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해외 근무지에서 여러 외국어를 접하면서, 언어의 생성 그리고 언어가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나 문화의 형성과정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오랜 일본생활을 통해 일본어의 뿌리가 한국어에 있음을 몸소 체험 하였다.
일본말속에 감춰진 한국말을 하나하나 캐내기 시작한 지 20여 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천착해 온 노력과 연구와 탐색의 결과로 2005년 가을, <일본말속의 한국말-한일 고유어 비교사전>은 빛을 보게 되었다-저자 약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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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파랑 |
<일본말속의 한국말-한일 고유어 비교사전>은 오랜 외교관 생활을 해 온 전직대사인 저자의 20년 열정의 산물이다. 543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책 속에는 수많은 일본말이 나온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일본말속에 우리말이 어떻게 일본말을 만들어 냈는지를 저자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황국사관, 식민사관, 대한 종주국사관 등으로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며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기를 두려워하는 일본의 지식인들이 보면 뜨끔할만한 귀한 성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36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친 저자가 '자신들의 자생력으로 단독적으로 발전해 온 것처럼 의기양양대는 일본말의 실체를 우리 민족적 자긍심'으로 낱낱이 밝혀낸다.
그간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는 일본어'를 알려주는 사전이나 설명글들은 많이 있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말을 직접 예로 들어서 낱낱이 분석하고 일본어의 뿌리가 우리말, 즉 고대한국어임을 증명해내는 책은 없었다.
그리고 일본말이나 문화는 우리에게서 비롯되었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글도 간혹 있었지만 이렇게 낱말 하나하나를 예로 들면서 증명해내는 책은 전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기념비적인 자랑거리랄 수 있겠다.
일본말을 파헤치고 그 뿌리를 찾아 설명하는 보기는 이렇다. 일본어를 이미 배운 사람들은 물론 일본어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일지라도 나름의 성과는 얻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つ[津], つなみ[津波] (1) 진津(つ)은 나루터, 항구를 뜻한다. 요즘 항구도 그렇지만 옛날 나루터도 사람의 왕래나 짐의 운반을 위하여 둑을 쌓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둑 자체가 나루터가 된다. '둑'에서 '두-つ'로 이어진다. 일본에서 제일 큰 호수가 びわこら인데 주변에 있는 도시 중 제일 큰 도시가 大津(おおつ)이다. 제일 큰 둑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으로 보인다.
(2) 진파津波(つなみ)는 둑으로 몰려오는 큰 파도(大波)라는 뜻이다. 한국어에서 파도가 크게 치는 것을 너울거린다, 너울진다고 표현하는데 동명사형은 '널음'이 된다. 파도(津波)를 뜻하는 波(なみ)는 한국어 '널음'에서 '너음-넘-남-なみ'로 이어지고, 津(つ)와 합성되어 津波(つなみ)로 이어진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つなみ가 20만 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가면서 국제어 tsunami가 되었는데 알고 보면 본래의 어원은 고유 한국어이다. - 본문 중에서
'본방(本邦,즉 본국(本國)이 망하여 의지할 곳도 말할 곳도 없다'고 일본의 사이메이 천황이 통곡했다는 것이 <일본서기>에 기록되어있다. 또한 이미 항복한 백제를 구하기 위하여 멀리 츠쿠시(지금의 규수)까지 가서 객사하면서까지 부흥군 파견을 독려하고 준비한다.
결국 구원군 27,000명을 파병했지만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하고 백제가 영원히 멸망하자(663년) 야마토 조정의 신하들이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겼으니 조상의 묘소에 어찌 다시 갈수 있겠는가'라고 절규하였다는 기록까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자신들의 조상은 우리의 조상인 것이다. 일본서기의 앞서 기록들을 보면 백제인들이 일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가 더 자세히 드러난다. 일본서기 720년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 정치적인 격변이 있을 때마다 일본열도로의 집단이동이 있었다.
특히 백제의 이동이 심했는데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수십 차례의 전쟁이 있었던 5세기 초에는 집단이주가 더 많았다.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한 백제인들의 집단이주는 일본 야마토 정권의 발전의 주축이 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세기 중엽에 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의 왕족을 포함한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망명하여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일본에 망명한 백제 인들은 나라시대의 기틀을 잡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백제의 왕족을 포함한 지도층들의 집단적인 망명은 일본사람들에게 문화다운 문화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천황들이 백제촌이 많은 야마토지역의 백제강 부근에 백제궁과 백제대사를 지었으며 백제음악을 즐기고 천황의 시신을 모시는 안치소 이름을 백제대빈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미 보았을 것이며, 잘 알고 있을 터인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일본의 신라침공'이나 '임나일본부를 통한 한반도 지배설'을 주장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보았자 일본의 뿌리는 우리조상임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기록들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발굴해내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할수록 그 제대로 된 실체를 드러낼 수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아무리 발뺌을 하고 왜곡을 겹겹으로 하여도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분명한 실체를 드러낼 양국의 역사적 진실이지 않겠는가.
한 민족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가장 우선적인 것이 언어라고 보면 언어적인 면에서 일본말의 뿌리는 우리말임을 세세히 증명해주는 이런 책이 가치가 높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일본어를 배우지 않아 우리말 설명을 통하여 일본말을 유추해보았지만 책을 넘겨나가며 저자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내안에 민족적 자긍심은 뭉클뭉클 감동으로 가득 차 올랐다.
이름 없는 독자지만 헝클어진 두 나라의 역사를 바로잡을 뿌리가 될 계기의 이 책이 참 자랑스럽다. 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관심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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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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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택은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962년 14회 고등고시 행정과 3부(외교)에 합격하면서 외교부에 입부한 이래 줄곧 외교생활을 해온 전직 대사이다. 카이로 총영사, 싱가포르 대사, 덴마크 대사, 오사카 총영사 등을 지냈으며 국내 보직으로는 조약 심의관, 국제기구 조약국장, 외교안보 연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7년 주 일본 대사관에서 초임으로 해외 근무를 시작, 1998년 오사카 총영사를 마지막으로 이듬해인 1999년 퇴임하기까지, 영어, 불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덴마크어, 일본어 등을 접했다. 퇴임 후에는 객원 교수로 동국대에서 국제법을 강의했고, 경희대에서 한국과 일본의 교류관계에 관하여 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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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의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한국어가 수많은 한자어를 수용한 예를 보더라도, 일본 지식인들의 주장처럼 고대사에서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200여 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하고 특히 백제를 속국으로 다스렸다면 당연히 일본어(야마토어)가 지배어로서 군림하면서 당시의 한국어는 '힘없는 언어'로 사멸되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사멸되었어야 할 한국어는 오늘에 이어지고 있으며, 지배어로 군림했어야 할 야마토어는 오늘의 한국어 어디에서도 그 흔적과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역사적 문헌이나 기록, 문화적 정황, 일본에 산재한 유물이나 유적, 일본 각지에 널려있는 수많은 한국과 연관된 지명에서 한반도 세력이 주력이 되어 일본을 이끌어 갔다는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한국어가 지배언어였을 것이고 그 뿌리가 일본어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단정 지어 이야기해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 김세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