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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64회>
씬 1 산사 외경
그윽한 염불소리들이 들려온다.
열려진 문 안으로 법당의 모습이 보여온다.
씬 2 동 법당 안
석총이 주재하고 스님들이 부용의 주변에 서있다.
이른바 출가의식인 삭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석총 머리를 깎는다고 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라. 진정으로 마음이 와 있어야 비로소 제자가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용 .......(눈물만 흘리고)
석총 인간의 괴로움은 그 변화가 무쌍하여 쉽게 뿌리를 끊기가 어려운 법이니라. 그러나, 한 번쯤 자신을 다 버리고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 또한 살아 있는 중생으로써는 해볼만한 일이거니...... 자,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부용 예, 스님.
석총 자....그러면, 시작을 허게.
석총이 지시를 하자, 스님들이 불경을 외우기 시작한다.
부용은 합장을 하고 앉아 있고, 드디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기 시작한다.
석총은 그저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고, 부용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염불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고, 카메라가 그런 모습으로 다가들면..
부용 (E) 아버님, 어머님..용서하시오소서. 더 이상은 길이 없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부용의 그런 생각 위로
왕건의 여러 모습들이 더블 되어 스쳐간다.
부용 (E) 용서하시오소서.
부용의 머리카락은 금방 다 짤리어지고, 스님들의 염불소리는 더욱 더 커지면서...디졸브....
씬 3 정주 유장자 집 외경
유장자 (E) 아직까지도 소식을 모른단 말인가?
씬 4 동 집 방 안
부용모가 울고 있고, 집사장이 허리를 숙이고 있다.
유장자 도대체 어디를 갔단 말인가?
집사장 송구하옵니다, 나으리. 백방으로 사람을 풀어 알아보고 있사오나, 도무지 아씨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어 놓아서.....
유장자 허허. 이 일을 어이하나?..... 어찌 그리 경망스럽단 말인가? 자초지종을 알지도 못하고 그리하다니......
부용모 그렇게 말씀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태산처럼 믿었던 정혼자가 다른 부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어찌 상심이 크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유장자 허허, 부인까지 왜 이러시는 게요? 그럴수록 차분하게 앞 뒤를 살펴보고 결정을 해야지, 이렇게 무모할 수가 있단 말이요?
부용모 나으리께서 처음부터 너무 서두르셨사옵니다.
유장자 ...........
부용모 이 일을 어찌하나?....이 아이가 도대체 어디로 간게야? 죽지는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유장자 어허. 그 무슨 불길한 소리를?....
부용모 그렇지 않고서야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집 밖에 모르는 그 아이가 어디로 가있단 말입니까? 아이구, 세상에......
그때 집사의 소리가 들려온다.
집사 (E) 나으리, 왕장군께서 오셨사옵니다.
유장자 왕장군이.?..... 자, 집사장은 나가보게.
집사장 예, 나으리.
유장자 왕장군을 안으로 뫼셔라.
부용모 무슨 얼굴로 왔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유장자 어허.... 추호도 그런 내색을 해서는 아니되오, 아시겠소이까?.(큰 소리로) 어서, 왕장군을 뫼셔라.
씬 5 동 밖
왕건과 오씨(이제부터는
도영을 오씨라 합니다)가 서 있다.
집사장이 밖으로 나오며
예를 올린다.
집사장 안으로 드시라 하옵니다.
집사 장군, 안으로 드시오소서.
왕건과 오씨가 안으로 들어가면.
씬 6 다시 동 방 안
왕건 장인어른, 그리고 장모님 절 받으시오소서.
유장자 자......장인이라니......?
왕건 제가 이곳을 떠나기전 부용낭자와 혼인을 약속했사옵니다. 그리고, 여기 저와 금성에서 혼례를 올린 내자에게도 그리 말을 했사옵니다.
오씨 분명히 소녀가 들었사옵니다.
그리고, 부용아씨가 제 위로 형님이 되실 것임을 약속했사옵니다. 마땅히 혼례를 올리시게 되면 집안의 첫 번째, 큰 부인이 되실 것이옵니다.
유장자 고맙구먼.
왕건 절 받으시오소서.
왕건과 오씨가 큰 절을
올리고 있다.
유장자 부부가 당황한다.
왕건 (절을 끝내고) 얼마나 상심이 크시옵니까?
오씨 어떤 일이 있더라도 꼭 찾아서 뫼셔 오겠사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부용모 허지만....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왕건 모든 것이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저에게 책임이 있사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찾아 내겠사옵니다.
오씨 그렇사옵니다. 꼭 찾아서 좋은 형님으로 뫼실 것이옵니다. 폐하께서도 약속을 하신 일이 옵니다. 기다리시오소서.
유장자 고맙네, 그리 말들을 해주니 참으로 고마워. 사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언젠가는 찾게 되겠지. 자, 모처럼 이렇게 왔는데 우리 술이나 한 잔씩 하세.허허허.... 이보시오, 장모. 아랫것들에게 일러 술상 좀 봐오라 하시구료. 사위가 오지 않았소이까?
부용모 어이구.....
왕건 장인어른, 송구하옵니다. 오늘은 이 길로 황궁으로 가야 하옵니다. 폐하께오서 찾고 계시어서.....
