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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예배소서 2장에 있는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말씀이고,
오늘 제목도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제가 여러 가지로 사람들을 햇갈리게 하는 사람이긴 합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몇 번 회원들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잘 하시냐”고
사실 제 배경을 아시면 제가 한국사람이니까 한국말 잘하는데, 사실 영어는 잘 못해요.
근데도 자꾸 물어보는게 왜 한국말 잘하냐고, 언제 한국에 왔냐고 물어보시니까,
제가 그 대답을 할려니까 제가 햇갈립니다.
소개도 해 주셨지만,
저희 아버님은 김장환 목사님이시고 어머님은 미국분이세요.
그 두분의 큰아들로 태어나면서 제 안에는 많은 햇갈림이 있었죠.
언어의 햇갈림도 있었어요, 두가지 말을 같이 배웠기 때문에..
어떤 분이 제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목사님은 생각할 때 한국말로 하세요? 영어로 하세요? ”
그걸 물어보니까 저도 긴가민가 하고 햇갈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평소에 생각을 잘 안하니까, 무슨 말로 생각을 하는지 잘 몰랐다가, 물어봐서 생각을 해볼려니까 이상한 거예요. 저 잘모르겠어요. 무슨 말로 생각을 하는지.
그 외에도 햇갈린게 많았어요.
결혼할 나이가 됐을 때 정말 햇갈렸어요.
아버지가 하루는 저를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 미국가서 공부, 대학교 때는 해도 되는데 한가지 조건이 있다. 미국 가면 아버지도 미국서 공부 해봐서 알지만 미국 대학교에 가면 미국여학생이 많은데 거기에 현혹되지 말고 너는 고향에 있는 리브가를 얻어 결혼한 이삭처럼 너는 한국여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다.”이러시는 거예요.
뭐~아버님 말씀이니까 일리는 있지만, 그 순간 햇갈리게 딱 떠오르는 생각이.
당신은 미국여자와 결혼하고 왜 나는 그렇게 말씀하시나? 그것도 또 햇갈리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엄마는 의견이 또 다르세요.
우리엄마는 미국사람인데도 그렇게 한국적으로 생각하셨어요.
“너 큰아들인데 결혼하면은 우리와 함께 살아야 되잖아, 너 결혼해서 아내가 될 자매는 우리집 큰며느리인데 아버지랑 시간 많이 보내겠니? 엄마하고 시간 많이 보내겠니?”
무슨 말씀이냐면 엄마같은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
4년동안 대학다니면서도 얼마나 제가 햇갈렸는지 모릅니다.
하나님한테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 저더러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어머니에게 효도할까요? 아버지에게 효도할까요?
결혼 안하고 살까요. 둘 데리고 살까요?”
하나님 참 오묘하세요. 나중에 교포를 만나게 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아버지도 기뻐하고 어머니도 기뻐하고 참 그래서 하나님 오묘하신 분이세요.
햇갈림을 해소하신 하나님이신데,
가장 햇갈렸던 경우가 한 번 있어요.
제가 햇갈렸던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저 때문에 햇갈리는게 하나 있다고 해요.
저는 잘모르는데, 혹시 극동방송 좀 들으시거나 아버지 설교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목소리 때문에 좀 햇갈리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요즘 이제 극동방송에서 설교가 나가기도 하는데,
어떤 분들은 “아유 김장환 목사님 나오셨다”하다가
한참 듣다보면 맨끝에 가서 “원천교회 김요셉목사입니다”...
제 목소리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답니다.
한번은 제가 아버님 교회 아직 부목으로 있을 때인데, 집사님 한분이 집에 전화를 주셨어요. 근데 아버님 같이 살고 있거든요.
제가 그냥 “여보세요”하고 전화를 받으니까, 수원침례교회 여전도회 회장님이신데...
“아유, 김목사님”이러시는 거예요.
저도 김목사니까, “네”했는데,
한참 얘기를 하는데 보니까,
저 ‘김목사’를 찾은게 ‘우리 아버지 김목사님’을 찾은 거예요.
