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유명한 여류 소설가 신 달자 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대담을 나누던 중에,
진행자가 남편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9년 동안 시 어머님 병간호를 극진히 해드렸고, 20년 넘게 남편 병 수발을 불평 없이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나! 여보 비 좀 봐요. 당신이 좋아하는 비가 오고 있네요."하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남편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말없이 묵묵했던 남편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 졌습니다.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채 우두커니 고독을 새기며, "남편이란 존재는 아내에게 무엇을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가
아닐까요?"라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어느 가정에 무뚝뚝하고 고집 센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예쁘고 착하고 애교가 많았기 때문에, 아내의 상냥스러운 말과 행동이
남편의 권위적인 고집불통과 무뚝뚝한 불친절을 가려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하는 길에 가게에 들러 두부 좀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이 '남자가 궁상맞게 그런 봉지를 어떻게 들고 다니냐?' 면서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아내가 직접 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 갖고 오다 음주 운전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내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유품을 바라보다 검은 봉지에 담긴 으깨진 두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고 슬픔과 후회가 동시에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의사가 사망 사실을 확인해 주며 덮여 있는 흰 천을 벗기자 아내의 피투성이 얼굴이 드러났
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자 뜨거운 눈물이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다 보니,
남편은 그만 아내를 부르며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슬픔이 조금 가라앉자 남편은 난생처음으로 아내의 차디찬 손을 붙잡고 생전에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했습니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을 먼저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이 무뚝뚝한 아내가 되고 내가 상냥한 남편이 되어 그때는 내가 당신을
왕비처럼 잘 모실게요...."
그날 이후 남편은 어느 식당을 가든지 두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소홀히 하지 마세요.
한평생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택시 한 대 놓치면 기다리면 되지만, 사람 하나 놓치면 더는 찾기 어렵습니다.
마음이 안 맞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리고 가끔 잔소리를 하고,
이따금 화를 내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라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옆에 있다면 그것 만이라도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 그 자체가 아닐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후회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덜 후회하며 사는 방법이 있다면,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 자신과 현재에 최선을 다 하라는 것이며,
그러려면 오늘 즉, 지금 이 시간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보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일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며,
미래의 시간보다는 지금의 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것
이것이 지혜이며 평생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늘 반성하며 살피는 것으로 이것이 '있을 때 잘해'의 지혜이며 해답입니다.
서러움 없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 위하여 누가 먼저가 아닌 서로 먼저 이 말을 꼭 전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옆에 있어 주셔서 정말 고맙고 행복합니다."
✿ 옆에 있을 때 서로 잘해 주는 배려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함께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받은 메일 옮김>
첫댓글 택시 한 대 놓치면 기다리면 되지만, 사람 하나 놓치면 더는 찾기 어렵습니다.
딱 본인한테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지금은 잘할려고 노력하지만 갈수록 식구의 잔소리가 끝이 없어 이어져도 이제는
노래소리라고 듣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꾸는 않하고 살으니 마음이 좀 편한것 같습니다.
화를 내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생길가봐 편하게 대하는 습성이 몸에 벤것 같습니다.
서로 옆에 있다면 그것 만이라도 위안이 된 기분입니다.
남은여생 최선! 최선 하면서 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저번 글중 "딸의 놀라운 지혜" 댓글 참고 해보세요★
뚝배기 님! 부부가 무슨 사이이던 가요?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떠나 34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남편은 그런 아내를 만 20년이 지난 어느 날 만났습니다.
그러고 헤어졌습니다. 30년 후 소식이 왔습니다. 다시 만난 남편(?)에게 버림 받았다고.
그러고 3년이 지나 그 아내는 대장암에 걸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남편이 찾아가 "나는 당신을 미워한 적 없어. 그러니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꼭 나아" 그러자 아내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이 다정히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그게 부부 사이 입니다.
뚝배기 님! 이제 댓글 보았습니다.뚝배기 님이 궁금하여 저의 폰 번호를 남길까도 생각했습니다.
삼촌 분 중 사범학교 나오신 분이 두 분이셨네요. 한구 씨인지 연구 씨인지는 모르겠는데 분명한 것은
팔마제에 있던 사범학교 맞습니다. 두 분이 살아 계시다면 연락이 되신다면 이 에피소드 한 번 말씀
드리고 제가 그처럼 그리워 하더라고 해주세요.
"하교 길에 구암 동에 있던 토마토 밭에서 토마토 먹기 시합한 이야기 입니다.기억하실 거예요.
하교 길에 만나면 같이 다녔거든요. 제가 중학생일 때 선배 님이셨으니 지금 살아 계신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뵙고 싶기도 합니다.
@쇠뭉치 숙부님 두분중 한분은 전북장수(91)에서 농장(사과)일하시다가 자식이 이어받아서
하고 있으나 약간의 치매기가 있습니다.
또 한분은 용인(89)에 사시면서 산행으로 여생을 보내고 계십니다. 두분다 창오
학교 다니시고 그 이후로는 군산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 교장까지 하시다가 정년 퇴직하셨고, 저(78)는 초등부터 군산에서 살면서 창오학교는
다니지 못했습니다. 간혹 현재 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실때는 방학때 시골(깐치멀)에
가곤 하였고 어머님 돌아가신 이후로는 거의 가는일이 없고 종산에 시제만 가곤 하여습니다.
저의 현재 생활은 주간에 나가서 일(직장)보면서 토,일요일은 근교 산행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면서 참고가 되셨는지?
아무쪼록 노후에 건강관리 잘하시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