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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63회>
씬 1 송악 황궁 대전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종간은 긴장해서 보고 있고, 아지태도 굳어 있다.
궁예와 박유가 그렇게 서로를 팽팽하게 보고 있다.
한참을 보던 궁예가 껄껄껄 다시 크게 웃는다.
궁예 다시 한 번 묻겠노라.
누구나 목숨이란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을 버릴 수 있다고 하였겠다?
모두들 .........
궁예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어.
박유 이미 그렇다고 대답 올렸사옵 니다, 폐하.
궁예 (한 참 보다가 다시 웃는다) 대단하구먼...과연 대단해. 이 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내원이 발탁해 올린 사람이 다르긴 다르구료. 그래야지, 적어도 공부를 한 학자이고 또한 사내 라면 그만한 기개는 있어야지. 하하하하. 박학사.
박유 예, 폐하
궁예 짐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상대해왔지만, 그대만한 인물은 보기 드물었소.
박유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지나친 오만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오기도 하는 게요.
내가 오늘 경을 용서하는 것은, 그 배포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오. 모름지기 사내는 사내 다울 때 아름다운 법이거든.
아니 그렇소이까? 내원.
종간 폐하께서 그리 보아주시니, 참으로 은혜가 크시옵니다. 모두다 나라와 폐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박학사가 이리 했을 것이옵니다.
아지태 그렇기는 하나 지나친 불경은 용서될 수 없는 것이옵니다.
궁예 그만......... 그만 합시다. 이보시오, 박학사.
박유 예, 폐하.
궁예 나는 이 나라의 황제요, 그리고 불모지의 땅에서 일어나 지금의 제국을 세웠소이다. 언제나 백성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과 동거동락했소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호화와 사치를 멀리하고 있소이다.
박유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러나, 모든 여건은 변하는 법이오. 살림이 커지면 집도 늘려야 하고, 식구가 불어나면 그에 따른 준비가 있어야 하오.
내가 안타까운 것은 신료들이나 백성들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오.
박유 ........
궁예 저 대륙을 보시오. 그 영광이 찬란했던 대제국, 당나라가 비틀거리며 무너져 내렸소이다. 오랑캐의 족장 아율라보기가 비어 있는 그 땅을 먹으려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삼한의 비좁은 땅에서 한치 앞을 모르고 있으니, 얼마나 딱한 일이오. 내원도 들으시오.
종간 예,폐하
궁예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제국의 만년대계를 위하여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하고 묵묵히 옳은 길을 계속해 나갈 것이오. 이 점을 다시 한 번 신료들에게 주지시켜 주시구료.
종간 ........
궁예 (보다가) 왜 대답이 없으시오이까?
종간 예....... 폐하.
궁예 박학사는 당분간 옆에서 내원을 도와주면서 태자들의 공부를 생각해 보시오.
박유 아직은 너무 어리시옵니다. 하오나, 천천히 방안을 강구해 보겠사옵니다.
궁예 모든 것은 어릴 때부터 바로 잡아야 하오. 나무는 한 번 굽어지면, 큰 고목이 되기 어려운 법이야. 태자를 맡고 있는 동궁에 일러서 지금부터 그 아이들을 산사에서 스님들이 공부하는 그 방법으로 생활하게 하라 이르시오.
박유 예........? 이제 불과 두 살 밖에 아니 되셨사옵니다.
궁예 습관이 중요한 것이오.
버릇 말이오. 스님들은 새벽 예불을 드리러 보통 인시(새벽3~ 5시 사이)에 일어나오.
어린 태자들도 그 때 깨워 아침은 누룽지나 죽을 먹게 하여 늘 정신을 맑게 할 것이며,
또한 염불을 들려주어 부처님의 세계를 깨닫게 할 것이오. 그리고, 남은 시간은 글을 보여주고 들려주어 깨닫도록 하시구료.
박유 .......... (기가 막히다)
궁예 또한 육식을 금하게 하고 화려한 음악이나 춤을 보여 주지 못하게 할 것이며 음탕한 여인들의 웃음소리나 술 취한 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하오. 아시겠소이까?
박유 예, 폐하.
아지태 폐하, 과연 과연 폐하이시옵니다. 제국의 장래를 그토록 생각하시니 이 나라가 어찌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겠사옵니까?
종간 ........
궁예 자, 그러면 태자들의 일은 그리 하도록 하고 왕장군이 금성에서 개선해 온다하니 나가보도록 하십시다.
종간 예, 폐하. 이미 준비가 되어 있사옵니다.
궁예 한동안 못 보았더니 아주 궁금 하오. 하하하. 어디 금성 뿐이 겠는가? 신라와 백제를 통 털어서 내게 가져 올게야, 왕장군은. 암...하하하. 자, 황후도 준비를 하라 하고......
종간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씬 2 황후전 복도
제조상궁과 나인들이 서
있다.
연화 (E) 기가 막힌 일이구나. 그 어린 것들을 데려가 공부를 시킨다니..
씬 3 동 황후전 안
연화가 슬이와 함께 한숨을 쉬고 있다.
연화 어떻게 누가 공부를 시킨단 말인고? 대관절 지금 태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다드냐?
슬이 태자마마를 뫼시는 두 분 유모가 있고, 그 위에 새로온 학사 박유라는 사람이 공부를 맡았다 들었사옵니다.
