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자기가 처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까 생각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살아가는 동식물이 있고 때로는 사람도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처한 환경과는 너무 차이가 있기에 놀라움과 함께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문에 일반 사회와는 격리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럼에도 그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렇게 외지고 오기에 힘든 곳은 왜 찾아올까요? 물론 그냥 모험심이 작동하여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고 신호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 영월에 청정지역으로 ‘동강’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곳이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똥강’이 되었습니다.
우주에 나가서 보는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미 사진으로 영상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그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 소유로 만들려는 욕심이 만든 결과입니다. 예쁜 꽃을 봅니다. 보며 즐기면 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꺾어서 자기 소유로 만들면 금방 시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즐길 것을 방해합니다. 시야를 넓히면 어떤 결과를 당하게 됩니까? 현재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환경오염이나 기후 변화가 그 예가 아닙니까? 겉으로는 ‘개발’이지만 결국은 개판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의 삶의 터전을 허물고 있습니다.
빙하가 무너지고 있다, 그것이 현실로 다가와서 한 가족의 가장이 갑자기 물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가족은 그만 가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잃고 맙니다. 아버지가 사냥하여 먹고살았는데 그 아버지가 어느 날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차가운 세상에 기댈 곳 없이 내버려진 것입니다. 어린 아들을 살리려 엄마는 무슨 힘이 생겼는지 일단 도시까지 달려와 살려냅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래서 기댈만한 남자를 찾아 재혼하였을 것입니다. 얼마간은 그런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누크’가 청소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누크는 참고 살아왔지만 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추운 거리를 방황하다 경찰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보호사에게 넘겨집니다. 엄마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이미 알콜중독자이니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신지역으로 사회복지사를 따라 돌아갑니다. 그렇게 엄마와도 이별을 합니다. 과묵한 성격으로 말은 없어도 또래들과 크게 다투지 않고 어울려 지냅니다. 도시에서 학교 다니며 친했던 친구가 넘겨준 노래파일을 헤드셋으로 듣는 것이 그나마 낙입니다. 어머니 같은 복지사는 말썽꾸러기 청소년들을 정말 어머니처럼 돌보아줍니다. 아이들은 그 환경에 적응해 살면서도 때로는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폭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누크는 표현이 없습니다. 복지사는 오히려 그것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날을 정하여 복지사는 사냥꾼들에게 아이들을 데려가줄 것을 부탁합니다. 눈보라를 헤치며 위험지구에 들어가는 일에 아이들이 방해가 될지언정 도움이 될 리가 없습니다. 거절하는 것을 돈으로 삽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소풍이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이누크도 합류하여 아이들과 사냥터로 나갑니다. 눈보라와 폭풍을 견디며 사방천지 하얀 세계, 설원을 달립니다. 개들이 이끄는 썰매에 나누어 타고 길게 행진이 이어집니다. 그 속에서 이누크는 썰매를 타는 방법, 개를 길들이는 방법, 사냥하는 이야기 등등을 들으며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도 듣게 됩니다. 사냥꾼 ‘이쿠마’가 이누크가 가지고 있던 채찍을 보며 기억이 났을 것입니다. 존경하던 그 사냥꾼의 아들이로구나, 알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얼음 위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얼음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고 생활의 수단입니다. 그들은 얼음 속에서 태어나 얼음 위에 살고, 얼음 안에서 삶을 이어갑니다. ‘얼음이 그들에게는 사물이 아니라 정신이다.’ 그렇습니다. 얼음은 그들의 모두입니다. 그런데 그 얼음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없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냥 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하는가, 이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사실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위험이 점점 실제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신을 잃지 않고 세상의 일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세상이 없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얼음이 없어지는 것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것이며 곧 그들의 삶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앉아서 편하게 걱정하며 기후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상 어느 곳에서는 왜 당하는지도 모르고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드넓은 설원의 풍경이 아름답게 우리 앞에 펼쳐지는 날도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그 전에 정말 무슨 해결책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깟 한 백 년 잘 먹고 잘살겠다고 이 지경을 만드는 인간들이라니! 영화 ‘북극의 후예 - 이누크’(Inuk)를 보았습니다. 2010년 작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