유장자 허허, 이런.. 그럼 좀 한가할 때 오시 않고...왜 이리 급히 왔단 말인가?
왕건 하루라도 빨리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유장자 그래도, 그렇지.......
씬 7 황궁 외경
씬 8 황후전 복도
진내관이 다가와, 제조상궁에게 이른다.
진내관 이보시오, 제조상궁. 방금전 대전에서 연락이 왔소이다. 폐하께서 황후마마를 찾고 계십니다.
제조상궁 대전에서 말이옵니까?
진내관 그렇소이다. 어서 알려주시구료.
제조상궁이 끄떡이며 다시 큰소리로 아뢴다.
제조상궁 황후마마, 진내관이 대전에서 연통을 받아 왔사옵니다.
씬 9 동 황후전 안
연화와 슬이가 함께 있다가, 다시 묻는다.
연화 들라하여라.
곧 진내관이 들어온다.
연화가 다시 묻는다.
연화 무슨 일인가? 진내관.
진내관 소인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폐하께오서 황후마마를 대전으로 뫼셔오라 했다하옵니다.
연화 무슨 일이실꼬?..... 왜 갑자기 보자 하시는 것인고.....
의아해 하는 연화의 표정.
씬 10 대전
궁예가 복지겸과 마주 앉아 지형도를 살펴보며 끄떡이고 있다.
궁예 백제가 지금 다시 군사를 조련하고 있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아무래도 금성을 빼앗겼으니 어느쪽으로든 우리 마진에 공격을 해오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렇게 되겠지.
복지겸 그래서 말씀을 드리옵니다만은 백제에서 공격을 해오기 전에 아군이 먼저 어느쪽이든 새로운 전선을 택하여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시급하옵니다.
궁예 알겠소이다. 그래서 왕장군을 좀 함께 만나고 싶단 것이겠구료.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허지만, 왕장군도 쉬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이제 막 장가를 든 처지이고 금성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보낸다?
복지겸 하오나, 다른 장수들이 가는 것과 왕장군이 가는 것은 군의 사기에 있어서 다르옵니다.
궁예 허허허. 그럴테지, 그럴게야. 그렇긴허지만.......
궁예는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다시 묻는다.
궁예 병부령의 생각은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전선을 잡는 것이 좋겠소이까?
복지겸 신의 생각으로써는 (지형도의 상주를 가리키며) 바로 이곳이옵니다.
궁예 상주말이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상주는 견훤의 아비, 아자개가 있는 곳이옵니다. 그들 부자간은 사이가 아주 좋지를 못하옵니다.
궁예 맞아, 그 얘기는 나도 들었어.
복지겸 그러니깐, 그 틈을 이용하여.....
궁예 아자개를 치자는 것인가?
복지겸 아니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야 하옵니다. 아자개의 성은 놓아두고 인근의 성을 공략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이간계를 더욱 부추겨 부자간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일리가 있소이다. 음, 일리가 있어. 그 생각은 묘안 같소이다. 상주일대를 어차피 치기는 쳐야겠고, 더불어서 이간계를 써 백제가 내분을 일으키게 한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궁예 계획은 좋은데... 왕장군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아서 말이야....
씬 11 황궁 길
연화가 제조상궁과 내관들, 나인들을 이끌고 대전으로 가고 있다.
연화는 그렇게 가다가 문득 발을 멈춘다.
저만큼 누군가 오고 있는 것이다.
왕건이었다.
왕건도 잠시 놀라며 보다가 예를 올린다.
왕건 황후마마가 아니시옵니까?
연화 오랫만입니다, 장군.
왕건 예, 황후마마.
연화 지난번에 보니 금성에서 함께 온 부인이 아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옵니다, 장군.
왕건 망극하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대전으로 가십니까?
왕건 예.
연화 가시지요. 저도 대전에 갑니다. (그들 그렇게 가며) 나는 장군께서 영영 혼인을 아니하실 줄 알고, 걱정이 많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리하셔야지요.
왕건 예, 마마.
그들 그렇게 가면.....
씬 12 대전
궁예와 복지겸이 계속 그렇게 앉아 있는데, 대전내관이 알려온다.
대전내관 (E)폐하, 황후마마와 왕장군께서 드셨사옵니다.
궁예 오, 어서 뫼시어라.
씬 13 동 밖
대전내관 드시오소서.
그러면,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씬 14 다시 동 대전 안
연화가 궁예 옆에 앉고,
왕건이 막 예를 끝내며 그 앞에 앉는다.
연화 어인일로...? 부르셨사옵니까? 폐하.
궁예 아, 황후께서 할 일이 하나 있소이다. 여기 왕장군 말이오, 첫 번째 부인이 될 대룡부령의 여식이 지금 소식을 모른답니다.
왕건 .........
궁예 물론, 내가 지시를 내렸소이다만은 철원 일도 바쁘고 해서 자주 챙길 수가 없어요. 황후께서 좀 맡아서 재촉해 주시구료.
왕건 아......아니옵니다.
궁예 아니기는..... 자넨 내 아우이고, 황후는 형수가 되는 게야. 형수가 그 제수씨를 찾는 일인데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그렇소이까, 황후?