연화 박유라는 사람은 이미 내가 들었다만은 도대체 아직 입도 떼지 못한 그 어린 것들을 무슨 수로 가르친단 말인고? (눈물 흘리며) 비극이로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야.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 그저 가슴이 두근거리기만 하는구나.
슬이 차비를 차리시오소서.
송악으로 왕장군께서 돌아오신다 하옵니다. 폐하께서 함께 그곳 으로 납신다 하셨사옵니다.
연화 ..........?
한숨을 쉬는 연화의 표정
에서....
씬 4 길
궁예와 연화가 내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고 있다. 연도의 백성들이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 궁예 일행을 보고 있다. 종간이 그 옆에 서있고, 아지태와 박유도 보이고, 은부를 비롯해
염상 금대 장일들이 함께 궁예를 호위해 가고 있다. 대전내관들과 진내관들이 보이고, 궁인들도 모두
가고 있다.
씬 5 송악 왕건의 집 외경
씬 6 동 집 마당
왕평달이 두 사부와 두 아들, 그리고 장수장을 보며
말하고 있다.
왕평달 폐하께서도 오신단 말인가?
마사부 예, 어르신. 이미 황궁을 나서셨다 들었사옵니다. 황후마마도 오신다 하옵니다.
변사부 어찌 아니 그렇겠사옵니까? 역사에 남을 대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고 돌아오시는 주군이시옵니다.
왕평달 그렇기는 하지만서도....... 우리도 빨리 준비를 해서 나가세. 폐하께서 납신다면 우리가 먼저 가 있어야지.
왕식렴 예, 아버님. 곧장 가시기만 하면 되옵니다.
왕평달 헌데, 얘야.
왕식렴 예, 아버님.
왕평달 그 무어냐 .... 금성에서 혼례를 올렸다는 조카 며느리도 함께 온다고 하였느냐?
왕식렴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이미 폐하의 영을 받아 혼례를 치루었으니 함께 오지 않겠사옵니까?
왕평달 (큰 한숨) 이것을 어찌하나? .......정주의 일을 어찌하나 .....그쪽과 약속한 혼례말이다.
마사부 모든 것은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옵니다. 난감한 문제들은 또한 폐하께오서 해결해 주시지 않겠사옵니까?
왕평달 어떻게.....? 모든 것이 얽히고 설키어 버렸는데 어떻게 해결을 한 단 말인가? 답답하네... 그 생각만 하면 답답해..... 자, 어서들 가세.
왕식렴 장수장, 차비를 차리게.
장수장 예, 공자님.
이들 이렇게 부산히 움직
이고 있고.
씬 7 정주 유장자의 집 마당
이곳도 역시 부산하다.
유장자가 막 중문을 빠져 나오고 있고,
집사장과 집사가 허리를 숙여 유장자를 모시고 있다.
유장자 서둘러야겠다. 폐하께서 오신 다니 서둘러야지.
집사장 예, 나으리. 송악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늦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유장자 모든 신료들이 다 나올 것이야. 자, 어서들 가세.
이들이 그렇게 중문을 빠져나가는데, 부용모가 부용의 시녀와 함께 소리치며 달려온다.
부용모 나으리, 나으리......큰 일 났사옵니다. 나으리.
유장자 ...........?
부용모 (헐레벌떡 달려와) 부용이가.... 부용이가 없어졌사옵니다.
유장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게요?
부용모 글세, 지난 새벽에 소리소문 없이 봉서 한 장을 남겨 놓고 집을 나갔습니다.
유장자 뭐요?
부용모 이것 보시어요. 이렇게 방에 서찰 한 장을 남겨 놓고 어디론가 가버렸사옵니다. 나으리.
유장자 (서찰을 받으며) 바람이라도 쏘이러 나간 것이겠지. 뭘 그리 소란을 피우시오?
부용모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읽어 보시오소서. 그 글을 읽어보니...... 읽어보니....... (울며)
세상이 원망스러워 집을 떠나니 찾지 말라고 쓰여 있사옵니다. 아이구 세상에...이를 어쩌면 좋사옵니까?
유장자 (어쩔 줄 모르며 그저 봉서를 바라만 보고 있다)..........?
집사장 마님,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시녀에게) 여봐라.
시녀 예.
집사장 도대체 너는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냐? 아씨께서 어딜 가시는지 전혀 몰랐단 말이냐?
시녀 송구하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방문이 열려 있어서...
부용모 어쩌면 좋사옵니까? 이일을 어쩌면 좋사옵니까? 나으리....
유장자 제발 조용히 하시구료, 집사장.
집사장 예, 나으리.
유장자 먼저 주변에 입 단속부터 시키거라. 그리고, 찾아라! 하인들을 모두 풀어서 찾아보도록 하여라!
집사장 예, 나으리. (집사에게)
나으리를 뫼시고 송악으로 가게. 이 곳 일은 내가 남아서 알아 보도록 할 것이야.
집사 예.
유장자 길이 늦었다. 우린 어서 가자!
집사가 대답하며 하인들과 함께 앞을 선다.
무거운 표정으로 유장자가 그렇게 봉서를 든 채 빠져나가고, 부용모는 소리를 죽여 울고 있다.
집사장이 다시 한 번 하인들에게 이르고 있다.
집사장 길목이란 길목은 모두 나가보아라! 소문내지 말고, 아씨가 보이거든 속히 모셔 오너라.
