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박목월(朴木月·1916~1979)교수
교수가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다.
가정과 시인이자 교수라는 사회적인 신분도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자취를 감췄다. 밤 봇짐을 싼 것이다.
그러니 시인과 19세 소녀 간의 세기적인 로맨스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어언 10년이 흘렀다.
부인은 남편이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옛날의 그 제자가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지! 가난하게 살아온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래서 스웨터를 벗어 제자에게 입혀주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떠나자!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부인을 본 목월은 목이 메었다.
불나비 같은 사랑은 이제 끝내자! 그리고 제자에게 시를 지어 주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날이 저물어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천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문예 평론
목월의 글은 단원 김홍도 민화(民畵)나, 이중섭의 소(牛) 그림, 박수근의 여인과 빨래터같이, 군더더기 없는 삶을 그려낸 혼의 예술이다.
박목월 아들인 서울대학교 박동규 교수의 ‘아버지와 아들’에서
6,25 전쟁 때였다. 아버지는 급한 일이 있다면서 어디론가 떠나셨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외가로 가자고 하셨다.
남쪽으로 향해 평택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인심이 흉흉해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그래서 가마니 두 장을 펴고 새우잠을 잤다.
밤이면 이슬이 내릴까 봐, 어머니는 우리들 얼굴에 보자기를 씌워 주셨다.
개천에서 새우를 잡아, 담장에서 딴 호박잎으로 죽을 끓여 먹었다.
안집 아줌마가, 댁 때문에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며 옮겨달라고 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들을 껴안고 슬피 우셨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 아버지를 기다리자!
어머니는 신주단지처럼 여기던 재봉틀을 쌀과 바꾸었다.
그리고 쌀자루를 노끈으로 묶어, 내 등에 얹어주셨다.
어떤 아저씨가 무겁지! 좀 들어줄게!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따라오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아저씨! 저에게 자루를 주세요!
그러나 아저씨는 쏜살같이 종적을 감췄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머니는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아들이 똑똑해서 어미를 잃지 않았구나! 하시면서 우셨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2024년 3월 10일, 박목월 시인의 육필 시 290편이 발견되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엊그제 박목월 시인의 육필 시 290편이 발견되었다니
반가운 일이며 다행입니다.
박목월의..
목련꽃, 이별의 노래가
참 구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