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요한 17,17)
2월 11일인 오늘은 교회 안에서 세계 병자의 날로 기려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2월 11일인 오늘이 세계 병자의 날로 기려지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 바로 오늘인 1858년 2월 11일에 자신을 드러내신 성모님의 기적과 관련됩니다. 1858년 2월 11일 프랑스 루르드라고 하는 작은 시골 마을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성모님의 그 같은 발현은 교회의 저명한 추기경이나 주교, 사제 수도자에게 이루어지지 않고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한 가난한 시골의 14살의 어린 소녀 베르나데뜨 수비루에게 일어납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집안을 따뜻하게 할 땔감을 구하기 위해 개울을 건너려 하는 베르나데뜨 앞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이 나타나고 그로부터 18차례에 걸쳐 그 여인은 소녀에게 나타나 여러 가지 메시지와 샘물을 통한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성모님이 발현한 미사비엘 동굴 바닥에서 솟은 샘물을 통해 그 물을 마신 이들이 병으로부터 낫게 되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자 많은 이들이 그곳으로 찾아와 기적을 갈구하게 되고 교회는 공식적으로 그 기적을 심사한 후, 1862년 성모님이 발현하신지 4년 후 이 모든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곳을 성모성지로 선포합니다. 1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6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로서 셀 수 없이 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루르드 성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곳 성지를 재임 중 세 번이나 방문하고 1992년 5월 13일, 루르드에서 성모님이 발현한 사건을 기억하는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2월 11일을 모든 병자들을 기억하는 세계 병자의 날로 거행하도록 제정하였습니다. 이 같은 오늘 복음 말씀은 어제 복음에 바로 이어지는 부분으로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율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제자들을 두고 하잘 것 없는 논쟁을 일으켜 싸움을 거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겉모습만을 꾸미는 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의 실태, 곧 가장 중요한 내면의 본질을 잃어버린 그들의 작태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4ㄴ-15)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제 복음에 등장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비판의 연속으로서 어제에 이어 본질이 아닌 형식에만 얽매인 삶, 핵심을 잃고 변죽만 울리는 삶의 허황됨을 여지없이 비판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잃지 않아야 하는지를 다음의 말씀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2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곧,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나의 모습을 가꾸고 꾸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내 내면의 감추어진 나의 본 모습, 내 마음 속 생각과 행동들, 그리고 마음 안에 감추어진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진짜 모습이며, 그 진짜 내 모습이 겉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만고의 진리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표리일체’(表裏一體), 안팎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이 말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함을 뜻합니다. 사실 이 말의 반대되는 말이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겉으로는 온갖 깨끗한 척을 하지만 정작 속은 더럽고 지저분한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감추어진 내면의 더러움이 외면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 하늘 아래 거짓이 존재할 수 없으며, 거짓은 반드시 참 앞에서 그 거짓됨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드러내는 복음의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마태오 복음 10장 26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마태오 복음의 이 말씀처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굳이 숨기고 감추려 들 필요가 없으며, 반대로 굳이 알리고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내면 속에 있는 것이 자연히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말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말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있는 것들,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 있으나, 나 자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의 부족함, 부당함 그리고 부적절한 것들이 내 안에 너무도 많이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모순성, 겉으로는 그러지 않은 척하지만 실상 내면을 겉과는 다른 이중의 현실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우리 존재의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오늘 복음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 같은 질문을 던지도록 만듭니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독서의 열왕기 상권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우리 존재의 모순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는 듯 느껴집니다.
이번 주간 계속되는 독서의 말씀은 열왕기 상권의 말씀으로서 이스라엘의 임금 솔로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오늘 독서의 말씀은 지혜와 영화가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솔로몬을 두고 그의 지혜를 시험해 보고자 찾아온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과의 대화 끝에 솔로몬의 지혜를 감탄하는 모습을 전하는데, 여왕은 솔로몬에게 감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님의 지혜와 영화는 내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임금님의 부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언제나 임금님 앞에 서서 임금님의 지혜를 듣는 이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1열왕 10,7ㄴ-8)
지금의 시대를 두고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가 부재한 시기라고들 합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고 넘쳐나는 정보를 수시로 접하지만 정작 그 많은 정보를 선별하여 나의 지혜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시대,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수시로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위해 단 5분의 침묵의 시간도 견뎌내지 못하는 인내가 상실된 시대, 10명 중 9명의 성인이 일 년 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지만, 하루 네 시간 이상 핸드폰을 무의식적으로 들여다보는 시대가 바로 지금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넘쳐나는 지식 속에 지혜가 부재하여 삶의 지혜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도리이자 본분조차 잊고 사는 이들이 많아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점점 비인간화되는 작금의 현실에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한 목소리로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과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존재의 모순들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오늘 화답송의 시편이 그 답을 제시해줍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자아내고, 그의 혀는 올바른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가르침 그 마음에 있으니, 걸음걸음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시편 37(36),30-31)
시편의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이가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지혜로운 이는 입과 혀로 올바른 것만을 말합니다. 그로서 그가 걷는 걸음걸음은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그 사람을 축복하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함께 해 주심으로서 그의 정의가 빛처럼 빛나고 그의 공정이 대낮처럼 빛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 삶으로 실천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하느님 말씀은 우리 삶의 진리이며, 그 진리가 우리 삶이 비루함과 비천함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 말씀의 진리로 겉과 속이 일치된 삶, 표리일체의 삶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선과 악을 구별하여 언제나 선을 추구하는 참되고 아름답고 진실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요한 17,17)
첫댓글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겉으로만 거룩한 사람이 되지 말고, 겉과 속이 똑같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물건이나 음식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죄를 짓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