연화 알겠사옵니다. 그리하겠사옵니다.
왕건 망극하옵니다, 황후마마.
궁예 허허허허, 그렇다면 이 일은 황후께서 맡아 주셨고....
그때, 밖에서 다시 내관이 알려온다.
내관 (E) 폐하, 내군장군 입시옵니다.
궁예 들라하라.
은부가 들어와 예를 올리고 앉는다.
은부 찾아 계시었사옵니까? 폐하
궁예 그렇다네. 대룡부령의 여식을 찾는 일 말일세. 내가 지금 막 우리 황후에게 부탁을 드렸네만은 자네도 내군을 동원하여 전국에 영을 내리고 방을 붙이게. 내 제주씨를 좀 찾으란 말이야.
은부 알겠사옵니다, 폐하.
왕건 폐하.........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궁예 이런 일은 시간을 끌면 좋지가 않아. 일단, 집안 사람들이 찾지를 못하고 있다고 하니 내가 나설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내군장군은 즉시 시행하라.
은부 예, 폐하.
궁예 그리고, 곧 철원으로 갈 것이니 준비토록 하고...
은부 예, 폐하.
은부가 대답하며 나간다.
궁예 다 잘 될 것이야. 아우는 나와 함께 철원으로 가세. 자네도 보아야 할게 아닌가? 대 역사의 현장을 말일세. 그리고, 가면서 전선을 얘기 해야지..... 아니그렇소이까, 병부령?
복지겸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궁예 하하하하. 아우는 지금 제수씨 찾는 일이 더 급할 게야. 아니그렇는가, 이사람아? 하하하하.....
씬 15 길
전령들이 사방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벽에 부용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방이 붙여지고 있다.
그 위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전국의 지방 수령들과 태수들, 그리고 백성들은 들을지어다. 마진국 대 장군, 왕건의 부인이며 대룡부령의 여식인 부용을 아는 자는 나라에 고할지어다. 후히 상급을 내리리라.
씬 16 석총의 그 산사
일주문 사이로 석총이 들어서고 있다.
지나치던 사미승들이 합장을 한다.
석총은 곧장 법당 앞을 가로질러 가는데 열려진 문안으로 부용이 수없이 절을 올리고 있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있다. 삼천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석총이 한 참을 보다가,
웃는다
석총 쯧쯧쯧.....그래, 본래 인간의 정이란 모질고도 끈질긴 것이니라. 허허허..... 부처님 생각보다도 님 생각이 저리 절실허니, 큰 중 되기 어렵겠구먼....허허허.......
씬 17 동 법당
땀 투성이로 온 몸이 다
젖은 부용이 절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부용의 모습에서.....
부용 (E) 잊게 해주시오소서. 다 잊고 번뇌를 끊게 해주시오소서. 그 분을 잊게 해주시오소서.
씬 18 길
철원길이다.
궁예가 왕건과 함께 가고 있다.
은부와 금대 장일 등이
호위하고 있고, 병부령 복지겸도 보인다.
궁예 철원과 송악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야.
왕건 그런 것 같사옵니다.
궁예 많은 사람들이 이번 철원의 역사를 걱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 다음에 올 일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야. 움직이지 않으면 결과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왕건 .........
궁예 병부령은 이번에 아우가 다시 한 번 전장에 나가주었으면 하는 것 같은데.....
왕건 신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인들 가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내가 미안해서 그러지.... 허지만, 어쩌겠는가? 아우가 밖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기를 살리고, 그 동안에 나는 철원의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은부 .......
궁예 철원에 도착해서 보게나. 기가 막힌 곳이야. 아우도 아주 마음에 들게야. 허허허...
왕건 하오나, 폐하, 거듭되는 전쟁으로 인하여 백성들과 많은 호족들이 피곤해하고 있사옵니다.
궁예 알아, 내가 이 나라 마진국의 황제로써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일세. 백제와 우리 마진 중에서 누가 먼저 기선을 잡는가가 지금에 달려있단 말일세. 그러자면, 작은 불만들은 어쩔 수 없는 게야. 아우도 그것을 알아야해.
그들 그렇게 가면..
씬 19 전주 백제 황궁 외경
씬 20 동 대전
견훤과 최승우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견훤 무어라? 궁예왕이 오래전 순행을 하다가 경문왕의 화상을 칼로 쳤다?
최승우 그렇다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것이 무어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신라는 궁예왕과 서로 적이니 말일세.
최승우 하오나, 폐하, 세작들이 보내 온 첩보에 의하면 궁예왕이 무언가 신라황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사옵니다.
견훤 신라황실과?
최승우 예, 폐하. 그 옛날 궁예왕이 죽은 양길의 밑에 들어갈 무렵 죽주에 있는 칠장사라는 절에 들렸었는데, 그곳 늙은 비구니 한 사람을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있다 하옵니다. 지금 그 일을 지난 번 우리에게 온 양길의 옛날 수하들이 알아보고 있사옵니다.
견훤 허허, 그런 일은 왜?
최승우 칠장사에 그 늙은 비구니는 그 옛날 신라의 황실에 있던 여인이라 하옵니다. 그렇다면, 일이 묘하지 않사옵니까? 신라황실에 있던 사람이 고구려의 후신인 고려를 통치하는 황제가 되었다 이런 말이옵니다.
