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군자인가 소인인가
유가에서는 위정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자중 군자의 덕목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선진 편에
子曰(자왈)先進(선진)이 於禮樂(어예악)에 野人也(야인야)요 後進(후진)이 於禮樂(어예악)에 君子也(군자야)라 하니 如用之則吾從先進(여용지즉오종선진)하리라라는 말이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형식만을 모방하여 군자인체 하는 후배들 보다는소박한 선배들이 낫다.’라고 할 수 있는데,
선거 기간에만 해도 형식만을 모방하며 군자인 척 시장을 돌아다니고, 국민들 앞에 서서 인간미 넘치는 ‘척’하는 정치인들이많이 보인다.
실상은 당선되고 나면 국민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선거 유세는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이런 방식을 적용해서 똑같이 이런 방식으로 진행한다 하더라도 진짜 군자라면 소박한 덕목을 가져야 할텐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소박하다’라는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진 25장에는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자로증석염유공서화시좌)러니 子曰(자왈)以吾一日長乎爾(이오일일장호이)나 毋吾以也(무오이야)하라 居則曰(거즉왈)不吾知也(불오지야)라하나니 如或知爾(여흑지이)則何以哉(즉하이재)오 子路率爾而對曰(자로솔이이대왈) 千乘之國(승천지국)이 攝乎大國之間(섭호대국지간)하여 加之以師旅(가지이사려)요 因之以饑饉(인지이기근)이어든 由也爲之(유야위지)면 比及三年(비급삼년)하며 可使有勇(가사유용)이요 且知方也(차지방야)하리이다 夫子哂之(부자신지)하시다 求(구)아 爾(이)는 何如(하여)오 對曰(대왈)方六七十(방육칠십)과 如五六十(여오륙십) 에 求也爲之(구야위지)면 比及三年(비급삼년)하여 可使足民(가사족민)이어니와 如其禮樂(여기예악)엔 以俟君子(이사군자)하리이다 赤(적)아 爾(이)는何如(하여)오 對曰(대왈)非曰(비왈)能之(능지)라 願學焉(원학언)하노이다 宗廟之事(종묘지사)와 如會同(여희동)에 端章甫(단장보)로 願爲小相焉(원위소상언)하노이다 點(점)아 爾(이)는 何如(하여) 鼓瑟希(고슬희)러니 鏗爾(갱이)舍瑟而作(사슬이작)하여 對曰(대왈)異乎三子者之撰(이호삼자자지찬)이니다 子曰(자왈)何傷乎(하상호)리오 亦各言其志也(역간언기지야)니라 曰(왈)莫春者(모춘자)에 春服旣成(춘복기성)이어든 冠者五六人(관자오륙인)과 童子六七人(동자육칠인)으로 浴乎沂(욕호기)하고 風乎舞雩(풍호무우)하여 詠而歸(영이귀)하리이다 夫子喟然歎曰(부자위연탄왈)吾與點也(오여점야)하노라三子者出(삼자자출)커늘 曾晳後(중석후)러니 曾晳曰(증석왈)夫三子者之言(부자삼자자지언)이 何如(하여)하니잇고 子曰(자왈)亦各言其志也已矣(역각언기지야이의)니라 曰(왈)夫子何哂由也(부자야신유야)시니잇고 曰(왈)爲國以禮(위국이례)어늘其言不讓(기언불양)이라 是故(시고)로 哂之(신지)로다 唯求則非邦也與(유구즉비방야여)잇가 安見方六七十(안견방육칠십)과 如五六十而非邦也者(여오륙십이비방야자)리오 唯赤則非邦也與(유적즉비방야여)잇가 宗廟會同(종묘회동)이 非諸侯而何(비제후이하)오 赤也爲之小(적야위지소)면 孰能爲之大(숙능위지대)리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자로•증석•염유•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을 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보다 다소 연장자라고 해서 어려워하지만, 나를 그렇게 여기지 말라.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아니한다.’고 하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무엇을 하겠느냐?” 자로가 경솔하게 대답했다. “천승의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 군대가 압박해 오고, 인하여 기근이 들더라도, 제가 다스리면 3년쯤에 이르러 용맹이 있게 하고, 또 방향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께서 비웃으셨다. “구야 너는 어떠하냐?” (염유)가 대답했다. “사방(四方) 60~70리 혹은 50~60리를 제가 다스리면 3년쯤에 이르러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거니와 예악과 같은 것은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적아 너는 어떠하냐?” (공서화가) 말했다. “제가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혹은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서, 조금 돕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점아 너는 어떠하냐?” (증석이) 비파를 타는 속도를 줄이더니 쨍그랑 하고 비파를 놓고 일어나 대답했다. “세 제자들이 이야기한 것과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기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늦봄에 봄옷이 만들어지고 나면, 갓을 쓴 사람 5~6명 동자 6~7명과 더불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아! 하고 감탄하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점과함께하겠다.” 세 제자가 나가자 증석이 뒤에 남았다가 말했다. “저 세 제자의 말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각각 자기의 뜻을 말했을 뿐이다.” “선생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유를 비웃으셨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로써 해야 하는데, 그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웃은 것이다.” “오직 구는 나라 일이 아닙니까?” “사방 60~70리, 또는 50~60리가 되면서 나라 일이 아닌 것을 어디에서 보겠느냐?” “오직 적은 나라 일이 아닙니까?” “종묘의 일과 회동하는 일이 제후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적의 일이 작은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의 일이 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춘추시대는 극도로 혼란한 시대였다. 