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마밭 소묘
김만년
어느 푸른 사람에게 편지를 쓸까. 아홉 이랑 채마밭에 밑줄을 긋는다. 한 소쿠리의 봄 햇살을 이랑 가득 받아놓고 깨알 같은 자모들을 자근자근 눌러 쓴다. 아직은 비밀스러워 까뭇한 입술들을 꼭꼭 다문다. 두 자 혹은 세 글자씩 촘촘히 묻고 행여 문맥이 틀어질까 이름표를 달아준다. 흡족한 마음으로 밭둑에 앉는다. 겨우내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밭고랑에 앉아 있다. 기울을 잘 나신 모양이다. 쑥댓잎 같은 저 손으로 올해도 부추꽃을 파다하게 피우지 싶다. 새들이 상수리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휘파람을 분다. 손톱만 한 애순들이 첫 문장을 내민다. 봄이다.
사월 내내 마른 바람만 불어왔다. 긴 가뭄 탓에 채마밭은 아직 답장 한 줄 없다. 움씨를 뿌려야 하나, 조급한 마음에 열무 심은 자리를 손가락으로 조금 긁어 보았다. 아뿔싸! 파릇한 싹들이 제 몸피만한 발가락을 달고 빛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는 중이다. 무안한 마음에 얼른 도로 묻고 시침을 뚝 떼고 며칠을 더 기다렸다. 비가 왔다. 삼단 같은 고운 빗님이 오셨다. 퇴근하기가 바쁘게 밭으로 내달렸다. 아하! 그새 채미밭이 초록 글자들로 빼곡하다. 씨앗들이 연초록 돋움체로 성큼 발아되었다. 매사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고, 성급하게 보챘던 나를 타이르듯이 재잘재잘 일어서는 초록 깃발들! 태양이 한 뼘 더 기울면 또 푸른 수다들을 일제히 대지로 타전시킬 모양이다.
하지 햇살을 등에 지고 감자를 캔다. 흙의 가슴팍에 호미를 깊숙이 찔러 넣는다. 줄기를 당기자 이미 감자의 쪼글한 반달 젖을 물고 토실한 알감자들이 오종종 달려 나온다. 늦잠 자던 땅강아지 한 마리도 눈이 부신지 덩달아 기우뚱거린다. 울퉁불퉁 못생긴 놈 훌쭉한 놈 영악스레 동그란 놈, 모양들이 제각각이다. 어쩌면 그 옛날 올망졸망하던 형제들처럼 생긴 모양들이 모두가 개구지다. 저렇게 육 남매를 애지중지 품어 안고 줄기차게 땅 밑으로만 달려왔을 게다. 일찌감치 꽃대 꺾고 젖은 땅 맨발로 걸어왔을 게다. 묵정밭이 영근 감자밭이 되기까지 홀로 누대의 가계를 기우며 그믐처럼 사위어갔을 게다. 여섯 남매 어린 자음(子音) 햇살 아래 풀어놓고 오래전에 음지로 돌아앉은 썩어야 열매 맺는다는 옛 엄마를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바람난 여자처럼 유월 땡볕에 앉아서 금분만 찍어 바르는 게냐! 간들거리는 몸매로 오가는 벌 나비 불러들여 만화방창 꽃만 피우는 게냐! 낳아 놓은 새끼들 오달지게 키울 줄 모르고 오뉴월 뻘때추니 같은 서방질로 방울방울 새끼만 퍼질러 놓은, 방울토마토 순을 친다. 하늘 가까이 달아난 꽃의 문장부터 분내 풍기는 여린 음절까지 모조리 가지치기를 한다. 사족이 된 잎들도 미련 없이 따준다. 훨씬 넓어진 음역을 따라 햇살이 차지게 들이친다. 염주알 같은 토마토가 한 됫박은 됨직하다. 불임시술을 마친 손마디가 꽃물로 샛노랗다.
칠월 장맛비에 채마밭이 쓰러졌다. 성한 문장들이 문맥을 잃고 둥둥 떠내려간다. 누이의 부고장이 채마밭으로 왔다. 오래 앓던 누이의 보랏빛 입술도 장맛비에 떨어졌다는 소식, 병 나으면 쉰 고개 너머로 열린 청산 같이 한번 휘둘러보자던, 누이는 혼자 청산으로 갔다. 구성진 달구소리에 소낙비 한줄기 지나간다. 그토록 잡고 싶었던 생이었을까. 바르르, 누이가 움켜쥐었던 하늘이 멍울멍울 푸르다. 흰 새 한 마리 누이의 전생을 물고 서녘으로 사라진다. 채마밭을 떠난 사이 장다리꽃이 피었다. 성근 잡초들을 뽑고 엉킨 행간을 바로잡아 무씨를 묻었다. 열매는 썩어 다시 움트건만 사람의 생사는 어찌 무씨만도 못할까. 자늑자늑 몇 줄의 설움도 함께 묻는다. 등 뒤로 바람이 산산하다. 어느새 여름이 저만치 물러나고 있다. 지금쯤 먼데 누이의 햇 봉분도 고들하게 말라가겠다. 차츰 구월이 오고 있다.