견훤 (그제서야) 허허.....그렇게 되는 것이로구먼. 하기사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서라벌에 있을 때 당시 각간 위홍과 궁예왕이 서로 만나는 것을 보았네. 그때 모르긴 몰라도 상당한 비밀이 있었던 것 같아.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그것을 잘 찾아내기만 하면 신라의 황족이 고구려의 옛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다는 모순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옵니다. 즉, 궁예왕이 왜 고려라는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애써 바꾸었는가 하는 그 내막이 풀리는 것이옵니다.
견훤 그렇겠지. 그렇다면 저들끼리 불신이 생길 것이고.....
최승우 바로 그것이옵니다, 폐하.
견훤 알아볼 필요가 있네 그려. 재미있는 일이야. 그리고, 우리의 전선은 어찌 되가는가?
최승우 금성일부만 빼고는 그 남쪽과 동쪽으로 신라를 곳곳에서 압박하고 있사옵니다. 신라는 이미 사실상 전쟁이 없다하더라도 우리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있사옵니다.
견훤 어떻게든 빨리 서라벌을 도모해야 하는 것인데...
최승우 서두르지 마시오소서, 폐하. 지금은 군사들을 쉬게 하면서 신라보다는 마진국을 경계해야 할 때이옵니다.
견훤 초조해서 그러네. 이러다가 서라벌을 궁예왕에게 뺏긴다고 생각해보게. 그렇게되면 우리의 꿈은 요원해지는 것이야.
최승우 신라를 힘으로 누르기보다는 복종하게 하셔야 하옵니다. 서라벌을 빼앗기보단 복종하게만 할 수 있다면 여러가지로 득이 크옵니다.
견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천년을 버티어 온 신라야. 저들이 우리를 섬기겠는가 말이야?
최승우 이미 폐하의 대명의 천하를 호령하고 있사옵니다.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견훤 아니야, 어느 세월에 그렇게 되겠는가? 쉬운 방법은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야. 그 길 밖에는 없는데......일단은 어쨌든 파진찬의 생각대로 해 봄세 그려.
최승우 망극하옵니다, 폐하.
씬 21 동 황궁 어느 전각
능환과 추허조가 함께 해 있다.
능환 뭐라? 파진찬이 군사를 쉬게 한다?
추허조 예, 형님.
능환 허허, 이런.... 그까짓 금성 하나 잃어버렸다고 그렇게도 몸을 사린단 말인가? 이럴수록 강하게 군사들을 단련시켜서 금성을 빼앗거나 다른 영토를 도모해야지. 언제까지 군사들을 쉬게 한단 말인가?
추허조 그러니깐 답답하다는 것 아니옵니까? 파진찬이 군권을 맡고부터 도대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사옵니다.
능환 그렇게하면 안되는데..... 최승우 그 사람이 왜 그럴까?
추허조 그리고, 뭔가 은밀하게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지난 번 수달장군에게 투항해 온 양길의 잔당들이 있지않았사옵니까?
능환 음, 그랬어지....
추허조 수달이 그 자들을 파진찬에게 보냈는데, 파진찬이 다시 뭔가 지시를 내려 적진으로 들어가게했다 하옵니다.
능환 (끄떡이며) 요즘 들어 폐하께서는 나와 별로 큰 일을 상의하지 않으시니 답답할 뿐일세.
추허조 폐하와 우리는 결의형제이옵니다. 형님에게 좀 지나치신 게 아니옵니까?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능환 그러지 말게. 그래서 될 일이 아니야. 이럴 때는 그저 조용하게 폐하의 마음이 편한해 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야.
추허조 허허, 이것 참....
씬 22 황후전
황후 박씨와 사위 박영규가 함께 해 있다.
박씨 참으로 오랫만에 사위 얼굴을 보네 그려.
박영규 송구하옵니다, 마마.
박씨 그래도 사위가 아닌가? 대전에 자주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내가 명색이 장모일세.
박영규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마마.
박씨 답답하고 궁금한 것이 많아 보자고 하였네. 나라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세상이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박영규 편히 생각하시오소서.
박씨 금성을 마진국에 빼앗기고부터 폐하께선 영 이 황후전에는 얼씬도 아니하신다네. 그저 늘 승평부인인가 고비인가 하는 그것에게만 가 계신다네.
박영규 허허허. 그저 다 넓게 생각하시오소서, 마마.
박씨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답답해서 그러지. 우리 태자들은 마치 남의 자식 대하듯 보고 계시고, 승평부인이 낳은 어린 것에게는 끔찍하게도 잘 해주신다네.
박영규 어찌하겠사옵니까? 옛말에도 늦게 본 자식이 더 이쁘다 했사옵니다.아마도, 잠깐 일 것이옵니다.
박씨 상주의 일을 생각해보게. 아버님이 지금의 계모님을 보시고 난 후 정실 자식인 폐하와는 아주 남남처럼 되어 버리셨네. 그것이 다 계모님께서 만드신 일이란 말일세.
박영규 잘 알고 있사옵니다.
박씨 아버님도 하여간 못 말리는 분일세. 자식이 백제국의 황제가 되었는데도 관심조차 아니둔단 말일세.
