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를 폐허로 만든 베수비오화산은 지금으로부터 20만 년이 조금 안 된 홍적세 말기에 처음 생고 비교적 역사
가 짧은 화산이지만 수세기 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가 79년에 대규모의 화산 폭발을 일으켜, 폼페이 시와 스타비아
이 시가 화산재와 화산력(火山礫)으로 뒤덮이고 흘러내린 진흙에 헤르쿨라네움 시가 파묻혔다고 한다.
79녀 대폭발 이후에도 계속 폭발이 이어 오다가 1631년 12월 16일 엄청난 화산폭발이 일어나서 약 3,000명의 인
명피해가 있었고 용암이 바다까지 흘러내렸다고 하며 그 후로 대폭발은 없었으나 화산활동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더 높았을 것이나 지금은 1,281미터라고 하며 79년 화산폭발로 헤르쿨라네움이라는 도시도 폐허가 되
었는데 이는 신화속의 인물인 헤라클레스가 이곳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와와 관련된 도시 이름이 생
겼다고 한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가 로마군에게 포위가 되었을 때 베수비오산의 분화구를 통해서 도망을 쳤다고
도 한다.
폼페이는 베수비오화산의 기슭에 있는 도시로 폼페이쪽 사면이 무너지면서 동남쪽의 도시들이 폐허가 되었다고 하며 화산 폭발
이전에는 해안선이 더 안쪽으로 매표소 입구가 해안선이었다고.... 그리고 플리니우스제독은 폼페이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곳
으로 오면서 참상을 기록하였으나 유독가스 때문에 당일날 사망을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기록은 플리니우스의 조카인 플리니
우스가 자기 삼촌의 기록을 역사학자인 타키투스에게 서면으로 전하면서 기록이 남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베스비오 화산의 분화구....안에 칼데라가 있는데 활화산으로가끔 연기가 나는 사진도 있다.
유적지나 박물관 같은 곳은 개인적으로 와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와서 느긋하게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가는 경
치를 보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가이드가 중요한 건물 같은 곳에서 설명을 하고 지나가지만 대부분 사진을 찍기 바쁘고, 또 설명을 듣는다고 하더
라도 유적에 그리 관심이 없다면 이런 곳을 왔다가 갔다는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고 가는데 의미를 두게 된다.
품페이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관광을 가기 전이나 관광 후에 인터넷을 통해서 더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며
관광 중에는 대충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고 가는 것이 최선인 셈이다.
목욕탕 부속건물인 체육시설...
한 쪽에는 이곳에서 죽은 사람의 화석이 있다...... 2천여구의 화석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죽었는데 어린아이와 임산
부 등 의사 여자 노에 등 등.....박물관에 갈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정신 없이 보고찍고 따라간다.
출구쪽으로 나가는 길의 골목
저 골목 멀리에서도 한 무리의 관광객이 가이드를 따라 다니고 있는 것이 보인다....이 옆으로 가면 검투사들이 경기를 하던 반원
형 극장이 있다.
발굴을 하는지 보수를 하는지......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관광객을 무차별로 받다가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다고 한다.
지도에는 폼페이 대극장으로 표시되어 있다.
대극장 너머로 보이는 교회(이곳은 성당이다)의 첨탑...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에는 이곳에서도 기독교인들이 희생이 되었던 곳이
기도 하다....폼페이최후의 날에도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하는 내용이 나온다.
땅 속에 뭍혀 있는 바람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흙을 파서 만들었기 때문에 유적지에서는 내려가게 되어 있다.
전면의 무대 바닥은 만들어 놓은 것으로 지금도 이곳에서 공연을 한다고...뒤에 검투사의 집들과 연습을 하던 곳이 보인다.
이 주변에는 검투사들이 살았던 집들이 있었을 것이다......검투사는 대부분 노예들이거나 몰락한 귀족으로 노예로 전락한 사람,
식민지에서 잡아온 사람들도 구성이 되어 있는데 검투사의 인생은 시합에서 지는 순간 목숨이 끝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생의 마
지막 날이었던 셈이다.
