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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가, 4호선 점거로 지하철 연착
혜화역 20분, 서울역 40분 정차
성난 시민 “장애인이 무슨 예산 요구를 한다고”
장애인이 지하철 점거한 이유, 모든 약속 파기한 서울시 때문
혜화역.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들이 세로로 띠를 이루고 있다.‘특별교통수단 수도권 전역 운행 보장하라!’, ‘특별교통수단 2022년까지 782대 도입 약속 이행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성난 시민 사이에 둘러 싸여 있는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
오늘도 ‘못된’ 장애인들 150여 명이 지하철을 점거했다.
22일 오후 2시 10분에 혜화역을 들어선 오이도행 4호선 열차는 20분간 출발하지 못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을 출발하지 못하게 막아섰기 때문이다.
2시 30분경, 우여곡절 끝에 출발한 열차는 2시 40분쯤 서울역에 도착했다. 장애인 150명을 태우고 온 4호선은 서울역에서 또 오랜 시간 멈춰있어야 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 문을 막고 버티고 있었다.
시민은 화가 났다. 장애인들을 향해 물병과 쓰레기를 던졌다. 언어장애가 있는 활동가가 쓰레기를 맞고선 소리를 지르니 한 시민은 “말도 못 하는 게 무슨 예산 요구를 한다고”라며 맞받아쳤다. 화가 난 시민은 이런 말도 했다.
“장애인만 사람이고 ‘정상인’은 사람 아니야? 무슨 말 하는지 알겠으니까 빨리 차 출발 시켜.”
“당신들 가해자야. 교통방해하고 있는 거라구.”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있잖아?”
“교통약자 전용 콜밴 타면 되잖아. 지하철을 왜 타?”
“아, 침 흘렸어. 더러워. 침 닦고 오세훈한테 가서 따져.”
“병신들이 왜 나 병원 가는 길을 막아?”
화살 같은 말을 쏟아내는 시민이 있는가 하면 온화한 태도로 부드럽게 타이르는 시민도 있었다.
“제가 아기를 데리러 가야 해서요. 본인들만 바쁜 거 아니잖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도 타협을 하면서 시위하셔야죠.”
“이렇게 감정적으로 시위하시면 누가 장애인 편을 들까요?”
휠체어째로 들려서 끌려 나가는 서기현 소장. 사진 하민지
오후 3시 20분, 서울역 정차 시간이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경찰은 긴급하게 조를 짜 움직였다. 휠체어를 들어 장애인들을 끌어내기로 한 것이다. 활동가들이 “휠체어는 몸이에요. 손대지 마세요”라고 외쳤으나 경찰은 듣지 않았다. 경찰 여러 명이 달라붙어 휠체어 탄 장애인을 들어내자 시민은 “그렇지! 잘한다! 옳지!” 하면서 환호를 보냈다.
장애인들은 지난 6월 4일 이후 약 5개월 만에 또 지하철 점거 시위를 벌였다. 도대체 장애인들은 왜 잊을 만하면 등장해서 지하철을, 아니 ‘시민을 인질로 잡고’ 이 난리를 벌이는 걸까.
- 장애인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모든 약속 파기한 서울시에 있다
오늘(22일) 있었던 지하철 점거는 6월 4일 진행된 점거와 이유와 목적이 똑같다. (▷관련 기사 : “예산 반영 없는 약속은 사기, 오세훈 시장은 이동권 보장하라”) 장애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요약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 반영을 할 것. 둘째, 예산 반영을 하겠다는 약속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반드시 지킬 것.
