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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어깨 수술을 받은 지 6개월이 가까워지는데도 낫질 않는다. 하지만 기운을 차려 내가 소설 창작을 사사한 구인환 교수님을 산소로 찾아가 뵈어야 한다. 아는 기사분에게 깎아 달라 조른 끝에 이곳 용인에서 서천 왕복,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15만원이라나?
졸고는 논픽션에 가깝다. 부산에서 교감으로 있을 때 강경대 사건으로 시국이 엉망이었지만, 최루탄 가스와 화염병을 뚫고 서울역 광장에 내린 내 손에는 Froda라는 최고 혈통의 요크셔테이러 암컷이 들어 있었다. 발정이 와서 천하 명견 아레스와 교배시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모험? 수태는 했지만 출산 뒤끝이 안 좋았다. 부부가 죽을 뻔했다.교감이 연가를 내고 개 교배를 시키러 학교를 비운다? 아찔하다. 징계감이다. 소설은 픽션이라 우길 수 있어 편리하긴 하다.
그걸 소설이랍시고 100장의 원고지에 옮겼다. 全面마다 온통 눈물로 얼룩졌다. 우여곡절 끝에 구인환 교수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한글문학>이다. 교수님은 극찬을 해 주셨다.
졸작은 지난번 소설집 <연적의 딸 살아 있다>에 실었던 것 중 하나다.
나는 다시 세월이 흘러 서울 근교에 올라왔다. 그리고 서울 시민보다 더 많이 역 광장에 나간다. 시위? 천만에. 노숙인들이 내 친구다. 종로 3가에도 자주 어슬렁거린다. 그러다가 나는 '개(犬) 사돈'의 두 아들을 만났다. 인사동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는 장남, 까닭없이 역 광장에서 자는 차남!
22번째 책을 낸다. 소설집은 세 권이고, 나머지 열여섯 권은 수필집이다. 논픽션도 한 권 있다. 기타 두 권. 구인환 교수님의 생각이 절로 난다. 참, 여기 와서 교수님 댁을 한 번 방문하여 꿇어앉은 적이 있었다.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교수님을 뵈면 필경 쏟으리라. 소금끼 있는 그 액체를. 교수님! 보고 싶습니다.
<졸저 표지. 구인환 교수님이 졸작 '저숭의 내 사랑 Froda'을 추천해 늦깎이 소설가로 만들어 주셨다. 난 은인인 그분을 그로부터 15년 만에 댁으로 찾아 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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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저승의 내 사랑 Froda/ 녀석과 나는 1寸이었다
아동 문학가이자 초등학교 교사이며 한국애견보호협의회 사무국장인 현철은 마침내, 살아날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자기 애견의 배를 가르는 수술에 동의했다. 그러자 수의사는 익숙한 솜씨로 후로다 2세의 뒷다리에 몽혼 주사를 놓았다. 후로다 2세는 현철을 빤히 쳐다보고 신음을 한 번 토하고는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았다.
수의사는 수술대 위에다 후로다 2세를 반듯하게 눕혔다. 그러고는 네 다리를 붕대로 묶고 위아래 이빨 사이에 나무 막대기를 끼웠다. 후로다 2세가 자기 혀를 깨물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걸 수의사는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의 반듯한 이마를 보고 현철은 참 냉정한 아니 냉혹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수의사가 메스를 집어 들었다. 수의사가 현철에게 수술 광경을 지켜보겠느냐고 물었을 때, 현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에 수술이 끝나거든 급히 연락을 해 달라며, 명함 한 장을 맡기고 나왔다. 초저녁인데도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고 있었다.
현철은 육교를 건너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살아날 가능성이 반반이라? 그렇다면 아까 날 빤히 쳐다보던 그 순간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현철은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가끔 들르는 행복예식장 옆의 덕포 포장마차 안을 힐끗 들여다보았더니, 마침 아무도 없다. 현철은 구석자리를 하나 차지해 앉았다. 그러고는 닭똥집을 안주로 하여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서서히 주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2년이란 세월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결혼 20년이 되어도 슬하에 자녀가 없어, 어느 선배 작가로부터 입양시켰던 후로다 1세를, 남들이 손가락질하여도 현철 내외는 진짜 딸 이상으로 사랑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데는 그림자처럼 후로다 1세를 달고 다녔다. 심지어는 셋의 잠자리가 항상 같기도 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자기들이 죽고 나서 외국 사람들처럼 전 재산을 녀석에게 물려줄 생각을 할 정도였다. 녀석이 있으면 원고지도 잘 메꿔져 나갈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참, 그 무렵 국제단체로부터 애견상을 받은 현철은 그 기념으로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라는 풍자집을 쓰고 있었다. ‘오수의 개’를 기리는 의견 비에서 30미터도 채 안 떨어진 곳에 있는 보신탕집이, 전국적으로 이름나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접하고 느끼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보신탕이라면 죽고 못 사는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좀 시시하긴 하지만, 만약 6천만 원짜리 셰퍼드가 꾼에게 포획되어 보신탕 집에 팔렸다면, 손님들은 1킬로그램에 2백만 원짜리의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비싼 고기를 먹는 셈이라는 등, 그야말로 희한한 이야기 222가지를 모아 묶을 생각이었다.
