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쨍~"
유리창이 깨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고등 3학년의 어느 쉬는 시간, 웅성웅성 모여서 떠들고 있던 반 친구들 귓전을 파고들었다.
"뭐꼬? 뭐꼬?"
어리둥절해하는 친구들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교내에서 키는 작아도 깡다구로 유명한 한 친구가 깨어진 큰 유리조각을 한 손에 들고 누군가를 노려보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용태 이 XX~ 니 오늘 죽었다. ㅆㅍ~"
용태를 노려보는 두 눈에서는 시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입에서는 쉬지 않고 욕이 뿜어져 나왔다. 기선제압을 노리는 극적인 장면에 교실 안 친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용태... 태어날 때 어머니의 탯줄을 몸에 칭칭 감고 태어났다고 이름이 용태가 되었다는 내 친구.
고등학교 시절, 똘똘 뭉쳐 다니던 일곱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 용태는 나이도 한 살 많은 데다가 주먹도 세고 성격도 털털해서,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들의 리더였다.
머리가 좋아서 바둑도 곧잘 두고, 공부를 열심히 한 달에는 반에서 삼사 등을 다투고, 안 한 달에는 오십 등 주변에서 맴돌던 특이한 친구. 주먹에 관한 한 지금도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도 있었다.
그때 벌써 고등학교에는 지금의 일진과 비슷한 폭력서클이 있었는데, 내가 다닌 학교에도 뗏목이란 폭력서클이 있었다. 고등학교 이 학년 때의 내 짝이 바로 그 서클의 대장이었다.
교내 최고의 주먹은 아니었는데, 대장이 된 이유는 아마 선생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한 그 서클 나름의 방편이 아니었던가 싶다. 내 짝은 우리 반의 부반장이었고 공부도 그럭저럭 잘하는 모범생에 가까웠으니까.
어느 점심시간, 이미 도시락들은 둘째 시간 수업이 끝나면서 다 까먹어 버렸고 여기저기 모여서 잡담이나 나눌 무렵, 갑자기 교실 뒤쪽에서 "이 XX~" 하는 욕과 함께 퍼벅~ 소리가 났다.
내가 시선을 뒤로 돌렸을 때는 내 짝이 용태의 어퍼컷과 스트레이트를 맞으며 교실 뒤편 중간쯤에서부터 복도 쪽으로 주먹 한번 제대로 못 휘두른 채 밀려나고 있었다. 연신 용태의 주먹은 정확하게 내 짝의 턱을 가격하고 있었고, 결국 내 짝이 복도에 큰 대자로 벌렁 나가떨어지고 교실 문이 닫히면서 그 싸움은 막을 내렸다.
화려한 용태의 주먹이 전설이 되었던 사건이었다.
"뗏목 대장이 깨졌다~"
복도는 교내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을 듣고 급히 몰려온 뗏목 선후배들로 가득 찼고, 결국 그날 방과 후 용태는 단독으로 그 패거리들에게 불려 가 구겨진 그들의 자존심을 상징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선에서 그 일을 매듭짓고, 그다음 날 약간 부은 볼을 쓰다듬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등교를 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용태는 교내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나홀로 주먹이 되었다. 뗏목 가입 권유도 있었지만 용태는 그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었고, 오히려 범생에 가까운 우리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즐겨하며 기꺼이 우리들의 리더가 되었다.
깡다구... 독한 성격이 아니고서는 불려질 수 없는 별명.
위험한 자해도 서슴지 않고, 한번 상대한 녀석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해서 붙여진 별명.
옆 반의 깡다구가 유리창을 깬 그날, 바로 그전 쉬는 시간. 우리 반으로 놀러 온 깡다구는 자신의 전과를 부풀려서 허풍을 떨어대다가, 듣고 있던 용태가 코웃음을 치는 바람에 자존심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 만회해 보려는 욕심에 용태에게 장난 삼아 대들었지만, 키 작은 깡다구의 목을 움켜잡고 한번 들었다 내려놓는 것으로 용태는 가볍게 마무리했었다. 우리 모두도 그 사건이 가벼운 장난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구들이 한 수 접어주고 대해주는 데 익숙해져 있던 깡다구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던 모양이었다. 친구들 앞에서 용태의 괴력 앞에 발버둥 치며 매달렸던 자기의 구겨진 모습을 돌이켜보며 한 시간 내내 분을 삭여낼 수 없었던 깡다구는, 다시 쉬는 시간이 돌아오자 이미 명성이 자자한 용태의 기를 꺾을 기선 제압용으로 교실 유리창을 선택하고 기습에 나섰던 모양이었다.