뱃터에도 가보고, 바닷가에도 가보고 그리고 송악으로 가는 산길과 길목도 모두 가보아라.
하인들이 대답하며 흩어져 사라진다. 집사장도 곤혹
스러운 표정이고,
부용모는 연신 중얼거리고 있다.
부용모 아이구 어떡해. 이 일을 어떡해...
씬 8 길
유장자 일행이 가고 있다. 유장자는 만감이 교차되는 듯한 표정이다.
그 무거운 표정으로 부용의 소리가 들려온다.
부용 (E) 아버님, 소녀를 용서하시 오소서. 왕장군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금성에서 혼례를 올린 것을 탓하지는 않사옵니다. 다만, 박복한 소녀의 운명을 한탄할 뿐이옵니다. 소녀를 찾지 마시오소서. 소녀 진정 왕장군을 사모했사옵니다. 하오나,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하오리까? 세상이 원망스럽사옵니다. 지금의 현실이 너무도 가혹하옵니다. 소녀를 잊으시오소서.
유장자는 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그렇게 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멀리 사라져가면서 디졸브...
씬 9 송악 포구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 궁예와 연화를 비롯한 모든 황궁의 사람들과 왕평달과 그 집안 사람들 그리고,
박지윤과 장자들이 모두
보인다. 강장자와 백씨도 보이고, 유장자도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보고 있다. 저만큼 배가 포구로 들어
오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열광하여 환호하며 보고 있다. 그 백성들 사이에 가려져 부용이 보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배가 닿으면서 왕건과 도영, 세 가신, 그리고 참전했던 장수들이 나오고 있다.
도열에 있던 나팔수들이
일제히 소라를 불기 시작
한다. 그리고, 개선을 알리는 북소리들.... 열화 같은 환영 소리들. 도열했던 군사들이 군호를 외치며 이들을 환영하고 있다. 그들, 개선장군들은 곧 궁예가 있는 곳에 이른다. 왕건이 장수들 앞에 서서 군례를 올리며 부복한다. 그런 왕건과 도영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면면이 지나쳐 간다.
왕건 폐하, 신 왕건, 페하의 영을 받자와 금성을 함락하고 돌아 왔나이다.
궁예 오! 왕장군, 경은 짐에게 더할 수 없는 제국의 영광을 실현해 보였노라. 역사적인 오늘의 개선을 모든 백성과 하늘을 대신하여 감축하노라.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왕장군의 개선은 하늘의 뜻이 짐에게 있음을 천하에 내 보인 것이니라. 모든 신료들은 오늘 이 자리의 감격을 영원히 기억 하고, 기록하여 후세인들에게 전하도록 하라.
신료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궁예 일어서게, 왕장군.
왕건이 대답하며 일어나
허리를 숙인다.
궁예 이번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 많은 장수들의 이름도 역사에 기록하여 길이 알리도록 하라.
장수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왕건에게 가까이 가며 도영을 본다) 낭자가 바로 다련군의 여식인가?
도영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나는 이미 금성의 승전보를 접한 이후 각자에게 알 맞는 상급을 내렸노라. 이젠 내 아우의 제수씨가 되어 송악에 왔으니 우린 한 가족이 되었구먼.
도영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폐하.
궁예 허허허... 그토록 장가를 가지 않아서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하더니만 이젠 부인이 둘 씩이나 생겼네그려.
왕건 망극하옵니다.
궁예 이보시오, 대룡부령.
유장자 예, 폐하.
궁예 빨리 날을 잡으시구료.
짐이 혼례에 참석하리다.
유장자 예, 폐하...
궁예 헌데, 낭군이 돌아왔는데 부인 될 사람이 아니 보이니 어찌 된 일이오? 경의 여식은 왜 아니 보이오?
유장자 송구하옵니다. 잠시 고뿔이 걸린 터라........
궁예 허허허. 고뿔이라? 왜 하필 이런 날 그리되었단 말인고.
유장자 ..........
연화 .......... 장군, 여러가지로 경사가 겹친다하니 참으로 감축드립니다.
왕건 황공하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부인 된 사람을 보니, 참으로 총명하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도영 망극하옵니다, 황후마마.
궁예 자, 오늘은 기쁜 날이로다. 개선장군들이 돌아왔으니 마땅히 잔치를 열어야 할 것이야. 황궁에 연회를 준비하라고 일었으니, 모두들 가십시다.
모두들 예.
종간 폐하께서 환궁하실 것이다. 내군은 뫼시어라.
은부 뫼시어라!
염상들 예.
궁예와 연화, 왕건과 도영이 나란히 가고 있다.
그뒤로 장군들이 따라 간다. 잠시 왕평달과 유장자의
시선이 부딪친다.
당혹해하는 왕평달.
유장자가 외면하며 신료들과 그렇게 간다.
씬 10 그 일각
백성들 속에서 보고 있던 부용이 눈물을 훔친다.
황제와 신료들 일행이 멀리 사라져 가기 시작한다.
도리질을 하며 눈물을 훔치는 부용. 그대로 인파 속을 돌아서며 어디론가 가버린다.
씬 11 그 길
황제 일행들이 가고 있다. 박지윤이 유장자와 왕평달을 보며 농담처럼 말한다.
박지윤 폐하의 말씀처럼 경사가 겹쳤소이다. 금성을 얻는가 했더니, 송악에선 조카 며느님을 두 분씩이나 얻으셨고..허허허....