검투사의 집이 있다는 곳인데 마당은 잔디가 깔려 있는데 아직도 이곳의 잔디는 파랗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패키지관광을 왔다면 경치를 보는 것이 아니고 도시의 건축물이나 박물관이나 유
적을 관람한다면 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 도시와 건축물 그리고 유적의 분위기
정도와 느낌을 느끼고 가는 것이 맞으며 그 곳에 대해서 인상이 깊었다면 나중에 인터넷 같은 것으로 정보를 더
알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아쉬우면 한 번 더 가보면 되는 것이고....
본래 이곳은 코스에 따라 다양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하루 종일 돌아보는 코스도 있고 두 시간을 둘러보는 코
스도 있어 일정이 바쁜 패키지 관광객들은 두 시간도 체 안 되는 코스를 돌게 된다.. 물론 우리도 그런 코스를 돌면
서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었는데 들어간 시간과 나온 시간을 비교해 보니 한 시간 이 조금 넘는다.
출구로 나와서 우리가 들어갔던 입구쪽으로 걸어가는 길
그 때도 이길로 나오면서 인상이 깊었던 생각이 나는데 아마도 소나무 때문에 이 길이 인상 깊었던 듯하다.
칙칙한 유적을 보다가 푸른 나무를 보니 다시 상쾌해 지는 기분이다.
유적지를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예전에 보던 과일가게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다. 자
연적으로 이루어진 관광지가 아닌 관광지의 대부분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거나 불행한 일이 있었거나 무리하게
건축된 건물들로 인해서 그 당시의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을 겪었던 곳들이 대부분으로 그 후손들은 선조들의 고
통을 통해서 먹고 살아간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도 선조들의 불행한 사건 때문에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그것으로 먹고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
들 선조들에게 고마움을 알고나 있으려나......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옛날에는 바다였던 곳이다.
바닷가에서 보이는 절벽이 보인다.
죄측은 우리가 올라오던 그길로 과일가게들이 있는 곳이다.
2006년도에 찍었던 들어가는 곳이 있던 과일가게
기념품 가게들과 식당들
둘러보기는 하지만 아직 여행 첫날이라서 사지는 않는다.
점심을 먹는 곳은 2006년도에 왔을 때에도 점심을 먹었던 곳으로 폼페이를 들르는 패키지 관광객들은 거의 반드
시라고 할 정도로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이 넘쳐 나는 것을 보면서 코로나가 이곳에서는 전혀 힘을 쓰니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한국사람들 밖에 없었는데 우리도 어느새 그들처럼 마스크를 쓰지 않게
되었다.
점심은 스파게티와 오징어 튀김이었었는데 이곳의 스파게티는 푹 삶은 면으로 만들어진 스파게티로 불은 면을 먹
는 느낌이었는데 이곳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징어 튀김도 우리나라의 것보다 더 부드럽고 폭신한 것이 우리나라 오징어와는 다르다.
그리고 가수가 키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는데 먼산타루치아, 돌아로라 쏘렌토로 같은 가곡을 불러주더니 아리
랑도 부른다.
그만큼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할 때도 한국팀이 몇 팀이 같이 식사를
했으니....
이른 점심을 먹고는 아말피 해안으로 출발을 한다.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식당...베수비오 식당이다.
달 디딜 틈이 없고 ...먹은 손님은 금방 자리를 비어줘야 하는 곳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수준인 듯...이런 곳들이면 나폴리 마피아가
운영할 듯하다....나폴리도 이름은 이탈리아에서 악명높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식사 대기중...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
식탁의 사진이 지저분한 것은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따로 나오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https://youtu.be/zKS14LXbxEM....... 폼페이와 함께 멸망했던 헤라쿨라네움 유투브
첫댓글 저렇게 관광객이 몰려드니 보이콧을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