남편 흉보시고, 뭐 별별얘기를 다 하시는데, 내가 들을 얘기가 아니야,
한참 얘기하다 말고 “아 저요. 김요셉 목사예요”
이러니까 그분이 너무 황당해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시는 거예요.
일주일 후에 그 분이 또 집으로 전화를 하신거예요.
이번에는 전화를 안 받으시는 아버님이 전화를 받으셨어요.
우리 아버지도 그냥 “여보세요”하니까,
이분이 다짜고짜 아버지한테 뭐라 그러시냐면,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줄 아냐?, 니네 아버지 빨리 바꿔”이러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그냥 전화로 “여보세요”한 죄밖에 없는데, 아버지 바꾸라고 하니까,
우리 아버님이 “저희 아버지, 돌아가셨는데요”
이 집사님이 생각해보니까 김장환 목사님이 진짜 받으신거에요.
그런데 그말 하신 것에 황당해서 또 전화를 끊으시고 통화를 못하셨어요.
주일날 교회 갔더니 그 집사님이 절 보더니,
“햇갈려 죽겠어, 왜 아버지하고 목소리가 닮아가지고 나한테 무안을 두 번씩이나 주냐고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야”이러시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누가 뭐 아버지 닮고 싶어서 내가 뭐 노력을 했나? 왜 나한테 그러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요즘 좀 큰교회 목사님들, 옛날부터 유명한 교회 부목사님들은 목소리도 닮아가더라고요.
제가 어디라고 얘기는 안하지만, 여기 여의도에 큰교회 있어요.
거기 부목사님이 설교하는 걸 제가 들어봤더니.. 아~ 똑같아요.
입에서 바람새면서 “믿습니다” 하는데 어쩜 그렇게 똑같은줄 몰라.
가만히 보니까 테이프 듣고 연습하는 거예요. 닮을려고,
근데 전 닮을려고 한번도 연습을 안했어.
근데 우리 아버지 목소리, 우리 아버지 제스츄어, 우리 아버지 억양 이런걸 제가 다 닮은거예요.
왜 닮는가? 제가 생각을 해 봤더니, 이건 ‘하나님의 섭리’였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 ‘햇갈림’.. ‘저의 정체성의 햇갈림’ 때론 다른사람들에게 주는 햇갈림속에서,
오늘 하나님 말씀에 담겨진 오묘한 진리를 저는 하나 발견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뭐냐면 우리 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그 아버지에 그 딸들’이더라고요.
오늘 영적인 진리는 거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모습은 ‘고린도 전서 15장’에 보면 그림자라고, 왜냐하면 영의 모습을 반사하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를 육신의 자녀가 닮아갈 수 밖에 없는 그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자연의 창조의 섭리와 질서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자연히 일어나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우리를 닮아가는 모습들이 있다면, 그 닮아가는 모습속에서는 하나님 더 깊고 심오한 영적인 가치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세상은요, 자연적인 현상들은 다 하나님을 더듬어 알 수 있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자연계시의 작은 목소리들, 작은 그림자들, 반사에 불과한 것이에요.
더 깊숙한 오묘한 진리가 있는데, 그건 바로 뭐냐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고 싶은 영적인 진리를 우리의 자연의 삶 속에서 발견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전 알게 된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닮은 이유가 있어요.
제 육신의 아버지를 닮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는 더 근본적으로 영의 아버지,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들어주시는 영의 아버지를 닮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이 육신의 모습속에서 반사된거예요.
하나님이 그래서 창세기에 뭐라고 말슴하셨습니까?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되’,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데, 여러분 우리는 이땅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영의 모습, 우리의 내면의 영성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영의 모습’은 반드시 ‘영적인 아버지’를 닮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 영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
영성에 있어서 만큼은 두종류의 부자관계가 있습니다.
두종류의 ‘그 아버지의 그 아들’ ‘그 아버지의 그 딸’ 모습이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은 1-3절에 ‘첫번째 부자관계’
4절이하 9절까지는 두 번째 부자관계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 부자관계는 ‘진노의 부자관계’
진노의 부자관계의 특성을 잠깐 보실까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 너희가 그 가운데 행하여 이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들을 따랐으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도 우리는 다 그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진노의 아버지를 닮은 영의 모습은 어떤지, 오늘 본문은 3가지로 말씀드리는데..
