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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지혜와 총명의 사람 (단1:17-21절)
유대인의 동화 중에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왕의 노여움을 사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살려 달라고 탄원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저에게 일 년의 여유를 주신다면 왕께서 가장 애지중지하는 말에게 하늘을 날도록 가르쳐 보이겠습니다. 만일 일 년이 지나도 말이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 때 저를 죽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왕은 한 번 속는 셈치고 그의 탄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만일 내 말을 하늘을 날게 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죄수들은 말하기를 ‘말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말하기를 ‘일 년 이내에 왕이 죽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전에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 말이 죽기 말라는 법도 없다. 일 년 이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나.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나는 일 년을 더 살 수 있지 않은가.’ 죄수들이 듣고 보니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단연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을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솔로몬 왕은 그 지혜와 총명이 유별나고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왕상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는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후에 솔로몬은 잠언 삼천을 논할 정도로 지혜와 지식이 풍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받은 지혜는 구속사에 일어날 미래에 대한 징조나 예언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솔로몬은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혜를 받은 것이지 선지자로서 갖추어야 할 지혜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다짐한 네 소년들에게 은혜로 지식과 명철을 주시고 다니엘에게는 몽조를 깨닫는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다니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는 선지자의 지혜였습니다.
네 소년들의 지혜와 총명은 선천적인 재능이나 후천적인 바벨론 교육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의 결과였습니다. 물론 이 소년들은 유다에 있었을 때부터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유다 왕족과 귀족 중에서 소년들을 선별하는 기준을 정할 때에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첫째, 흠이 없는 자라야 했습니다. 이 말은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온전한 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인격적으로 사람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삶이 온전하지 못하고 그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사람들을 그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지도하는 방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그 행실과 언행이 바른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용모가 아름다운자라고 했는데 외적 용모의 준수함을 가리킵니다. 지도자는 외적 용모가 특히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을 택하셨을 때 다윗의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삼상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낳았을 때에 그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그를 석 달 동안 숨기며 길렀습니다. 이 말은 요게벳의 눈에 보인 아이는 특별히 선택된 용모를 지닌 아름다운 아이였던 것입니다.
셋째로, 모든 지혜를 통찰하는 자라야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지혜안에서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각 방면에 걸친 포괄적인 이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혜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만큼 세상 사람에게는 지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인간은 모두 부패했고 타락했기 때문에 진리의 지식인 지혜를 찾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잠2:5-7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바벨론 왕은 자기들에게는 없는 지혜가 유대인들에게는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중에서 최고의 지혜자를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넷째로 지식에 통달한 자라야 합니다.
이 지식은 사물에 대한 이해 능력으로 얻어진 실제적인 지식의 습득을 말하는 것으로 과학이나 수학, 물리, 생물, 역사, 지리, 철학, 예술, 등 인간이 개발하고 탐구하고 연구하여 얻은 사실적 지식을 갖춘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학문에 익숙한 자라고 했는데 실제적 지식을 분별하고 판단하며 유용하게 적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혜와 지식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키고 제자를 양육하며 그 지식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교수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유다 왕족 중에서 최고의 지능과 지식을 소유한 소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이었으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던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모든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단1: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소년들은 지금까지 유다 백성으로서의 필요한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저들은 부모들과 랍비들을 통하여 율법을 배우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지식과 선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으로 이주한 이후로는 바벨론의 음식을 먹으며 바벨론의 정치, 문화, 사회, 종교, 천문, 지리 등을 배우며 3년 동안 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 역시 갈대아 사람들의 학문과 지식을 습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지식과 진리를 배운 후에 세상의 지식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과학이나 자연은 배울 수 있어도 역사나 사회, 종교, 철학 같은 학문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부조리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역시 바벨론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소년들에게 학문을 배우도록 지시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하나님께서 배우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년들에게 학문뿐만 아니라 바벨론의 왕궁에 기거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언어와 문화, 사회적인 전반에 걸쳐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이 갈대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그들을 통치하고 다스려서 나타내어야 할 하나님의 영광과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그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해 내기 위해 40년간이나 애굽의 최고 학문과 지식을 습득했던 것처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바벨론 왕궁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교육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소년들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특별히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아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고대 바벨론에서는 환상이나 꿈의 해석이 중요한 학문이며 그들의 일과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술객과 박사들을 학교에서 배출해 내었고 이들은 왕의 국가 통치에도 깊이 개입하여 그 권세와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술객들의 이러한 꿈의 해석은 극히 이방적 요소가 많았으며 진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육체적이고 정욕적인 우상 숭배의 문화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은 이방적 요소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였습니다.
