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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서론〉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팔복 중에 여섯 번째의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복 있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들이 복이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것이요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한 것이기에, 이 축복은 참으로 지극히 고상한 것이요 산으로 말하면 최정상을 바라보고 올라가는 복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고귀한 약속이 있는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살펴봄으로써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더 자세히 보며 알며 교제하며 살다가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마주보는 놀라운 은혜들을 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의 중요성〉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거나 그 사람의 환경과 여건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주님은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지성과 감정과 의지와 양심이 자리잡고 있는 사람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몸이 엄청 커도 그 사람의 마음이 종지 그릇철덤 작으면 그 사람이 작게 보입니다. 아무리 사람의 몸이 작아도 그의 마음이 큰 그릇이면, 사람이 크게 보입니다.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이 외적으로 못생기고 흉칙하게 보이고 겁나게 생겼을지라도 그 마음이 한결같이 부드럽고 착하면, 결국 그 사람의 외모와 상관없이 그 사람을 모두 착하고 순하게 봅니다. 이렇듯 사람의 구성 요소 중에 마음이 가장 중요하기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베들레헴의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고자 하였을 때에 첫째 아들 엘리압이 앞으로 나아오자 그 출중한 외모에 빠져서 이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
‘중심’이란 히브리어 ‘레바브’ 곧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판단과 감정의 원천인 속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을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서 막내 다윗은 아직 나이도 많이 어렸지만 그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니 진실하고 신실하고 강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감정이 고상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어린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께 맞았기에,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 왕 다음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목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 중에는 마음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리새인들은 마음은 어떻든지간에 밖으로 보이는 행실이 경건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마음이 어떻든지간에, 그 동기가 어떻든지 간에 금식과 기도의 외적인 경건 행위만 행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줄 알고 스스로 만족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채소의 십일조까지 드릴 만큼 외적인 점에서 열심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위선자라고 서슬퍼런 책망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던진 말씀이 이것입니다.
마태복음 23:25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5~28)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외적인 행실보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마음을 살피고 달아보시어, 그 마음이 정결한지 더러운지, 그 마음이 의로운지, 불의한지, 그 마음에 긍휼과 자비가 있는지 아니면 방탕과 탐욕이 가득한지를 달아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외적인 말이나 행실을 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실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말과 행위로써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절대로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말이 곱고 기도가 화려하고 겉으로 드러난 봉사의 행위가 희생적인 것으로 보여질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깊은 속에 있는 마음의 동기까지 다 들여다 보십니다. 그래서 그 행실의 동기가 진정한 우애와 사랑과 자기 부인의 정신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자기 만족과 우월감이나 성취감을 위한 것인지도 다 분별하시는 것입니다.
〈인간 마음의 전적 부패〉
그러므로 이렇듯 사람의 마음 속을 속속들이 다 들여다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지켜가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 여섯 번째 복은 인간적으로 보면 달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모든 마음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본질적으로 부패하고 죄로 인하여 완전히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옛 뱀 마귀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인하여 징벌을 받아서 그 속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도 부패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사람마다 그 차이가 좀 있을지 몰라도 반드시 다 그 마음이 부정해졌고 부패해졌고 악이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책망하시면서 학 식탁에서 친히 이르신 이 말씀은 바로 그 점을 선명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20 이하의 말씀에서 이르기를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가복음 7:20~23)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손을 씻고 발을 씻으며 음식을 먹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것을 지키지 않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책망하며 미워하며 정죄했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온갖 더러운 죄악들과 그 죄악에서 나오는 이런 저런 판단하는 말과 비판하는 말 속에서 온갖 더러움이 나오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 이래로 그 마음 속에 온갖 죄악이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그리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나님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도 없습니다. 예레미야 13:23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민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탄식합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이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이렇듯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이 이렇게 깊이 부패해 있고 거짓되고 죄로 물들어 있어서 더럽기 그지 없으니,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후에 그들에게 제사장들을 세우시고 소와 양과 염소의 제물의 피로써 중보의 제물을 삼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죄를 지적하며 회개할 수 있는 영적 각성의 은혜를 베풀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너무나 강렬하고 그 부패의 깊이는 너무 깊어서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 57:20 말씀에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늘 더러운 진흙탕물을 수시로 솟구쳐내는 진흙 바다처럼 온갖 악들이 요동치듯 우리 마음을 흔들어 대며 더러움을 내뿜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고 의롭고 정결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래적 마음이 이렇게 더럽고 악하기 때문에 선민 이스라엘과 선민 유다조차도 어쩔 도리 없이 각종 우상 숭배와 온갖 잡신 숭배에 물들고 탐욕과 착취와 압제와 불화와 미움 등에 사로잡혀서 그들의 삶과 행실이 다 타락했던 것입니다.