서울시는 지난 2015년, △2025년까지 시내 저상버스 100% 도입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다. 이런 내용을 담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에 돌아다니는 버스를 모두 저상버스로 바꾸고,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돈이 든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점거하면서 “예산 없이 권리 없다”고 외친 이유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서울시가 계단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는 데 예산을 얼마 편성했는지, 현재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서는 얼마의 예산을 편성했는지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본다. 이는 서울시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역사 2022년 예산안. 8개 지하철역에 대한 공사비와 설계비가 전액 삭감됐다. 사진 서울장차연
장애계는 지난 6월 4일 지하철 점거 이후 6월 28일에 오세훈 시장을 직접 만났다. 오 시장은 내년도 장애인 권리보장 관련 예산 확대에 긍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서울시청 실무진과도 수십 차례 면담을 가졌다. 약속을 지켜 달라고 수도 없이 말했다.
장애계는 지난 12일 김도식 정무부시장과의 면담에서 드디어 2022년 예산안을 확인했다.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왔다. 내년에 진행돼야 할 8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공사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가 스스로 약속한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은 물 건너간다.
현재 예산안으로는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도 못 지킨다. 앞서 서울시는 ‘제3차 서울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8~2022)’에 따라 올해까지 저상버스 도입률 75%(5345대)를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2025년까지 저상버스 도입률을 천천히 늘려가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2021년을 두 달 남겨둔 현재까지 저상버스 도입률은 65.6%(4307대)에 불과하다. 약 1000대가 더 있어야 하는데 서울시는 다음 해에 저상버스를 467대밖에 들여오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상임대표는 지하철 문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 지하철을 점거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경찰 사이에 둘러 싸여 있다. 활동가는 ‘오세훈은 들어라!’라고 적힌 빨간 피켓을 휠체어에 걸었다. 사진 하민지
성난 시민은 말한다. 오세훈 시장에게 가서 직접 따져라, 지하철을 막아서지 말고 서울시청으로 가라. 그렇게 장애인들은 오 시장과 서울시청 공무원들을 직접 만났지만 장애계가 요구한 예산은 하나도 편성되지 않았고 서울시는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다.
“장콜(장애인 콜택시) 타면 되지 않냐고, 니들이 지하철을 왜 타야 되냐고 많이들 말씀하십니다. 장콜 탈 수 있으면 좋죠. 서울시 장콜 이용자 수가 3만7천 명인데요, 장콜은 620대밖에 없습니다. 4만 명이 600대 가지고 예약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2001년, 오이도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장애인이 리프트 타다 추락해서 사망했습니다. 이후 장애인들이 제발 지하철과 버스 좀 안 죽고 타게 해 달라고 투쟁한 게 20년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이 22개나 됩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치돼서 편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르신과 임산부들 무릎도 덜 아프고요. 그런데 휠체어 타는 장애인이 엘리베이터 좀 설치해 달라고 하면 다들 화를 내십니다. 지하철을 서울 시민의 발이라 하면서, 서울 시민의 바퀴는 지하철에 들일 수 없다는 듯이 이용을 제한합니다.
지하철 점거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시위 말곤 방법이 없습니다. 서울시청 공무원들 한 해에 40번도 더 만납니다. 그래도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아무도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오늘 또 이렇게 나왔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 막아서 못 살겠다고, 불편해 죽겠다고 서울시청에 전화 좀 넣어 주십시오. 제발 민원 좀 넣어 주십시오. 제발, 지금 당장 전화 한 통만 해 주십시오.”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 세 개의 현수막이 있다. 각각 ‘오세훈 서울시장은 들어라! 예산 없이 권리 없다! 2022년 서울시 장애인 권리 예산 쟁취 투쟁 결의대회’, ‘2022년까지 지하철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장애인이동편의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약속 이행하라!’, ‘비장애인만 타는 차별버스 OUT!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 이행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들은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시청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 20분경,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운동단체는 ‘2022년 서울시 장애인 권리 예산 쟁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서울시가 약속을 지킬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주면 서울시 2022년 예산안이 서울시의회로 넘어간다. 장애계는 예산과가 소속된 기획조정실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장애인 복지정책, 교통정책 관련 실무진들이 “예산과에서 예산 다 잘렸다”라고 핑계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조정실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투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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