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자의 바느질
신달자
과거를 좌아악 펴 놓고 가위질을 하는 거지
눈짐작으로도 가볍게 머릿속의 디자인이 그려지고
손은 머리의 이야기를 따라
묵은 세월과 까마득한 세월들이 손잡고 그리워하던 디자인을
찾아가는 거야 너무 쉽게 디자인이 나오네
버려할 골목들이 너무 많아 벌써 디자인된 모보다 버려야할 밤과 새벽들이 상자마다 가득가네
어머나 이렇게 생이란 것도 필요한 것만 두고 버릴 수 있는 것이네
바느질을 잘하면
늙은 만큼 그만큼 너스레가 능란하거든
뭐든 너무 잘하는 일은 슬픈 거야
생을 이렇게 우수하게 오려낼 수 있다니..
순전히 손바느질로 뒤틀린 두 손으로만...
손 매듭이 다 무너져 삐뚤어진 간절함의 머리를 숙이며 숙이며
꼼꼼히 손바느질로 젖은 곳을 피해 디자인을 그리네
비뚤어진 손보다 생은 몇천 배 삐뚤어진 걸
늙은 노파의 손이라도 손작업은 비싸다네
그럼 징그럽지만 생은 싸구려는 아니니까
이생을 한 번쯤 오래 내려면 생의 바느질로 두 손이 다 녹아버리겠네
아차 보기 흉하다고 내 손도 오려 버리진 않았나?
제발 여자여 그러지는 말게.
귓속말로 하고 싶은 말이지만 오늘은 큰맘 먹고 말을 하네
생은 오려 내지도 버려지지도 않아
못생겨도 귀하다네...
신달자
경남 거창 출생. 1969년《현대문학》등단.
시집『겨울축제』『살 흐르다』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