그 후로다 1세가 발정이 온 것이다. 요크셔테리어 암놈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개가 후로다 1세여서, 그 신랑감을 구하기 힘들어 현철 내외는 고민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그들은 애견잡지의 광고도 보고, 여러 군데서 수소문을 하는 한편 애견가라는 애견가 모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전국 애견센터에다 팩스를 보내는 등 야단법석을 떤 끝에, 서울의 서명진 씨를 머리에 떠올렸다. 신랑감은 나이가 좀 든 게 흠이지, 원산지인 영국 본토에 갖다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 아레스다.
그러나 현철 쪽에서 일방적으로 그런 중대사를 결정할 수가 없다. 서명진 씨는 재벌 총수는 물론 군 장성, 대학 총장, 국회의원, 장관, 연예인 등과 개 사돈을 맺을 정도여서, 콧대 높기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일본과 대만의 애견가들이 그에게 청을 대기도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서명진 씨니까 아레스의 명성에 걸맞은 신붓감이 아니면, 며느리로 맞아들일 생각이 없을 게 뻔할 게 아닌가. 어쨌든 답답한 사람이 샘을 파게 마련, 현철은 서울에다 조심스레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서명진 선생님 댁이지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지요?”
“부산입니다. 제집에 요크셔테리어 암놈을 한 마리 갖고 있는데요. 얼마 전 발정이 왔습니다.”
“그래서요?”
“선생님 댁의 아레스 군과 교배를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좀 힘들 겁니다. 암캐가 여간 좋지 않고서는요. 며칠 전, 세계 전람회에서 1등 한 경력을 가진 삼성그룹 회장의 암캐 줄리엣과 교배를 시킨 적이 있어요.”
그러나 현철도 호락호락 물러설 위인이 아니다.
“영국의 오즈밀리언 견사에서 의욕적으로 번식시킨 놈인데요?”
“오즈밀리언이라…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그러면서 서명진 씨는 대신 이번에 수태 안 되었다고 다음에 억지부리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방에서야 새끼가 안 들면, 다음 한 번에 한해 교배를 더 시켜 주는데, 서 씨는 그게 어림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물어물하다가는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릴 뿐이라는 생각에 현철은 얼른 좋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사흘 뒤 약속한 날짜에 현철은 수송 바구니에 후로다 1세를 넣고 다시 전체를 보자기에 싸서 서울행 새마을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도 후로다 1세는 그 좁은 수송 바구니에 갇혀서 서울까지 가는 다섯 시간 동안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래서 현철은 그 서명진 씨와 명실공히 개 사돈이 되었다. 견계 그러니까 ‘개 세계’에서 하나의 큰 혼맥이 형성된 셈이다. 유명 인사도 아닌 현철이 재벌 그룹 회장과 사돈의 사돈이 된 셈이라, 이건 정말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그런데 현철만큼이나 개를 좋아하는 그 재벌 그룹 회장은 현철과는 동성동본인데, 그쪽이 손주뻘이라는 것이다. 이것저것 따지면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이고도 남는다.
어쨌든 현철은 그 방면의 진짜 베테랑인 사돈 서 씨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공교롭게도 사돈도 현철처럼 머리가 하얘서 그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정된 지 오래란다. 마음에 드는 참한 며느리를 맞게 되었다는 찬사도 잊지 않았다. 사돈이 익숙한 솜씨로 교배를 거들어, 생각보다 신방은 쉽게 꾸몄다.
아홉 시가 넘어서 현철은 부산행 열차를 탔다. 사돈은 48시간 뒤에 다시 교배를 시켜 주마고 약속했다. 이 경우 암수 양쪽에 다 결함이 없다면 완벽한 임신이 보장되는 것이다.
다시 상경했을 때는 한창 정국이 시끄럽던 무렵이라, 열차 안에서 현철은 내내 불안하였다. 아니나 다르랴, 서울역은 플랫폼까지 최루탄 가스가 자욱하여 눈코를 뜰 수 없었다. 역 광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은 마구 최루탄을 터뜨리고, 맞선 학생들은 돌멩이며 보도블록을 던졌다.
하차한 승객들은 연방 재채기를 하며 우왕좌왕하였다. 현철은 그 와중에서 용케 택시를 잡아타고 밤 열 시나 되어서 사돈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철은 좋아서 길길이 뛰는 후로다 1세를 찾아 사돈의 배웅을 받으며 영등포역으로 나왔다. 서울역 광장은 밤새 경찰과 학생들이 대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찰을 하고 플랫폼에 나서니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떴다. 형광등이 유난히 차게 느껴졌다. 어느새 시각은 0시를 넘기고 있었다. 현철은 처연한 느낌이 들어 중얼거린다. 4천만 국민 중에 이러고 서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신바람도 났다. 물론 후회는 없었다. 자식 없는 건 팔자라 해도 이제 천하의 서명진 씨와 사돈을 맺었고, 한국 제일의 사위와의 사이에서 외손주를 몇이나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두 달만 있으면(개는 두 달 만에 출산한다), 내 그 녀석들을 소재로 많은 글을 쓰리라. 무엇보다 이번에 겪은 기가 막힌 일들을 개가 들어도 웃을 일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은가.
후로다 1세는 두어 주일이 지나자 임신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마구 내닫는다든지, 소파 위에 뛰어 올라가는 일도 없었다. 입덧도 보였다. 그러던 한 달 뒤, 후로다 1세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눈금을 읽던 현철은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다. 체중이 불어 있는 것이다.