왕평달 아, 그건 뭐....
유장자 ........어서들 가십시다.
장자1 한동안 송악이 시끌벅적 하겠습니다, 그려..
장자2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허....
그들 그렇게 가면서 디졸브 되면.....
씬 12 바닷가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수평선 위로 갈매기 한쌍이 유유히 날고 있다.
그 바닷가 한 쪽에서 부용이 눈물젖은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바람이 한 자락 불어와
부용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한올을 흐뜨려뜨린다.
부용(E)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소녀는 이제.. 이승을.. 하직하려 하옵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사옵 니다. 왕장군님도.. 그 누구도... 소녀가 분에 넘치는 꿈을 꾼 것이옵니다. 모두가 소녀의 박복함 때문이옵니다....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시오소서.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부용이 서서히 바다로 향한다. 그 때다.
어디선가 추상 같은 호통
소리가 들려온다.
석총(E) 멈추거라!
부용이 멈추어 서며 돌아본다. 남루한 차림의 노승이 어느새 다가와 있다.
석총(E) 어찌하여 그대는 하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끊으려 하는가? 그런다고 해서 이 생의 인연이 모두 사라질 것 같은가? 어리석도다. 참으로 어리석어.
부용 ..........?
석총 전생의 인연이 그대를 있게 했고, 지금의 그대가 내세의 그대를 있게 할 것일진대, 어찌하여 순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악업을 쌓으려 하는가?
부용 ..........
석총 ..........
해설 석총. 미륵 신앙의 총본산이라 할 고승 진표의 법제자로서 미륵과 지장을 모시는 법상종의 거두였다. 훗날 석총은 진표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미륵의 간자를 왕건에게 전해주게 되는데, 그런 석총과 왕건의 첫째 부인 유씨가 이렇게 만났으니 이 또한 범상치 않은 인연이 아니겠는가?
석총 그대는 지금 죽어서는 아니 될 운명인가 보구먼. 부처님께서 이 미련한 중을 이곳으로 오게 하셨으니 말이야. 자 나를 따라 오거라. 부처님이 그대를 부르시는 모양이구나. 허허허..
뻥해서 바라보는 부용의
모습에서.
씬 13 황궁 외경
풍악소리가 함께 여러 신료들의 웃음 소리가 질탕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씬 14 동 연회장
궁예와 황후를 위시하여 전 신료들과 장자들이 모여
연회를 즐기고 있다.
왕건과 도영이 나란히 궁예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궁예 참으로 기쁜 날이로다.
제국이 건설된 이후 오늘처럼 기쁜 날이 또 있었을까?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폐하.. 백제 땅에 폐하의 영토가 세워졌사옵니다. 어느 누구도 상상치 못할 실로 어마어마한 대사건이옵니다.
궁예 말해 무엇하겠소? 모두가 우리 왕장군의 탁월한 기획과 지략 때문이 아니었겠소?
또한, 오늘은 개인적으로도 더 없이 기쁜 날이오. 짐의 아우가 그예 장가를 들었으니 말이오. 하하하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나주에서 치른 혼례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야. 이른 시일내에 날을 잡게나. 유장자 여식과의 혼례는 이 형님이 직접 주관할 것일세. 알겠는가?
왕건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유장자 ..........
궁예 그리고 말일세, 아우가 나주를 취하고 개선하였으니 그 동안 미뤄왔던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구먼. 도읍을 옮기는 일 말일세.
왕건 ......?
궁예 자네로 인하여 나라의 몸집이 제법 커졌으니 그에 걸맞는 옷을 입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가 나주에 가 있는 동안 철원을 다시 돌아보았네.
참으로 보면 볼수록 새로운 곳이었어. 가히 만년제국의 터로 손색이 없었어.
왕건 ............
아지태 이미 청주의 백성들이 동원돼 황궁의 역사가 시작되었소이다. 황궁을 에워쌀 성곽 또한 축성 중이구요. 이 나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공역이 될 것이외다.
왕건 ...지금 청주의 백성들이 동원 됐다 하셨습니까?
아지태 그렇소이다. 이 사람도 물론 청주 출신이오만 폐하를 향한 그들의 충성심은 끝이 없소이다.
왕건 .........
종간 ..........(표정이 굳어 있다)
궁예 아우도 한 번 가보면 알게 될 것이야. 철원이 얼마나 크고 웅대한 기상을 지녔는지 말이야. 우리는 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일세. 대동방국이 그예 문을 여는 것이야.
왕건 .......
궁예 모두들 들으시오.
신료들 .....(자세를 바로하고 궁예를 주목한다)
궁예 짐은 지금 이 나라를 근본부터 개혁해 바로 세우려고 하오. 이것은 일대 혁명이라 할 수 있소. 한데... 그대들 중에는 아직도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종간 ........
궁예 (고개를 저으며) 그래서는 아니되지. 나라가 송두리째 바뀌어 가는데 신료들의 의식이 따라 오지 못해서야 되겠소?
그대들의 생각 또한 뿌리채 바뀌어야 하오. 짐을 믿고 따라오시오. 짐은 전지전능한 미륵이외다. 짐은 그대들을 피안의 세계로, 미륵의 낙원으로 인도할 것이오. 의심은 분열을 낳고 분열은 곧 죽음 밖에 없소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오.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함께 낙원에 이르도록 하시오. 아시겠소?
신료들 예, 폐하..
