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팔랑 마을에는 채옥이 할매가 산다/윤영
아이들이 집을 얻어 나가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공허감 탓일까. 두어 가지 반찬과 밥을 쟁반에 담아 텔레비전을 친구삼아 마주 보며 먹는 버릇이 생겼다. 딱히 즐겨보는 프로도 없지만 리모컨은 언제나 주위에 진을 치고 있다. 오늘도 늦은 점심을 먹다 보니 인간극장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먹은 밥그릇까지 밀쳐두고 팔랑마을의 채옥이 할머니 연가와 지리산의 사계에 넋을 뺐다. 채옥이 할머니는 올해로 75살이다. 꽃다운 열여덟에 지리산 골짜기로 시집와 4년 만에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냈다. 네 살배기 어린 아들과 먹고살기 위해 무작정 남원 시내로 나갔다. 이집 저집 식모살이로 전전하다가 자그마한 식당을 차렸지만 건물주가 자꾸 집세를 올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스무 해 전 200여 년 된 억새집, 새신랑을 떠나보냈던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랫마을보다 하늘이 더 가까운 마을이다. 버스도 택배차도 다니지 않지만 그녀는 늘 싱글벙글한다.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도전과 호기심과 자신감이 충만하다. 얼마 전에는 운전도 배워 빨간 승용차도 한 대 사고 어린 시절 못다 한 음악 선생님의 꿈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씩 읍내에 나가서 피아노를 배운다. 집으로 돌아오면 숙제는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앉은뱅이 전자오르간에 붙여 놓은 종이 음표가 너덜너덜하다. 아들이 사준 스마트폰을 배우고 익혀 산중의 일상들을 카메라로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두 귀 멀쩡할 때 세상의 이치라도 알아야 한다며 뉴스만은 꼭 시청한다.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저녁이면 일기를 적는다. 딸 같은 며느리의 암 투병에 가슴 아픈 기도도 적고, 낮에 아랫마을에서 두어 잔 얻어 마신 막걸리 맛도 적는 할머니 두 뺨이 열아홉 색시다. 그녀의 삶은 신이 부여한 베풂의 신이 아닌가 싶을 만큼 하루가 바쁘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아랫배미에 팔순을 훨씬 넘긴 언니가 혼자 산다. 채옥이 할매는 온갖 푸성귀와 이거저거 모아 차에 싣고 귀 먹고 몸 아픈 언니를 챙기러 간다. “언니 나 왔당께.” 이내 몸이 바빠진다. 목줄 풀려 마당에 날뛰는 강아지를 붙들어 매고 모아뒀던 옷가지와 이불을 빨아 널고 언니를 부축해 가까운 온천을 찾는다. 말갛게 꽃단장시킨 언니에게 저녁 밥상을 차려 먹이고 해가 지기 전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오는 그녀의 빨간차를 보면서 새삼 끈끈한 혈육에 콧잔등이 찡하다. 며칠이 흘렀다. 이번에는 꽤 먼 서울을 다녀올 참이다. 워낙 먼 길이라 운전이 쉽잖아 방송국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십여 년을 누워있는 올케와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남동생을 위해 온갖 밑반찬과 몸에 좋다는 효소들을 챙기느라 손이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떠나고 나면 외로울 집을 위해 마루에 있는 라디오를 켜놓고 떠났다. 아무도 없는 빈집. 첩첩산중 물소리를 배경으로 먼지 뽀얀 라디오는 뉴스며 노래로 번갈아 가며 주인 대신 집을 지킨다. 팔랑마을에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 새순이 돋아나고 진분홍 철쭉이 팔랑치 능선을 물들였다. 어미 닭이 품은 병아리가 산짐승에 물려갈까 봐 철망으로 덮어 씌어놓고 바랑에 점심 먹을 도시락을 싸서 넣는다. 집을 벗어나니 온갖 산나물과 꽃이 지천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뜯다가 놀다가 배가 고프면 계곡에 앉아 밥을 먹고 세수도 하고 목도 축인다. 알프스에 하이디가 있다면 지리산엔 채옥이 그녀가 있다. 가을이 왔다. 매년 봄이면 지붕에 덮을 억새를 이맘때 베어다 놓아야 한다. 친정 동네 친구들이 모여 억새를 베어주고 지붕을 이어준다. 산중에 한기가 돌기 시작하면 그녀의 손놀림은 쉴 새 없다. 도토리묵을 쑤고 토종닭을 잡아 능선을 넘어온 등산객들의 식사를 챙긴다. 식사를 챙겨주고는 할 일이 많다며 이내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할매요 우리 식사도 안 끝났는데 계산은 우짤까요?” “뭐시 암데나 두고 가랑께. 없으면 다음 세상에 만나지거든 주던가.” 산자락 붉은 감나무도 몇 잎이 남지 않았다. 팔랑마을에 겨울이 왔다. 그녀는 동면에 들 준비를 한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얼어붙어 고립무원이 따로 없다. 산짐승을 위해 도토리와 쪼갠 사과도 길목마다 놓아야 하고 수돗물도 얼지 않게 덮어야 하고 고로쇠 받을 호수도 살펴봐야 한다. 추녀 끝에 우거지가 바짝 말라가고 저녁답이 되자 눈이 펑펑 내린다. 가마솥 뚜껑에 올려 둔 목장갑에 김이 풀풀 번진다. 이른 저녁을 마친 채옥이 할매는 또 일기를 쓴다. 눈발 들이치는 덧문 안으로 느리지만 찬찬한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 매번 춥고 덥고 배고프고 쓰리기만 한 것도 아니다.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뜨건 맛 찬 맛 품앗이처럼 돌려주고 돌려받으며 오롯이 한세월을 견뎌왔다. 돌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한때가 또 지나간다. 채옥이 할머니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았다. 문득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젊어서 ‘내가 이걸 하면 남한테서 욕먹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남에게 두려울 것이 없다면 살다 보면 자꾸 자신이 생겨요.’
나는 여태 뭘 했을까. 뭐가 두려웠을까. 무맛에 발을 들여놓고 철저하게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무섭다는 이유로 운전은커녕 자전거도 배우지를 못했다. 호기심은 갈수록 줄어 세상의 쓴맛 단맛을 미리 꿰차고 있는 듯 체념하고 산 지 오래다. 해만 바뀌면 쓰다만 일기장은 서랍에 뒹군다. 살기도 바쁘고 버거운데 골치 아픈 뉴스는 ‘뭣하러 봐’ 라며 채널을 바꾼다. 어릴 적부터 배우고 싶었던 그림에 대한 미련도 열정이 부족한지 여태 마음뿐이다. 그러니 나를 보듬고 세상을 보듬을 에너지가 어디서 생기겠는가. 나는 어쩌면 채옥이 할머니보다 더 늙은 삶. 쉰에 이미 팔순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 | |
첫댓글 간결한 문장, 자연스런 묘사에 재미있게 글을 읽으며 작가의 마음이 제 마음인 냥 공감이 됩니다. 채옥 할머니를 통해 힘을 얻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