이건 확실한 임신 징후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선천적인 결점으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그에게는 결코 우스개가 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절박했다.
돌이켜보면, 후로다 1세를 입양해 왔을 때 신문 가십난에까지 보도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댔던가. 아동 문학가 현철이 전생에 개였다며 수군덕거리기도 했다. 어쨌든 임신 소식에 서울 사돈도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지만, 남은 두 달이 왜 그렇게도 길게만 느껴지는지 입술이 타고 애간장이 녹았다. 그러는 중에도 현철은 후로다 1세를 안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부지런히 운동도 시켰다.
다시 보름이 지나서 현철은 후로다 1세의 태동을 볼 수 있었다. 방석 위에다 눕혀 놓으면, 배 안에서 새 생명들이 꼼지락거리는 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윽고는 녀석들이 한꺼번에 자궁벽을 차기라고 하는 듯 옹골찬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큰방 한구석에 산실을 마련했다. 슈퍼마켓에서 아기 기저귀 박스를 하나 구해다가, 한쪽은 후로다 1세가 드나들 수 있도록 동그란 구멍을 뚫었다. 아무리 난방이 되어 있는 아파트지만, 산모나 새끼가 혹시 추위를 타지나 않을까 싶어 헌 옷가지 등으로 산실을 겹겹이 둘러쌌다. 탯줄을 끊을 가위, 실(탯줄을 묶는 데 쓸), 양수며 분비물 등을 닦아낼 삶은 타월과 거즈, 먼저 낳은 새끼를 따로 담아 둘 박스 등을 갖추어 놓았다. 그리고 방안의 조명도 아늑한 느낌을 주도록, 형광등마저 작은 것으로 바꾸어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당일 아침, 후로다가 출산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식욕이 떨어졌는가 하면 안절부절못하기도 하고, 이빨로 신문지(산실에 깔아둔 것)를 마구 물어뜯는 게 심상치 않았다. 그 괴로운 몸부림에 현철 내외는 연민의 정을 쏟았다. 쯧쯧, 저 어리고 조그마한 것이….
후로다 1세는 그러다가도 수심이 가득한 현철 내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윽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제 12시간만 기다리면 그토록 기다리던 외손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었건만 후로다 1세는 순산을 하지 못했다. 운동도 시킬 만큼 시켰으니 뱃속 새끼가 그렇게 크게 자라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진통이 13시간이나 계속되었는데도 후로다 1세는 가쁜 숨만 몰아쉴 뿐, 정작 새끼는 낳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현철 내외는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하는 수 없이 동물병원에다 전화를 걸었다. 허겁지겁 수의사가 왔을 때는 후로다 1세가 거의 기진맥진해 있을 무렵이었다. 얼마나 닥치는 대로 긁어댔던지 앞발톱 두 개에 새빨간 피가 맺혀 있었다.
수의사가 이것저것 챙기는 동안에 현철 내외는 그가 일러 주는 대로 뜨거운 타월로 후로다 1세의 배를 찜질하고, 달걀노른자를 날 것으로 먹였다. 다행히 혓바닥으로 핥아 먹는 걸 보고 수의사는 조물주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고 했다. 노른자가 산도를 매끄럽게 한다나?
그래서 그런지 후로다 1세는 큰 신음을 한번 토하면서 전신에 죽어라 힘을 주었다. 이윽고 양수 주머니가 밀려져 나오자 녀석은 그걸 물어뜯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경련이라도 하듯 몸부림쳤다. 그 순간, 하얀 막에 싸인 새끼가 머리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수의사가 손쓸 겨를도 없이 새끼는 산실 바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서야 현철은 정신이 번쩍 들어 막을 찢었다. 뜨뜻함이 손가락을 통해 몸에 전해져 왔지만, 섬뜩하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확인하는 기쁨으로 넘쳐 있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리라.
다음으로 현철은 배꼽에서 손가락 마디쯤 되는 곳의 탯줄을 묶고 가위질을 하여 잘랐다. 그러고는 새끼를 온몸 구석구석마다 타월로 깨끗이 닦았다. 이윽고 새끼는 고고의 성을 울리는 것이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 새끼가 난산 중의 난산이었다. 수의사가 분만 촉진제를 주사한 뒤 한참이나 기다린 끝에 간신히 받아내긴 했지만, 앞서 현철이 시도했던 조치들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것이다.
둘째는 나오자마자 숨도 몰아쉬고 불규칙적이었다. 울지도 않았다. 척추 마사지도 헛일이었다. 수의사의 말이 가사 상태라는 것이다. 간혹 이런 놈이 있단다. 현철 내외는 후로다 1세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천신만고 끝에 낳았는데 그 새끼가 죽게 되다니….
그러고 나서 세 번째 새끼를 기다리던 수의사는 분만 촉진제를 한 대 더 주사했다. 첫째와 떨어져 둘째는 타월 위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후로다가 다시 출산의 기미를 보였다. 후로다는 불쌍하게도 눈을 희번덕거리기까지 하면서 혼신의 힘을 쏟는 듯하였다.
저러다가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현철 내외는 애간장이 탔다. 그러는 중 수의사가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현철 내외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후로다는 출산 습관이 안 좋아요. 새끼가 발부터 나와요.”
