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전생·현생·내생(三生)이 보인다
과거 했던 행동이 현재의 몸… 윤회와 업도 작용
2024-02-15 박정원
글·사진. 박정원 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종교의 기원이 되고, 육체의 내적 존재가 되는 영혼. 영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 육신이다. 영혼과 육체는 인간을 이루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런데 영혼은 존재한다고 대부분 믿고 있지만 이를 본 사람은 사실상 없다. 육신은 보이는 형상 그 자체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이 법신은 색체(色體)이기 때문에 모든 물질에서 능히 나타나고 있다. 본래 물질과 정신은 둘이 아니다. 물질의 성질은 지혜와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에 형상이 없는 물질에 의하여 지신(智身)이라고 이름 한다. 그리고 지혜의 성질은 물질과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에 법신이라고 이름하며 법신은 일체의 곳곳에 두루 존재한다.’
육신과 영혼이 따로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기신론(起信論)>의 색심불이(色心不二)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물질 밖에 정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色外無心) 정신 밖에 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心外無色)’ 라는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기원 전 330년 전후 실존했던 마명대사는 “일체법이 진여(眞如) 아닌 것이 없으며, 이 진여의 자체상은 과거에 출생한 것도 아니고, 미래에 멸망하는 것도 아니며, 영원히 불변한 것이다.(非前際生 非後際滅)”라고 했다. 진여는 생과 멸이 없고 피조물이 아니며, 불변의 진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육신은 전생, 현생, 내생 등 삼생을 아우르고 있다는 얘기다.
물질과 정신의 생명현상에 대해 불교에서는 연기설에 의해 모든 것들이 조건 지워진다. 유정은 지수화풍 사대로 합성된 육체를 가진 생명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업(業)이론이 개입한다. 붓다가 제시한 업이론의 핵심은 자아의 절대성, 영속성, 항상성, 동일성, 불멸성, 실체성을 거부하면서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도덕실천의 가치를 강조하여 개인의 자유의지적 선택·결단의 의미를 강조하는 데 있다. 영혼, 절대자, 혹은 절대법칙은 존재하지 않으나 윤회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당위가 자유의지적 도덕실천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 말, 마음에서의 올바른 행위(업)를 통한 주체적인 도덕 실천이 각자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몸의 문제는 윤회와 열반, 그리고 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이해는 이 세 개념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가 어디서 왔고(Where am I), 어디로 가는가(Where am I going?)’라는 본질에 관한 의문이다.
불교에서는 윤회의 과정을 생유, 본유, 사유, 중유 등 사유로 설명한다. 생유는 전생의 몸을 벗어나서 전생의 업력으로 말미암아 이승의 부모를 만나, 어머니 태내에 탄생하는 순간의 생명체를 뜻한다. 본유는 모태에 출생한 태아가 지상에 출생하여 일생을 사는 동안을 말한다. 사유는 업력으로 말미암아 출생한 몸은 무상하기 때문에 생, 노, 병, 사가 반드시 있으며, 이승의 인연이 다 된 죽음의 순간을 의미한다. 중유는 사후로부터 저승에 다시 출생할 때까지의 중간 생명체이다. 이 중유는 업력에 따라 사후에 즉시 태어나기도 하고, 1주일에 태어나기도 하며, 2~3주일 내지 7주일이 되어 저승에 출생하게도 된다. 그러나 저승의 인연을 만나지 못하면 공간에 오랫동안 머무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소승불교는 사유설로 중생들의 윤회를 설명한다.
불교의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 몸은 삼생을 전부 아우르고 있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진다. 굳이 전생에 지은 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재 나의 몸은 과거에 내가 먹고 놀고 행동했던 결과물이고, 현재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 나의 몸 상태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나의 몸을 내가 얼마만큼 사랑하고 아끼느냐에 따라 좋은 몸을 유지할 수 있다. 이 평범한 사실을 왜 지금 깨달았는지 아쉬울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온 몸이 아프고 쑤신다. 젊었을 때 왜 나의 몸을 조금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막심하다. 내생에서나마 조금 더 좋은 몸을 받기 위해 뒤늦게 몸을 아끼고 조심하면서 관리한다.
유교에서도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고 했다. 굳이 효도라고 하지 않아도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 했거늘, 나의 것인 양 철 모르는 젊은 시절 함부로 사용한 것이 지금의 몸이 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 태어남은 색·수·상·행·식의 오온(五蘊)과 감각기능을 획득하는 탄생을 의미한다. 색은 지수화풍의 사대와 이 사대가 만든 물질이다. 수는 감수작용, 상은 표상작용, 행은 의지, 즉 의지적 행위, 식은 인식주체, 즉 인식작용을 의미한다. 감각기능은 안이비설신의 육근에 의해 작용하는 감각을 말한다. 태어남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모든 생명에 해당하는 보편현상이며,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것이다. 또한 태어나는 장소는 인간계에 국한되지 않고 천상, 아귀, 축생, 혹은 지옥의 세계가 될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려움은 흔히 눈먼 거북이가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판자, 그것도 구멍 뚫린 판자를 만나 목을 그 구멍에 넣는 것과 같다고 비유된다. 인간으로 태어남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이 심오한 불교의 가르침이 우리 몸의 신화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사실을 모르고 과거 내 몸을 함부로 했으니 현재 내 몸이 아프고 쑤신다. 새해부터라도 내 몸을 소중히, 감사히 다뤄 미래와 내생에는 좋은 몸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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