박영규 실은 그래서 모두들 걱정이 많사옵니다. 두 분만 화해를 하시면, 백제 땅은 그만큼 넓어지고 상주 또한 편안할 것인데......
박씨 (한숨) 그러니 자네가 많이 좀 도와주게. 우리 두 태자도 도와주고, 황후인 내게도 세상 소식 좀 자주 전해주고........
박영규 이를 말이옵니까? 마마께오서는 장모님이시옵니다. 앞으로는 자주 문안 올리겠사옵니다.
박씨 고맙네. 그리 해주게. 우리 형제나 가족들이 상주의 아버님처럼 되어서는 아니되지 않는가?
한숨을 쉬는 박씨의 표정에서...
씬 23 상주 아자개의 성
외경
아자개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24 동 성 안
아자개와 계모, 그리고
그 아들들이 용개와 보개, 그리고 대주도금이 함께 해 있다.
아자개 하하하.... 천하에 겁 없이 날뛰더니만 견훤이 그 놈이 금성을 고려에 빼앗겼다는구먼.
용개 아버님, 지금 고려가 아니라 나라 이름이 바뀌어 마진국이라 한다 하옵니다.
아자개 고려든 마진이든 간에 재미있는 일이 아니냐? 금성이 궁예에게 넘어갔단 말이야. 금성이.... 금성이 어디인가? 백제의 한 가운데를 궁예왕이 먹어버렸어요. 허허, 참.. 믿기지가 않는구먼. 아주 일이 재미있게 되었어.
계모 그러게 말이옵니다. 황제, 황제하면서 얼마나 위세가 등등했사옵니까?
대주 도대체, 말씀들을 왜 그리 하시옵니까? 그래도 저에게는 오라버니이시고, 아버님의 자식이옵니다.
계모 아니, 얘는 그쪽 이야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눈을 흘리고 대어든다니?
대주 그렇지 않사옵니까? 엄연히 백제국의 황제이시옵니다.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군사들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그래도, 부모 형제인데 돕지는 못할 망정 그렇게 비웃다니요? 너무하신 것 아니옵니까?
아자개 어흥...음, 뭐 비웃었다기보다도 어쨌든 기가 막힌 사건이 아니냐? 그래, 니 말이 옳다. 견훤이가 그래도 백제라는 큰 나라의 황제다. 헌데, 그 위엄이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져버린 것은 사실이 아니냐? 사람이란 자고로 겸손해야 할 줄을 아는 법이다. 그 얘가 이 아비를 오래전부터 우습게 알고 있단 말이다.
계모 그렇지 않구요.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은 다 견훤이의 책임입니다.
대주 어머님......
아자개 그건 그렇고, 금성을 빼앗고 되돌아간 그 장수 이름이 뭐라 하였드라? 왕.....왕건이라 했었지?
보개 예, 아버님.
아자개 궁예왕은 참으로 좋은 수하를 두었구먼. 대단한 장수를 부하로 두었어. 견훤이가 얼마나 속이 터지고, 배가 아팠겠는가? 허허허...
대주 ........(못 마땅하다)
용개 그 왕건이란 장수는 바로 지난 번 이곳에 왔었던 박술희이라는 장수의 의형이 된다 하옵니다.
아자개 오, 그래? 아하, 그랬었지. 그때도 박술희 그 자가 여기 왔을 때 그런 말을 했었어. 왕건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말이야.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고 싶구먼.
대주 남의 일이 아니옵니다. 우리의 적이옵니다. 아버님.
아자개 허지만, 나에게는 잘 해 주었다. 내 생일날도 왔었고, 박술희가 온 것은 결국 왕건이가 허락을 해서 오지 않았겠느냐? 우리와는 감정이 없어요. 않그렀소이까, 부인?
계모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서로가 적이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벌써 있었습니다, 암요.
아자개 그때 거 박술희가 대주 너한테 단단히 빠졌던 것 같던데....
대주 소녀는 그렇지 않사옵니다. 오로지 적과 적일 뿐이옵니다.
아자개 허허, 이 아이는 그저 사내 애들처럼 싸움 하는 것 밖에 모르는 모양이구먼. 그러니깐, 시집을 못 가지..이런 쯧쯧.....
씬 25 철원 공역 장(노을)
궁예 일행들이 오고 있다. 넓게 퍼져있는 공사 현장은 부산하고도 요란해 보인다. 궁예가 고개를 끄떡이며
만족한 표정을 보인다.
이곳 저곳에서 환자들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들도 보인다.
저쪽 한 켠에서 아지태가 공사를 독려하는 것이 보인다.
아지태 무엇들 하느냐? 저쪽 성곽을 오늘까지 마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감독관은 뭘하느냐?
감독관 송구하옵니다, 아학사 어른. 노역이 힘이 부쳐 사고가 속출하고 있사옵니다.
아지태 사고라니? 이런 큰 일에서 사람 몇 쯤 다치고 죽는다고 사고라 할 수 있겠느냐? 밀어부쳐라. 밤이 새더라도 오늘 네가 맡은 것을 끝내도록 해라.
감독관 예, 아학사 어른.
감독관은 그렇게 다시 가며 인부들을 독려한다.
