 내막을 말할 수 없다고까지 했거든요.”
“언, 언제?”
“한시간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자리를 차고 일어선 최경태가 지사장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세발짝쯤 발을 떼었다가 머리만 돌려 민경아를 보았다.
“따라와.”
잠시후에 그들은 지사장실에서 고영호와 마주 앉아 있었는데 방안 분위기는 긴장과 흥분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모두 말은 아꼈다. 이런 상황은 모두에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고영호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치웠는지 알 수가 없군. 방송이나 TV보도도 나오지 않고 말이야.”
고영호는 이미 방안의 TV를 켜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최경태가 대답했다.
“마피아와 관련된 사건은 대개 보도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이르쿠츠크에서 마피아 간부가 죽었을 때도.”
“그건 그렇지.”
한 달이나 지난 후에 보도가 되었던 것이다.
고영호의 시선이 민경아에게로 옮겨졌다.
“김명천이가 다시 연락을 해온다고 했어?”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셋은 일제히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나서 고영호는 무안한듯 이맛살을 찌푸렸으며 최경태는 헛기침을 했다.
민경아만 가만있었다.
전화기를 든 고영호가 심호흡을 하는 것이 보였다.
“예, 일성전자입니다.”
고영호가 응답하더니 곧 눈을 크게 떴다.
“예? 로니전자라구요?”
로니전자에서 온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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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십니까?”
고영호가 앞에 앉은 최경태와 민경아를 둘러보면서 전화기에 대고 물었다. 경쟁사인 로니전자로부터 처음 걸려온 전화였던 것이다. 그 때 수화구에서 조심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 영어다.
“저, 거기 혹시 미스터 김이 계시는지요? 이니셜이 MC김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 순간 긴장한 고영호의 상반신이 반듯하게 세워졌다.
“그런데 왠일이십니까?”
그것은 MC김이 있다는 대답이나 같다. 그러자 저쪽에서 말이 이어졌다.
“저는 로니전자 하바로프스크 지사장 오가와라고 합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MC김에게 저희들도 잘 나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예, 말씀 하시지요.”
“연락 주시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예.”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전화가 끊겼을 때 고영호가 아연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앞에 앉은 둘을 보았다.
“로니전자 하고도 관련이 있나보다.”
혼잣소리처럼 말하자 최경태가 다시 눈을 크게 떴다.
“예? 무슨 말씀입니까?”
“김명천이 한테 저희들도 잘 나왔다고 전해 주라는데.”
“잘 나왔다구요? 어디에서 말입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짜증이 난 고영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곧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더럽게 공손하군. 그리고 연락을 주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겠다는 거야. 도대체 김명천이가 이놈들을 어떻게 만난 것이지?”
“곧 다시 연락이 오겠지요.”
민경아가 말하더니 생각난 듯 고영호를 보았다.
“저, 만일 김명천씨가 이 일을 잘 해결 했다면 나호트카에 계속 머물게 할 계획이신가요?”
그러자 고영호의 시선이 최경태에게로 옮겨졌다.
최경태가 희미하게 머리를 끄덕이자 고영호는 입을 열었다.
“그래야겠지.”
고영호가 말을 이었다.
“일인 지사 형식으로 나호트카에 남아 그 일을 맡아야 될거야.”
“격도 올려줘야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번 일이 잘 끝났다면 말입니다.”
“그렇지, 현지인을 몇 명 고용하는 지사체제로 될 수도 있지.”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민경아는 가늘게 숨을 뱉았다.
10분 전만해도 김명천에 대한 회사 분위기는 비관적이었다. 이미 끝난 인생으로 치부하여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퇴직 처리까지 해놓았던 것이다. 살아남아야 인정을 받는다. 죽고 나면 다 소용없는 것이다.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울렸으므로 셋은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방으로 둘어선 사내는 직원이었다. 직원이 고영호에게 말했다.
“저, 손님이 오셨는데요. 약속하지 않으신 분인데 급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나를 찾아?”
고영호가 찌푸린 얼굴로 묻자 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나호트카 일로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실 것이라고.”
그 순간 놀란 셋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고영호가 헛기침을 했다.
“누구야? 러시아 인이야?”
“예, 러시아인 입니다.”
“들어오라고 해.”
마침내 고영호가 결심한 듯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