첫 번째 1절에는 ‘영적으로 죽은모습’이에요.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이 대표기도 하시는데 이렇게 기도하시는 걸 들었어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참 거룩하게 들리고 영적인 것으로 들리지만, 신학적으로 잘 분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이 느끼지만, 성경은 우리를 어떻게 정의했냐면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자들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태어날 때 ‘진노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진노의 유전인자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는’ 순간부터 그 영이 죽었습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영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이 영은 나중에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이 영은 현재로 아직 믿지 않는 상태에서는 모든 자연인들은 모든 사람들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들입니다.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살아있는 반응들을 보이지 않죠?
시체를 보셨습니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성이 죽어있는 형태에서부터 우리는 진노의 자녀의 모습을 띠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노의 자녀’의 두 번째 특징은 뭐냐면 ‘세상풍속’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는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중심’ ‘휴머니즘’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휴머니스틱한 교육을 12년,14년,16년, 또는 20년 가까이 인본주의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젖어 있어요.
세상풍조가 우리는 나도모르게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많은 가치관 속에서,‘월드 뷰’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속에서는 인본주의 가치로 굉장히 많이 오염돼있어요.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이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찍어내고 있어요.
이 신우회를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존재를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이유가 있어요.
주일날도 중요하지만 주중에 특별히 인본주의적인 틀속에 계속해서 눌리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이 틀의 자극에서부터, 이 억압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 틀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끊임없는 신본주의적인 정화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체험들을 하셔야 되요.
저는 ‘중앙기독초등학교’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한국에 들어와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비젼이 뭐냐면, 그동안 한국교회 성장은 아버님세대에서 엄청 되었다.
부흥과 전도를 통해서 우리 한국교회는 자라났습니다.
저는 아직도 한국교회 아직도 부족한 것이 한가지 있다면, 전도와 뜨거운 예배의 열정속에서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의 가치관은 ‘인본주의적 가치관’ 세상의 풍속과 풍조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교회안에까지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마치 잡초를 위에서만 뽑아버리면 계속해서 다시 자라나는 것처럼 그 잡초를 뿌리까지 뽑아서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으로 다시 한 번 갱신할 수 있는 교육, 양육이 교회 안에 얼마나 절실한지 몰라요.
일주일에 주일날 한시간 가지고는 부족해요. 주일학교 예배 한시간 가지고는 부족해요.
그래서 ‘중앙기독초등학교’는 철저하게 날마다 모든 과목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여과시키는 신본주의적 교육’을 중심으로 하려고 하는 한국에서 사실은 최초의 시도의 학교가 ‘중앙기독초등학교’입니다.
여러분들 기도하십시요.
저는 한국에 많은 교회들이 다음 타겟으로 반드시 해야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꼭 주어야 할 선물은 뭐냐면, 태어나면서부터 믿음의 가치관으로 자기의 모든 세계관이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으로 변할 수 있는 교육을 물려줄 수 있어야 되요.
우리 교회들이 그것이 부족해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세상 풍속을 좇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 그런 삶을 살아왔습니다.
세 번째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계속해서 정욕중심의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그것을 채우는 일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목적이 된다면 우리는 아직도 진노의 자녀의 모습을 벗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과 저과 어떠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진노의 자녀의 모습으로, 그 아버지를 닮아서
그 진노의 아버지인 사탄의 모습을 지닌채 이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밭 가즈’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진노의 자녀에서부터 은혜의 자녀로 뒤집어 질수 있는 기적과 은혜의 존재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론 불가능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의 변화의 능력 때문에, 우리는 그러나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의 긍휼하심 때문에 우리는 진노의 자녀에서부터 은혜의 자녀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 은혜를 받지 않고는 우리 힘으로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 크리스쳔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만 들어가 앉아 있으면 교인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가 교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은혜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받고 하나님은 은혜로 맺어주시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기 ‘모태신앙’있어요. 우리 나라에만 있는 단어에요.
