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흘 가량 세월호 관련 소식이 없어 궁금하신 분들 있겠지요.
잊혀진것도 움직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 회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급박한 상황을 따라너무 바빠 소식을 올리지 못하고
제 페이스북에 그날그날 일지처럼 소식을 올렸는데 회원들과 공유를 못했습니다.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할 여건은 못되지만 사진으로라도 현장의 기운을 받으시라고 급히 모아서 올립니다.
무척 긴 포스트가 될 것입니다만 참고 봐주시고 지금의 일들이 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7월 9일 수요일-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특별법 국민 설명회
특별법 제정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하는데 마침내 유가족이 마련한 법안이 나왔다니 제대로 살펴봐야지 않겠나.
심미예 사무국장과 이경이 경기남부 정책부장과 함께 여의도 국회로 갔다.
진행과정 보고와 여야가 각자 내논 안과 4.16 특별법 안이 어떻게 다른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조목조목 설명을 듣고 질문에 답도 들었다.
법안은 바람직하고 당연히 그래야 제대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겠다.
문제는 이 안이 정당안과 다른 만큼 합의를 하고 실현되기까지 얼마나 곡절이 많을지인데
결론은 어렵지만 헤쳐나가자 국민들이 계속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
법안이 통과 되도 실질적 활동이 가능한 위원회 구성에도 6개월 이상 걸리고 위원회가 진상조사를 해도
해당 기관이 협력을 않고 시간만 허비하게 하면 특위 활동 기한이 차고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수 있단다.
하여 특별법 조항에 그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없애고 힘을 가질 수 있는 구체적 방책을 세운 셈이다.
유가족 중 한분은 진상규명이 충분히 되지 못하더라도 언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토대만큼은 꼭 만들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가족들이 자신들의 보상보다 진상규명과 더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안전대책을 세우는데 맘을 모았다는 것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깊이 감사하며 지지한다.
이런 가족들의 마음을 모르고 보상과 특례를 위한 것이라고 흑색선전을 해대는 세력들이 있고
그런 논리에 속아 욕을 해대는 사람들도 많다.
힘든 싸움이라는 것을 다 알지만 어떻케든 해보자 안전사회 구축을 위해서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꼭 이루어져야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모두 맞물려 있는 일이다.
이 법안으로 국회 청원을 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대응 방안을 마련할테니 역시 국민들이 지켜봐줘야한단다.
전례를 봐도 온전히 실현될 가능성 희박하지만 이때만 해도 어떻게든 한발 나아가리라 꿈꿨다.
그런데... 정당과 관료들은 가족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몰상식하게 나오기 시작하여 그날 이후 여의도로 출근하다시피 되었다.
7월 11일 금요일-세월호 가족버스 인천 도착
동부권, 서부권 두 팀으로 나눠 전국을 돌고있는 세월호 가족 버스가 인천과 원주에 오는 날.
전국 일정에 맞춰 해당 지역 우리 회원들도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멀리는 못가도 내가 청춘을 보낸 인천엔 꼭 가려고 회의 중간에 빠져나와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앞으로 달려갔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인천지부 회원들이 유가족, 인천 각 단체 사람들과 함께 서명을 받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고 무심히 지나쳐가는 이들이 많았지만 다들 열심히 한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애쓴다.
길에서 서명판을 들고 동동거린 사람들의 속내는 해본 사람만 안다.
20명짜리 한 장 한 장을 채우며 겪는 희로애락.
이 땀과 열정이 헛되지않게, 유가족이 만든 4.16 특별법이 실현되기 위한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거리서명이 끝나자 인천지부 회원들은 가족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같은 엄마로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 회원들을 가족들이 안아주었다.
11일 저녁엔 부평역 광장에서 촛불집회에 열렸다.
오랜만에 옛 선후배도 만나고..
효숙언니가 현장미술가들과 걸개그림 만드는 거 심부름 좀 하고..
5반 부모님들은 선생님과 희생된 반아이들 이름을 적은 맑은 하늘빛 티를 입었다.
