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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덕의 길
예수의 성 데레사
제32장
"주의 기도" 중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구절을 풀이함.
굳은 결심을 가지고 이 말씀을 외우는 이는 큰 일을 하며, 주께서는 그에게 얼마나 잘 갚아주시는가에 대해서 말함
1. 좋으신 우리 스승님은 우리를 위하여 빌으셨고, 또 이승에서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그렇게도 값진 것을 우리가 빌도록 가르치셨으며, 우리를 당신 형제로 삼으시도록 그토록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스승님은 우리가 당신 아버님께 무엇을 드리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아버지께 바치시며, 우리한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이렇듯 스승님의 큰 은혜를 입은 우리들로서 무엇으로든지 섬겨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아아 좋으신 예수님, 당신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적으시면서 요구하시는 것은 많기라도 합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드리는 것은 위대하신 주님 앞에서는 당신이 주신 것에 비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못 드리게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바치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는 정신으로 드린다면 말입니다.
2. 좋으신 스승님이여, 위의 기도를 드리신 것은 잘하신 일입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를 우리가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하셨더라면 이것은 전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위하여 빌으신 그 나라를 당신의 아버지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신다 하니,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위하여 약속하신 바를 이행함으로써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땅이 하늘이 될 수 있다면, 당신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나같이 몹쓸 땅, 열매 하나 맺지 못하는 땅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주여, 나는 그 가능성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바치신 것이야말로 실로 큰 것이었습니다.
3. 이것을 생각하면, 시련을 당할 때 주님이 즉시 들어주실까 하고 주저하면서 감히 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스워집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제 힘으로는 도무지 견딜 수 없다는 겸손한 생각에서 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는 주께서 사랑을 주시어서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어려운 일을 청할 만큼 된 사람이면 고통을 견딜 만한 힘도 주님께 받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들어주실까 무서워서 애당초 청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당신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말할 때 도대체 무엇을 주님께 빌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을 지킬 마음도 없으면서 그저 남들이 외우니까 덩달아서 하는 말뿐인 것입니까? 자매들이여, 정말 그렇다면 안 될 말입니다.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합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우리의 대사격으로 당신 아버지와 우리 사이를 조정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적잖은 당신의 희생으로 그와 같이 하시는 만큼,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이 바치신 바를 우리가 그대로 실천하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일 것입니다.
4. 달리 또 한번 설명하겠으니 자매들은 똑똑히 알아두십시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늘과 땅에서 채워져야 하고, 그리고 채워지는 만큼 내가 타이르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어쩔 수 없는 당신의 뜻을 채움으로써 덕을 닦도록 하십시오.
아아 내 주님이시여, 나같이 못된 인간이 당신의 뜻을 채우게 하여주시다니, 이 얼마나 흐뭇한 은혜입니까? 영원토록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모든 것이 당신을 기리게 하소서. 영원무궁 당신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소서.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 하는 것이 내 손에 달렸더라면, 나는 어찌 될 뻔하였겠습니까? 아무튼 아직도 나를 떠나지 못한 마음이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당신께 이것을 바칩니다. 하도 여러 번 경험을 해서 얻은 것입니다만, 내 뜻을 당신 뜻에 자유롭게 맡겨 드려야 나는 얻는 것이 있습니다. 자매들이여, 정말 이 얼마나 큰 소득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주의 기도"에서 주님께 바친다고 외우는 그것을 지키지 아니할 때, 그 손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5. 나는 여러분에게 얻음에 대하여 말하기보다는 먼저 바치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후일에 여러분이 우리는 속았다. 알아듣지 못하였다 하고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는 어떤 수녀들같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자기가 약속할 때는 무엇인지 모르고 했다는 핑계를 댑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을 싫은 이의 뜻에 맡긴다고 말로 하기는 퍽 쉬우나 막상 일을 당하고 보면 그것을 제대로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제야 깨달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은 우리가 약한 것을 알므로 매양 우리를 엄하게 다스리지는 않지만, 약한 사람이나 강한 사람을 똑같이 다루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우리 각자의 참을 수 있는 정도를 아시므로, 누가 힘센 것을 보시면 그의 안에 당신의 뜻이 채워질 때까지 멈추지 않으십니다.
6. 그럼, 주의 뜻이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풀어서 말해볼까 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에게 부귀나 쾌락이나 명예나 이승의 그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그다지도 인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당신께 바친 것을 끔찍이 여기시고 그 대가를 너끈히 치르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당신 나라를 주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부터 비는 이들을 하느님은 어떻게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까? 영광스러운 그 아드님께 여쭈어보십시오. 게쎄마니 동산에서 비시던 그분께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어떠한 결심을 가지시고 당신의 의지를 몽땅 바치면서 기도하시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시련과 고통과 모욕과 박해를 거쳐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이 그분 안에 얼마나 완전히 채워졌는가를 깊이 우러러보십시오.
7. 따님들이여, 여러분은 여기서 아버지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그 아드님에게 주신 것을 보고 당신의 뜻이 무엇인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분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를 대하시는 그분의 사랑의 정도에 따라 더 사랑하시는 이에게는 더한 선물을 주시고, 덜 사랑하시는 이에게는 덜한 선물을 주십니다. 이는 각자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보시고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면 당신을 위하여 많이 참을 수 있음을 아시고, 적게 사랑하는 사람이면 적게 참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나는 큰 십자가, 혹은 작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은 사랑의 무게에 달렸다고 봅니다.
자매들이여, 사랑을 가졌으면 힘써보십시오. 엄위하신 하느님께 드리는 말씀이 다만 정중한 말씨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니, 용기를 일으켜서 당신이 뜻하신 바를 끝까지 해내십시오. 여러분이 이와 같이 마음을 바치지 아니하면, 그것은 마치 보석을 보여주면서 드릴 테니 받아주십시오 했다가 주님이 막상 손을 펴 받으려고 하면 얼른 도로 집어넣는 사람이나 같습니다.
