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벌 나들이
말복을 하루 앞둔 염천 기세는 꺾일 기미가 없다. 중부권은 소나기라도 간간이 지나갔다만 우리 지역은 비마져 귀한 가운데 한낮은 연일 폭염경보고 새벽까지 열대야다. 방학이 되면 산행은 어디를 다녀오고, 지인은 누구를 만날지 생각해 두었다. 계획한 일정보다 차질이 생김은 어쩔 수 없었다. 밀양 사는 지인을 한 번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방학 막바지 서둘러 시간을 냈다.
나보다 연장인 밀양 지인은 밀양강변 송림 곁 아파트단지에 살며 그곳 어느 학교에 나가는 일반직이다. 지인은 수년 전 창원에 근무할 때 기회가 온 사무관 승진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밀양으로 복귀했다. 고향마을이기도 한 예림서원 곁 사포리 묵은 포도밭을 장만해 여가시간 텃밭을 일구고 산다. 일과 후나 주말이면 텃밭을 일구고 얼기설기 엮어 만든 농막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팔월 둘째 주 일요일 오후였다. 손가방을 하나 들고 집 앞에서 211번을 타고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손에 든 내용물은 초여름 딴 오디로 만든 효소와 지난겨울 칡뿌리로 담근 술이다. 지인은 내가 산과 들을 나다니며 산과나 산나물들을 채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평소 나눈 통화에서 “좋은 것 혼자 먹지 말고 나누어 먹음세.”라 한 바 있기에 빈손으로 갈 수 없는 처지였다.
마산에서 대구로 오르내리는 무궁화열차를 탔더니 반시간 남짓 걸려 밀양역에 닿았다. 밀양역 광장은 대지의 열기로 푹푹 찌는 듯했다. 먼저 연락 간 지인은 자동차를 몰아 마중을 나와 주었다. 밀양은 알려진 골과 산이 많다만 더위를 식힌다거나 산천경개 유람할 여유가 없었다. 둘은 시내를 벗어나 예림서원 가까운 지인의 텃밭으로 갔다. 사포 일대는 포도 수확이 한창이었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 지인은 너른 텃밭을 관리하느라 무척 힘든 날을 보내고 있었다. 초보 농부는 작물 가꾸는 기술보다 무성한 잡초를 어떻게 제압하는가가 선결 과제였다. 나는 텃밭에 자라는 작물들을 둘러보았다. 참깨는 익어 수확을 하는 즈음이고 들깨는 잎이 청청했다. 빨간 고추는 따서 말리는 중이고 콩은 잎이 무성했다. 밭둑에는 호박과 박을 심었고 가지도 열려 있었다.
텃밭 모퉁이 닭장을 지어 놓고 여남은 마리 닭을 치고 있었다. 여름에 마늘과 양파를 거둔 곳은 가을 김장 채소를 심을 자리라 했다. 봄에 자잘한 모종을 심어 키운 대파도 몇 이랑 되었다. 봄부터 여름까지 작물을 가꾸기보다 바랭이를 비롯한 잡초를 제거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지인은 그 흔한 예초기는 다루질 않고 제초제는 뿌리지 않았다. 관리기도 없이 손수 자르고 뽑았다.
지인은 나를 마중 나오기 전 못다 한 깻단을 묶고 나는 고구마이랑에서 잎줄기를 땄다. 나는 농막 그늘에서 고구마잎줄기 껍질을 벗겼다. 고구마잎줄기는 농약이 묻지 않는 친환경채소로 데쳐 나물로 무치거나 된장국에 넣어 끓여도 좋다. 지인은 깻단을 묶다 말고 가지를 따서 챙겨 주었다. 이웃 밭에서 미리 사 둔 제법 많은 포도를 안겨주었다. 짐 꾸러미는 두 손에 들 정도였다.
우리는 텃밭을 빠져나와 사포초등학교 곁을 지났다. 지인은 그곳 초등학교 출신으로 총동창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사포공단과 개울을 사이로 이웃한 지인의 옛집은 공단근로자가 살고 있다고 했다. 마을 앞은 차도가 훤히 뚫리고 예전에 없던 몇몇 식당도 보였다. 우리는 추어탕 집을 찾아들었다. 일요일에 특근을 하는 공단근로자들이 있어 일요일도 식당 문을 연다고 했다.
소주잔을 나누려니 마땅한 안주가 없어 갈치조림을 시켜 놓고 맑은 술을 몇 잔 기울였다. 서로는 몸은 물론 마음의 건강까지 잘 관리하자고 다짐했다. 식당을 찾아온 손님가운데는 지인과 안면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되돌아갈 열차시각을 가늠해 놓아 그렇게 서둘지 않고 잔을 비우고 채워주었다. 이후 맛깔스럽게 차려낸 추어탕을 먹고 택시를 불러 밀양역으로 향했다. 13.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