〈새 언약 시대의 약속〉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결국 메시야를 보내시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고 새 마음을 넣어주신다는 새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31 이하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31~34)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의 범죄로 옛 언약이 파기되고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그들에게 선포하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전 시내산 언약 때처럼 돌판에 언약을 새기지 않고 이제는 그 백성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놓아서 그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지고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해주시고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될 것이 예고되 있습니다.
그러한 약속은 에스겔서 36:24 이하에서도 동일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에스겔 36:24~27)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맑은 물로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모든 더러운 것에서 정결하게 할 것이며 새 영 곧 성령을 마음속에 두고 마음도 새 마음으로 바꿔 주시고 하나님 앞에 딱딱한 완악한 마음 대신에 하나님께 순종 잘하는 새 마음을 줄 것이며 부어진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즐겁게 행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담 이래로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더럽고 악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완악해지기 일쑤인데 이제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우상 숭배와 온갖 죄를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그 백성의 마음에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법을 즐겁게 능히 지킬 수 있게 해주실 것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새 언약의 성취〉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이나 결심으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선한 언약 가운데서 새 마음을 받고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게 되면 그는 이제 마음이 청결해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일이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죄사함을 주시고 의롭게 하시며 승천하신 후 보내주신 성령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믿는 자들은 이제 새로워졌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큰 소리로 외친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내적 변화에 대한 찬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 지극히 복이 있다고 하신 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게 된 신자들은 다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그 마음이 청결하게 되었으니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따라 새 생명이 그의 삶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는 청결하게 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거듭나면서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 예수를 믿는 성도에게는 그 안에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거하십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그를 도와서 점점 죄를 이기고 의에 거하게 하시고, 더러움을 씻고 깨끗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에 대하여 3:5 말씀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어 거듭날 때에 우리 영혼은 놀랍게 씻어지는 은혜를 입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점점 우리를 새롭게 해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점점 우리 마음이 실제적으로 청결하게 변화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시키는 힘은 인간의 결심과 노력을 초월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적극 나서서 새 마음과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을 통하여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써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지속적 영적 싸움〉
물론 이렇게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일은 주님 나라 들어갈 때까지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법적으로 죄를 완전히 사해주시고 영적으로는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새 사람을 덧입었지만, 실제적으로 주의 백성들에게 타락한 옛 본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새 백성들에게 새 마음을 주셨지만 옛 생활에 익숙한 옛 사람의 마음이 엿보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도를 즐거워하며 행하도록 돕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는 악한 영들이 방해꾼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 곧 마귀와 마귀에게 속한 영들은 그 이름이 ‘더러운 귀신’으로 불리워집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귀신들은 반복적으로 ‘더러운 귀신’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부정합니다. 도덕적으로 무질서합니다. 귀신들은 탐욕스럽고 모든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투명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만듭니다. 반면에 성령님은 거룩하고 질서있고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그래서 귀신들이 역사하면 사람의 마음도 복잡해지고 생활도 무질서해지고 탐욕스럽고 분쟁과 불화가 일어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더러운 귀신들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심하지 말고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권적으로 이미 다 이루셨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우리 안에서 타락한 옛 본성이 아직 완전히 죽지 아니하였으며, 세상의 유혹 역시 강력하며, 더러운 영 또한 계속하여 우리 마음을 미혹하여 더러운 것들을 사랑하게 만들고 혼잡하게 만들고 우리 마음 속에 진흙탕물을 늘 솟구쳐내는 진흙 바다처럼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일을 평생에 늘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가꾸는 일을 위하여 평생의 노력을 다합시다. 혹은 건강을 가꾸기 위하여 평생의 노력을 다합시다. 세상에서 자기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하여 평생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르신 대로,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가꿔가는 일을 지상 최고의 일인 줄 알고 이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의 경계로 삼을 때 마음이 청결하게 됩니다.
