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산행 안내 | ||||||
일 자 | 2017년 03월 19일 (일요일) | |||||
산 행 지 | 조계산 장군봉(887m) | |||||
소 재 지 | 전남 순천시, 승주군 | |||||
산행코스 | A코스 : 선암사~대각암~장군봉(887m)~장박골삼거리~연산봉(825m)~송광굴목재~천자임쌍향수~조계사(후미기준 5시간) B코스 : 선암사~대각암~장군봉(887m)~선암사굴목재~송광굴목재~단풍군락지~조계사 (4시간) | |||||
회 비 | 37,000원 (당일 납부) | 포함내역 | 차량전세비, 조식, 하산주,식(매식),입장료 | |||
주관대장 | 하로동선 (010-3331-4545) | 산천초목 회장님 | 010-3711-8403 | |||
| ||||||
≪출발시간 및 승차위치≫ | ||||||
| 05:10 | 시흥사거리 우체국 주유소 앞 출발 |
| |||
| 05:15 | 석수역 검문소 주유소 정차 |
| |||
| 05:20 | 관악역 1번 출구, 현대아파트 앞 정차 |
| |||
| 05:30 | 관악역 1번 출구, 현대아파트 앞 출발 |
| |||
| 05:40 | 중화한방병원 앞 정차 |
| |||
| 05:50 | 범계역 4번 출구 앞 정차 |
| |||
| 06:00 | ★★ 한성병원 앞 정차 ★★ |
| |||
| 06:05 | 하이마트(구 천둥소리맞은편) 정차 |
| |||
| 06:10 | 월드비젼 앞(구 797 종점) 정차 |
| |||
■ 출발시간은 이동거리 및 산행시간 등을 참고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습니다. ■ 좌석은 선착순 우선배정이며, 본인이 지정좌석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임의배정 됩니다. ★ 약속시간 5분전 도착은 회원 상호간에 대한 예의라고 사료됩니다. | ||||||
| ||||||
☖ 당 부 사 항 ☖ | ||||||
■ 출발시간을 반드시 확인하시어 차량이 정시에 출발 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 ||||||
■ 실내의 쾌적한 환경조성을 위하여 배낭은 반드시 트렁크에 싣고 승차하시기 바랍니다. | ||||||
■ 산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는 본인 책임으로 개인보험 가입요함. 안양산죽회 및 산행대장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 ||||||
| ||||||
★ 준 비 사 항 ★ | ||||||
■ 중식(간식). 물, 방풍의, 우비, 비상약, 스틱, 아이젠, 스패츠 등 산행에 필요한 장비 및 기타 여벌의 옷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
| ||||||
산 행 개 요 | ||||||
산 행 지 도 |
선암사는
542년(신라 진평왕 3)에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헌강왕 1)에 도선 국사가 남방비보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와 함께 선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고려 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1660년(조선 현종 1)에 경잠·경준·문정이 재건을 시작했고, 1698년(숙종 24)에는 호암 약휴선사가 원통전을 짓고 그 안에 목조관음보살상을 봉안했다. 이어 1701년에는 약 30년간에 걸쳐 완성된 불조전에 과거 53불을 비롯한 60여 구의 목조불상을 봉안했으며, 대웅전의 개수 및 선암사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불이 나서 건물들이 소실되자 곧 상월이 중건했고, 1823년 다시 불이 나자 해붕·눌암·월파 대사 등이 중수하여 대규모 가람을 형성했다.
이 절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에 따라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6·25전쟁 때 많은 건물과 문화재가 소실되었으며,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1호)을 비롯하여 원통전·팔상전·천불각·장경각·강선루 등이 남아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3층석탑 2기(보물 제395호),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 동부도(보물 제1185호), 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화산대사사리탑, 순조가 친필로 쓴 '대복전'과 '천인'이라는 편액 등이 있다.
승선교 보물 제400호.
높이 7m, 길이 14m, 너비 3.5m. 길다란 화강암으로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연결하여 반원형의 홍예(虹蜺)를 쌓았는데, 결구 솜씨가 정교하여 홍예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좌우의 계곡 기슭까지의 사이에는 둥글둥글한 냇돌을 사용하여 석벽을 쌓아 막았다. 다리 좌우의 측면석축도 난석(亂石)쌓기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렸으며 원형을 잘 지니고 있다.
