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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면 신월교회 순교자 박용순 장로
전북 완주군 동상면의 신월교회는 맥커친(마로덕L.O.McCutchen) 선교사가 1907년 3월 15일에 설립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평온했던 산골마을이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되었다. 공산군과 좌익세력은 매일같이 교인들에게 “교회로 모이라” “분주소(현재 파출소)로 모이라”하며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북조선의 노래를 가르치며 사상교육을 하면서 이에 불응하는 교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하며 박해했다. 그러던 중 음력 8월 15일 고유의 명철 추석날 저녁, 인천상륙작전으로 궁지에 몰린 공산군과 좌익세력들은 교회 지도자들과 우익인사 50여 명을 끌고 동상면 분주소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갔다. 대부분 돌과 몽둥이로 맞아 처참하게 죽여 옷으로 확인했다. 이때 신월교회 순교자는 박용순 피택장로, 최현숙 집사, 김태환 집사, 김성녀 집사, 김영하 집사 5인이다.
순교자 박용순 피택장로는 총각 때부터 집사로 장년 설교를 담당할 정도로 성경 지식과 영성이 뛰어났다. 초등학교와 면사무소에서 일하다가 1950년에는 동상면 소방서 대장으로, 농협 조합장으로 일할 정도로, 신월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1945년 해방후 남로당 세력이 동상면에도 활개를 치기 시작하더니, 1948년에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조한봉이가 남로당 동상면 총책을 하다가 한국전쟁이 터지자 조한봉은 인민공화국 동상면 파출소 소장이 되어 악랄한 만행을 저지르며 주민들을 괴롭혔다.
조한봉과 공산당 일당은 음력 8월 15일 밤 11시경 신월교회 박용순(47세) 피택장로, 김태환(37세) 집사와 다른 두 분, 모두 4명을 모내기 때 쓰는 못줄로 여러 겹으로 꽁꽁 묶은 다음에 초등하교 뒷산 300m 지점에서 몽둥이로 머리와 온몸을 심하게 때려죽이고 묻은 것이 발견되었다.
16일 새벽에는 박용순의 부인 최현숙(40세) 집사와 김성녀(46세) 집사와 우익 인사들이 발길로 차며 끌고 가 총살하였다. 이때 최현숙 집사는 젖먹이와 3살 된 딸 등 8명의 자녀를 놔두고 남편의 뒤를 따라 순교했다. 순교 현장에서 공산당들은 교인들에게 “너희들, 오늘 천당가는 날이다.” 비아냥거리자 교인들은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서로 격려할 때 살인자들은 돌로치고 삽과 괭이로 찍고 총으로 쏘아 죽였다. 죽어가는 성도들은 “주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순교의 제단에 피를 뿌렸다. 17일에 시신이 마을 아래 저수지 건너편에서(괴보소) 시신이 발견되었다.
박용순 피택장로의 후손 8남매는 뿔뿔이 흩어져 피눈물 나는 성장과정이 있으나 박 장로의 아들 박상락 장로(항동중앙교회), 박권용 선교사, 박상섭 집사(성광교회), 딸 박봉자 집사(함열교회)가 있으며 김영하 집사의 부인 이봉님 권사(북문교회), 아들 김봉기 집사, 김정기 집사(부산 브니엘교회), 딸 김필례 권사(북문교회) 김순애 집사(옥성교회)가 있다. 김성녀 집사의 딸 이이순 집사(제석교회) 이정순 집사(양전교회)도 부모가 걸어가신 순교자의 길을 걷고 있다.
신월교회 순교사를 저술한 “아직도 마르지 않는 눈물”(1999년)에서 순교자 박용순의 아들 박상락 장로는 순교자의 후손들은 일평생 마르지 않는 눈물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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