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를 영접하라 (마 2:1-2)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오늘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반가운 마음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로 인사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란 영어로 ‘즐겁게’라는 뜻의 메리(Merrily)와 그리스도라는 뜻의 크리스트(Christ)와 예배라는 뜻인 미사(Mass)를 합친 합성어로 ‘즐겁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자’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아기 예수를 영접하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아기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죄에 빠져 어둠과 절망 가운데 영원히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안타깝게도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알지 못하고 혹은 알면서도 악해서 메시아를 배척했습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중심에 영접할 수 있을까요?
1. 예수를 자신의 주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1-3절에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헤롯이 왜 소동했습니까? 자기가 유대의 왕인데 유대인의 왕이 났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의 내방은 헤롯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 헤롯은 B.C.37년에 왕이 되어 약 40년간 유대를 통치한 사람으로, 다윗의 자손이 아닌 이방 이두메 즉 에돔 사람으로 유대를 통치할 정통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가 혼란한 틈을 타서 탁월한 정치 술수와 아첨을 통해 분봉왕 칭호를 받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왕을 기다리는 메시아 사상 역시 신경을 거슬리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반란이 일어날지 몰라 믿음은 없으면서도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지어주거나 반대로 폭압으로 백성들을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하니 소동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세상 왕권을 빼앗으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헤롯은 자기를 대신할 왕이 탄생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즉 자기를 위해서 오신 주님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주로 부르면서도 나의 왕 나의 주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왕이 되어 있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헤롯이 바로 우리의 완악한 마음입니다. 입으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진정 나의 왕으로 높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와 은사를 죽인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2.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 영접합니다.
4-6절에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성경 지식은 해박했지만 지식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종이라면,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성경까지 제 눈으로 확인했다면, 함께 예수님을 찾아 경배해야 마땅함에도 조금의 미동도 없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존경 받고 잘 먹고 잘사는데 아쉬운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면서도 메시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는 아기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만 예수님을 중심에 중심에 모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영접합니다.
아기 예수를 영접했지만 싸늘한 마구간에 모신 사람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여관집 주인입니다. 눅2:6-7에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이유는 로마 가이사 황제가 천하에 내린 호적령으로 고향을 찾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관 주인이 쓰는 안방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영업이라지만 그 이전에 사람입니다. 마굿간에서 아기가 났는데 안방이라도 내놓아야 옳지 않겠습니까? 이런 차가운 마음으로는 예수를 중심에 모실 수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찬송이 울려 퍼졌지만 아직도 아기 예수는 구유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함이 없다면 그 마음 중심에 예수님이 계실 리 없습니다. 바쁘다. 힘들다. 그러나 바쁘지 않는 사람 어디 있으며 힘들지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하면 무엇도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려면 진정 마음으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아기 예수님처럼 우리 곁에 찾아와 계십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만한 헤롯처럼, 믿음 없는 종교지도자들처럼, 사랑 없는 여관 주인처럼 되지 말고 예수를 주로 믿고 섬기고 사랑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