앞모습 마주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름으로 가득한 등은 더 많은 표정으로 먹먹하게 한다.
세월호 참사 소식 처음 들은 날도 저렇게 둥근 달이었는데 어느새 달이 세 번째 차올랐구나.
무대 뒤 가족에게 기찻길옆 식구들이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림판을 조용히 건넸다.
곳곳에서 꾸준히 크고작은 힘을 싣는 참사람들이 많다. 많고 진하니까 결국 이기리라고 지친 나를 다독인다.
7월12일- 청계광장 집회
7월 12일, 토요일은 두 팀으로 나눠 전국을 순회하던 가족들이 서울로 모이는 날.
그래서 처음으로 가족이 주최하는 청계광장 집회가 있는 날이다.
가족들은 4월 16일 이후 이미 가정이 깨지고 길에서 험하게 살아온 셈이지만 이렇게 시민들과 한자리에서 만나
지난한 여정의 매듭을 짓고 좀 다른 차원의 싸움을 해야한다.
그러니 어느 때보다 뜨겁게 맞이하고 힘을 실어야하리라.
우리 회원들도 앞쪽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가족의 이야기와 영상을 보았다. 또 많은 이들의 눈이 붉어진다.
아들이 그리워서 아들의 옷을 입고 다닌다는 아버님의 절절한 이야기.
오백명 유가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나가기 위해 가족이 애쓴 이야기는 각별하게 다가왔다. 역시 대단한 유가족!
다부지면서도 부드러운 힘이 그들에게 있다.
가족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가족의 맘을 열리게 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한 국민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보여주었다.
비도 오지 않은 무더운 날에 바닥이 흥건하다. 오늘따라 물길을 열어 광장 반쪽을 진탕으로 만든 건 쟤네들의 방해작전에 하나리라.
그 젖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사람들은 앉아있다.
특별법 설명도 들었다.핵심을 잘 요약한 자료라 이해가 쉽고 분명하게 다가온다.
가족대책위를 빼고 여야가 합의하여 급속히 저들만의 이름뿐인 특별법,
아무 힘도 못쓸 법안을 졸속으로 통과시키려 해서 가족 150여 명이 지금도 국회에서 농성 중이다.
전화를 연결해서 현지 상황을 들었다.
가족의 뜻을 전하고 9시까지 답을 달라고 하고 기다리시는 중이란다.
맘이 급해졌다. 집회장에 있으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가족들은 집회 뒤에 안산과 국회로 나눠 가시려고 한단다.
개별 진입이 쉽지 않을테니 가족들 버스에 끼어 타든 어디든 엮여서 가야겠다는 생각에 분주하게 수소문 하며 돌아다녔다.
그동안 모은 서명지를 들고 국회에 가서 농성 중인 가족에게 전달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대책위, 세대행동 팀과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가족분이 그러지 않았는가? 서명지 셀 때 얼마나 뿌듯하고 기쁜지.
오늘까지 모은 서명지를 취합하여 15일 국회 청원에 쓰기로 했다.
대책위에서는 서명지 원본이 아니라 체킹을 하고 복사를 한 것을 모두 모아 국회의장에게 넘긴단다. 원본은 잘 간수해야겠지.
우리 회원들이 최근에 모은 1만여 명의 서명지도 같이 전달하기로 했다.
날이면 날마다 곳곳에서 서명에 집중하는 세대행동은 2주간 13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묵직한 박스 몇개가 된다.
서명운동 초기부터 조직적으로 서명운동을 벌인 우리 회나 세대행동, 엄마의 노란 손수건은 수시로 서명지를 전달해왔다.
7월 들어 삼백만 서명을 달성하고 힘을 얻어 서명 운동에 몰두하여 이만큼 모은 것이다.
그렇게 대단위가 아니어도 곳곳에서 손편지와 서명,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오늘 이곳에 가져온 모든 서명지를 모아 국회 농성장으로 가져가는 것은 지친 가족들에게 피로회복제가 될 것이다.
