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배유안
그림 : 서영아
그림 : 서영아
추사의 호통에 덩달아 마음이 뜨끔해지는 그림쟁이입니다. 정신을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린 책으로 『진돗개 보리』, 『내가 가게를 만든다면?』, 『밥상을 차리다』, 『어떤 아이가』, 『해리엇』 등이 있습니다.
감수자 :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전국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활동하는 교과 연구 모임입니다. 어린이 역사, 경제, 사회 수업에 대해 연구하고, 학습 자료를 개발하며, 아이들과 박물관 체험 활동을 해 왔습니다. 현재는 초등 교과 과정 및 교과서를 검토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행복한 수업을 만드는 대안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추천 :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역사 연구와 역사 교육의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김태웅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역사에 관심 있는 시민과 더불어 오늘의 역사 교육 문제를 풀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벼루는 먹을 곱게 갈아 내어 먹물을 만들지만 자신은 잘 닳지 않는 돌이었다. 단단한 몸으로 먹의 살을 조금씩 발라내는 강한 돌덩어리였다. 얼마나 먹을 갈았으면 저 야문 돌에 구멍이 날까? 더군다나 단연 벼루를! 허련은 경이로운 눈으로 추사 선생을 보았다.
추사 선생이 이번에도 무심한 듯 말했다.
“한 열 개쯤 구멍을 내 봐야 겨우 보이는 게 있지.”
허련은 구멍 난 벼루를 들어 보았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에 가장자리는 종잇장처럼 얇았다. 추사 선생이 말했다.
“그만 내려놓고 먹이나 갈게.”
허련은 벼루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치열한 연습. 이것이었나, 추사 선생의 글씨와 그림이 그토록 자자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이? 허련의 가슴이 뛰었다. 자신도 벼루에 구멍이 나도록 먹을 갈고싶었다. --- p.43-44
추사 선생의 독서량과 연습량은 실로 엄청났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것으로는 누구에게 뒤져 본 적이 없던 허련이지만 잠깐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추사 선생의 근면함에는 혀를 내둘렀다. 추사 선생은 획 하나, 글자 하나를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하는 연습 벌레였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가가 되고서도 끊임없이 뭇...벼루는 먹을 곱게 갈아 내어 먹물을 만들지만 자신은 잘 닳지 않는 돌이었다. 단단한 몸으로 먹의 살을 조금씩 발라내는 강한 돌덩어리였다. 얼마나 먹을 갈았으면 저 야문 돌에 구멍이 날까? 더군다나 단연 벼루를! 허련은 경이로운 눈으로 추사 선생을 보았다.
추사 선생이 이번에도 무심한 듯 말했다.
“한 열 개쯤 구멍을 내 봐야 겨우 보이는 게 있지.”
허련은 구멍 난 벼루를 들어 보았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에 가장자리는 종잇장처럼 얇았다. 추사 선생이 말했다.
“그만 내려놓고 먹이나 갈게.”
허련은 벼루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치열한 연습. 이것이었나, 추사 선생의 글씨와 그림이 그토록 자자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이? 허련의 가슴이 뛰었다. 자신도 벼루에 구멍이 나도록 먹을 갈고싶었다. --- p.43-44
추사 선생의 독서량과 연습량은 실로 엄청났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것으로는 누구에게 뒤져 본 적이 없던 허련이지만 잠깐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추사 선생의 근면함에는 혀를 내둘렀다. 추사 선생은 획 하나, 글자 하나를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하는 연습 벌레였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가가 되고서도 끊임없이 뭇 명필들의 서체를 감상하고 연구하며 자기만의 서체를 만들어 나갔다. 스승의 문 안에는 배울 게 많았다. 허련은 우러르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추사 선생은 무심한 듯 책이나 화첩을 허련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허련은 그것을 황송하게 받아 꼼꼼히 읽고 살폈다. 그러면 그것이 그때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뿐, 추사 선생은 손님 누구에게도 허련을 제자라고 소개하지는 않았다. 허련은 혼자 있는 시간은 한 시각도 아껴서 책을 읽고, 화첩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 p.68
그림에 미치고 학문에 목말라서 먹으로 양식을 삼아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는가? 아니었다. 알고 보면 젊은 날, 세상에 인정받으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조선 땅 끄트머리 한 귀퉁이에서 까마득한 조선의 중심부를 바라보며 욕심냈었다. 고향과 가족을 던져두고 무수히 오르내렸던 한양길, 사대부가의 높디높은 솟을대문 앞에 서면 어쩔 수 없이 위축되던 자신의 모습에 울컥한 적도 많았다. 그 욕망을 추사 선생은 탓하지 않고 받아 주었다. 욕망해야 이룰 수 있다며 격려해 주고, 기꺼이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스승님!’
허련 영감은 가만히 추사 선생을 불러 보았다.
“압록강 동쪽에 너만 한 사람이 없다.”
바람결에 추사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나 제자 삼지 않는다고 인색하게 굴던 추사 선생이었으나 결국 최고의 칭찬을 해 주었다.
“하하하, 네가 나보다 낫구나.”
추사 선생이 껄껄껄 웃었다. 허련 영감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래, 스승의 칭찬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 스승이 누구신가? 바로 추사 김정희 선생 아니신가! 하하하.”
--- p.138-139

붓으로 정신을 옮기다
남종화는 드높은 학문과 고결한 인품을 쌓은 문인들이 그린 그림으로 문인화라고도 한다.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내면의 정신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것을 중요시하여 학문에 정진함은 물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붓으로 표현해 내는 수련이 필요하다. 그림 하나에 자신의 정신을 모두 담아내어 많은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게 하는 남종화의 매력은 김정희로부터 시작된다. 삭막했던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린 [세한도]는 남종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황량하고 차가운 풍경 속에 꼿꼿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그린 이 작품은 비록 어려움에 처했지만, 선비의 올곧은 정신은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김정희의 마음을 담고 있다. 평생 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천 자루의 붓이 몽당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붓질을 했던 김정희의 예술혼은 허련에게 전수되어 빛을 발한다. 남종화의 정신과 화법, 필체를 고스란히 배운 허련은 산수화와 추사체가 잘 어우러진 [선면산수도]를 그리며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게 된다. 수십, 수만 번의 붓질을 통해 마음을 수련하고 내면세계를 담아냈던 남종화를 통해 당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구어 낸 문인들의 드높은 예술혼을 되새기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역사 알기
부록에 수록된 ‘깊이 보는 역사-그림 이야기’에서는 조선 후기 그림은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남종화의 특징은 무엇인지, 김정희와 허련은 어떤 그림들을 그렸는지 등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의 미술 역사를 엿볼 수 있고, 치열한 열정과 노력으로 그림과 글씨를 완성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