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235 철학과 김나현
-중국고대사회와 오늘날 한국사회를 한 가지 주제로 비교하여 평가하기
중국 고대 사회와 현대의 한국 사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회적 배경, 사상 등 모두 크든 작든 차이가 있지만, 딱 하나의 차이점을 꼽자면 바로 개인과 사회에 대한 주목성이다. 중국고대사회의 사상가들은 혼란한 사회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다양한 사상을 냈다. 크게 보자면, 강력한 법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법가정치, 덕으로 백성들을 통치하자는 유가정치,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자는 도가가 있다. 이 세 가지 사상에서 우리가 지목할 만 한 점은 고대의 사상가들이 특정한 사회, 즉 각각 제 나름의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했고, 이를 구체화할 내용들-이상적인 인간상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사실 우리나라만 딱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현대 우리 사회는 중국고대사회만큼 공동체 또는 사회에 대한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이득, 즉 개인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 우리가 집 밖을 나서서 서점에 가본다고 치자, 우리는 그곳에서 적어도 한 코너를 채울 만큼의 자기개발서 또는 자기계발서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간혹 그런 책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사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나는 실제로 동네 서점에서 몇 년째 공동체와 관련된 몇 개의 책이 계속 팔리지 않고 구석에 있는 것을 봤다) 현대에 사는 우리가 아직도 옛 성현들의 말씀이나 그들이 제시한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아마 그것을 대체할 또는 능가할 현대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즉, 현대 우리 사회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더욱 중시하며, 전체를 위하는 것에 무관심하다. 이런 경향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 현대가 중국고대사회보다 좀 더 안정된 사회여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시대-물론 현대에도 내전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있지만-이니 비교적 살만한 시대라 생각해서 이런 문제는 뒤로 미루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가 마냥 ‘살기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매우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예전보다는 기술이 발전해서 많은 곳에서 편의를 보고 있지만,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초조하게 살아간다. 우리의 사회는 여유가 없다. 물론 중국고대사회도 불안정한 사회 때문에 지금과 다름이 없었겠지만,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다르다. 춘주전국시대는 불안한 사회 분위기가 문제였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세상, 즉 문제가 외부의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확연하게 원인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렇다.’라는 것이 쉽게 드러나니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문제들은 딱 ‘이것이 문제다.’라고 집을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많고, 외부의 문제보다는 개인 안에 있는 어떤 내면적인 문제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섣불리 사회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우리들에게 혜택을 준 것에서 비롯된 게 많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예를 들어보자. 중국고대 사회에서는 신분제도가 있었고, 이로 인해 경쟁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사회였다. ‘너는 이 자리에서 너의 몫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깔려있다는 소리다. 왕족이나 귀족들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법을 알고 통치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백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즉 신분간의 경계가 뚜렷했고, 경쟁에 참여할 기회도 적었다. 왕이 백성의 일을 하거나 백성이 왕의 일을 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공자의 정명론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즉,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이야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 외의 일에는 관심 갖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외의 몫을 해야 할 부담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누구나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물론 경제력이나 어떤 환경으로 인해 제한되는 것도 있지만, ‘평등’이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에게 경쟁의 기회를 준다. 그러나 경쟁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에 경쟁에 참여하는 이가 많아졌고, 이로 인해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경쟁의 기회 덕분에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주어진 몫만을 해서는 안 된다.
학문은 이미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 된지 오래지만, 우리는 세분화된 것들을 고루 갖춘 인재를 원한다. 즉, 한쪽에서만 뛰어난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고르게 뛰어난 인재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의 입구는 넓지만 출구는 좁고, 문턱은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너 외에 일할 인간은 많아.’라는 말처럼, 우리는 언제든 다른 경쟁자들에게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자의 말처럼 각각의 몫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유기적인 인간보다는 혼자서도 척척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만능 일꾼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때문에 소통이나 협동에 대한 것보다는 자신의 밥그릇을 챙길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우리는 무한 경쟁 사회에 살고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기회는 줄어들었으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바쁘기에 전체를 생각할 틈이 없다. 이로 인해 현대 우리사회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것이다.
첫댓글 "개인과 사회에 대한 주목성"이라고 하는 점에서 분명히 동아시아적 전통과 서양 전통은 다른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폴리스가 소수이지만 시민, 곧 개인에 대한 주목성이 높은 정치 체제를 지향했다고 한다면, 동아시아는 "이상적인 사회"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도가"로 말할 것 같으면 유가 전통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나 개인의 본성적인 부분에 더 주목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현대 우리 사회는 공동체보다 개인을 더욱 중시하며, 전체를 위하는 것에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고민해는 것도 논의를 전개하는 데는 효과적일 것으로 보여요. "중국고대사회보다 더 안정된 사회"인가를 되물었지만, 서양 전통과 동양 전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는 것도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복잡한 문제들이 많고, 외부의 문제보다는 개인 안에 있는 어떤 내면적인 문제들이 많"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내면적 문제가 무엇인지,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