그러면서도 그는 익숙하게 행동했다. 새끼가 발부터 나왔다 들어갔다 해도, 그는 용케 세 번째 새끼를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암놈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상황이 또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수의사가 새끼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양수를 너무 많이 마셨다고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수의사는 갓 난 새끼의 코에다 자기 입을 대고서는 그걸 전부 빨아대었다. 저런! 현철 내외는 그런 광경은 상상도 못 했던 터여서 탄성만 질렀다. 그러던 수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방금 숨이 넘어가는 둘째 옆에 셋째를 뉘었다. 셋째도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과연 셋째도 둘째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울지도 못했다.
“자, 이젠 저는 갑니다. 밤도 깊었군요. 둘째와 셋째, 잘 묻어 주기나 하세요.”
“새끼가 더 들지는 않았을까요?”
“물론입니다. 배도 훌쭉해졌구요. 지금 만져지는 건 자궁뿐입니다.”
“그래도 체중 한번 달아 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현철은 얼른 체중계 위에 후로다 1세를 올려놓아 보았다. 후로다 1세는 임신 전보다 체중이 3백 그램이나 더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수의사는 그게 새끼라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의사는 매우 피곤한 듯 횅하니 돌아가고 말았다. 새벽 한 시였다. 그런 뒤에도 후로다 1세의 진통은 계속되었다. 피맺힌 발톱으로 산실 바닥을 긁어댔음은 물론이고. 둘째는 그때쯤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현철 내외는 탈지면으로 곱게 염을 해서 딴 방으로 옮겨 놓았다. 셋째는 숨을 몰아쉬긴 해도 뜻밖에 생명이 붙어 있었다. 네 다리며 머리를 약간 움직이기도 했다. 이래서 그들은 기나긴 겨울밤을 셋째 간호로 지새우게 된다.
와이셔츠 상자에 탈지면을 깔고, 그 위에 셋째를 뉘인 다음 백열등으로 보온을 하면서 새벽 일곱 시까지 뜬눈으로 버틴 것이다. 이튿날 현철 내외는 파김치였다. 그래도 현철은 죽은 새끼를 묻으러 밖으로 나설 참이었다. 현관문을 여니 찬바람이 쏴아 몰려 들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현철의 아내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 것이다.
“여보, 셋째가 젖을 빨아요.”
“뭐라고?”
“제 어미젖을 물렸더니 빠는 게 아니겠어요?”
과연 후로다 1세는 약간 안정이 되는 듯, 옆으로 누워 셋째에게도 젖을 빨리고 있었다. 애정 어린 눈으로 새끼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전신을 번갈아가며 핥아 주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둘은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현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꿈에도 그리던 외손주를 둘씩이나 보게 되었으니.
그러나 둘째의 장례가 급했다. 현철은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주검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무척이나 차게 느껴졌다. 몇 걸음도 떼지 않아서 그건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현철은 녀석을 품속에 안았다. 낙동중학교 건너편 언덕에 마침 양지바른 데가 있어서 현철은 호미로 한 뼘 깊이로 파서 녀석을 묻었다.
집에 돌아와 커튼을 열어젖뜨리니, 햇살이 약간은 눈부시게 방안으로 파고들었다. 워낙 피곤했던 터라 현철 내외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후로다가 큰 신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둘은 소스라쳐 일어났다. 후로다가 멈추는 듯싶었던 진통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벌써 몇 시간이 지나서 그런다는 건, 뱃속에 새끼가 들었다는 증거 아니고 무언가?
현철 내외는 후로다 1세를 안고 냅다 병원으로 뛰었다. 그들은 까닭 모를 불안감으로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다. 가슴이 마구 두방망이질했다. 마침 수의사는 동물병원에 나와 있었다. 그도 간밤의 일로 지친 듯 무척 피곤한 표정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수의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후로다 1세를 급히 받아 진찰대에 눕혔다. 그러던 그가 퍽이나 당황해서 하는 말이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새끼 한 마리가 아직 뱃속에 든 것 같습니다.”
그는 엑스레이부터 찍어 봐야 하겠다며 서둘렀다. 십 분쯤 지나 수의사는 필름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표정이 맘에 걸린다.
아니나 다르랴, 갈비뼈가 보인다는 게 아닌가. 현철은 제왕절개를 우기려다 그만두었다. 찜찜하긴 해도 수의사가 노련하다는 명성이 자자한 데다, 이미 그가 후로다 1세의 산도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뒤였기 때문이다. 수의사는 유도 분만을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수의사는 그때부터 오른손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새끼를 붙잡으려 했다. 왼손으로는 부지런히 후로다 1세의 배를 마사지하였고… 이미 초주검이 된 후로다 1세는 버틸 기력도 없이, 몸을 그냥 수의사에게 맡기고 있었다. 눈동자를 굴릴 힘도 없는 듯 마침내 후로다 1세는 축 늘어지고 말았다. 수의사는 그 모습을 보고 파랗게 질렸다.
그래도 그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현철은 그걸 보며 눈앞이 캄캄하고 진료실 전체가 빙빙 돌아가듯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러던 중 어쩌다가 새끼의 한쪽 발이 수의사의 손가락에 잡힌 모양이었다. 넷째도 역산이었던 것이다. 수의사는 핀셋으로 새끼의 발을 집었다. 그러고는 약간 힘을 주는가 싶었는데, 아 가엾게도 새끼의 발만 끊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제서야 수의사는 제왕절개를 서둘렀다. 다시 체중을 재서 몽혼 주사를 놓고….
