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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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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낙타 화분 외 / 김수우
동산 추천 0 조회 63 09.05.06 21: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낙타 화분 / 김수우




죽은 화분에 물을 준다
혹여 촉이 돋을까
혹여 촉이 돋을까
여름과 가을 지나고 다시 겨울이 지나는 베란다

죽음을 키우고 있는 뿌리를 본다
충분히 기다릴만한 神聖
죽음만한 질긴 꽃받침이 어디 있으랴

플라스틱 화분 속으로 걸어오는 모랫산
말린 낙타고기를 싣고 홀로 가풀막을 오르며
사막의 딸이 노래를 한다

낙타의 고비에서는 하늘에 바로 닿을 수 있네
암컷 낙타의 눈처럼 고비의 물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신기루의 고비에서는
따뜻한 마을이 떠나지 못하네*

거멓게 타버린 잎줄기가 따라 부른다
그 나직하고 느린 음조에 물을 준다
충분히 꿈꿀만한 밤
그래, 죽음만한 양식이 어디 있으랴

움푹움푹 허공꽃으로 피어난 저 발자국들



* 낙타를 타면 해가 가까워진다는 고비사막의 노래

 

 

 

 

 

 

길의길

 

쓸데없이 바늘쌈을 꺼내보곤 한다. 은박지 안에서 오롯이 반짝이는 은빛 바늘들. 어린 날 손가락 찔리며 지어보던 인형의 옷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내가 기워내야 할 수많은 하늘과 바람, 사람들 때문일까. 예리한 슬픔과 맑은 느낌. 내 저승빚은 얼마나 될까. 내 목숨으로 이어지기까지 창세 이후의 긴 핏줄들을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세상의 모든 뼈들이 튼튼했으면 좋겠다.


-자서 중에서

 

 

 

 

 

산해경을 읽다가 / 김수우


- 2008 촛불에 붙여  



동동, 종종, 령령, 정정, 혼, 구여, 유안, 족자, 송사, 천마, 원, 주누, 여호, 원호,

갑갑어, 당강이라는 어떤 짐승들

울음소리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와 같다는

옹, 교, 분, 부혜, 굴거, 상사, 황여, 산여, 정위, 영호, 영자, 청경이라는 어떤 새들

그 울음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같다는

산해경에 나오는 짐승과 새들, 언제부터 내 몸안에서 울고 있는 하늘이었는지

신화를 넘어 민들레와 자주달개비를 넘어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을 넘어 빈곤과 분노와 테러를 넘어 위험한 시장을 넘어 사육으로 병든 소를 넘어 곰배팔이 희망을 넘어,
저마다의 길을 켜든
제 본래를 찾아다니는 저 촛불 촛불들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문장이 됩니다
고단한 사랑이 받으셔야할 긴, 긴, 편지가 됩니다

삶이란 매순간 살아있는 제사라, 순간순간 꽃을 피우니 순간순간 비손 올리는 하늘이니

자기 이름을 부르는 울음, 가장 오래된 떨림을 듣습니다
결코 서럽지 않는, 강력한 자기장磁氣場을 가진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사는 일이 민망할 때마다 '다시' 라는 말에 매달린다. 용서와 희망의, 하얗게 널린 빨래 같은 그 냄새 때문인지 이 시집은 '다시' 투성이이다.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는 의미"라는 생떽스의 말은 모든 존재는 매일 씨앗을 뿌린다는 말이리라. 언어라는 끼니를 떠먹을 때마다 더 허기

지는 하루.
나와 나의 길은 언제나 흔들리고, 자꾸 휘청이다 삶의 경건과 경이에 다시금 일어서며 오늘도 하늘 그리운 강아지풀처럼 태어난다. 천천히 태어나, 날마다 태어나 삶을 살아내고, 시를 살아내고 싶다.

- 자서 중에서

  

 

봉쇄수도원 / 김수우  



찔레꽃, 흰 지느러미로 조용조용 마당을 젓습니다.