8.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 얼마나 큰데, 우리의 이런 장난은 주님께 당치 않은 것입니다. 우선 “주의 기도"를 드릴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바치지 않을 때마다 주님을 조롱한 것이 그 얼마나 됩니까? 그렇게도 여러 번 드린다 드린다 해 왔으니 이제는 그 보석을 단 한 번으로 몽땅 다 바쳐봅시다. 사실 당신이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까닭은 우리가 그것을 당신께 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세속 사람들 같으면 진정 약속을 지킬 진심 하나로 넉넉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따님들은 약속도 하고 지키기도 하여 언행이 일치해야 됩니다. 그래야 정말 수도자다운 것입니다.
9. 내가 이 책에서 여러분에게 말한 것들은 다음의 몇 가지를 위한 것입니다. 즉, 우리를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 당신의 뜻에 우리의 뜻을 두는 것, 그리고 피조물을 이탈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벌써 깨달았으니, 그에 대한 말은 더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좋으신 우리 스승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서 이러한 낱말들을 쓰셨는가 하는 것만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물론 우리가 당신의 영원하신 아버지께 봉사를 해드려야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준비함으로써 어느덧 나그네 길을 끝내고 이미 말한 바 있는 그 생명수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서 매사에 당신 뜻대로 하시게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결단코 그 생명수를 마시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10.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부탁한 완전한 관상입니다. 여기서는 이미 내가 적어둔 바와 같이 우리 힘으로 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힘들일 것도, 머리 쓸 것도, 아무것도 더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는 말씀의 장애물이 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빌기 때문입니다.
“주여, 당신의 뜻이 내 안에 채워지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대로 다 이루어지소서. 고생을 시키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시면, 고생과 힘을 내게 주소서. 박해와 병고와 망신과 가난을 주시는 것이 당신의 뜻이시면, 여기 대령하였나이다. 얼굴을 돌리지 않으리이다. 내 아버지시여, 어찌 감히 얼굴을 돌리겠습니까? 이미 당신 아드님이 전 인류의 이름으로 '내 뜻'을 당신께 온전히 바쳤사온데, 내 탓으로 그 말씀이 헛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내게 은혜를 내리시어 당신의 나라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드님이 나를 위하여 비신 대로 당신 뜻을 채우게 하여주소서. 나를 당신처럼 당신 뜻대로 다루어주소서."
11. 자매들이여, 뜻을 바치는 이 선물, 이보다 더한 힘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결심을 가지고 아낌없이 바치기만 하면, 전능하신 분을 끌어당겨 미천한 우리와 하나가 되시게 할 수 있고, 우리는 당신과 결합되어 창조주와 피조물이 합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얼마나 흐뭇한 갚음을 받습니까? 얼마나 좋으신 스승님을 모시고 있습니까? 당신은 아버지의 뜻을 얻는 길을 아시기 때문에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아버지를 섬길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12. 여러분이 빛 좋은 말이 아닌 행실로 바치는 생활을 할수록 주님은 더욱 가까이 당신께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이승의 모든 것과 자기를 떠나 크나큰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높여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섬겨드리는 데 대한 갚음을 이 세상에서부터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섬겨드림을 어찌나 대견스럽게 여기시는지 마냥 지칠 줄 모르시고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더 청해야 할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 당신과 결합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비로소 그와 기쁨을 나누고 비밀을 열어 보이십니다. 주님은 이미 받은 은혜를 영혼이 깨닫고 장차 받을 은혜를 미리 짐작하는 것을 보시고 기꺼워하시는 것입니다.
영혼 밖에 있는 기능을 잃게 하시어 아무것도 영혼을 귀찮게 구는 것이 없도록 하시면, 그것이 바로 '흘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주님은 영혼과 지극한 사이가 되시어 당신께 바쳤던 의지를 돌려주실 뿐 아니라, 당신의 의지를 주시며 바꿈질을 하십니다. 서로 번갈아서 명령을 내릴 만큼 지극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은 영혼이 청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영혼도 당신이 명하시는 것을 채워드립니다.
주님이 영혼보다 훨씬 뛰어나게 하시는 것은 물론입니다. 당신은 전능하시어서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대로 하시고, 그 원하심은 끝이 없으십니다.
13. 그러나 영혼은 가엾게도 아무리 원하여도 그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내리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섬길수록 그만큼 당신께 빚쟁이가 된다는 사실에 오히려 영혼의 풍부한 밑천이 있지 않겠습니까? 영혼은 이 빚을 얼마라도 갚으려 하건만, 육체의 감옥 안에 있는 탓으로 귀찮고 거치적거리고 얽매이는 것들이 하도 많아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런 괴로움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방금 말한 바와 같이, 받아야 줄 수 있는 우리라면 영혼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고 한들 우리는 무엇을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스스로를 알고, 우리 의지를 주님께 바치되 온전히 바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이외의 모든 것은 하느님이 여기까지 끌어올리신 영혼에게는 장애요. 해독일 뿐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쓸모있는 것은 오직 겸손 하나뿐입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상상력을 써서 오성으로 얻는 겸손이 아니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요 하느님은 무한하시다는 것을 일순간에 깨닫는 그러한 겸손입니다.
14. 여기서 한 가지 부탁하겠는데, 여러분의 노력과 근면으로 여기에 도달하려고 생각지 마십시오. 그것은 헛수고일 따름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에 있던 열심도 식어버릴 것입니다.
- 완덕의 길/ 예수의 성 데레사 지음/ 최민순 옮김 /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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