그리곤 수술 도구를 챙겼다. 이윽고 후로다 1세가 완전히 눈을 감자 수술대 위에 눕혔다. 네 다리를 붕대로 묶고 입엔 재갈을 물렸다. 후로다 1세의 배에다 메스를 대는 걸 보고 현철은 밖으로 나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의 아내가 물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대천명’ 뿐이었다. 현철의 눈에 이슬이 한 방울 맺혔다가 시멘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의 아내가 말없이 손수건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개를 데리고 와서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의아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앞에 수의사가 나타난 것은 두 시간이 거의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지도 못한 채 입을 열었는데, 유도 분만을 시도한 게 잘못이었다는 인정이었다.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상대가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현철 내외인들 어쩌겠는가.
그들은 눈만 뜨고 시체처럼 누워 있는 후로다 1세를 내려다보고만 있을 수밖에. 후로다 1세는 한 시간쯤 지나서 일어날 의욕을 보였다. 설사 그럴 기운이 없어도 집에 둔 새끼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수의사가 다시 땀을 쏟으며 링거 한 대를 놓았지만, 주사약이 다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로부터 현철 내외가 이틀 동안 겪었던 고초며, 좌절 충격 허망 등은 차라리 길게 표현하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후로다 1세는 새끼 두 마리에게 젖 한 번 물릴 생각을 못 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겨우 기다시피 하여 다용도실과 현관에 수없이 왔다 갔다 했는데, 겨우 배설한 것이 그야말로 눈곱만 한 오줌 몇 방울이었으니까.
사흘째 되는 날 아침 후로다 1세는 약간 생기를 되찾는 것 같더니, 다용도실 신문지 위에다 대변을 조금 보았다. 그런데 그 냄새가 보통 때와는 어쩐지 다르다. 현철은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섬뜩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다시 허둥대며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후로다 이름을 수없이 부르면서. 그러나 그의 귀에 들려온 건 후로다 1세의 대답이 아니라, 사람이 숨넘어갈 때 나는 것과 비슷한 담 끓는 소리였다. 현철은 억장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의사는 동료 두서넛과 함께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현철네가 들어서는 모습을 본 그의 표정은 체념 아니 공포 그것이었다.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동료 수의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이미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미이고도 남았다. 그래도 수의사는 안 나오는 정맥에다 주삿바늘을 억지로 꽂았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사기의 피스톤을 밀어 넣기도 전에, 후로다 1세는 눈을 뜬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현철과 그의 아내는 그 순간 후로다 1세의 말 없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오호통재라. 그들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딸 후로다 1세, 둘이서 밤낮으로 쓰다듬어 주던 후로다가 이제 영원히 그들 곁을 떠나가 버린 것이다.
현철 내외는 오열했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아마 한 시간도 넘게 그랬으리라. 수의사도 망연자실 넋 잃은 사람마냥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염이나 좀 해주세요. 내일 아침 산에다 갖다 묻겠습니다.”
현철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귀가하였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고말고. 집 안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새끼들도 어미의 죽음을 아는지 울어대었다. 누가 곁에 있었다면 이 목불인견의 참상에, 그도 눈시울을 적셨으리라.
그래도 현철과 아내는 새끼들에게 인공수유를 시켰다. 어린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을 떨칠 수 없었다. 밤중에도 몇 번이나 잠에서 깨었고. 젖병을 번갈아가며 소독을 했다. 새끼들도 어미를 잃고 잠이 오지 않는지 울어대며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기 무섭게 현철은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휙휙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거리를 그들은 말없이 걸었다. 동물병원에는 수의사가 미리 나와 있었다. 그도 입을 열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이윽고 구석에 두었던 후로다 1세의 주검이 든 관을 건네주었다. 비록 종이로 된 것이지만, 하얀 붕대가 깨끗하게 둘려져 있었다. 현철은 동물병원을 나서자 아내를 이끌고 덕천중학교 근처로 갔다.
미리 준비한 꽃삽으로 꽁꽁 언 땅을 파헤치니, 마침내 이틀 전에 묻었던 새끼의 주검이 드러났다. 주검도 영하를 아는지, 감싼 탈지면에서 얼음 몇 조각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길로 둘은 자주 다니던 쌍학산 약수터에 올랐다. 일요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물을 긷던 모녀가 현철 내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다시 산등성이를 하나 넘었다. 가끔 그들이 약수터에 와서 찾아가던 양지바른 곳이 있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그리고 옮기면서, 현철은 육감 비슷한 것을 가졌다. 어쩌면 그곳이 후로다 1세의 무덤 자리로는 최고 명당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었을까?
아니나 다르랴 그들의 발걸음이 멎은 곳은 과연 달랐다. 집채보다 큰 바위가 마치 비바람이라도 막아 줄 듯, 비스듬히 기슭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정남향이다. 그런데 그 밑의 흙이 마치 후로다 1세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평평하다. 작은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앞은 시원하게 확 트여 만덕동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고 뒤는 상수리나무며 소나무, 그리고 이름 없는 잡목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얼음만 녹으면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졸 들릴 것 같다.
현철은 꽃삽으로 관이 묻힐 땅을 한번 파 보았다. 푹 들어간다. 땅이 마치 시루떡 고물같이 부드럽다. 소나무 잔뿌리가 몇 개 서로 얽혀 있었지만 꽃삽으로 쉬 끊어 낼 수 있었다. 마침내 깊이 한 자 반쯤 되는 관구덩이가 드러났다.