그 작전은 역시 효과만점이었다. 일단 날카로운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친구들의 신경을 긁으며 교실 안에는 긴장된 기류가 흘렀고, 눈에 살기를 품고 큰 유리조각을 들고 으르렁대는 깡다구에게 집중된 시선들에는 '역시 깡다구구나...' 하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깡다구에게 모여있던 시선들이 거두어지더니 일제히 그 깡다구의 적, 용태에게로 쏠려졌다.
"점마 저거... 와 저카노?"
친구들의 몰린 시선 속에서 일순 용태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전혀 예기치 못했다는 표정.
욕을 해대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던 깡다구를 보는 용태의 첫 반응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나 또한 그런 용태의 표정을 보며 긴장하려는 순간, 용태의 다음 표정은 조소와 경멸이 담긴 웃음이었다.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다음 순간 용태가 풀썩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 당시 유행하던 낡은 군화를 신은 용태가 책상 위에 뛰어오르자 쿵~하는 소리가 긴장된 기류를 타고 교실 안에 크게 울렸다.
"이 XX~ 니 거기 가마이 있어~ 도망가면 죽어~" 용태가 책상 위에 올라서며 소리를 질렀고,
"이리 나와~ 이 XX~ 오면 죽인다~"
깡다구가 들고 있던 유리조각을 치켜들며 기를 돋우었다.
마지막 살기가 튀는 팽팽한 기싸움.
여기서 밀리면 끝.
둘은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기를 뿜어내었다.
워낙 빨리 진행되는 상황인 데다가 깡다구가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들고 있으니, 반 친구들은 말릴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우당탕탕~!"
용태가 책상 위를 내달리며 깡다구에게로 달려가자 책상들이 우당탕 요란한 소리들을 내면서 넘어졌고, 그 순간 깡다구의 눈빛이 심하게 흐트러졌다.
호랑이가 덮쳐 오는 듯한 기세.
깡다구가 기대했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보았다.
깡다구는 용태가 기에 질려 적당히 사과하면서 자기 체면을 세워주는 것을 기대했었던 모양인데...
깡다구의 눈이 초점을 잃고 허둥대자, 순식간에 살기를 뿜어내던 기가 깡다구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마지막 책상을 차고 오르며 군홧발을 앞세운 용태의 이단 옆차기가 깡다구를 향해 곧바로 날아들자, 그 순간 쨍그랑~!.
깡다구의 손에서 떨어진 유리조각이 제 몸을 부수며 날카롭게 울었고, 깡다구는 어느새 몰려든 친구들 틈 사이로 바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거 안 서나~ 니 오늘 내한테 죽었다~ 서랏!"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깡다구와 그 뒤를 쫓는 용태.
친구들의 낭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날의 상황은 코믹하게 끝났고, 우리들은 오래도록 기억되는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 한 토막씩을 나누어 가졌다.
나에게 팝송을 처음 들려주던 친구 용태.
외국 가수라고는 엘비스 프레슬리만 알던 나에게 닐 다이아몬드니 존 덴버니 올리비아 뉴톤 죤, 톰 죤스, 크리프 리챠드, 사이먼과 카펑클 등등... 낯선 이름의 외국가수들이 부른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려주던 우리들의 대장, 용태.
형편이 어려워 대학 갈 돈 버느라고 대구 침산동 염색공단에서 1년을 일했고, 남들보다 몇 년이 더 걸려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뛰던 그는 IMF의 파고에 휘말려 특히 영향을 크게 받았던 건설 분야에서 밀려났었고, 업종을 바꾸어 몇 번의 재기를 시도했지만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가진 것들을 모두 잃고 말았었다.
16년 전, 미국으로 오기 직전에 대장을 만났을 때 그는 씩씩한 고물상 사장님이 되어있었다.
"다시 일어섰네~"
"그래 임마~ 내가 누고? 용태 아이가~ 하하하~"
예전의 웃음소리가 기 꺾이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단풍들것네님의 아래 글을 읽고 사이먼의 노래를 듣는데,
The Sound of Silence와 Scarborough Fair노래 들려주며 내 귀에 속삭이던 우리들의 대장, 용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 이 노래 함 들어봐라~ 정말 감미롭데이~"
첫댓글 이야기가 의외로 정말 감미롭네예.ㅎㅎ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친구들과 란딩 약속 전 잠시 짬이나 차에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습니다.
남학생들의 그 시절 교련복. 까까머리 이런것들이 생각납니다.
마음자리님의 글은 정말 쏙쏙 들어오고, 군더더기없어요.
재미있었어요. 아~~~~주.
오늘 저도 깡으로 친구들 눌러 버려봐야겠습니다.ㅎㅎ
걱정 마세요.우정을 담뿍 담아서요.
늘 좋은 글에 신이나고 감사합니다.
깡 말고 실력으로 멋지게 누르세요~ ㅎ
마음자리님 버전의 영화 <친구> 같습니다.