어느나라, 어느 기독교에 가셔도 ‘모태신앙’ 이란 단어는 없어요.
“주일학교 선생님 좀 하세요.” “못해요” “반주좀 하세요” “못해요” 이런사람들은 모태신앙이에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크리스쳔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나갔을 지라도 우리들이 장성해서 어느덧 우리들의 생각속에 인지가 깨우쳐지고 영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 인격적으로 예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 내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내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 없음을 내가 믿고 영접할 때에 우리는 그때서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이고,이게 변화에요.
여러분 그런 귀한 체험을 하신 귀한 기독 신우회분 되시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변화를 받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아가요.
진노의 자녀에서 은혜의 자녀로 구원을 통해서, 저는 이것을 DNA변화라고 생각해요.
부모의 자녀인 줄 어떻게 압니까? 물어보면 우린 보통 ‘부모의 피를 받았다‘고 말을 해요.
근데 그게 과학적으로는 좀 틀리죠, 제가 우리 부모의 피를 받지는 않았어요.
아버지 어머니의 피를 수혈받아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아버지, 어머니의 정자가 합쳐져서 저는 정액을 받고 태어난거예요.
과학적으로는 한국말이 틀려요,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한국말이 굉장히 정확한 말이에요.
예배소서 2장 13절에 보시면
“전에는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DNA작용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의 피 때문에 내 영성안에 내가 예수님의 피를 수혈받는 거예요. 그 수혈받느다는게 뭐냐?
내 혈관속에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을 예수님 내 영의 문설주에, 보혈을 믿는 십자가를 드리는 거에요.
구약시대의 모세의 시대의 사람들이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
양이 피를 흘려서 문설주에 넣을 때 죽음의 신이 넘어간 것처럼,
오늘날 우리안에 영적인 죽음의 신이 우리의 가슴을 우리의 마음을 붯을 때,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사람들은 그 피를 받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바이어 라지컬 리즌’,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인 방향시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받으면 그렇게 변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단계는 거기서 끝마치는 게 아닙니다.
구원의 두 번째 단계가 있어요.
내가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은 생물학적인 이유로, 목소리는 그런이유 때문에 닮은 것 같아요.
억양은 그런게 아니에요. 억양은 부모의 디엔에이 때문에 그런게 아니고..
내가 아버지의 키를 닮았습니다. 원망이 많아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키가 작아서
얼굴도 이렇게 멋있게 생겼는데 키가 조금 컷으면 제가 텔레비 많이 나왔을 텐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 유전인자가 작아요. 씨가 작으니까 제가 작더라고요.
그런데 또 감사한 것은요. 제가 아버지 목둘레, 허리둘레, 발사이즈가 다 아버지와 똑같아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구두표를 받으시면 좋은 구두를 사시고, 양복이나 넥타이나 와이샤쓰 우리어머니가 다 물려주세요.
저와 꼭 맞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항상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제가 오늘도 아버지꺼 많이 입고 왔습니다.
근데 아버지랑 닮은 것중 유전인자 아닌 요소가 있어요.
제 아내가 결혼하기 전 제가 “무슨 음식 좋아하냐?”고 물어봐요.
제가 ‘된장찌게’좋아한다니까, 한달동안 장모님께 된장찌개 끓이는 걸 배워왔어요.
아침에도 된장찌개, 점심에도 된장찌개..
그런데 몇 개월 따로 살다가 부모님을 모시게 됐는데 집사람 또 걱정인거에요.
남편은 괜찮은데, 시아버지는 이게 걱정이에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었어요. “김장환 목사님은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우리 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된장찌게”
우리 집사람 십년감수하면서 저에게 물어요. “어떻게 아버지도 된장찌개, 아들도 된장찌개..”
지금 저희 집에 아들 하나있는데, 어느날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는데 우리 아들이 “된장찌게”하는 걸 보고 집사람이 깜짝 놀라요. “어떻게 3대째 된장찌개를 좋아하냐고..”
근데 그거 왜 그런줄 아세요? 유전인자속에 무슨 된장찌개 좋아하는 뭐가 있어서가 아니고...