현철은 떨리는 마음으로 후로다 1세의 관 뚜껑을 열었다. 아! 거기엔 후로다 1세가 생전의 모습 그대로인 채, 다만 눈을 감고 편안히 누워 있었다. 화려한 색깔 하며 긴 털도 하나 변함없었다. 현철이 부르짖는다.
“후로다야!”
그러나 현철의 오열에도 후로다 1세는 다문 입을 벌릴 줄 몰랐다. 현철은 떨리는 손으로 후로다 1세를 밖으로 들어냈다. 그리고 새끼의 주검을 가슴에 안겼다. 잠시 기도한 뒤, 영원히 포옹하여 저승으로 떠나는 어미와 새끼를 도로 속에 눕혔다.
순간 모로 본 후로다 1세의 얼굴이 어쩐지 지극히 안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현철은 후로다 1세의 머리맡에 녀석이 생전 그렇게 좋아하던 껌과 생선 한 토막, 그리고 쓰던 빗을 넣어 주었다.
다시 뚜껑을 닫으면서 현철이 언뜻 ‘배뱅잇굿’의 한 구절을 떠올린 것은 웬 까닭일까? 어쨌든 그는 가슴으로 억누르는 통곡의 소리를, 소리 없는 오열로 부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서산 낙조 떨어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돋건만
황천길이 얼마나 먼지/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누나
현철 내외는 무덤 위에 다시 한번 눈물을 뿌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어미 잃은 강아지 두 마리는 끝없이 울어대었다.
그들이 그런대로 정신을 차린 것은, 갖은 고초 끝에 유모견 치키를 구하고 나서부터였다. 새삼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새끼를 살리는 것이 죽은 후로다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현철은 무려 한 달 반 동안을 제 새끼 두 마리가 딸린 우모견(요크셔테리어가 아닌 잡종견),
그리고 그 유모견을 제 어미로 아는 후로다 1세의 새끼 등 다섯 마리의 개들과 아파트 작은 방 한 칸에서 지냈다. 밤중에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유모견의 대소변 수발도 현철은 해냈다. 영양식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그런데도 죽은 후로다 1세의 새끼들에 대해서 유모견이 차별 대우를 하는 바람에 현철 내외는 얼마나 속상해했던가. 무엇보다 자기가 낳은 새끼와는 달리 고추나 항문을 핥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항상 배설은 현철 내외가 붓으로 도와 주어야만 가능했다. 그러는 중에도 현철은 후로다 1세의 무덤에 수시로 찾아갔다. 동네 노인들이 저러다 줄초상 나겠다며 한사코 만류했지만, 그게 그들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이야기를 둘이 실감하고도 남았다고나 할까? 오죽하면 현철 내외가 듣다 보다 못한 애견비를 세웠을까? 오석에, “이승에서 착하디착하게 살던 후로다, 아비의 부주의로 죽어 여기 말없이 묻히다”라 새긴… 뒷날 애견가들이 가끔 찾는 명소가 될 줄 몰랐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죽는다고 수의사가 버리라던 그 새끼가 날이 갈수록 후로다 1세를 닮아가는 게 아닌가. 문자 그대로 제 어미를 쏘옥 뺐다 해도 과언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귀를 자주 터는 버릇하며 오줌 누는 장소, 허리가 약간 올라간 것조차 똑같다.
심지어는 현철이 귀가했을 때 좋아서 날뛰는 폼, 식성, 짖는 습관까지 그랬다. 그래서 현철 내외는 어느 날 그 새끼에다 제 어미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후로다 2세라고…. 후로다 2세는 그래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셈이다. 현철 내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후로다 2세만은 제 명이 다할 때까지 데리고 있기로 약속하였다.
실제 두어 달이 지나고 나서, 1백만 원을 넘게 줄 테니 자기에게 넘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현철 내외는 은연중 후로다 2세를 통해서, 후로다 1세의 혈통을 자자손손 이어 나가리라 결심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래 한 마리는 유모견에게 딸려 보내고 후로다 2세만 남겨 두었던 터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후로다 2세는 임신을 못 하는 것이 아닌가. 두 번 발정이 와서 좋은 신랑감을 골라 교배를 시켰건만, 현철 내외의 조바심과 불안감은 아랑곳없이 실패만 거듭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40여 일 전, 금복 애견사에서 후로다 2세를 발정과 동시에 데려간 것이다. 그쪽에서 배란 검사도 하여 적기에 교배시켜 수태가 되도록 해 줄 테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는 전갈을 수차례 보내온 바가 있었다.
현철로서도 연말까지 마감이 되어 있는 동화 원고 때문에 너무 바빠 달리 손쓸 수도 없어, 애견사 주인의 말을 따르리라 결심하였던 것이다. 두 주일 동안 애견사에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수태도 수태지만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후로다 2세가 겪을 심한 멀미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음 졸이던 어느 날, 현철은 애견사 주인으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후로다가 어쩐지 이상하니 데려가는 게 좋겠다는 게 아닌가!