닫힌 채 떠있는 저 창문, 지상에 맨처음 떠오른 산소처럼 원시미생물의 촉수처럼 캄캄합니다

감춰둔 기도방들 애초 먼별처럼 각을 키웁니다 오래 전에 죽은 신들이 매일 죽는 자리, 날카로운 공포로 흔들리지만

비루하거나 찬란하거나
제 슬픔이 전깃줄 엉킨 묵시인 것 같아 역사인 것 같아

우는 어머니를 버린 우는 어머니들, 그립습니다, 위태합니다 몸을 굳게 잠그고

그림자 속으로 고스란히 살진 절망, 그 절망으로 지구는 오늘 안전한가요

흰 옷자락, 자꾸 심해를 저어갑니다 멀고 멉니다   

 

 

 

 

붉은 사하라

 

의자도 거울도 전부 사막이다.
집도 절도 붉은 모래다.
무수한 나사로 조여진 문명 속에서
마주치는 원형의 세계. 그 굳건한 적막에
하루하루 아득하다. 막막하다.

고생대의 숲이 지금도 살아 분열하고 있는
사하라는 가장 치열한 생명의 땅이며, 오늘 내 삶의 현실이다.
말의 틈새기로 먼지처럼 분열하는
몸과 꿈의 뜨거운 분신들이
아프고 그립고 고맙다.
때문인지 이 시집에 발끝을 세우는 것들이 많다.


-자서 중에서

  

 

 

알타미라의 소 / 김수우



1
고대이집트에서 나는 창조신 누트였고 길고 짧은 신화를 수없이 건넜으며 인도에선 지금도 성자이다 이중섭의 손끝에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식구였으며 알타미라 동굴에서 매일 지축 울리고 오늘도 허공을 넘는 尋牛인데

2
냉이꽃 듬성한 다리 밑
액체질소통 -196°C로 동결된 수소의 정액이 거래된다 전기자극으로 뽑아낸 정액을 분양받은 가축인공수정사들, 몸에 바람 든 암소를 안는다 수태시킨다 산도 바다도 애비 없는 단백질덩이로 태어난다 채권과 채무로 절룩거리는 생명의 流轉, 일상은 신상품과 재고로만 유통된다 下水에 무심히 젖는 봄

신은 이제 번식 관리되는 중이니
신화도 식구도 푸른 허공도 배합사료일 뿐이니

3
뼈와 살을 뜯어 먹이는 일 가죽구두를 신기는 일 그저 사랑이었거늘 찬란한 제의였거늘 내 눈이 수평선이었거늘 수평선 너머 네 집, 네 아침이었거늘
너희가 냉이꽃보다 쓸쓸한 이유를 안다
까닭없이 절망하는 이유를 안다

이 영악한 슬픔들아, 영원한 슬픔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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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탄 노자 / 김수우

 



종점 한 구역 전에 타서
종점 한 구역 전에 내리는 청소부 김씨
급정거에도, 잠을 깨지 않습니다
하루 두 번 마흔일곱 개 정류소를 흘러가며
도심으로 스며드는

사이,
신호등과 횡단보도, 아파트와 교회, 식당과 가구점, 은행과 병원, 입구들과 출구들, 타는 사람들, 내리는 사람들, 들, 들, 들, 환한 것과 어두운 것 틈으로 숨은, 들, 들, 들

아무리 버스가 휘청거려도, 꿈쩍 않는
산등성이 김씨
여름도 겨울도 한 개 낡은 빗자루에 불과합니다
타기 전에 한두 명이 타고 있고
내리기 전에 꼭 한두 명 남아 있는, 변두리
무위로 휘돌아갑니다

청소일도 곧 떨어질 참인데
단풍이 저리 쩔쩔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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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기억한다 / 김수우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가
내 몸 속 백혈구들은
고등어 한 토막에 일으켰던 네 살 적 알레르기를
꽃밥 짓다 사금파리에 긁힌 손끝 비린내를
마흔 네 개의 봄을 먹고 마흔 네 개의 겨울을 낳은
핏줄, 그 뜨거운 숲을 침입한 비린내에
돌짝 가슴 온통 가렵구나

살아있는가. 견딜 만한가 내 사랑, 다시
누군가, 라는 혁명을 꿈꾸라

제 그림자 다 크도록 흔들리기만한 눈빛들
놓쳐버리거나 놓아버린 이름들
내 몸속 빗살창이 되었으니
표시 없이 기억나는 멍울들
기억 없이 표시 나는 흠집들
마흔 네 그루 포플러를 낳았으니 , 그 바람소리에
온 하늘이 지독히 가렵구나

그래, 많이 여위지는 않았는가 내 사랑, 다시
어딘가, 라는 혁명을 꿈꾸라 
 

 

 

 