사람들은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시대였다. 공자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로는 성급했다. 자기가 정치를 하면 3년 안에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치는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에 맞게 적절하게 해야 하는 것인데, 자로의말은 예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자로는공자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염유와 공서화는 자로가 너무 큰 것을 말했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작게 말했다. 작게 말했지만 정치에 집착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역시 공자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증석은 달랐다. 증석은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증석은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다.”고 답했다. 공자는 제자중에서 증석의 편을 들었다. (이기동, 논어강설, 2005)
공자가 증석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나라가 혼란할 때에도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는” 그런 식의 행보를 보여주는 것인가.. 지도자라면 자신의 일을 하고, 믿고 맡겨준 국민들을 더 보살펴야 하는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 어린 20대 청년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할 어른들이 좋지 않은 모습들을보여주고 욕심 많은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너무 안쓰러울 다름이다.
어찌 보면 현재 저출산 문제도 청년층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윗세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자신의 것들을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데 독차지 하고 자기 욕심만 채울 줄 아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 안 그래도 가면 갈 수록 경쟁률이 심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그런 것들이 아닌가 싶다. 어느 정치인이 그런 말을 했다. “60대가 되면 뇌가 썩는다.” 그리 썩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덧붙여 말하자면 仁과 禮도 같이 썩는 것 같다. MZ세대의 특성 같은 말들을 사용하지만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런 지금과 같은 특성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인간적인 사회였다면 MZ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을까? 그냥 일종의 갈라치기 인 것 같다. 국민들을 편가르기 해서 다루기 쉽게 만들려는 일종의 모략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초해 남녀 편가르기를 유도한다든가, 586이나 MZ라는 단어들을 만들어 편가른다든가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정치인들은 군자가 아닌소인처럼 군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참 어른들의 실수로 피해보는 청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공감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저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나 의도가 없습니다.
첫댓글 그래도 다행히 신발은 벗고 올라갔네요. 따로 의자 하나를 준비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함께 간 사람들이 미리 양해를 구하는 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30cm 위로 올라가기 보다는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하고 앉아서 토론하는 모습을 연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것이 선거 때 연출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소박"하다는 것은 아직 때묻지 않고, 어떤 정형화된 형태가 없다는 것을 뜻한답니다. 그런 점에서 준비된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소박하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 돌아오는" 것을 칭찬한 까닭은 진솔한 일상의 모습, 현실의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치인은 잔뜩 몸에다 힘을 주고, 백성을 내세워서 본인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전했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성세대들의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젊은이의 특권이자 당연한 요구입니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정치적 태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은 그렇게 해서 발전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