현철에게는 그 소리가 정말 청천벽력같이 들렸다. 그렇게 건강하던 후로다 2세가 병들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현철은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애견사로 갔다. 주인도 무척이나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초조하게 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이 안고 나온 후로다 2세를 보고 현철은 경악하였다. 그건 옛날의 후로다 2세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몸이 못 알아볼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현철을 보고 반가워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삼단 같았던 털은 쥐기만 하면 한 주먹씩 빠졌다. 현철의 입에서는 탄식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로부터 20여 일은 현철 내외의 피를 말리는 전쟁이었다. 후로다 2세는 무엇보다 제대로 먹지 못하여 온종일 제집에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도 임신 비슷한 증상이 계속되어 동물병원 몇 군데를 들러보았으나, 아무도 확진을 못 하는 바람에 애간장만 탔다.
그러다가 바로 어제 큰 동물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자궁에 탈이 났다는 것이다. 불결한 교배 때문에 생긴 병이라 했다. 그러면서 원장이 집 가까운 데서 수술을 하라고 권하였다.
그래 다시 찾은 데가 공교롭게도 후로다 1세가 숨을 거두었던 그 동물병원이었던 것이다. 원장인 수의사도 승낙하였다. 현철 또한 그게 운명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었다. 모녀가 같은 병원, 같은 침대, 같은 수술대 위에서 배를 가르는 수술을 받게 되었으니, 그 처연한 느낌을 어찌 필설로 표현하랴.
한편 저승에 있는 후로다 1세는 두어 달 전부터 매일 밤 꿈자리가 어지럽고 뒤숭숭하였다. 헤어지고 나서 한시도 잊지 못하던 딸(후로다 2세)이 시집이랍시고 낯선 집에까지 간 것은 좋다고 치자.
주인의 너무 무지막지한 행동거지가 마치 현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꿈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기야 그 주인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 현철의 사돈인 셈이지만,
그 주인더러 사돈이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은 후로다 1세에겐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첫날부터 조그마한 케이지에 넣어 골방에 처박아 두는 게 마음 아팠다. 주인은 그래 놓고서 거기 한 번 들여다보는 법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낮에는 불을 끄고 밤에는 강한 형광등을 내내 켜 놓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낮과 밤이 뒤바뀐 셈이라 후로다 2세는 잠을 잘 수 없어 더 고통인 것 같았다.
통조림에다 마른 사료 버무린 걸 그릇에 가득 넣어 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어쩌다 입을 대 보면 꽁꽁 얼어 있었다. 대소변도 가리게 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짝짓기를 시키는데, 이거야말로 가슴을 찢고도 남는다. 수놈이 한 마리가 아니다. 견사 주인으로 봐서는 완전한 수태를 위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수놈을 여러 마리 동원시켜 그 짓거리를 하는 거였다. 그럴 때마다 후로다 2세를 괴롭혔다. 마지막 날엔 잘 생기지도 못해 요크셔테리어 순종 같지도 않은, 엄청나게 큰 수놈이 마치 겁탈이라도 하듯 달려드는 바람에 소스라쳐 놀라 깨었다.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그러고도 학대는 계속되었다. 딸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모습이 밤마다 꿈에 나타났다. 식음을 전폐한 채 모깃소리만 한 신음만 내기도 하였다. 그건 후로다 1세의 간장을 찢고도 남는다.
어떨 땐 전생에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던 아버지 현철이 주인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기는 쪽은 항상 주인이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워,
“아버지!”
하고 고함을 있는 대로 질렀다. 그런데도 아버지 현철은 대답도 않은 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넋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엔, 아버지 현철이 견사 주인한테서 무수히 매를 맞는 것이었다. 현철은 한 마디 항변도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급기야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4차선 도로 위로 끌려 나와 팽개쳐졌다. 쓰던 <개가 들어도 웃을 일> 원고를 그대로 들고나온 듯, 원고지가 그대로 바람에 날려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그게 수백 수천 마리의 개가 되어 날아다녔다.
개들의 비명이 천지를 진동한다. 그 위를 무수한 자동차가 타고 넘어 질주한다. 후로다 2세가 피투성이가 되어 내동댕이쳐져 있다. 형상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놀라 깨어 보니 또 꿈이다. 전신이 땀으로 흥건하다. 예감이 아무래도 불길하다.
날이 밝자 후로다 1세는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염라대왕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머릴 조아렸다.
“대왕마마, 긴요한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오, 그래? 그 긴요한 청이 무엇이더냐?”
“전생에 눈물로 두고 온 딸년이 하나 있습지요.”
“그래 그건 나도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딸년의 명이 아직 다할 때가 멀었는데도, 대왕마마께서 거두실 생각이시온지요? 딸년은 죄를 지을 애가 아니 온지라….”
“그만두어라. 어디 죄 지은 애만 여기 데려 온다더냐? 그럼 너는 죄가 많아 전생에서 명이 짧았느냐? 어느 생에서든 삶과 죽음이 한갓 윤회이거늘, 길고 짧은 걸 비교한다는 게 한갓 부질없는 짓이니라.”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딸년만이 문제가 아니오라….”
“딸년만 문제가 아니라면?”
“딸년이 외할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분은, 전생에 제 아버지셨음에 그분조차 자칫하면 크게 건강을 그르칠 염려가 있사옵니다. 딸년을 데려오셨을 경우 그분의 절망을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분은 따로 할 일이 있으시기도 하온즉….”
“따로 할 일이라 함은?”
