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설산에 물고기들의 무덤이 있다
정연희
눈 내리는 설산에서 보았다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여름 잎의 기억과
뒤척이는 숲의 파랑波浪
파도와 파도 엮어 물길을 내던 푸른 지느러미
일각고래 청상아리 대서양 녹새치들이 파고 들어앉은 봉분들 하얗다
산티아고*가 6미터 녹새치를 뱃전에 묶어 조류에 맡겼다
기쁨도 잠시
늙은 어부가 겨눈 작살이 아가미에 검붉은 길을 냈다
리본체조 붉은 비단 끈처럼 휘어지는 피의 길
세모 지느러미 갈라노Galanos를 유혹했다
작두날처럼 번뜩이는 송곳니 그의 심장이 베인 듯 움찔거렸다
뱃가죽에 꽂은 잇자국에서 자색 거품이 일고
날뛰는 파도에 허옇게 빛나는 뼈 돛대처럼 수직으로 일어섰다
물기둥에 휩쓸려 만灣의 안쪽에 갇힌 물고기들
버둥거리는 녹색치들 긴 해안선이 안고 있다
기억의 저편에서 소리 없이 세설細雪이 쌓이고
나무도 대서양 녹새치도 길게 누운 채 꿈 안에 갇혔다
영장류와 나무와 물고기가 이마 맞댄 한 테두리 화석 표본처럼
살붙이들 껴안고 단잠 들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 계간 『미네르바』 2022년 겨울호
정연희
충남 홍성 출생. 200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호랑거미 역사책』 『불의 정원』 『내 발등에 쏟아지는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