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이르러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겨우 몽골의 지배를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모스크바 대공국이다. 모스크바 대공국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질녀와 이반(Ivan) 3세 사이에서 태어난 이반 4세 이후의 왕은 ‘차르’(tsar)라고 청했으며,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에 이어 ‘제3의 로마제국’이라고 자칭했다.
▲유목화된 터키계 유목민 코사크: 그러나 이처럼 다시 일어선 러시아 사회는 불안정 요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터키계 유목민과 유목화된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옛 지배층인 ‘코사크’Cossack)였다.
로마노프 왕조는 이반 3세와 4세의 혈통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혈통이 왕이 되면서 성립됐다. 그러나 로마노프 왕조가 성립된 후에도 러시아 농민의 농노화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이에 저항하는 농민 봉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짜리즘(Rsarism)의 역사는 농민 봉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로마노프 왕조 하에서도 여전히 진행되는 농노화에 반대해서 일어난 대대적인 봉기가 바로 ‘스텐카 라친’(Stenka Ragin·1670년) 봉기다.
17세기에 유럽에서 많은 농민 봉기가 일어났지만, 스텐카 라친 봉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다. 스텐카 라친은 농민 봉기를 일으켰던 지도자의 이름이다. 이 봉기에는 농민뿐만 아니라 코사크(Rosak or Cossack)도 가담했다. 코사크는 흥미로운 집단이다.
원래 러시아말로 코사크는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러시아 농민들은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있었다. 코사크는 16세기 들어 농노화를 피해서 러시아의 변경 지역 혹은 폴란드 지역으로 도망갔던 농민 집단이었다.
이들의 공동체는 말하자면 자치 공동체였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수장을 선출하고, 또 공동체의 일들을 성원들이 모두 참여해서 논의했다. 특히 코사크들은 말을 잘 탔다. 그래서 그들의 공동체를 ‘기병 자치 공동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17세기에 러시아의 변경 지역까지 농노화가 확대되자 코사크들은 다른 농민들과 함께 스텐카 라친 봉기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봉기는 차르에 의해 무참하게 깨진다. 이후 러시아는 동서로 약4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시베리아 정복에 코사크를 이용했다.
▲러시아의 본격적인 시베리아 경영: 시베리아는 우랄 산맥 동쪽의 대(大)삼림지대로 러시아어 ‘시비르’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이는 몽골어로 ‘습지대’라는 뜻이며 16세기 우랄 산맥 서쪽에 있던 ‘시비르 칸국’(Sibir Khanate)에서 유래한 말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한 목적은 외화 획득의 수단이 된 검은 단비 등의 모피를 세금으로 징수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본토에서는 남획으로 인해 귀중한 모피가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러시아는 코사크를 통해 과거 바이킹이 러시아 땅에서 행했던 것처럼 18세기 전반까지 약 100년 동안 시베리아를 정복한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건설한 거점도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1604년 시베리아 서부의 오브 강(Ob: 페르시아어로 물을 뜻하는 ‘아부’에서 유래)의 상류 지류 도하 지점에 건설한 톰스크(Tomsk: ‘가득 찬 강의 도시’라는 뜻)
(2) 1628년 시베리아 중앙부의 예니세이 강(Einsei: 원주민 말로 ‘대하’라는 뜻)의 도하점에 요새를 건설한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
(3) 1640년 북극해로 흐르는 시베리아 동부의 대하 레나 강(Lena: 원주민 언어로 ‘대하’라는 뜻) 중류에 모피와 금의 집산 도시로서 건설한 야쿠츠크(Yakutsk). 이 도시는 훗날 극동의 식민 거점이자 유배지로 성장했다.
(4) 1652년 바이칼 호(Baikal: 원주민어로 ‘샤먼의 바다’를 의미)의 남서 약 65km 지점에 위치한 이르쿠트 강과 앙가라 강(Angara)의 합류점에 코사크의 월동 거점으로 건설한 이르쿠츠크(Irkutsk: ‘급류의 마을’이라는 뜻). 이곳은 몽골과 중국으로 통하는 루트의 기점이 되었으며, 모피와 금의 교역장소로 성장했다.
이들 거점 도시를 연결해 루트를 개척한 코사크는 원주민에게 모피 세(稅)를 부과하면서 1649년에 오호츠크 해(Okhotsk, 원주민 언어로 ‘강 마을’ 이라는 뜻, 음역하면 한국의 옛 고대국가인 ‘옥저’(沃沮)가 된다)에 도달했고, 오호타 강 하구에 항구 ‘오호츠크’를 건설했다.
한편,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러시아는 코사크 기병대를 이용, 중앙아시아의 터키계 유목민이 거주하는 카자흐와 키르기스, 타지크, 투르크멘, 우즈베키스탄 등의 여러 지역을 정복해 러시아령 투르키스탄(Turkistan)을 만들었다. 삼림민족인 러시아아인이 과거 자신들을 지배했던 중앙아시아 유목민에 대해 역습을 가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