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하룻강아지란 말은 예사로 써서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됨됨이가 아무래도 이상한 말이다. 뭔가 제대로 된 말 같지가 않다. 하룻강아지란 말은 태어난 지 하루가 된 강아지란 뜻이겠는데, 이 말이 제값을 하려면 태어난 지 이틀이 된 강아지는 이틀강아지, 태어난 지 사흘이 된 소는 사흘송아지와 같은 말이 돼야 하는데, 그런 말은 있지도 않을뿐더러 되뇌어 봐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하룻강아지란 말의 만듦새가 자연스럽지 못한 억지춘향식 조어라는 증좌가 된다. 또 문맥적 의미로 보더라도 앞뒤가 잘 맞지 않고 매끄럽지 못하다. 태어난 지 하루가 된 강아지라면, 아직 눈도 떨어지지 않아 호랑이는 고사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인데, 그런 강아지가 범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지나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하룻강아지란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말에는 사람의 나이와는 달리 가축의 나이를 세는 말이 따로 있었다.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사람은 한 살이라 하고 가축은 하릅이라 하였다. 두 살은 두습․이듭이라 하고, 세 살은 세습․사습, 네 살은 나릅, 다섯 살과 여섯 살은 각각 다습․여습, 일곱 살과 여덟 살은 각각 이롭․여듭, 아홉 살은 아습․구릅, 열 살은 열릅․담불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지금 쓰는 속담 속의 하룻강아지는 바로 이 하릅강아지가 바뀐 말이다. 이 속담을 오랜 기간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하릅을 하루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