시편 119:9,11 말씀에 이르기를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묵상하기를 힘쓸 때에 우리 마음에 죄와 더러움들을 더욱 밝히 깨닫게 되어 그것들을 물리치고 정결하게 하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회개함으로 마음이 거룩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5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1:9 말씀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죄와 더러움이 스며들어 있는 것을 깨달을 때에는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내어놓고 죄와 허물을 고하면서 참회할진대 놀랍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할진대 우리 마음이 청결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9:13 이하에 이르기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브리서 9:13,14)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로우신 피를 마음에 의지하며 그 피를 믿음으로 마음에 계속 뿌릴진대, 그 피가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늘 마음의 정결함을 사모하여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시편 51:10,11 말씀에 다윗이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우리도 늘 우리 마음이 정결한 마음 상태를 지켜가게 하고 우리 안에 부정한 것들이 틈타지 않도록 늘 정결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며 거룩하신 성령으로 충만함을 달라고 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이렇게 마음을 청결하게 가꾸려고 힘쓸진대 어떠한 은혜와 축복을 얻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지극히 영광스러운 축복의 약속 말씀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뵙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완전한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며 경배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뵙고 경배 드리는 그 천국 자리는 오직 흰 옷을 입고 거룩함을 입은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럽고 악한 자들은 그 자리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시편 24:3 이하에 다윗이 노래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옷을 희게 씻고서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천사들과 함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 우리 구주께 영광의 찬송을 올려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만 하나님을 뵙는 것이 이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마음이 청결한 주의 백성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뵙는 축복을 누립니다. 물론 이 땅에 살아가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뵙는다면 그 육신이 견디지 못합니다. 과거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뵙기 원했지만 하나님을 보면 살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호렙산 반석 틈에 두고 그 손으로 그를 가린 후에 하나님의 등만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뵙는 특권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계시적 은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계시의 온전한 현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점을 마음으로 깊이 깨닫게 되는 은혜를 종종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깨달아 알고 깊은 은혜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뵌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가리키기에, 정녕 하나님을 이 땅에서도 뵙는 축복을 마음이 청결한 자가 점점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 속에서 고난과 시련 속에서 믿음으로 인내하는 중에 하나님을 더 알고 뵙는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동방의 의인 욥이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명령을 잘 지켰습니다만 하나님을 뵙는 은총까지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이 극심한 고난과 역경을 믿음으로 인내하는 중에 하나님은 폭풍 중에 그에게 나타나 그의 영광을 보여주며 그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욥기 42:5 말씀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이렇듯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하나님을 점점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점점 그의 말할 수 없이 크신 영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하나님을 흠모하는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까이 바라보며 점점 더 가까이 교제하게 됨으로써 서로 닮아가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18 말씀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서로 깊이 바라보며 사랑하며 사모하는 자들은 어느틈엔가 닮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그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더욱 사모하며 교제하다 보니, 어느틈엔가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정녕 주님을 늘 흠모하며 정결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본 자들은 그 날에 정녕 홀연히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 권면〉
그러므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사도 요한은 그의 말년의 편지 요한일서 3:2,3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무엇보다 주님의 얼굴을 뵙기를 바라며, 그를 맞이할 준비를 차근차근하게 할진대, 때가 되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놀랍게도 재림하시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그 빛 가운데 영광스러운 모습을 우리도 변화된 몸으로 보며 그를 영광 중에 뵙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 모두 이 소망을 가지고 주님이 깨끗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늘 깨끗하게 합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뵐 것임이요”
한평생 마음을 청결히 하는 일에 힘써서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을 뵙는 은혜를 누리다가, 끝날에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한 것이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뵙게 되는 영광스러운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