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앵두 (외 2편)
최 휘
앵두가 온다
나는 앵두다 소리치며 온다
다다다다 다 같이 뛰어온다
온몸에 땡볕을 널어놓고
온몸에 빨강을 칠해 놓고
홍홍 웃으며 매달려 있는 앵두
춥춥 침이 고이는 앵두
앵두야 하면
응응응응응응
대답하며 달려오는 앵두
공부방 고양이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공부방 고양이 십 년이면 무엇을 할까요
언니들 가방끈에 턱 대고 잠들기
오빠들 의자 밑으로 꼬리 스윽 훑으며 지나가기
토론 시간에 사료 오작오작 씹어 먹기
글쓰기 시간에 원고지 칸칸마다 야옹 니야옹 고양이 생각 써넣기
프린터 돌아가면 달려가 그 앞에 앉아 있기
앞발 모으고 턱 들고 꼬리 말고
동그란 눈알로 바라보며 야옹야옹
놀아 줘 놀아 줘
공부방 고양이 십 년이면
다 지 친구들인 줄 알아요
여름, 폭설
헌 이를 물어 가고 새 이를 가져다주는 까치야
겨울나무 가지에서 흔들리는 까치야
네네치킨집 옥상에서 치킨 냄새를 맡는 까치야
옥상에서 세 갈래로 갈라진 발자국을 찍고 있는 까치야
휘날리는 눈 속에 하얗게 파묻히는 까치야
세상의 모든 헌 이를 물어다 담을 쌓고 집을 지어 놓았을 까치야
너 엄마 아빠 있는 거 맞지?
돌아갈 집 있는 거 맞지?
펄펄 날리는 내 꿈속에 가만히 있는 까치야
어제 빠진 내 이를 물고 있는 까치야
—동시집 『여름 아이』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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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 / 1967년 경기도 이천 출생. 2012년 『시로여는세상』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여름 아이』로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