감독관 서둘러라! 오늘 맡은 것을 다 끝내지 못하면, 아무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서둘러라!
씬 26 그 한 켠
궁예가 미소 지으며 보고 있다.
왕건이 착잡한 표정으로 그 전경들을 본다.
목재와 돌을 나르고 지붕을 세우고 곳곳이 부산하기
이를 데 없다.
아지태가 이들을 보고 다가온다.
아지태 폐하, 어서오시오소서.
궁예 고생이 많소이다, 아학사.
아지태 하루하루가 즐겁고 꿈만 같사옵니다. 고생이 있을리 있겠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허긴 그렇다오. 경과 나는 생각이 같거든. 제국의 대 역사를 이루는 일이야. 고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야.
아지태 그렇사옵니다, 폐하. 저쪽 군막으로 가시오소서.
궁예 그리하십시다.
이들 아지태를 따라 그렇게 간다.
왕건은 삭막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 공사 현장과 부상한 인부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착찹해 한다.
그 모습을 은부가 보고 있다.
그리고, 아지태가 그런
왕건을 본다.
아지태 왕장군, 그리고 병부령 보시니 어떻소이까? 그야말로 감회가 크실 것입니다?
복지겸 대단한 공역입니다.
왕건 인부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지태 그렇겠지요. 누가 일을 한다고 상을 주거나 쌀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은 많고 일은 재촉하고 있고 힘이 들지요. 허지만, 역사, 대 역사를 그냥 이루는 것 보았습니까? 다 힘이 든 법입니다.
궁예 나는 아학사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드오. 한 번 생각을 했으면,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그 힘 말이오.
아지태 그토록 칭찬을 해주시니, 망극하옵니다, 폐하.
은부 ........
은부는 쏘아 보듯 아지태를 본다.
그리고 넓은 현장을 본다. 이곳저곳에서 인부들을
감독하는 군관들이 보인다. 금대가 은부를 보고, 의미있게 또 다른 한쪽을 본다. 누군가가 이들을 보며 눈짓을 해 보인다.
뭔가 교감이 있는 것이다. 그들 그렇게 군막으로 가고...
씬 27 동 군막안(밤)
궁예를 비롯해 은부, 아지태, 복지겸, 왕건 등이 둘러 앉아 있다.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에 보니 어떠한가?
왕건 대 역사는 대 역사이옵니다. 참으로 대단하옵니다.
궁예 올해 안으로 궁궐과 전각을 모두 다 지어야, 내년에 옮겨 올 수가 있을 텐데.......
왕건 폐하, 내년에..... 도읍을 옮기실 생각이시옵니까?
궁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한 번 일을 결정했으면, 빨리 매듭을 짓는 것이 좋은 것이야. 철원에 황궁이라..... 이것이 제국의 중심이 된단 말이야. 사방을 통털어 그야말로 삼한의 중심이야. 아주 좋은 곳이야. 암......
모두들 ..........
궁예 그리고, 병부령과 얘기한 그것 말인데....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병부령은 아우가 상주로 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아. 어차피 충주까진 우리 군사가 마주해 있지 않은가? 충주에서 상주는 아주 가깝단 말이야.
왕건 그렇사옵니다. 신도 병부령께서 왜 그토록 상주를 원하는지를 알고 있사옵니다. 지리적으로 그곳을 취하면 백제의 북진을 차단하는 대단히 큰 전략적 효과가 있사옵니다.
궁예 그리고, 또 있지. 견훤왕의 아비가 그곳에 있어. 부자간에 서로가 갈등이 심하고..... 아우가 잘 계획을 세우면, 얻을 게 많을 것이야.
왕건 알겠사옵니다.
아지태 전략에 있어서 이간계만큼 효과가 큰 것도 드무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면 우리가 군사적으로 이기는 것보다도 더 큰 실리를 손쉽게 거둘 수가 있사옵니다.
궁예 암, 암...... 자, 그럼 송악으로 돌아가게 되면 왕장군은 상주로 떠나도록 하고.
왕건 예, 폐하.
궁예 얼마전에 여기 아학사와 의논을 하였는데, 내가 그동안 일이 바빠 법회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네.
모두들 .....
궁예 백성들이 나를 일러 미륵이라고 하고 있네.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리우는 내가 중생을 교화하는 법회를 소홀히 하다니..... 아니 될 일이 아닌가?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는 만 백성의 어버이시고, 또한 미륵부처이시옵니다. 더불어 한마디 말씀을 올리옵자면, 미련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종교라는 것만큼 뜻을 하나로 모으는 강력하고도 큰 힘은 없사옵니다.
궁예 그러하이. 백성들에게 미륵세계의 무한한 행복을 전해주고 무소유,즉 욕심없이 빈 손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전해주는 것은 나의 의무이기도 하네. 이보게, 은장군.
은부 예, 폐하.
궁예 송악으로 돌아가게 되면, 대소신료들을 모두 법회에 참석하라 이르게. 그리고, 산사에 있는 많은 절의 승려들에게 일러 의무적으로 법회를 주재하도록 전하게. 이는 즉시 지금 송악으로 전하라.
은부 예, 폐하.
