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가 여는 아침 窓] 쌀값 안정으로 농민의 시름을 덜어 주고 싶다
- 기자명 금강일보
- 입력 2022.11.09 16:28
김영훈 작가·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올해도 음력으로 시월 보름날 김해김씨의 소종중인 국보공파 후손들이 시제를 지내기 위해 사당에 모였다. 어렸을 때는 앞산, 뒷산 선조들의 묘소를 찾아 제를 올렸지만 지금은 사당에서 간소하게 시제를 올린다. 그러나 30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사는 향리를 찾은 필자는 조상을 모시는 일보다 일가친척들의 한숨 소리를 먼저 듣게 된다. 이 벼 수확철에 쌀값 폭락으로 시름이 깊단다. 물가는 다 올랐는데 유독 쌀값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들은 기가 팍 죽어 있었다. 해마다 시제를 지낼 때를 맞춰 필자는 고향에 있는 유답을 임대해 농사짓는 작인으로부터 1년 치 양식을 가져다 먹는다. 올해도 농사지은 쌀을 어김없이 받아는 왔지만 그가 짓던 한숨소리가 가슴에 싸하게 밀려들어 지금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코로나19 만연으로 인한 침체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각종 보상으로 인한 돈줄이 그 어느 해보다 펄펄 휘날리더니 이제 그 돈줄을 거둬들이는 수습책으로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풀린 돈 탓인지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다, 원자재 값 폭등,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우리 정부도 돈줄을 조이기 위해 미국을 주시해가면서 고금리로 정책을 변환하고 있는 중이다. 그로 인해 이제는 가계부채 부담이 큰 도시민들은 물론 이런저런 자금을 빌려 쓴 농어민 등 전 국민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쌀값 폭락을 맞은 농민들은 평년작 이상의 풍작 상황이지만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식탁에서 밥상을 대할 때면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신 조모를 떠올린다. 조모는 필자의 유년시절에 쌀의 소중함을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철저하게 가르치신 분이다. 해가 바뀌고 쥐불놀이를 하던 정원대보름이 지나고 나면 씻나락을 물에 담가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여든여덟 번의 손길을 거쳐야 쌀밥을 먹을 수 있다며 쌀의 소중함을 말씀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수렵채취시대 이후 반만 년 동안 이어온 농업국가였다. 농사짓는 일을 하늘이 주신 근본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늘 가난해 하루 세끼 밥을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다행히 박정희 대통령 때에 이르러 그분의 의지로 새마을 운동을 벌였고 통일벼가 들어오면서부터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쌀은 우리의 목숨줄이었다.
그러는가 싶더니 언제부터인가부터 쌀이 경시되기 시작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1차 산업인 농어업보다 제조업이 그리고 생산된 물자를 유통하는 3차 산업에 의해 경제가 주도되면서 쌀의 가치는 차츰 뒤로 밀렸고, 우리나라가 수출입 국가의 중심에 서게 되자 쌀은 이제 더 이상 주인 자리를 지키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정보화 산업이 세상을 뒤흔들면서부터는 쌀은 더욱 뒷방으로 내몰리는 추세이다. 그 대신 밀과 콩이 수입되고 국민생활 수준이 높아지자 각종 육류는 물론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자몽 등 열대과일이 들어왔고, 스테이크, 피자, 파스타 같은 서양 음식들이 점점 더 각광을 받더니 이제는 마치 주식인 양 쌀밥을 뒷자리로 밀어 내려고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 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결국 나라에서도 TV, 냉장고, 컴퓨터, 스마트폰을 수출하는 대신에 밀과 콩은 물론 쌀까지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되자 농민에게 직불금이라는 이름으로 손실을 보전하게 했다. 이러한 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한 한 국제시민 단체인 '비아캄페시나'는 지난 20여 년간 초(超)국적 사회운동으로 전개해왔는데 식량주권운동의 제도화 및 정책화에 대한 논의를 최근에 더욱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과거에 국민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농업·농민 정책들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식량주권운동이 국제수준에서 제도화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농림축산식품부도 올해보다 약 1조 4000억 원 늘어난 규모로 자체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는데 최근 물가 상승과 식량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며 세워진 예산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2차 보전으로 전환된 정책자금 융자 예산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 예산이 농업 주권을 회복하고 우리 주식인 쌀값을 올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내년도에 쌀값이 안정되어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소망이다. 유답을 경작해 주는 작인을 위해서라도 필자는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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