기단부에는 아무런 가설도 없이 자연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다. 홍예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석축에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 다리는 임진왜란 이후 선암사를 중건할 때 가설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즉,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護巖大師)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선암사 홍매화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된 600년이 넘은 우리 토종 매화입니다.
천자암 곱향나무는
천연기념물 제88호. 높이는 약 12.5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각각 3.98m, 3.24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각각 8.8m, 7m 남북이 각각 9.3m, 7.3m이다. 나무의 나이는 8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 곱향나무는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여서 진기한 모습을 보이며, 오래되고 큰 나무인 만큼 사람들은 이 나무에 외경(畏敬)의 마음을 표해왔다.
이 나무는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는 것이다. 한 나무의 모습이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예절바른 사제(師弟)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향나무는 예로부터 심재(心材: 나무 줄기의 목질부 내층)가 향기로워 제사 때 향료로 사용하여 저승에 있는 영혼을 위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조상숭배의 신성한 나무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송광사 우화각과 삼청교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社)라고도 하며,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 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승보사찰(僧寶寺刹: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함으로서 얻어진 이름)로서 매우 유서깊은 절이다.
○ 명칭유래
‘송광(松廣)’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松廣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송광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먼저, 구전(口傳)해 내려오는 전설에는 이 산이 장차 ‘십팔공(十八公)이 배출되어 불법(佛法)을 널리[廣] 펼 훌륭한 장소’이기 때문에 송광이라 하였다고 한다. 소나무 ‘송(松)’자를 ‘십팔공(十八(木)+公)’이라고 파자(破字)하고 ‘광(廣)’자를 불법광포(佛法廣布)의 뜻으로 해석한 데서 유래한다.
또다른 전설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이 절터를 잡을 때 나복산(羅逗山:현재의 母后山)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木鴟]를 날렸더니 국사전(國師殿)의 뒷등에 떨어져 앉았으므로 이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鴟落臺)라고 불렀다 한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최남선(崔南善)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鴟의 방언)라고 풀었다.
끝으로, 김영수(金映遂)는 이 산에 ‘솔갱이(松의 방언)’가 가득 차 있었으므로 지방사람들이 이 산을 예로부터 ‘솔메’라고 해 왔으며, 그래서 송광산이란 이름이 생긴 것으로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송광의 ‘광(廣)’은 원래 언덕을 의미하는 ‘강(崗)’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승려 임석진(林錫珍)도 『송광사사지』를 저술하면서, 김영수의 해석을 가장 타당하다고 보았다. 산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바위가 드러나지 않게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 창건과 변천
송광사의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송광사사적비(松廣寺事蹟碑)」와 「보조국사비명(普照國師碑銘)」 및 『승평속지(昇平續誌)』 등을 보면, 신라 말기에 체징(體澄)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길상사(吉祥寺)라고 불렀고, 승려 수는 30명 내지 40명을 넘지 못하는 규모의 절이었다.
그 뒤 고려 인종 때의 석조(釋照)가 중창하려는 원(願)을 세우고 역부(役夫)를 소집하고 임목(林木)을 준비하였으나, 완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얼마 동안 길상사는 거의 폐허화되었다.
50여 년을 지난 뒤 보조국사가 이곳으로 정혜사(定慧社)를 옮겨와 새 규모의 사찰로 발전하였다.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대수도도량으로 만들 수 있었던 연원은 1182년(명종 12) 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석하여 수행결사(修行結社)를 약속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법회에 참석하였던 승려들에게 도를 닦을 것을 간곡히 권유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맹문(盟文)을 지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맺을 것을 기약하였다.
그 뒤 10년이 지나, 정혜결사를 약속하였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인 득재(得才)가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 머물면서 1188년 봄에 결사를 기약하였던 지기(知己)들을 모은 뒤 보조국사를 청하였다. 그 뒤 1197년에 보조국사는 결사의 동지들과 함께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들어가 3년 동안을 정진하다가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를 조계산 수선사시대(修禪社時代)라 부르는데, 이는 즉위하기 전부터 보조국사를 존경하였던 희종(熙宗)이 송광산 길상사의 이름을 고쳐 조계산 수선사로 하도록 친히 글을 써서 제방(題榜)을 내렸기 때문이다. 1210년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그의 고제자 혜심(慧諶)은 왕명에 의하여 조계산 수선사의 제2세주가 되었다.