궁예 철원에 황궁을 짓고 있고, 왕장군은 다시 상주로 가고 나는 법회를 통해 백성들과 신료들을 단속하고......완벽해! 그리만 된다면 모든 게 계획대로 다 잘 될수가 있어. 하하하. 아우, 나는 자네만 보면 그저 든든허이.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잘해보세. 서로 서로가 손을 잡고 잘해보는게야.
씬 28 송악 왕건의 집
사랑
오씨가 왕평달, 두 사부, 그리고 왕식렴 형제와 장수장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하고 있다.
오씨 숙부님, 아직도 연락이 없사옵니까?
왕평달 그런 모양이야. 작심을 하고 집을 나갔는데, 쉽게 찾을 수가 있겠는가? 어려운 것 같아. 벌써 꽤 되었지 않은가 말이야.
왕식렴 폐하께서 부용아씨를 찾으라 전국에 영을 내리셨다 들었사옵니다.
변사부 곳곳에 방까지 나붙어 있사옵니다.
마사부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부용아씨를 찾는 일은 황후마마께서 특별히 나서시어 단속하고 계신다 들었사옵니다.
오씨 어떻게든 찾아야 하옵니다. 도련님께서 많은 상인 집단과 조직을 갖고 계시니 서둘러 주십시오.
왕식렴 이를 말씀이옵니까, 형수님.
오씨 앞으로 장래를 위해서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정주와는 단단히 맺어져야 하옵니다. 반드시 찾아야 하옵니다.
왕평달 조카 며느리가 그토록 더 열심이니 고맙구먼.
오씨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저의 형님이 되시는 분이시고, 이 집안의 큰 며느님이십니다.
왕평달 생각하기 따라서는 같은 여인끼리라 투기나 질투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인데, 그렇지가 않으니 고맙다는 것이야.
오씨 당연한 일이옵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저도 편안한 것이고 또한 서방님께서 잘 되셔야 제 운명이 바로 서옵니다.
왕평달 허.........
오씨 정주는 송악과 더불어 대단한 재력이 있는 집안이옵니다. 또한 저희 금성도 서남해에서는 일가를 이루고 있사옵니다. 모두가 서방님을 도와야 하옵니다. 정주의 유장자님과 사돈이 되시면 많은 패서인들이 또한 모일 것이고, 그것이 훗날 큰 힘으로 발전하여 서방님의 단단한 밑받침이 될 것이옵니다.
왕평달 허........ 자네는 볼수록 참으로 대단하이. 대단해.......
씬 29 정주 유장자 집
외경
씬 30 동 집 사랑
유장자 부부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보고 있다.
부용모 정말 죽은 것이 아닐까요?
유장자 허허, 무슨 불길한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부용모 그렇지 않고서야 폐하와 황후마마께서도 나서셨는데, 이렇게 감감 무소식일 수 있사옵니까?
유장자 (한숨을 쉬며) 조금더 기다려 봅시다. 어디서든 소식이 올게요. 아, 온 나라가 다 나서서 찾고 있지 않소이까?
부용모 그런데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으니 말씀을 올리는 것이 아니옵니까? 아이고, 속이 타옵니다. 이 아이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꼬?
유장자 왕장군도 우리에게 와서 분명히 약조를 했소이다. 우리 부용이를 첫번째 부인으로 맞겠다고 말이오. 두 사람이 다 와서 그리 말하지 않았소이까? 이제 부용이가 돌아오기만 하면 될 것인데, 허허....
씬 31 산사
밤은 칠흙같이 어둡다.
장명등에는 불이 밝고 누군가가 절 마당으로 들어오며 흘깃 법당 쪽을 본다.
허월이다.
법당에서 계속 절을 올리고 있는 부용을 본다.
고개를 외로 꼬며 더욱
다가가본다.
그러다가, 흠? 놀란다.
아는 얼굴인 것이다.
다시 간다.
씬 32 동 산사의 객사
외경
석총 (E)허허, 대사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고?
씬 33 동 객사 안
늙은 두 고승이 마주하며 빙긋이 웃고 있다.
석총 왠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오셨는고?
허월 집없고 본래 가진 것 없는 떠돌이 중인데, 오고감이 무슨 걸림이 있겠는가? 이보게, 석총.
석총 말씀하시게.
허월 나는 오다가 나라에서 찾고 있는 어느 처녀의 화상을 보았다네.
석총 나도 보았지.
허월 그 처자가 아마도 대룡부령 유장자의 여식이라지.
석총 그렇다는 구먼.
허월 헌데, 그 처자가 왜 이 절에 와있는가? 언제 머리는 깎았고......?
석총 갈 때 되면 갈 아이일세. 잠시 와서 쉬고 싶다는 데야 어쩌겠는가? 두고 볼수 밖에.
허월 딱한 처녀로구먼. 남녀간의 정이란 참으로 더러운 것이야. 한 세상 잠깐 살다 가는 것인데 그놈의 정이 무엇이라고 저리도 죽어라고 절만 올리며 자신을 학대하고 있단 말인가?
석총 하루에 삼천 배씩 한다네. 허허허. 그건 그렇고 이보게, 허월이.
허월 왜 그러시는가?
석총 고려가 얼마전에 마진으로 변해버렸네. 황제 독단으로 말일세.