다정다감한 용태님.
멋지게 재기하길 바랍니다.
벌써 강산이 두번이나 변했으니...
가끔 듣는 안부에 잘 살고 있답니다. ㅎ
고등학교 다닐때 주먹 쓰던 아이들?
결과가 안 좋읍디다
깡패 짓 하다 퇴학 당하던지
성적이 나빠서 대학 입학 못하던지
나중에 동창회에 참석하지도 못합디다
나는 그 당시 등치가 작아서 주로 뚜들겨 맞았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그때는 각자 노는 세상이 달라
약한 아이들 왕따시키거나 괴롭히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제 동창 깡다구는 훗날 포항제철에 들어가 승긍장구했다고 들었습니다. ㅎ
청소년 때 이야기지, 다들 철들고 자리 잡은 다음에는 모교 선생님들
자주 찾아뵙고 모교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들었습니다. ㅎ
어디서 든,
폭력을 쓰는 곳에는 다가가지 않습니다.
대개는 말로 하지 않고 손이나 발로
폭력부터 써는 습관은 성격이 급하고
말로써는 자기 표현이 안되는 사람 같아요.
영화도 폭력 난무하는 장면은 보지 않습니다.
용태 친구는 의협심도 강할 것 같습니다.
그때 남고생들은 그 나이쯤에 괜히 힘자랑을 하고 싶어 무리 짓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른 학교 무리들과 툭탁거렸지, 같은 학교 친구들을 괴롭히진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대장은 의리도 있고, 속정도 깊었습니다. ㅎ
뭐든 마음만 먹으면 잘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렇지만 특히 사업에서는 운도 따라야하기에 인간사가 각본대로만 움직여지지가 않는거죠.
천만다행 고물상 사장님으로 재기에
성공하신 우리들의 대장 파이팅!
네. 언제나 우리 친구들에겐
우리들의 대장으로 남았습니다. ㅎ
글이 재밌습니다~~
에구~~바쁜데도 재밌어서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우~
스릴 만점의 글.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마음으로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쩌면 먼 옛날의 추억을 이리도
세세하게 잘 묘사를 하셨는지요.
놀랍습니다.
타고 난 이야기꾼 마음자리 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베리아님은 액션 영화 좋아하시는지요?
고딩 시절은 사실 군대 이야기만큼이나
추억의 보물 창고이지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자리 액션 영화는 전혀 좋아 하지
않지만, 마음자리 님
글에 매료되었을 뿐입니다.ㅎ
@이베리아 ㅎㅎ 그렇지요.
스릴있게 읽으셨다셔서 ㅎㅎ
액션 좋아하시나 했습니다.ㅎ
좋아하는 스토리의 멋진 영화 한 편 잘 보았습니다.^^
힘이 넘쳐나서 좌충우돌하던 고등학교
시절이 또 하나의 추억 보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ㅎ
동시대의 학생이었지만 남여는 많이 차이가 나네요.
글이 생동감있고 무시무시 해서 영화장면 같아요 .
과연 마음자리님은 그때 어떤 학생이었을까 ?
그것이 궁금 할 따름입니다 .
ㅎㅎ 저는 그저 제 호기심 채우느라
바쁘게 살던 고등학생이었지요.
세상에 궁금한 건 왜 그렇게 많고
가보고 싶은 곳은 또 왜 그렇게 많던지요.
그 시절에요. ㅎ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연상케하는 액션배우들 등장이 재밌습니다. 우리도 8개반이 문과 이과로 나누어져 1반과 4반은 문과. 이과우수반 나머지반은 돌반으로 불렀습니다. 특히 2반은 운동선수가 절반으로 오후수업이 안되어 3반돌반과 합반수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2반은 텍사스반이라고 툭하면 쉬는시간에 책상뒤로 모두 밀치고 패권타툼이 있었답니다. 담임별명은 텍사스주지사.. 주지사께서는 어렵게 사시다가 지난1월 92세로 별세하셨고 3-4년전 제가 주동이 되어 선생님약값 모금운동하여 한해는 520만원 다음해는 320만원을 모아 파주 금곡리까지 찾아뵙고 식사대접하고 돈을 드렸습니다.
언덕저편님의 댓글 속에 제 추억도 많이 들어있네요.
우린 축구부 친구들이 이반 저반에 섞여있었고, 수업은 오전 수업 내내 자다가 오후엔 운동하러 나갔으니 같은 반 친구란 느낌도 별로 안 들었었는데, 훗날 졸업 하고 사십대에 만나니 다 반갑고 정많은 친구들로 살아나더군요.
요즘 동창들 소식 들어보면 그때
어깨 힘주며 사고 치고 다니던 친구들이 나이드신 선생님들 자주 찾아뵙고 생활 챙겨드리고 한다더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