그때부터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180여년 동안 15명의 국사가 이곳을 중심으로 수선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선종을 이끌어왔으며, 이와 같은 탁월한 후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된 직후, 송광사 16번째의 국사에 해당하는 고봉화상(高峰和尙)이 이곳에 왔을 때에는 상당히 황폐한 상황에 있었다. 고봉은 1395년(태조 4) 불(佛)·법(法)·승(僧)의 전당(殿堂)을 중건하였고, 1399년(정종 1) 왕은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도록 윤지(綸旨)를 내렸다. 1420년(세종 2)에는 고봉의 뒤를 이어 중인(中印)이 당우도 증축하였고, 절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정종 때에 설립되었던 수륙사를 철폐하고 선종(禪宗)으로 복귀시키는 행정적인 절차도 밟았다.
그 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수각(水閣)·임경당(臨鏡堂)·보조암(普照庵)·천자암(天子庵) 등이 소실되었을 뿐 아니라, 왜군의 노략질을 견디다 못한 승려들이 다른 사찰로 옮겨가거나 속가로 되돌아감에 따라 한때 폐사가 되다시피하였다. 이에 응선(應善)은 1601년(선조 34) 수각을 1604년과 1606년·1608년에 천자암과 보조암·임경당을 차례로 중건한 뒤 당시 지리산에 있던 부휴(浮休)를 모셨다.
부휴는 1609년 제자 400여 명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옮겨와 조전(祖殿)과 동행랑(東行廊), 천왕문 등을 새로 짓고 기타 건물을 보수하였다. 그 뒤 600여 명의 송광사 승려들이 부휴를 모시고 동안거(冬安居)를 성대히 보냄으로써 근세에 이르는 송광사의 명맥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3월 2일 낙하당(落霞堂)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우(佛宇) 5개 소, 승료(僧寮) 8옥(屋), 공사(公舍) 12곳 등 2,152칸이 소실되었으며, 유물로는 대웅전의 삼존상(三尊像)·경판 및 외향각(外香閣)의 유조(柚槽:감탕나무로 만든 구유), 창고에 있던 모든 소장품이 소실되었다. 이듬해 기봉(奇峰)과 용운(龍雲)은 대웅전·명부전·응향각(凝香閣)·법왕문(法王門) 등을 차례로 중건하였다. 그런데 1856년(철종 7)까지 중창에 소요된 기간은 14년이었으며, 경비와 총액은 1만 1,290냥(兩)에 달하였다.
그 뒤 율암(栗庵)은 관의 협력을 얻어 1923년에서 1928년 사이에 용화당(龍華堂) 등 9채를 중수하였고 명성각(明星閣) 등 7채를 중건하였으며, 사감고(寺監庫)·장탄문(墻坦門)을 신축, 종각을 증축하였다.
1948년 1월 여수반란사건과 6·25전쟁으로 조계산 일대에 무장공비들이 잠입하자, 공비 토벌을 위하여 국군은 작전상 절 주변의 나무를 벌채하였다. 이에 공비들은 절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다가 1951년 5월 대웅전 등 절의 중심부를 불태웠다.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취봉(翠峯)과 금당(錦堂)은 불탄 건물을 다시 창건 또는 중창하였다.
1970년대에는 조실인 구산(九山)이 설법전·수선사·화엄전 등을 보수하였고 조계총림(曹溪叢林)으로 부활하여 수선사의 전통을 되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983년부터 1990년에 이르기까지 주지 현호(玄虎)가 대웅보전·지장전·승보전(僧寶殿) 등 크고 작은 건물 20여 동을 새로 세우거나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일암은
순천 송광사의 산내암자로, 송광사의 제7 국사인 고려시대 승려 자정국사(慈靜國師, 법명 일인)가 창건하였다. 본래 이름은 자정암(慈靜庵)이었으나 1975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법정(法頂)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佛日庵)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1708년(숙종 34) 시습·이징 스님이 중수하였고, 1765년 탁명 스님이 공루를 건립하였으나 공루는 1929년 해체되었다. 1866년(고종 3) 승허 스님이 칠성각을 건립하고, 1891년 월화·계암·용선 스님이 정문을 중수하였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중수를 거듭하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퇴락하였고, 1975년 법정 스님이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법정 스님이 기거한 요사 2동과 찾아오는 이들에게 대접한 감로수의 수각이 있으며, 경내 북동쪽에 자정국사 부도가 있다.
19세기에 불일암에 주석했던 스님들은 기봉(奇峰 1776~1853)·연봉(蓮峰 1833~1912)·경해(鏡海 1843~1928)·통허(洞虛 1844~1901)·원해(圖海 1850~1888)·경명(景溟 1858 ~?) 스님 등이다.
