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농대 그룹사운드 ‘샌드 페블즈’
'7080 대학 그룹사운드 대학가요제 시리즈' 첫 순서로,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샌드페블즈 6기’를 추억한다. 샌드페블즈 6기 멤버는 이영득(리드 기타), 여병섭(리드 보컬), 김민수(베이스), 최광석(키보드), 김영국(드럼)이었다.
1977년 9월 3일 흑백TV로 문화체육관에서 생중계된 ‘MBC 대학가요제’는 충격이었다. 그 충격의 핵심은 서울 농대 학생들로 구성되어 ‘나 어떡해’라는 노래를 불렀던 ‘샌드페블즈’였다.
‘억압’이라는 단어가 겨울철 연탄가스처럼 사회 곳곳에 퍼져 있던 유신정권 시절, 더벅머리에 청바지를 입은 5인조 밴드 ‘샌드페블즈’는 그동안 닫혀 있던 대학문화의 문을 박차고 나오듯, 인트로에서 파워풀한 드럼연주로 ‘나 어떡해’ 노래를 시작해 절규에 가까운 ‘나 어떡해’ 코러스로 끝낸 노래로 심사위원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제1회 MBC 대학가요제의 첫 대상을 차지한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긴급조치 9호가 74년에 발동하면서 모든 집회와 언론의 자유가 봉쇄당하고 가수들의 레코드판마다 건전가요를 의무적으로 한 곡씩 넣어야 하는 등 70년대말의 극심한 유신탄압 기였다. ‘박정희 정권’은 대학생들이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에 목말라하는 것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대학생들의 건전한 가요풍토 조성’이라는 명제 하에 방송사에 대학가요제를 허용해준다.
이수만과 명현숙의 사회로 진행된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는 대학생들의 자작곡뿐만 아니라 기성가수의 이미 발표된 곡으로도 참가가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성신여대 학생들이 혜은이 노래인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은상을 받기도 했다.
한편 ‘젊은 연인들’이라는 노래로 동상을 차지했던 3명의 서울 대학생들이 ‘서울대 트리오’라는 그룹명으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할 정도로 엘리트 의식이 팽배해 있던 시절이었다.
특이했던 가수의 일화로는 충남대 학생인 이명우가 고려가요인 ‘청산별곡’에 ‘가시리’ 가사를 약간 혼합하여 이스라엘 민요에 곡을 붙인 ‘가시리’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여 그 당시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 샌드페블즈 1집 LP판의 앞과 뒤
이날 ‘나 어떡해’를 불러 대상을 차지한 ‘샌드페블즈’는 6기 멤버들인데, ‘샌드페블즈‘의 역사는 1970년부터 시작된다.
서울 농대 70학번인 주대명과 장세권이라는 학생이 신입생 환영회 장기자랑에서 듀엣으로 노래를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이때 이들의 노래를 들은 동기생 윤장배가 그룹사운드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면서 샌드페블즈 역사는 시작된다.
그룹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이들은 스티브 맥퀸 주연의 ‘산파블로’라는 영화를 보고 산파블로의 영어 이름인 ‘샌드페블즈’로 그룹명을 정한다. 샌드페블즈(Sand Pebbles)는 ‘모래, 자갈’이라는 뜻인데, 수원에 위치한 서울농대의 전원적인 분위기에 맞는 그룹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에는 농대의 샌드페블즈 말고도 문리대에 EXTAS, 공대에 ECHOS 라는 그룹사운드가 있었지만 그들의 연주 실력은 형편없었다. 이에 비해 샌드페블즈의 연주 실력이 뛰어났던 이유를 1기 멤버인 주대명은 ‘서울 농대’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농과대학은 수원에 따로 떨어져 있다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기숙사나 학교 주변에서 하숙 등을 하고 있었으며 그러다보니 저녁시간에는 온전히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수원까지 지하철이나 버스로 통학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던 교통 상황과 지리적 여건 등이 샌드페블즈에게 여타 대학 그룹사운드보다 더 많은 연습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준 것이다.
샌드페블즈 1기는 2학년 한 해 동안만 활동을 하고 모든 악기를 2기 샌드페블즈 후배들에게 물려줬는데 가수이자 현(現) SM엔터테인먼트 회장 이수만 씨가 샌드페블즈 2기 멤버였다. 그리고 산울림의 둘째인 김창훈도 샌드페블즈 5기로 베이스를 담당했다. 이런 든든한 선배들 밑에서 6기 샌드페블즈가 드디어 ‘나 어떡해’라는 노래로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는데, 여기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 어떡해’ 는 산울림의 둘째인 김창훈이 작사·작곡한 노래인데 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 예선에 산울림도 ‘문 좀 열어줘’라는 노래로 예선에 참가했다.