매미가 떠났다. 한철을 밭둑 어귀에서 울던 매미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히 울음판을 닫았다. 붕붕 허공을 선회하다가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어디로 갔을까. 매미는 내 얇아진 귀를 뒤척이며 며칠을 더 울었다. 우연히 느티나무 아래서 매미의 행방을 찾았다. 나무밑동이 그의 무덤이었던 것일까. 개미들이 묘혈을 파놓고 분주히 매미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고래(古來)의 풍습처럼 사지를 헹가래치며 그의 마지막 울음을 수습하고 있다. 울음을 참아 날개를 얻었지만 또 울음을 탕진한 죄로 사랑마저 잃었던 것일까. 매미가 우는 동안 사랑을 했고 환청처럼 그 나무밑동에 앉아 깜빡 조는 사이 내 젊음도 갔다. 그 청춘의 밑동엔 아직 그리움이 자라는지, 들판엔 꼭 그맘때 같은 비가 내린다.
해 질 무렵 밭둑에 앉았다. 바람의 기척에 풀잎이 흔들린다. 쇠뜨기 명아주 여뀌풀 들이 푸른 휘장을 두르고 야외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숨을 죽이고 풀잎 뒤로 몸을 낮춘다. 어둑발이 내리는 고즈넉한 들녘, 푸르스름한 바람이 풀잎 악보를 더듬는다. 풀무치의 선창일까, 호르릉, 찌륵찌륵, 쉬링쉬링…. 풀벌레들이 일제히 목청을 돋운다. 어느 먼 나라에서 온 모국어일까. 말석에 앉은 나도 숨소리를 낮추고 화음을 조절해본다. 차츰 풀이 되고 풀벌레가 되고 쫑긋거리던 두 귀마저 초록 울음으로 물든다. 이윽고 멀리 천체를 돌리던 숨은 손 하나, 구름 장막을 젖히고 배불뚝이 달을 점등시킨다. 대지가 푸르스름한 달빛으로 서늘하다. 가을이 깊었다.
푸른 지장(紙帳)을 휘둘러 천수경을 찍었을까. 녹의 장삼을 두르고 하안거를 했던 걸까. 까만 사리 똥 잎새마다 갈겨놓고 수도승처럼 동심원으로 꼬부라져 있던 배추벌레, 오늘 아침 우화등선했다. 꼬물거리던 무명의 시간 하얗게 돌아 사뿐히 청공을 날아오른다. 오! 깃털보다 가벼운 몸짓, 배추흰나비들이 노란 햇살 한 소절씩 물고 일제히 허공을 자맥질한다. 하얀 명주날개를 나부끼며 둘, 혹은 셋씩 짝지어 춤사위를 벌인다. 고깔 쓴 무희들이 원무를 그리며 나풀나풀 가을을 부추기고 있다. 아홉 평 채마밭이 나비들의 춤사위로 소소(炤炤)하다. 배추들이 실팍하게 살이 오른다.
빈 들이다. 품 안의 자식들 다문다문 익혀 멀리 떠나보낸 어머니의 빈 가슴이다. 떠나지 못한 배추 몇 포기 늦둥이처럼 서 있다. 만져보니 단단하다. “더도 덜도 말고 배추 속만 같아라.” 옛사람의 말씀처럼 겉은 허접해도 속은 실한 놈이다. 배추 한 포기를 쩍! 갈라본다. 연노란 꽃술이 오지게 찼다. 오상고절(傲霜孤節) 견딘 꽃이 어디 국화뿐이랴. 누가 배추 속을 꽃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한 잎 씹으니 입안에 노란 단물이 고인다. 영락없는 조선의 꽃이다. 꽃을 꽃인 줄 알고 먹어야겠다. 배추꽃이 야무지게 피었다.
채마밭을 일군 지도 올해로 열여섯 해가 지나간다. 채마밭은 하늘 우레 바람 풀 벌레 들의 조율로 쓰여진 아홉 행간 초록 시편들이다. 삶의 날씨가 건조해지거나 마음의 결이 곤두설 때면 나는 이 채마밭을 찾는다. 밭둑에 앉아서 파릇한 문장들을 읽다 보면 더러는 세상살이가 원경으로 보일 때가 있다. 미로 같던 길이 명료해지기도 하고 완강하던 집착을 내려놓을 때도 있다. 한들거리거나 살랑거리거나 찌르륵거리는, 그 작은 신들의 전언을 채집하다 보면 어느새 팍팍하던 마음의 행간도 푼푼해지는 것이다.
차츰 입춘의 양기가 빈 들로 번진다. 봄이 오려는지 몸이 가렵다. 겨우내 머츰하던 눈에도 생기가 돈다. 나는 다시 호미를 든다. 심전경작(心田耕作), 나는 밭을 갈고 채마밭은 나를 일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