그 교육을 받는 중에 소년들은 갈대아인들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은 자연스럽게 갈대아인들에게도 인정이 되었습니다.
강대국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더욱이 국정에서 왕을 모시는 일을 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을 받는 중에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갈대아의 우상과 마술에 빠지지 아니했습니다. 포로로서 정복군의 학문과 지식을 배우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사실 큰 모험입니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나라의 신을 숭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나아가 그 나라가 섬기고 있는 신을 우상으로 부정하고 무시하고 배척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대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일로 인하여 큰 어려움과 시험을 당하는 때에도 오직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불신앙을 요구하는 환경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신앙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위대한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고, 나약한 인간에게는 소원이 있다.’ 이 말 속에는 인간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에 생명을 거는 의지가 있을 때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삼 년의 수료기간이 끝나고 모든 소년들은 왕 앞으로 불려나갔습니다. 첫 시험을 치르는 시험관으로 왕이 직접 저들의 실력을 테스트한 것입니다. 왕은 여러 가지 질문으로 소년들을 시험하였습니다.
그 결과 소년들 중에서 단연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다른 소년들은 하급 관료에 임용하고 이 사람들은 왕의 측근에서 왕을 보좌하는 비서진에 임용하였습니다.
거대한 바벨론 관료 조직 내에서 나이로 보나, 포로의 신분으로 보나, 정치적 경륜으로 보나, 어린 소년들을 왕의 비서진에 채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들이 속한 관료 집단은 아마도 왕궁의 박수나 술객, 즉 왕이 매사에 정책을 의논하는 일종의 자문 계열의 관료들이었을 것입니다.
왕은 국사를 의논할 때에 반드시 이 네 소년들에게도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단1: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은 세상적인 지혜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갈대아 사람으로서 바벨론 지역 전체를 점령하고 거대한 바벨론 제국을 세운 장본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제국 앗수르를 침공하여 점령하였고 팔레스틴 모든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국정을 의논할 때에 그 나라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박수들과 술객들보다 이 네 소년의 지혜와 총명이 열 배나 나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어떻게 왕이 자기의 심복들을 무시하고 이국땅에서 포로로 잡아 온 청년들을 이토록 칭찬하고 인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왕이 인정하는 ‘지혜와 총명’이라는 말은 피상적인 개념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는 실제 상황에서 국정 전반에 걸친 지식이나 판단 능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국정 수행 능력이 탁월했다는 말이 됩니다.
박수와 술객들은 일종의 점성가들이 아니라 대 제국 바벨론을 건설한 정치의 주역들이요, 지금까지 국정을 담당했던 특수 관료들입니다. 노련한 정치적 감각이나 센스나 모략이나 지혜가 세상의 으뜸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저들이 지혜라고 주장하는 지혜는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지혜를 이미 폐하셨기 때문입니다.
*고전1:19-20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신적인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보다 우월합니다. 바울은 세상적인 지혜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것은 없어질 관원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신적인 지혜는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2:6-7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인간의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방법으로 지혜를 추구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세상의 지혜보다 우월한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지혜는 당시의 바벨론 박수들과 술객들의 지혜보다 십 배나 우월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정확히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막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이러한 현상은 대제국 애굽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그 강변에 아름답고 살진 일곱 마리의 암소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보기에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이런 풍경에 도취되어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중에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살진 암소들의 뒤에서 아주 흉하고 바싹 여윈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서 그 소들과 함께 서 있더니 이 흉하고 파리한 소들이 아름답고 살진 소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소가 소를 잡아먹은 해괴하고 망칙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원래 소는 초식동물이어서 풀을 뜯어 먹어야 정상인데 이 흉측한 소들은 풀은 먹지 않고 도리어 사자같이 암소들을 잡아먹은 것입니다. 창조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왕은 너무나 놀라서 잠이 깨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심란하여 이리 뒤척거리고, 저리 뒤척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식물의 자라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이삭 일곱이 나오고 그 후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바로 왕은 마음이 번민하고 답답하여 아침에 일찍이 술사들과 박수들을 불러 꿈의 해몽을 요구했으나 그 꿈을 해석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창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런 답답한 순간에 바로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의 소개로 요셉이 왕궁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기를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 때 요셉의 대답이 참으로 걸작입니다.