허월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석총 그대는 그 옛날 궁예황제에게 명주를 그냥 내주었다지?
허월 옛날 이야기는 뭣하러 하는가?
석총 황제가 의무적으로 법회를 강화한다하더구먼.
허월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법회를 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오래 산길을 걸었더니 목이 마르네. 곡차 좀 내오게, 이사람아.
석총 허허허. 여전허이. 이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일세. 그건 그렇고 이 보게, 허월. 황제 말일세.... 정말로 미륵일까?
허월 왜?
석총 내가 알기로 처음에는 분명 미륵이었네. 살아 있는 생불이었지. 헌데, 갈수록 백성에게서 멀어지고 눈앞에 욕심만 보이는 것 같네 그려. 욕심말일세.
허월 딱하구먼. 세상이 다 아는 그런 말을 새삼 무엇 때문에 하는가? 그 자리가 어떤 자린가? 권력과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가? 처음에는 백성의 이름을 팔고 도움을 받아 그 자리에 오르고, 오르고 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백성을 밟고 착취를 해야 하네. 그것이 권력의 생리인 것이야. 어서 술이나 내오게.
석총 그자는 미륵이 아닐세. 나는 알고 있어. 대 제국 건설의 욕심에 미쳐있는 광인일 뿐이야. 아니그런가?
허월 허허, 술이나 내오라는데도 이러는구먼. 오늘 밤새 퍼 마셔 보세.
석총 아니야, 궁예황제는 미륵이 아니야.....
씬 34 황궁 내원 (낮)
종간과 염상이 함께 앉아 있다.
종간이 도리질을 한다.
종간 (한숨) 신료들을 모아, 법회를 강화하라?
염상 예, 폐하께서 그리 영을 내리셨다 하옵니다. 왕건장군은 돌아오는 대로 곧 상주로 갈 것 같사옵니다.
종간 왕장군의 일은 그럼 잘 된 것이고.....이번 법회 문제는 틀림없이 아지태가 내어 놓았을 것이야. 불만에 찬 백성들과 호족들을 하나로 묶는 길은 그것이니깐. 허허허... 제법 머리를 썼네 그려.
염상 철원의 공역이 상상외로 심각한 것 같사옵니다.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고, 도주하는 자들도 허다하다 하옵니다.
종간 너무 무리하게 일을 서두르고 있어. 조금 더 안정이 된 다음 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단 말인고. (한탄) 참으로 안타까우이. 생각할수록 아지태를 만난 것은 비극이었어.
염상 실은 그래서......... 말씀을 드리옵니다만은, 이번 기회에 아지태를 꼭 제거하라고 일러 놓았사옵니다.
종간 어리숙하게 일을 해서는 아니되네. 잘 못 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수 있어.
염상 단단히 일러놓았사옵니다.
종간 고개를 끄덕이면.
씬 35 철원 그 공역장
오늘따라 모진 바람이 불고 있다.
여전히 곳곳에서 인부들은 부산하게 바쁘다.
아지태의 안내로 궁예가 함께 걸으며 돌아보고 있다.
은부가 그 뒤를 따르고
있고, 한 참 떨어진 뒤로 왕건과 복지겸이 따르고 있다. 궁예와 아지태는 계속
가며, 말을 주고 받고
있다.
아지태 폐하, 보시오소서. 저쪽으로 정전이 들어설 것이며, 또한 저쪽으로는 황궁의 일을 볼 수 많은 전각들이 들어설 것이옵니다. 이미 그 기초가 다 잡혔사옵니다.
궁예 (끄떡이며) 어쨌든 좀 더 서두르시오. 내년까지 가서는 아니돼.
아지태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자, 이쪽으로 돌아보시오소서.
궁옙 그렇게 하십시다.
그들은 어느 터를 돌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서까래들이 한쪽에 높이
쌓여 있다.
그것들은 밧줄로 묶여 고정되어 있고.....
은부와 함께 오던 금대가 어느쯤에선가 계속해 이쪽을 노려보고 있던 작업인부와 함께 시선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아지태는 계속
설명을 하며 궁예와 함께 앞서간다.
아지태 이쪽은 폐하께서 계실 대전이옵고, 저기 저쪽이 태자마마께서 기거하실 동궁전이 될 것이옵니다.
궁예 음.....
아지태 이쪽으로 오시오소서.
그렇게 얼마를 가는데,
아지태가 궁예보다 두어
발자국 앞 서 가자, 금대와 그 인부의 시선이 교환된다. 그리고, 드디어 인부가
가지고 있던 도끼로 쌓여 있는 나무의 한 면을 친다. 줄이 끊기고, 통나무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방향이 잘 못 되었다. 통나무들은 계속 굴러 내리며 삽시간에 아지태와 궁예를 덮쳐 들고 있다.
은부 폐하, 피하시오소서. 폐하!!
은부가 달려들며 궁예를
안고 뒹군다.
그리고, 그 찰나에 아지태의 한쪽을 덮치며 통나무가
넘어가고 있다.
아지태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궁예는 간신히 은부에 의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
통나무들은 여전히 수없이 굴러 내리고 있다.
충격적으로 보는 궁예의
그 표정에서...
스톱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