궁예 (만족한 듯 끄덕이며)
아 그리고 이 자리에서 또 한 가지 공표할 것이 있소. 천도에 앞서 새롭게 직제를 개편할 것이오.
종간 .....?
신료들 (웅성거린다)
궁예가 눈짓을 주자 아지태가 일어난다.
아지태 폐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 나라는 지금 대혁명의 길로 들어서고 있소이다. 이에 직제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 폐하의 뜻이올시다. (두루마리를 펴며) 제 1 관부 광평성은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되..
해설 궁예의 직제개편.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궁예는 국초의 다소 방만했던 관료조직을 일신해 일사분란한 행정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는 곧 궁예의 일인독재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고, 호족들과 신료들의 정치적 입지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아지태 그리고 이번 나주 공략에 공을 세운 분들에게 새로이 벼슬을 내리셨소이다. 신하 왕평달에게 알찬의 직급과 함께 광평성 서사의 벼슬을 내리셨으며,
왕평달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아지태 신하 왕식렴은 광평성 원외랑으로, 박수문, 박수경은 각각 봉빈부 서사와 외랑에 임명하셨소이다.
아지태의 말에 따라 각각 벼슬을 받은 사람들의 면면이 비춰진다.
궁예 자 다 되었소? 허허허... 어찌하다보니 왕장군의 환영연이 갑자기 조회 자리가 되어버렸구료.. 자자 정무에 관한 일은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고 술이나 드십 시다.
모두들 술잔을 든다.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며칠 쉰 연후에 나와 함께 철원에 가보세.
왕건 철원에 말이옵니까?
궁예 그래... 그 곳이 어디 이 형님만의 황궁인가? 대제국을 짊어지고 가야할 자네가 가보지 않으면 누가 가보겠는가?
왕건 ......예, 폐하..
궁예 자 드세.. 제수씨도 어서요.
도영 예, 폐하..
궁예가 잔을 마신다.
그 모습을 보는 왕건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15 길 (밤)
왕건과 왕평달, 유장자 등이 오고 있다. 그 뒤로 도영과 세 가신, 왕식렴 등이 따른다.
왕건 어르신.. 참으로 면목이 없게 되었사옵니다. 본의 아니게...
유장자 알고 있네.. 그럴 수밖에 없었 다는 사정을 다 들었네..
왕건 송구하옵니다.
왕평달 헌데... 따님께서는 얼마나 고뿔이 심하게 들었길래...?
유장자 .......(한숨).....
왕건 지금 즉시 정주로 가겠사옵니다. 모르긴 해도 소장을 참으로 야속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유장자 (한숨처럼) 가봐야 소용이 없다네..
왕건 .....?
유장자 자네에겐 미리 귀뜸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말이야...
왕건 어인... 말씀이온지요?
유장자 그 아이가.... 집을 나갔다네..
모두들 놀란다.
도영도 무척 놀란 표정이다.
왕건 지금... 뭐라 하셨사옵니까? 부용 낭자가 집을 나갔다 하셨사옵니까?
유장자 (끄덕이며) 하지만 걱정 말게.. 아랫 사람들이 백방으로 찾고 있으니 곧 소식이 있겠지.
왕평달 이런 일이 있는가?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왕건 .......(참담하다).... 모두가 제 탓이옵니다.
유장자 .........
도영 찾아야 하옵니다. 그 분은 소녀의 형님이옵니다. 그 분을 찾지 못한다면 소녀에겐 천추의 한이 될 것이옵니다. 꼭 찾으셔야 하옵니다.
유장자 ........(의아한)......?
왕평달 .........?
그런 도영의 물기어린 눈빛에서...
씬 16 어느 산사 외경(밤)
석총이 부용을 데리고 경내로 들어서고 있다.
기다리고 있던 스님들이
다가가 합장을 하며 예를 갖춘다.
주지 어서오시오소서, 대사님..
스님들 어서오시오소서..
석총 ...(다소 의아한)....?
주지 대사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석총 허 이런... 삼장이 시키지 않은 일을 했구먼.. 어찌 됐건 얼마간 귀사에 폐를 끼쳐야 할 것 같소이다.
주지 폐라니요? 당치 않으신 말씀이옵니다. 고승께서 찾아 주신 것만으로도 소승들에게는 광영이 넘치옵니다.
석총 허허허 어인 말씀을..
그리고 이 여인이 묵을 방도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주지 예, 잘 알겠사옵니다. 자 이리로..
주지의 인도로 석총과 부용이 어디론가로 향한다.
씬 17 동 선방
석총과 부용이 자리에
앉는다.
석총 이제 마음이 좀 가라앉았느냐?
부용 .........
석총 보아하니 귀한 집 여식 같은데 어쩌다가 생에 뜻을 잃었을꼬...? 쯧쯔.. (혀를 찬다)
부용 ..........
석총 다 잊고 싶은가?
부용 .......
석총 허면 머리를 깎고 부처님 안에서 살아 보겠는가?
부용 ....예.. 그리하고 싶사옵니다.
석총 허허허... 그래? 허나 그렇게 쉽게 결정내릴 문제는 아니지... 좀 더 생각해보고 그 때도 생각이 같거든 그리하거라.
부용 아니옵니다. 한 시라도 빨리 다 잊고 싶사옵니다. 다시 생각해 본들 소녀의 뜻은 변함이 없을 것이옵니다.