*창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꿈을 해몽해 주시고 대책을 세워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진실하고 놀라운 대답입니까. 그리고 요셉은 그 꿈을 해몽하였고 바로가 묻지 않는 가뭄의 비책까지 제시하였습니다.
너무나 놀란 바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요셉에게 애굽을 다스리도록 권세를 부여합니다.
*창41: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이때부터 사실상 애굽은 바로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이 통치하였고 그 요셉을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대 제국 애굽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지혜와 신앙을 주셔서 그 당시 주변 국가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있던 강대국 갈대아의 최고 학문과 지혜와 재능을 꺾으셨습니다. 그들은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이었기 때문에, 포로로 잡아온 민족들을 천하게 여겼고 경멸하였고 무시했습니다.
자신들의 힘과 지혜와 재능과 학문을 세계 최고로 여겼으며 그것으로 세계와 민족들을 다스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교만한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멸시하고 천대했던 약소국가 유다 소년들을 들어서 무색할 정도로 그들의 자랑하던 모든 것을 단숨에 꺾어버렸습니다. 저들은 팔레스틴 지방을 정복하기 위하여 왕이 직접 전투에 나섰고 수많은 군사와 병기를 동원하였습니다.
그렇게 수고한 결과는 겨우 적국의 왕과 성전의 기물 몇 가지를 가져오는 정도에 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유다를 완전히 정복한 것도 아니고, 저들의 권력을 송두리째 빼앗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 네 명의 어린 소년들만 바벨론으로 보내어 두 번 싸울 것도 없이 단숨에 저들의 능력과 재능과 학식을 다 제압하여 버렸습니다. 한 순간에 바벨론 왕궁의 최고 권력의 자리를 빼앗아 버리고 왕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통쾌하고 멋진 승리입니까. 저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왕국에서 호의호식하다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아니하고 평화로운 대결로 아름답게 승리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모든 노인, 스승, 박사들보다 지혜로웠고 그 지식과 학문이 뛰어났으며 명철했습니다. 오죽하면 왕이 그들보다 열 배나 뛰어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119:99-100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러한 그들의 우수성을 스스럼없이 인정하였고 만족해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크고 위대하며 인간적인 교만을 꺾는 것입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다니엘의 승리는 왕뿐만 아니라 절대 권력 계층의 확고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완전한 인정을 받은 결과는 그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 역시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 감격과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된 것입니다.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가솔들도 요셉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고센 땅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의 승리는 그의 동족들에게 바벨론에서의 삶을 풍족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바벨론인들로 하여금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였고 하나님은 그 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이 섬기는 우상보다 크심을 알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두 신을 비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크신 분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크시고 우월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린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한 사실이 이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건국 원년에 잡혀 와서 삼 년 동안 학습을 받았고 그 후 최고 관료로 임명되어 그의 재임기간은 바벨론 제국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단1: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그는 약 70년 간 바벨론 정부의 최고 관료로서 바벨론을 다스렸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니엘은 바벨론 1차 포로 때부터 시작하여 메데 제국을 거쳐 고레스 왕 원년 즉 바벨론 포로 귀환 때까지 전 포로 기간을 바벨론에서 활동했던 것입니다.
이는 다니엘의 비애와 기쁨이 이스라엘 역사와 동일했다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 백성의 궁극적 승리를 말하는 것이며, 바벨론의 모든 정치에 하나님의 개입과 통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성도는 비록 겉으로는 약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강하며, 연약한 것 같으나 강건한 이유는 그들의 모든 힘과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경외하는 자에게 힘과 능력과 재물과 지혜를 주십니다.
*잠8:17-21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으로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아래에 있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시119:15-16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명령과 율례와 법도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들은 유다 땅에 살든지, 바벨론으로 잡혀 갔든지 상관이 없이 오로지 주의 계명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신앙을 받으셨고 저들과 함께 하셨으며 저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과 총명을 주셔서 바벨론을 이기게 하시고 그의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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