아버지가 된장찌개 좋아하시니까 제가 아버지랑 같이 식탁에 앉으면 맨날 올라오는 된장찌개 맨날 제가 먹으면서 인이 배긴거예요.
왜 그러죠? 함께 해서 그래요.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우리가 크리스쳔으로서 은혜의 자유로 자라가는 비결이 하나 있어요.
5-6절에 보시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입히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십니다.
여러분, 왜 신우회를 왜 오셔야 하는지 아세요?
예수님 약속하셨어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그들중에 함께 있느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 닮기 원해요.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 보혈을 믿고, 입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닮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시작이에요.
내가 아버지를 닮는 것중에 신체적 조건 닮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전 닮고 싶어요.
옛날부터 사람들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해요.
“아버지 닮아서 훌륭한 목사 돼야지?”
지금은 릭워렌 목사님 통역하고 나서부터는 그 부담이 확 줄어들었어요.
그전까지는 그게 저는 축복이 아니고 저주로 들리더라고요.
“아니, 누가 마음대로 김장환 목사님처럼 되고 싶다고 되는 줄 아세요?, 안돼요.
되고 싶다고 제가 큰교회 목회할 수 있는지 아세요? 안돼요.
제가 대통령 전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돼요. 불가능해요.
뱁새가 황새 못 좇아가면 가랑이 찢어지는데, 저보고 자꾸 김장환 목사님 같이 훌륭한 목사님 되라니까 제가 그게 되겠습니까?”
저는 목사 안되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제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밟지 못할 것 같아서 저는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제가 한번은 공부하고 있는데..아버지가 미국 집회 오셨는데..호텔방에서 같이 자는데 우리 아버지가 밤중에 화장실에 가셨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도 깨서 화장실을 갔는데 벌써 아버지가 계신거예요.
그래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안 나오셔서 잠이 드셨나 해서..
화장실문을 열고 빼꼼이 들여다 봤는데.. 그 순간에 제 눈에 포착된 아버지의 모습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변기 뚜껑문을 덮으시고 그 위에 하얀 타월 두장을 놓으시고 성경을 펴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잠이 안오시니까 제가 깰까봐 화장실로 도피하셔서 거기서 성경읽으시고 기도하고 계시는 거예요.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데 제가 못들어가잖아요. 기도하시니까,.
기도 끝마칠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때 제가 아버지가 하신 기도를 훔쳐들었어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요셉이, 에솔이, 요한이 혼혈아로 한국땅에서 자라면서 많은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 아이들을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무릎 꿇고 저희 삼남매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제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하나님, 저는 아버지처럼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처럼 빌리그래함 목사님을 통역하거나, 큰교회를 목회하거나, 극동방송을 세우고 운영할 수 있는 그런 목회자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하지만 저렇게 하나님앞에 무릎꿇고 기도하시는 아버지는 닮을 수 있을 것 같아요.하나님 아버지 그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길이라면 저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밟겠습니다.'
첫댓글 ‘하나님, 저는 아버지처럼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처럼 빌리그래함 목사님을 통역하거나, 큰교회를 목회하거나,극동방송을세우고 운영할수 있는 그런 목회자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하지만 저렇게 하나님앞에 무릎꿇고 기도하시는 아버지는 닮을수있을 것 같아요.하나님 아버지 그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길이라면 저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밟겠습니다.'//이 기도는 다시 들어도 언제나 참 마음을 울립니다.이 기도 들으며 또 많이 울게 됩니다.하지만 저렇게 하나님앞에 무릎꿇고기도하시는아버지는닮을 수 있을 것같아요.하나님 아버지 그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길이라면 저는 아버지의 발자취를밟겠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하나님앞에 무릎꿇고 기도하시는 아버지는 닮을 수 있을 것 같아요.하나님 아버지 그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길이라면 저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밟겠습니다.'- 이 기도는 또 저를 울립니다.
모태(못해)신앙 읽다가 얼마나 웃었는지.....또한 뒷부분 뵈뵈님이 쓰신부분을 읽을 때는 눈물이 왈칵쏟아지네요...저 또한 울 목사님과 사모님처럼 될수는 없겠지만 열심히 발자취를 밟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