무거운 짐을 안고 왔다갔다하기를 수차례. 타도 된다길래 줄 서있다 내쳐지기도 하고
국회가는 버스라고 해서 얻어 탔다가 안산행이라고 도로 내리고,
버스에 자리가 모자라면 짐만 싣고 대중교통 이용해서라도 가자고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안산에서 온 시민버스에 끼어타게 되었다.
열성적인 엄마의 노란 손수건 분들이 한 사람당 오천원씩 내서 안산에서부터 대절해 온 시민버스였다.
반갑다. 이래저래 두 달 넘게 마주치고 함께 일 나눠하던 길동무들.
서서 가도 된다는데 늙은 언니 우대한다고 자리를 내줘 앉았다.
가는 동안 함께 탄 세대행동, 안산시민대책위, 엄마의 노란 손수건 분들과 앞으로 일정도 이야기하고 인사도 나눴다.
여의도로 들어서자 곳곳에 경찰버스가 벽을 두루고 경찰들이 길에 한팔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버스가 무사히 국회 안으로 들어가 서자 어두운 길을 걸어 본청 앞 가족들이 농성하는 곳을 찾아 올라갔다.
아침부터 있던 가족, 집회 끝나고 합류한 가족들이 둥근 지붕 의사당 입구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계신다.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플래쉬를 터뜨려 정신없이 서명지를 가족대표 분에게 전달했다.
그바람에 얼결에 사진 찍힌 엉겅퀴. (사진 출처- 시사인)
당황스럽지만 우리 회원들이 공들여 모은 서명지를 가족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완수했으니 기쁘다.
가족들과 인사를 하거나 심부름을 하며 본청 안에 들어간 변호인과 대표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다렸다.
가족들은 날이 무척 더워 부채질을 하며 먹을 것도 마땅히 없어 물을 마시며 버틴다. 오늘 일이 이리 급박하게 돌아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본청 안으론 화장실도 못가게 해서 멀리 의원 회관까지, 그것도 2인 씩만 들어가게 한다.
드디어 안에 들어갔던 대표자들이 나와 상담 결과를 밝히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가족은 완전 들러리고 참관조차 용납하지 않겠단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검색하면 다 나오니 생략하겠다.
깜깜한 밤이라 고물 보통 카메라는 아무리 요리조리 뛰어댕기며 찍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늦은 시간에 집회 뒤에 행진을 하고 들어온 대학생과 낮부터 들어오려다 못들어온 용혜인 학생이 지지방문을 왔다.
가족들이 반겨 맞는다.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그동안 힘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앞으로 열심히 서명도 받고 같이 움직이겠다고 울먹이며 말한다.
씩씩한 듯 외쳐도 이 늙은이 눈엔 그저 앳띠고 여려 보인다. 울 딸 또래 아이들. 이 어린 친구들이 그동안 맘고생을 많이 했으리라.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반응을 보니 농성이 길어 질 것만 같다. 가족들은 지친 몸을 바닥에 눕힌다.
대표자가 여자분들은 여기보다 에어컨이라도 나오고 조금 나은 의원회관 회의실로 가셔서 쉬어도 된다고 하는데 모두들 그대로 있으시겠단다.
냄새나는 이불이 그것도 충분한 양이 아니게 나눠지고 본청 입구는 뉴스에 비춰지던 진도 체육관 모양새가 되었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 팀은 내일 가족들 드실 것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오기로 하고 다시 버스 타고 안산으로 가고
나는 세대행동 팀과 응원 온 시민들과 잠시 더 자리를 지키다가 돌아왔다. 돌아가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고 내일을 도모해야한다.
걷다가 핑~ 현기증이 나 쓰러질 거 같고 밝아올 내일이 아득했지만 어쩌겠는가. 닥치는대로 필요한 곳에 부실한 힘이나마 보태야지.
이때부터 정말로 비상시기. 날마다 새로운 일들이 터져나왔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