불일암을 가는 길은 법정스님께서 자주 걸으셨던 무소유길이다. 대나무 숲을 비롯하여 아름드리 삼나무, 편백나무, 상수리 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숲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면 불일암에 다다른다.
불일암에는 평소 무소유를 실천하셨던 법정스님의 유언에 따라 스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나무 아래 유골이 모셔져 있어 스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조계산을 아니 신청하면 후회 될듯)
(조계산) 산행 좌석표 | ||||
(2017.03.19) | ||||
기사석 |
| 안내석 | ||
|
|
| 하로동선님 관악역 | |
4 | 3 |
| 2 | 1 |
대보대장님 | 회장님 |
| 민트총무님 | 의향님 |
범계 | 관악역 |
| 한성병원 | 파리바게트 |
8 | 7 |
| 6 | 5 |
하놀님 | 향촌님 |
| 초롱님 | 유나님 |
한성병원 | 전자랜드 |
| 한성병원 | 월드비젼 |
12 | 11 |
| 10 | 9 |
오매가님 | 당산골님 |
| 아가짜님 | 로즈마리님 |
한성병원 | 한성병원 |
| 국민은행 | 중화당 |
16 | 15 |
| 14 | 13 |
솔잎님 | 하설님 |
| 행운산님 | 행운목님 |
한성병원 | 한성병원 |
| 아울렛 | 아울렛 |
20 | 19 |
| 18 | 17 |
티렉스님 | 백산님 |
| 푸른하늘님 | 은하수님 |
한성병원 | 한성병원 |
| 한성병원 | 한성병원 |
24 | 23 |
| 22 | 21 |
청사님 | 이정님 |
| 법성님 | 선정화님 |
한성병원 | 범계역 |
| 관악역 | 관악역 |
28 | 27 |
| 26 | 25 |
그린비님 | 서연님 |
| 한마음님 | 은새님 |
한성병원 | 한성병원 |
| 시흥사거리 | 시흥사거리 |
32 | 31 |
| 30 | 29 |
가슬님 | 가슬(1)님 |
| 상큼잎새님 | 상큼잎새님 |
월드비젼 | 월드비젼 |
| 월드비젼 | 월드비젼 |
36 | 35 |
| 34 | 33 |
원진님 | 촌놈(2)님 |
| 무영객님 | 불사조님 |
범계역 | 범계역 |
| 중화당 | 한성병원 |
40 | 39 |
| 38 | 37 |
도원경님 | 무릉도원님 |
| 서윤복님 | 서윤복님 |
한성병원 | 한성병원 |
| 시흥사거리 | 시흥사거리 |
44 | 43 |
| 42 | 41 |
촌놈님 | 촌놈(1)님 |
| 여우님 | 여우님 |
관악역 | 아울렛 |
| 한성병원 | 한성병원 |
|
감사합니다.
29. 30번 신청 합니다
감사합니다.
31.32 신청 합니다 ( 한성병원 / 월드비전)
감사합니다.
36번 주세요
일정 조정 했습니다.
34번입니다.
2명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43번, 44번입니다.
한자리 주세요..
36번입니다.
죄송합니다.
연이틀 산행 무리일듯~
토요산행으로 갑니다
산행 내립니다.
안산즐산 하세요.
알겠습니다.
신청합니다^^
35번입니다.
대기자로 1명 더 신청 합니다.
35번입니다.
@안양산죽 관악1명, 안양2001아울렛 1명 범계1명입니다.
산행신청합니다~^^
대기자입니다.
로즈마리님 반갑습니다.
잘했어 어서와 ~^^
@아가짜 .
아가짜님 옆으로 로즈마리님 좌석배치합니다.
행사가 잡혔네요
내립니다 죄송해요
알겠습니다.
대기 1자리 부탁합니다.(한성)
대기 신청합니다
1번입니다
개인사정으로 내립니다~아쉽네요
알겠습니다.
일 잘 보시기 바랍니다.
대기자 신청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사의 급한 일로 대기 내립니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산행내립니다.
선배님들하고 함께 산행했으면 ~
좋은추억의 한자리를 자리매김 했을텐데
아쉽네요.
안전산행 /즐거운산행/맛산행하세용.
감사합니다.
향기는 몸살로 내리고, 저만 갑니다.
45명 산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