“그분은 동화 작가시고 결혼기념일에 세계애견연맹으로부터 얘견상을 받을 만큼 진짜 애견가라 앞으로도 수십 년 좋은 글로써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개를 사랑하는 운동을 벌여야 하옵니다. 그런데….”
“말해 보아라.”
“저의 아버지는 특히 대한민국엔 꿈을 지니고 자라야 할 초등학교 2학년짜리 중 절반이 보신탕을 먹어 본 경험이 있다는 통계를 보곤 늘 한숨만 쉬고 있사옵니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저를 잃고 대한민국이 생기고서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클럽 활동 부서로 애견부를 만들었겠습니까?”
“그래? 그것참, 대한민국의 교육 개혁이 한창이라 하더라만 그게 바로 교육 개혁의 하나이겠구나. 무릇 일이란 작은 것에서부터 도모해야지.”
“내친김에 얘깁니다 마는 선생님들조차 어찌나 보신탕을 좋아하는지 어느 변두리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에 학부모들이 개를 잡아 대접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하옵니다. 며칠 전엔 유명한 대학교수들이 모여, 보신탕이 대한민국 국민의 전통 음식이라 정의한 적도 있사옵니다. 자칫하면 유치원은 물론 초중등학교나 대학의 식탁에도 쇠고기 대신 개고기가 등장할지 모르겠사옵니다.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개 생명에 대한 존엄성 따위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것참 고이헌 일이로구나. 어쩐지 어글리 코리언이, 요 근래 태국이란 나라에서 곰 밀렵에 관계했다는 등 좀 어수선하더라니. 불개미 한 마리도 생명이 있거늘, 견공이라 이름 치켜세울 땐 언제고…. 여하튼 불행한 노릇이로다.”
“제 아버지라면 글로써도 능히 그들을 깨우칠 수 있사옵니다.”
“그래? 내 과문하여 너한테 그렇게까지 절박한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내 한번 알아보마.”
저녁에 염라대왕은 후로다 1세를 불렀다. 대왕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다.
“늦었다. 저승사자가 이미 출발했고, 네 딸의 배에 칼을 댔다는구나.”
“대왕마마, 굽어살피시옵소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겠사옵니까? 이번 일에 여럿의 꿈과 생명이 달려 있사온지라….”
“글쎄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네 아비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다. 네 죽음의 의미는 네 딸의 단산 그것이었다. 다시 말해 너를 잃었으면 네 아비가 네 딸에게서 새끼 받을 생각은 않았어야지. 그리고 말이다. 네 딸의 불임은 이미 숙명이었다. 유모견이 제 새끼 아니라고 고추를 핥아주지 않았던 걸 너도 알았을 거다. 그게 제대로 발육이 안 되었으니 어찌 임신을 할 수 있었겠느냐? 그리고 자식, 손주 그게 어디 네 아비한테만 없다더냐? 출산, 그게 경우에 따라서는 죄악일 수도 있느니라.”
그 시각에 후로다 2세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던 수의사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배를 가르기도 전에, 후로다 2세가 주사 쇼크에 빠진 것이다. 잇몸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숨이 거의 멎다시피 했다. 그러나 거기서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현철 내외한테서 듣는 항변쯤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서 원수 취급을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1시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전 개복해 놓고 보니 자궁 상태가 엉망이다. 간도 그렇고, 비장도 다섯 배쯤 부어 있다. 조수가 당황하여 물었다.
“이게 뭐지요?”
“자궁 축농증이야. 아주 악성이구먼.”
그쯤에서 수의사는 조수더러 현철에게 삐삐를 치도록 일렀다.
이내 현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원장님, 어떻습니까?”
“절망적입니다. 이제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단 한 가지….”
“그게 뭡니까?”
“기도하는 수밖에요. 그것도 자궁을 적출하는 걸 전제로요.”
“원장님, 기도하겠습니다. 자궁도 적출하세요. 수술 중에만 숨을 안 거두면 그 이상도 좋습니다.”
포장마차를 나서는 현철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맥이 빠져나감을 느낄 따름이었다. 이제 그는 아내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집에 들러, 무엇인가 한 마디 던지고 동물병원까지 가야 할 것이다.
생의 가능성은 10퍼센트도 안 되는 줄 알면서 현철은 어느새 합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방파출소의 시계가 아홉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구인환 교수와 나는 '절친' 사이입니다.
특히 한국문단 화요회를 만들어 나 박경석을 비롯해 구인환, 홍승주, 윤병로, 홍윤기 등 7인이 매주 화요일 을지로 스칸디나비안 클럽에서 만나 담소하던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그때는 소주 두 병 씩은 마셨지요.
당시 어울리던 문단 친구들 거의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지금은 전화 걸 상대가 없습니다.
고독합니다. 그래서 이원우 후배에게 매달리니 주 접 떤다고 욕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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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컴퓨터 활용능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장군님께 배울 바가 너무 많습니다. 나라 사랑 정신에서부터 문학에 이르기까지---. 컴퓨터 활용도 가르쳐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구인환 선생님 유택을 찾아 서천까지 다녀왔었습니다. 가족 묘원(문중) 이 조성되어 있더군요. 언젠가 장군님으로부터 구인환 교수님과의 친교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5만원 주고 택시를 이용했었습니다. 홍승주 선생님깨도 메일로 선거 운동을 했으니 제가 참 버릇이 없지요. 소설가협회 이사 선거 때 그분께 한 표 부탁드렸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