석총 허... 가슴 속에 단단히 응어리가 맺혔구먼... 허나 하루 이틀 늦어진다 해서 잘못될 것은 없느니라.
부용 ..........
석총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구나.. 저토록 귀한 집 여식이 세상을 버리려하고... 말세로다.
미륵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고... 세상이 온통 난리로구나.
도리질을 치는 석총의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18 철원(낮)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인부들의 표정에서 그 고단함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아지태가 공사장의 한복판에 서서 그들을 계속해 다그친다.
아지태 뭣들 하는 겐가? 어서 서두르지 않고.. 대동방국의 황궁을 짓는 일이니라. 단 하루라도 기일이 늦어져서는 아니될 것이니라. 힘을 내거라. 힘을내!
그런 아지태의 광기어린
모습에서.
씬 19 왕건의 집 마당
대문이 열리고 왕건이 세 가신들과 함께 들어온다. 모두들 표정이 밝지 않다.
장수장 어서 오시오소서.
왕건 집안이 왜 이리 조용한가?
장수장 마님께서 안살림을 하는 아녀자들을 모두 안채로 불러드리셨사옵니다.
왕건 그래?
박술희 허허허.. 형수님께서 기강을 잡으실 모양이옵니다.
잠시 후면 곡소리가 터져 나오겠사옵니다요? 하하하...
왕건 가세..
씬 20 동 안채
하녀들이 도영의 방에 모여 있다. 도영이 한껏 위엄을 갖추고 상석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도영 다들 모였는가?
하녀1 예, 마님..
도영 내가 왜 자네들을 불러 들였는지 알고 있는가?
하녀들 .........
도영 내 그 동안 아무 말 없이 자네들이 하는 일들을 잠자코 지켜보았네. 한데... 도무지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
집 안에 어른이 아니 계신다고 그리들 무사 태평이란 말인가?
하녀들 ........
도영 하지만 이제 더는 아니될 것이야. 내가 이 집의 안채에 앉아 있는 한 그런 꼴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하녀들 ....예, 마님..
도영 지금부터는 내가 이 집의 안살림을 하나하나 직접 챙길 것이야. 모두들 그리 알고 단단히 마음을 먹도록 하게.
하녀들 .......
도영의 그 서릿발 같은
모습에서.
씬 21 동 사랑
왕건과 왕평달, 왕식렴,
왕신, 그리고 세 가신이
모여 있다.
왕평달 아직도 부용 낭자는 아무 소식이 없다던가?
왕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왕평달 (한숨) 호사다마라더니..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왕건 찾아야지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찾을 것이옵니다.
왕평달 그래야지 암...
왕식렴 형수님을 찾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세에도 관심을 기울이셔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
왕식렴 저간의 인심이 참으로 흉흉하게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철원으로 황궁을 옮기시면서 너무도 많은 무리를 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왕건 그 일은.... 나도 적잖이 걱정이 되긴 하네만...
왕식렴 그리고 이제 형님께서 전장에서 돌아오셨으니 내원이 또다시 형님을 경계할 것이옵니다.
왕건 나를 말인가? 내원께서?
왕식렴 그 사람은 송악에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형님과 우리 가문을 경계해 왔사옵니다.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왕건 쓸데 없는 소리...
왕평달 그건 식렴이 말이 맞네.
내원은 아주 무서운 사람일세. 조카를 노리고 있는 것도 사실 이고...
박술희 저희들도 사실 그리 느끼고 있었사옵니다.
왕건 자네들까지 왜 그러는가? 사람 사는 곳은 어디에나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일세. 설령 내원이 그런다고 해서 우리 또한 휘말려서야 되겠는가? 매사 정도를 지키면서 슬기롭게 대처하면 되는 것이야.
왕평달 조카가 내원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일세. 아무튼 그 일에도 신경을 쓰게나.
왕건 ........?
씬 22 황궁/내원
종간과 은부가 마주해 있다. 한참동안 뭔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 찻잔을 들어 입을 적신다.
은부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시 옵니까?
종간 .....왕건이 돌아왔네.
그것도 영웅이 되어서 말이야.
은부 그야.....
종간 이상한 일이지... 폐하께서는 참으로 많이 변하셨는데 왕건이에 대한 총애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시니 말일세.. 그것 참..
은부 (미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옵니까?
종간 왕건이 돌아 왔으니 저들 패서인들이 더욱 뭉치게 될 것일세. 철원으로 황궁이 옮겨가면 더더욱 그리 될 것이고. 아무래도 왕건이는 다시 전쟁터로 보내는 것이 좋겠어.
은부 .............
종간 유천궁.... 난 그 유천궁이라는 사람이 의심스럽네..
은부 .........?
종간 이번 나주 정벌에 그 사람은 전 재산을 쏟아붇다시피했네. 그것이 폐하와 이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가? 아닐세.. 그 사람은 왕건이를 위해 그리했던 것이야.
그리고 왕씨 집안과 사돈을 맺었어.
은부 ..........
종간 그 사람은 장사꾼일세..
본래 장사꾼이란 단돈 한푼이라도 이문이 더 남는 곳에 쓰는 법이지..
은부 허면....? (의미심장한)
종간 아무튼 계속해서 뒤를 캐어보게.. 그러다 보면 뭔가 걸려들 게야.
은부 예, 내원 어른..