샌드페블즈 6기의 리드 싱어였던 여병섭 씨 말에 의하면 제1회 대학가요제 예선에서 1위곡은 산울림의 ‘문좀 열어줘’였다고 한다. 김창완의 징징거리는 퍼지톤의 기타 연주와 좌충우돌 내뱉는 사이키델릭한 키보드 음색에 ‘문좀 열어 달라’라는 파격적인 가사가 덫붙여진 산울림의 ‘문좀 열어줘’ 노래에 심사위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것이다.
▲ 제1회 대학가요제 1집 재킷
누가 보아도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곡은 산울림의 ‘문좀 열어줘’였다. 그런데 본선을 며칠 앞두고 MBC가 예선 통과자들에게 ‘재학증명서’를 요구했다. 이때 산울림의 첫째인 김창완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후였기때문에 ‘재학증명서’가 아닌 대학 졸업장으로는 대학가요제에 참가할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받고 예선 1위 그랑프리로 만족해야만 했다. (‘문좀 열어줘’ 노래는 77년 12월 15일에 발매된 산울림 1집 앨범에 ‘나 어떡해’와 함께 실린다)
어떤 사람들은 샌드페블즈를 산울림 음악의 전도사 정도로 생각한다. ‘샌드페블즈‘가 불러 대상을 받은 ‘나 어떡해’ 노래를 산울림의 김창훈이 작사·작곡했고, 김창훈이 샌드페블즈 선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샌드페블즈는 분명 산울림과 다르다. ‘샌드페블즈 6기’라는 이름과 함께 ‘화랑’이라는 그룹명으로 79년에 발표된 그들의 독집앨범을 들어보면 이들은 산울림 음악의 충실한 전도사가 아니라 기승전결이 있는 하드록 음악의 창조자였다.
‘산울림의 아류 그룹’이란 명칭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샌드페블즈는 그들의 독집앨범에 자신들의 최대 히트곡인 ‘나 어떡해’를 넣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나 어떡해’를 능가하는 대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그룹사운드 생활의 추억을 담기 위해 만들었다는 독집앨범이 나오기 직전, 샌드페블즈는 라디오 생방송에서 ‘저새’라는 대곡을 직접 연주하며 미리 선보인다.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보컬 음역에 레드 제플린의 존 본햄을 연상케하는 다이나믹한 드럼연주가 깔린 ‘저 새’는 우리의 슬픈 정서가 깔린, 그러나 결코 우울하지 않은 명곡이었다.
‘저 새’를 작사 작곡한 샌드페블즈 드러머 김영국 씨는 ‘저 새’ 노래를 초반에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표현하기 위해 슬로우 록을... 그리고 젊은이들의 패기를 후반부에서 나타내기 위해 빠른 템포로 곡을 진행시켰다고 하는데,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박정희 정권'시대, 유신의 칼날은 ‘갈 길 잃은 저 새’라는 가사가 “영부인을 잃고 외로워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지칭하는 게 아니냐”며, 가사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한국 하드록의 맹아를 잘라버린다.
‘저 새’라는 제목과 가사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검열에 걸리자, 샌드페블즈 멤버들은 ‘저 새’ 노래가 날개 짓도 못하고 추락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밝고 환한 느낌이 드는 ‘달빛 속에서’로 제목과 가사를 바꿔 그들의 독집앨범에 넣는다.
슬픈 음색으로 천천히 진행되던 ‘저 새’는 중간의 기타 애드립이 끝나면서 활기찬 리듬으로 바뀐다. 이것이 이 곡의 매력이다. 젊은 시절의 방황과 슬픔을 떨쳐내고 일어선다는 내용의 노래 ‘저 새’는 제목과 가사가 바뀌면서 처음 선보였던 하드록의 맛을 잃어버린다.
헌데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달빛속에서’로 제목과 가사가 바뀐 ‘저 새’ 노래가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개최한 관제 대학가요제인 ‘국풍81’에서 불려졌다는 사실이다.
대상, 금상, 은상, 동상 등을 주기 위한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인 그룹사운드라는 사회자의 소개로 초대 손님 샌드페블즈가 ‘저 새’를 부른다. 샌드페블즈가 서슬 퍼런 신군부 앞에서 무슨 깡(?)으로 ‘저 새’를 원곡 제목과 가사 그대로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울농대의 샌드페블즈는 70년대 말 대학가요의 교과서를 만들어놓은 그룹사운드였다.
순수성과 창조성으로 무장한 ‘샌드페블즈‘가 부른 ‘나 어떡해’는 MBC가 대학가요제 20회 특집으로 97년에 조사한 앙케이트 ‘대학가요제 하면 떠오르는곡?’과, 성별, 20대 30대 연령별 그리고 70년대, 80년대 학번별 조사 등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샌드페블즈’는 77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학생 그룹사운드들에게 악기편성, 곡의 구성 등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한국의 훌륭한 록 밴드였다.
<글: 셀수스협동조합 김형진 KBS미디어 PD >
첫댓글 이야기 초반에 나오는 주대명은
가톨릭의대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가끔 봤는데 샌드페블즈 초기 멤버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