 

 

지붕밑 푸른바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그 골목과 누더기 진 지붕을 찍고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처를 넘는 법'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일탈로 인한 상처이건, 상처로 인한 일탈이건, 그래서 존재한다.'고 쓸 때 그가 말하는 것은 우리 삶의 어떤 트라우마일 것이다. 상처가 주체를 탄생시킨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그는 낡은 담벼락과 지붕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인데, 이때 우리는 그가 사진이미지를 통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 발문 중에서 (박수연, 문학평론가)

  

 


파도의 방 / 김수우  

 


머리맡에 선고처럼 붙어 있는 사진
엄마와 동생들, 내가 유채꽃밭에서 웃고 있었다

그 웃음 속에서 아버진 삶을 집행했다
깊이 내리고 오래 끌고 높이 추어올리던 그물과 그물들,
종이배를 잘 접던 일곱 살 눈에도 따개비지붕 단칸방보다 벼랑지던 방

평생이었다 고깃길 따라 삐걱대던,
비린내와 기름내 질척한 유한의 방에서 아버진 무한의 방이 되었다
여섯 식구 하루에 수십 번씩 열고 닫는

기관실 복도 끝에 있던 그 바다의 방을 육지에 닿은 십 년내 지고 왔는지 스무 명 대가족사진 속
소복소복 핀 미소에서 어둑한 방 하나 흔들린다

칠순 아버지의 굽고 녹슨 방, 쓸고 닦고 꽃병을 놓아도 아직 비리다 아무리 행복한 사진을 걸어도
생이 얼마나 비리고 기름내 나는 방인지 겨우 눈치챈다

방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연다
집행된 파도들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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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천 원 / 김수우 

 


주먹만한 봄화분 안에
시장통 골목이 흔들리고 있네
신발들 하늘 딛고 휘청이네
봄꽃 천 원, 쪽지를 달고
살랑살랑 살가운 얼굴 속에
팔락이는 여섯 살 내 치맛자락
홀로 팽팽하던 꼬리 연 아직 눈부시고
아버지의 짐자전거 저만치 달려오네
노오랗게 묻어나는 사람들
천 원어치 꽃가루를 따라
황사하늘 어디든 갈 수 있으리
목덜미에 돋는 떡잎 한 장

 

 


하늘 우체국 / 김수우



시립묘지 납골당 입구 하늘 우체국은 열두 달,
가을이다 오늘도 헐렁한 쉐터를 입은 가을이 소인을 찍는 중,
우표없는 편지들이 시시로 단풍든다
몰래 지나는 바람에도 말의 잎새더미에서 풍기는
젖은 지푸락 냄새, 말의 송아리, 슴벅이며 돌아본다

하늘우체국에서 가장 많은 잎새말은 '사랑해요'이다
'미안해요'도 가랑잎져 걸음마다 밟힌다
'보고싶어요' '또 올게요'도 넘쳐흘러 하늘이 자꾸 넓어진다
산자에게나 망자에게나 전할 안부는 언제나, 같다, 언제나, 물기가 돈다

떠난 후에야 말은 보석이 되는가 살아 생전 마음껏 쓰지 못한 말들,
살아 퍼주지 못한 말들, 이제야 물들며 사람들 몸 속으로 번진다
가슴 흔들릴 때마다 영롱해진다 바람우표 햇살우표를 달고
허공 속으로 떠내려가는 잎새말 하나, '내 맘 알지요', 반짝인다 
 

 


여기는 숲이었네 / 김수우



이곳은 나무가 있던 자리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대와 만난 곳도 나무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불꺼진 쇼윈도 마네킹이 한밤내 바라보는 곳
햇살에 타버린 지렁이가 구두끈처럼 밟히는 곳
불구걸인이 겨울하늘 붙들고 앉아있던 곳
모두, 나무가 있던 자리입니다

서로 발걸음 돌리지 못해 머뭇거린 것도
뿌리내리다 걸린 귀앓이
속눈물로 씻으며, 하늘로 하늘로 번져가던
울울한 고요가 살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대도 한 그루 나무였음이, 그 모두
한잎 한잎 다가서던 숲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고등어 / 김수우