종간 우리의 우려가 모두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네. 송악의 예언 말일세. 그 아지태란 자가 나타나면서 일이 더욱 어렵게 꼬여가고 있어.
은부 그러하옵니다. 이제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사 옵니다.
종간 아무래도... 정리를 해야겠지.
은부 명만 내리시오소서.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겠사옵니다.
종간 .................
그 때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내원 어른, 병부령께서 오셨사옵니다.
종간 뫼시어라.
복지겸이 안으로 들어온다.
종간 허허허.. 어서 오십시오. 자 이리로..
복지겸이 자리에 앉고 종간이 차를 따라준다.
복지겸 어인 부르심이오이까?
종간 큰 전쟁도 끝나고 했으니 병부령께서 적요하실 것 같아 차라도 한 잔 나눌까 해서 청했소이다.
복지겸 허허허... 한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이 난세에 병부가 적요할 틈이 있겠습니까?
종간 허허허.. 그렇겠지요.
그래서 하는 말씀이오만... 병부에서는 다음 일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시오이까?
복지겸 .....글쎄올습니다. 당분간은 좀 관망하면서 전선을 지키는 데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종간 나주는 시작일 뿐이외다. 이 여세를 몰아서 계속해 백제를 압박해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이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도 있소이다.
복지겸 (끄덕이며) 그 말씀도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종간 그 적임은 역시 왕건 장군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오만....?
복지겸 그렇겠지요. 허나 왕장군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지워드리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종간 허허허.. 장수는 전선에 있어야 제격이 아니오이까?
왕장군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오.
복지겸 ..........
종간 백제가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오. 이번 일을 설욕 하고자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것이오.
복지겸 그럴 테지요.
종간 한숨을 돌릴 여유를 주어서는 아니될 것이오. 쉴 새 없이 고삐를 죄어야 합니다. 공세의 고삐 말이오.
씬 23 완산주/백제궁 외경
씬 24 동 고비의 처소
견훤이 고비와 함께 어린 금강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고비 참으로 신기하옵니다.
견훤 뭐가 말인가?
고비 어쩌면 저렇게 폐하를 쏙 빼어 닮을 수가 있단 말이옵니까?
견훤 그런가? 허허허.. 그래서 씨도둑은 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 때 대전 내관이 아뢴다.
내관(E) 폐하, 파진찬께서 알현을 청하시옵니다.
견훤 (마땅찮게) 파진찬이? 또 무슨 일로? ....알았느니라. (사이) 잠시 나가보고 오겠소.
고비 예, 그리 하시오소서.
견훤이 자리에서 일어서면.
씬 25 황후전
문이 열리면 능환이 들어온다. 두 태자도 함께 자리해 있다.
능환 찾아계셨사옵니까, 황후 마마?
박씨 태자들을 가르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데 변변히 인사도 못했고 또, 이런 저런 돌아가는 사정이 궁금하기도 해서요.
능환 그러셨사옵니까?
박씨 폐하께서는 여전히 승평부인의 처소에 계신답니까?
능환 방금 전에 대전으로 납시셨다 들었사옵니다. 파진찬이 알현을 청했나 보옵니다.
박씨 파진찬? 최승우 말입니까?
능환 예, 마마..
박씨 아직도 그 사람이 군사의 일을 맡고 있다지요?
능환 그러하옵니다만...?
박씨 참으로 불공평한 처사가 아닙니까? 지난 번 대야성 전쟁 땐 이찬의 책임을 물으셨는데 이번엔 왜 그냥 넘어가신답니까?
능환 ......?
박씨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이번에 금성을 빼앗긴 것이 누구 때문 입니까? 내 태자들에게 듣자하니 파진찬이 고려가 금성을 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고 하는데,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면 더욱 큰 실책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능환 하오나..
양검 어마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군사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일은 파진찬이 책임을 져야 하옵니다. 그리고 다시 사부님께서 군사에 복귀하셔야 하옵니다.
능환 ...태자마마......?
씬 26 대전
견훤이 막 자리에 앉는다.
견훤 그래 무슨 일인가?
최승우 (미소) 요즘 폐하의 용안을 뵙기가 무척이나 어렵사옵니다?
견훤 내 몸은 무쇠로 만들었단 말인가? 나도 좀 쉬어야지..
최승우 하오나 이럴 때일수록 폐하께서 더욱 활기차고 강건하신 모습을 보이셔야 할 것이옵니다.
신료들과 백성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사옵니다.
견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보자고 한 것은 아닐 테고...?
최승우 그럴 리야 있겠사옵니까?
전선의 사정에 대해 보고해 올릴 것이 있사옵니다.
견훤 말해 보게..
최승우 먼저 신라 쪽 전선상황이옵니다. 강주성을 빼앗긴 이후 흐트러졌던 전열을 재정비하여 국경 일대에 배치시켜 놓았사옵니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신라의 군현들을 압박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이옵니다.
견훤 신라는 그렇고, 고려쪽은?
최승우 철원에 새황궁을 짓기 시작했다 하옵니다. 바야흐로 고려가 아닌 마진이 시작되는 것이옵니다.
견훤 도읍을 옮긴다? 그리고 마진이라... 허.. 궁예 그 자는 뭐가 그리도 복잡하단 말인가? 그 자들이 고려라 하든 마진이라 하든 우린 우리 편한대로 부르세.. 뭐라고 할까? ....그래, 북쪽에 있으니 북군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구먼.
최승우 허허허 그리하시오소서.
