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첫 만남에서 선입견의 1순위는 얼굴이다. 다음으로는 고운 음성으로 들려주는 목소리이다. 끝으로는 이상적인 얼굴의 시원한 구강구조에서 목 울림 대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들려주는 정감 있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끝에 다시 만나자고 하얀 종이에 적어주는 예쁜 손 편지는 연인들에게는 영원한 간직 품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예쁜 손 편지 연인의 사연을 깊이 간직하면서 인연이 되어 결혼하여 오손도손 해로하는 부부도 많다.
나의 유년기 시절만 해도 남녀 간의 만남은 내외(內外)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연애는 모럴 해저드로 주목되어 사춘기의 남녀 간 눈 맞춤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이성(異性)은 본능적 자극 이어서 타인의 눈초리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청춘남녀들도 있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이 연애하던 방법은 전화는 없었다. 그리고 남의 눈을 피하여 소식을 전할 방법은 오직 손 편지가 유일의 방법이다. 그래서 악필(惡筆)의 젊은이들은 손 편지 잘 쓰는 친구에게 별도 사례(謝禮)를 조건으로 대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참으로 성춘향과 이몽룡 시절의 사랑 이야기인 것 같다.
지금 학생들이 손 편지를 쓰는 경우는 정규 고사에서 주관식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이 유일하다. 젊은이들은 취직시험에서 역시 서술식 답안지를 쓰는 경우가 필수적이다. 보통 사람은 행정관청에서 민원서류 신청할 때 간단히 몇 글자 쓰는 경우가 전부이다. 그래서 혹자의 글씨로는 학력 정도를 가름하기는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학생들의 올바른 글씨 쓰는 방법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붓으로 글씨 쓰는 방법을 익히는 습자(習字) 시간을 미술 시간에 포함해 좋은 글씨는 학급 게시판에 붙여 놓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펜과 잉크를 사용하여 바른 글씨를 쓰는 펜글씨로 원고지 쓰는 시간도 있었다.
요사이는 각종 SNS에서 손 편지를 대신해주고 있어 젊은이들의 손 편지 쓰는 기회마저 빼어갔다. 어렵고 힘든 것을 참고 이겨내는 것도 인생 수업의 과정인데 젊은이들에게는 그 취약점이 노출되기도 한다. 세상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사는 경우도 있으나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걱정되기도 한다.
취업이 어려운 시절 펜글씨 자격증을 취득하여 필경사로 취업하는 사람도 있었다. 원지에 철필로 글씨를 써서 등사(謄寫)하여 학생들의 시험을 치렀던 시절 교사에게는 예쁜 글씨 쓰기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수업 시간의 판서도 그렇고 학생들의 평생 기록부가 될 그 옛날의 생활기록부에도 선생님 손 글씨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화에서 언어의 바른 선택, 조리 있는 말솜씨 등을 분석하여 상대방의 여러 가지를 짐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손 편지로는 문법 등을 확인할 수 있으나 필체로는 다른 것을 분별하는 데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얼굴도 잘생기고 말씨도 고우며 손 편지까지 잘 쓴다면 전자문화 시대에 적어도 외모적으로는 조건을 갖춘 상남자로 생각된다.
요사이 국가 최고 지도자의 손 편지가 아닌 텔레그램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 부인의 정감 어린 손 편지에는 국민적 감동으로 동조하고 있다. 아무리 만능 컴퓨터 시대라 해도 인간의 정을 기계적 문자가 손 편지를 대신할 수 없음을 반증의 이유로 대두되고 있다.
생전 나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친정이나 출가한 딸들에게 빨간 줄이 세로로 인쇄된 편지지에 세필(細筆)에 먹물을 묻혀 가며 안부를 전하는 손 편지 대필 모습을 어려서부터 많이도 보았다. 문자는 모르던 개구쟁이 시절 어머니 흉내를 내기 위해 울타리 사철나무 잎을 따서 탱자나무 가시로 끄적거려 보기도 했다.
이렇게 어머니의 손 편지 쓰는 법을 자주 보아 왔다, 아마도 소꿉놀이에서 또래에게 세상 처음 연민의 정으로 사철나무 잎사귀에 탱자나무 가시로 지구상에는 없는 글씨로 손 편지를 써서 또래 아이에게 주었다. 어머니의 손 편지를 흉내 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천성이 내성적인 내가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대견한 생각이 든다. 그 용기가 지금도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예쁜이한테 손 편지가 왔다. 나와 비슷한 동 연배인데 어쩌면 이렇게 손 편지를 예쁘게도 잘 썼나! 그리고 손 편지 내용도 내 나이에는 생각 못했던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수준 높은 편지에 고마워하면서 나의 역량을 견주어 볼 때 갑자기 열등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이렇게 손 편지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콘셉트로 나타내는 시대도 있었다.
손 편지는 인간의 정을 꾹꾹 눌러서 담아 보내는 진실의 마음이다. 잉크 색깔 글씨체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도 받는 사람은 나름의 해석으로 감명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무미건조한 전자음 통화나 문자가 대신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은 더불어 사는 정에 있는데 전자 시대에는 고립된 삶이 가중되고 있다. 손 편지가 어려우면 직접 만나서 정감 어리고 따뜻한 말씨로 손 편지를 대신할 수 있는 대화라도 있었으면 한다.
오늘따라 손 편지가 가슴을 울컥하게 했던 예쁜이가 보고 싶다. 그 옛날 예쁜이는 어느 하늘 아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파란 하늘을 편지지 삼아 하얀 구름으로 손 편지를 써 본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202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