온몸이 컴컴한 골목들로 빽빽합니다 지치지 않는 길과 창문과 얼굴이 서로 마주해 자작나무처럼 자란 저, 무늬들

샛길 하늘을 얽어놓은 전깃줄도 보입니다 알전구가 흔들리면 선반에 일년내 피어있던 프라스틱 패랭이꽃도 슬쩍 흔들립니다

팽팽하던 길, 구불구불 몸속으로 기어들 때 비로소 한 마리 고등어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았으니

애초 등푸른 생선으로 팔린 내가 다시 푸른 등짝으로 도착합니다 두고온 길들, 내버린 길들, 몸속에 가둔 벼랑이 뒤척이는데, 이천 원에 팔리는 한 마리 슬픔, 눈이 붉어옵니다 왁자한 파도들 익숙하고 낯설어

낮게 낮게 시장통 좌판에 물끄러미 누울 수 있을 때까지 내가 걸어야 할 바다, 매일 토막을 냅니다  

 

 

 

*** 김수우 시인의 카페   <수우헌> 에서 옮김

****************************************************************** 

김수우 시인 



유년시절부터 문학을 꿈꾸었으나 늦깎이로 시의 길에 들어섰고, 늦깎이로

학교를 다니고, 역시로 늦깎이로 자신의 사랑과 문학에 열중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과, 대서양의 카나리아섬 (스페인)에서 십여 년

을 머물렀고, 대전에서 십 년 가까이 지내기도 했다. 이십여 년 만에 귀향,

부산의 산동네와 바다 속에서 자신을 찾는 중. 지금도 틈나는대로 여행길에

오르는 떠돌이별이다.


사진과 사진 찍은 일, 사진 찍는 사람을 좋아하고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여긴다.

인간은 가장 비린 삶의 현실 속에 가장 붉은 비늘을 입고 있는 무한한 존재라고

믿는다. 뒷걸음질하면서도 나아가는 중이라고 자신하며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 자유를 배우는 일에 오늘도 용감하다.



? 부산 출생
?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
? 시집

  『길의길』,『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붉은 사하라』
? 사진에세이집『하늘이 보이는 쪽창』,『아름다운 자연 가족』,

  『지붕 밑 푸른 바다』
? 산문집

  『씨앗을 지키는 새』


? 200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수혜
?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수혜
? 2005년  부산작가상 수상
?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수혜
? 한국 작가회의 회원
? 계간 <신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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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사진전


사진은 내게 긴 여행이다. 도착지도 없고 사방으로 멀다. 그러나 그 길은 내면의

시공을 향해, 그리고 삶의 경이를 향해 날마다 굽이진다. 그 길모퉁이에서 나는

사람과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신비한 존재감에 자주 휩싸인다. 그것이 시작詩作

에 쩔쩔매면서도 사진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사진도 곧 시라는 쥐뿔

같은 고집을 얻었다.

내 글과 사진은 낡고 사소하고 누추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 바랜 풍경에서

나는 옹이가 된 상처를 발견한다. 금간 지붕과 벽이 견디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의 풍화작용일까. 꿈의 침식작용일까. 그속에서 나는 사람과 그들이 짚어

낸 비탈과 그들의 펄럭이는 옷자락을 본다. 낙타의 무릎과 침묵을 본다.

또한 자의든 타의든 시대를 따라 쉽게 바뀌지 못한 풍경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시대를 따라 쉽게 변해버린 내 자신을 본다.

가장 단순한 질문은 가장 심오한 질문이라 한다. 어디서 태어났는가. 어디가

당신의 집인가. 어디로 가는가. 대답을 수없이 바꾸어가며 여기까지 왔지만

골목길에서 나는 다시 이 질문에 부딪쳤다. 그 물음은 마치 저장해둔 무에서

자란 무순처럼 새파랗다. 저절로 골목은 세상의 변두리로 나아가고자 하는

원심력으로, 또한 내 자신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구심력으로 팽팽하게 작용했다.

인간은 상처를 응시해야 하는, 응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리라.

문명은 모든 길을 고속도로로 만들고, 빠르고 편리하게 삶과 꿈을 지나친다.

우리 마음도 모두 고속도로화되는 중이다. 이제 옆집 빨래를 넘어다보며 더디게, 좀 불편하게 걷고 싶다. 골목에 대한 향수는 지나간 삶이 내게 가치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아프기만 하던 옛 가난이 참 따듯한 햇살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하는 걸까. 나를 키운 골목이 내게서 다시 시작된다. 그 길에 쇠별꽃 총총하다. 개밥바라기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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