견훤 헌데 말이야, 궁예왕이 왜 고려를 버리려 하는 것일까?
옛 고구려의 유민들이 그들의 기반인데 말이야.
최승우 신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편하고 안전한 길을 놔두고 굳이 좁고 험난한 길로 들어서려는지, 그 이유를 소신도 헤아리기가 어렵사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궁예왕이 큰 패착을 두고 있다는 것이옵니다.
견훤 패착이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백성과 군주의 관계는 물과 고기에 비유할 수 있사온데, 물을 떠난 고기가 어찌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겠사옵니까? 백성들의 마음을 꿰뚫는 재주가 비상한 궁예가 왜 그런 실책을 저지르게 됐는지 참으로 의문이옵니다. 필시 뭔가 피치못할 사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견훤 그래.. 뭔가 있어.. 자세한 내막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구먼.. 세작을 띄워 소상히 알아보도록 하게.
최승우 예, 폐하.. 그렇지 않아도 그 일에 적임인 사람들이 있사옵니다. 옛 양길의 수하들이 얼마 전에 수달 장군에게 몸을 의탁해 왔사온데 그들이라면 능히 그 일을 해낼 것이옵니다.
견훤 그런 일이 있었는가? 허허 양길의 수하라... 궁예왕이 들으면 소름이 돋겠구먼 그래.. 하하하하..
씬 27 송악/황궁
씬 28 동 대전
궁예가 철원의 설계도를
보며 흡족하게 웃고 있다. 종간이 와 있다.
궁예 보시오, 내원.. 이 얼마나 웅대하고 장엄하오? 여기에 황궁이 들어설 것이오. 비록 당나라 만큼은 못되어도 신라나 백제의 황궁은 비교도 안될 엄청난 규모요. 허허허.. 그리고 이쪽으로는 신료들과 백성들이 살 집들이 들어설 것이고, 또 이 쪽으로는 저자거리가 형성될 것이오.
종간 .........
궁예 (종간을 보며) 표정이 왜 그러시오? 내원은 아직도 황궁을 옮기는 일이 마땅치 않으신가 보구려?
종간 신은 다만 백성들이 겪는 고통이 염려스러울 뿐이옵니다.
궁예 또 그 말씀이오? 이 모든 것이 다 결국에는 백성들을 위하는 일이오. 지금이 다소 어렵다고 해서 어찌 앞날을 포기할 수 있단 말이오? 그것을 모르는 내원이 아니지 않소?
종간 ...........
궁예 모든 일이 예정대로 잘 되어가고 있소. 세금도 잘 걷히고 있고, 황궁의 공역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오.
조만간 왕장군과 철원을 둘러볼 생각인데, 내원도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소? 둘러보고 나면 내원도 생각이 많이 바뀔 것이오.
종간 아니옵니다, 폐하. 폐하께서 황궁을 비우시는데 어찌 소신마저 자리를 비울 수 있겠사옵니까? 소신은 나중에 따로 다녀오겠사옵니다.
궁예 허허허 그건 내원이 좋을 대로 하시구료. ......한데, 왕장군은 왜 소식이 없는 게요? 어서 혼사를 치뤄야 철원에 가더라도 갈 터 인데... 허허허... 다시 생각해 봐도 참으로 대견한 일이야. 아우가 장가를 가다니..
그것도 한꺼번에 두 번씩이나.. 허허허....
종간 헌데 문제가 좀 생긴 모양이옵 니다.
궁예 문제라니?
종간 유장자의 여식이 집을 나갔다 하옵니다.
궁예 (놀라) 집을 나가? 아니 어째서?
종간 왕장군이 다련군의 여식과 혼인해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된 모양이옵니다.
궁예 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이런....
씬 29 유장자의 집 사랑(밤)
유장자가 한숨을 쉬고
있다.
부용모 (거의 울며) 나으리,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옵니까? 생전 이런 일이 없었던 아이가 아니옵니까? 나으리...
유장자 ...........
그 때 밖에서 집사장의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사장(E) 어르신, 소인이옵니다.
유장자 어서 들어오게.
집사장이 안으로 들어온다.
부용모 어찌 됐는가? 우리 부용이는?
집사장 .......송구하옵니다.
부용모 아직도 못찾았다는 겐가?
집사장 사방으로 사람을 놓아 정주와 송악 일대를 샅샅히 찾았사오나... 아씨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사옵니다.
부용모 (무너지듯) 어이구..
유장자 ..........
부용모 나으리,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예? 말씀 좀 해 보시어요.
그러나 유장자는 한숨 뿐이다.
씬 30 석총의 산사 외경(밤)
풍경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고 있다.
석총(E) 이제 마음을 정했느냐?
씬 31 동 선방 안
석총과 부용이 마주해 있다.
석총 아직도 네 생각엔 변함이 없느냐?
부용 ....예, 그러하옵니다.
석총 허허... 마음의 병이 단단히 들었구나.. 허상이니라..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도 세월이 가면 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라. (지그시 눈을 감는다)
부용 ........(놀라)........?
석총 허나 어쩌겠느냐? 그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이거늘..
부용 다 잊을 것이옵니다.
모두 다 말이옵니다.
석총 다시 한 번 묻겠다. 계를 받겠 느냐?
부용 ........(눈물).........
석총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느냐?
부용 ......예... 머리를..... 깍겠사옵니다.
그런 부용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 모습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