覺山 정원규님의『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 초판 1쇄』, 이건 아니다(04)
佛告舍利弗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諸有所作 常爲一事 唯以佛之知見 示悟衆生
舍利弗 如來 但以一佛乘故 爲衆生說法 無有餘乘 若二若三
舍利弗 一切十方諸佛法 亦如是
“舍利弗 過去諸佛 以無量無數方便 種種因緣 譬喩言辭
而爲衆生 演說諸法 是法 皆爲一佛乘故
是諸衆生 從諸佛聞法 究竟皆得一切種智
(方便品 第 2)
●이 경문에 대한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제불여래는 단지 보살을 교화하시며, 하시는 모든
것은 항상 하나의 일을 위한 것으로서 오직 부처의 지견으로 중생을 가르쳐 깨닫게 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여래는 단지 일불승으로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며, 이승과 삼승의
다른 승은 없느니라, 사리불이여, 모든 시방 제불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사리불이여, 과거의 제불도 무량하고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의 말씀으로써
중생을 위해 모든 법을 연설하셨으며, 이 법은 모두 일불승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모든
중생은 제불로부터 법을 듣고 결국에는 모두 일체종지를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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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경문: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諸有所作 常爲一事 唯以佛之知見 示悟衆生
번역: 제불여래는 단지 보살을 교화하시며, 하시는 모든 것은 항상 하나의 일을 위한
것으로서 오직 부처의 지견으로 중생을 가르쳐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번역문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번역본(한국어, 일본어, 영어)에서 예외 없이
볼 수 있다. 지금 필자가 문제 삼고 있는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도 법화경 번역문 가운데 가장 심각한 엉터리 번역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불여래는 단지 보살만을 교화하신다.> 그리고는 곧 바로,
<오직 부처의 지견으로 중생을 가르쳐 깨닫게 하는 것이다.>라는 번역문이 이어진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부처님은 (보살이 아니라) 중생을 대상으로 불지견(佛知見)을
개(開)하고, 시(示)하고, 오(悟)하고, 입(入)하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셨다고(出現於世) 말씀하신다.
또 이것은 부처와 중생 사이의 전대미문의 대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말씀하시는 중이다.
그런데 부처님의 이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느닷없이
제불여래는 단지 (중생이 아니라) 보살만을 대상으로 교화하신다니.
그게 끝이 아니다.
<제불여래는 단지 (중생이 아니라) 보살만을 대상으로 교화하신다>는 이 말씀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부처가 하는 일은 모두 (보살이 아니라) 중생을 대상으로 불지견(佛知見)을 시(示)하고,
오(悟)하시는 이 일 한 가지 뿐이라니.
부처님의 이 설법은 오로지 중생을 가르치기 위해서란 말인가? 아니면
보살만을 가르치기 위해서란 말인가?
번역을 엉터리로 하게 되면 부처님은 이처럼 졸지에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존재가 되고, 오락가락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당신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얼마나 큰 욕이 되는지
우리는 다 안다.
<제불여래는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한다.>라는 오역은 비단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번역서가 입을 맞춘 듯 이처럼
꼭 같이 엉터리로 번역하여 부처님을 오락가락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특이한 점은 자신의 번역문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번역자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몇 쪽에 걸쳐 번역자들이 이 번역문에 장황한 해설문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 코미디 수준이거나, 궤변에 가까운 내용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정원규님처럼 모른 척, 입 꾹 닫고 그냥 지나가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단어가 <敎化>다.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A를 교화한다, 는 의미(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다).
둘째, A를 가르쳐서(敎), B가 되게 한다(化), 혹은 B로 바꾼다, 는 의미.
법화경에서는 두 가지 의미가 두루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두 번 째 의미다.
다시 말해, <但敎化菩薩>은
<오로지(但), 중생(A)을 가르쳐서(敎), 보살(B)이 되게 한다(化菩薩)>는 말이다.
이제 다시 한번 위 <문제의 경문>을 소환해 보자:
1)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諸有所作 常爲一事
이 경문은, 모든 부처님이 평소에 하시는 일 모두 - 숨쉬는 것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다, 라고 말한다.
그 한 가지 목적이 무엇인가?
중생들을 가르쳐 보살이 되게 하는 일이 바로 그 한 가지 목적이라는 것이다.
2) 唯以佛之知見 示悟衆生
이 경문은, 그렇다면 중생들을 가르쳐 보살이 되게 하고자 하는 수단이
무엇인가, 를 말한다,
어떤 수단인가?
오로지(唯), 불지견을(佛知見), 중생(衆生)들에게 시(示)하여 오(悟)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게 수단이라는 말이다.
정리하면,
불지견을 중생들에게 시오(示悟)하여 오로지 보살이 되도록 가르친다, 가 된다.
註: 이 단어, <敎化>는 앞으로도 법화경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두 의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시중의 모든 번역서는 오직 첫 번째 의미로만 보았기
때문에 법화경을 공부하는 불자들은 헤매고 있다. 아니 불자들을 헤매게 만들고 있다.
覺山 정원규님이 저자로 되어 있는 이 법화경 번역해설서 또한 마찬가지다.
●이 경문에 대한 나성거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이르셨습니다.
"모든 부처는 오로지 보살이 되도록 가르침을 펼치고 있습니다.
부처가 자나 깨나 행하는 모든 불사(佛事)는 오로지 이 한 가지
때문입니다. 부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가르쳐 깨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리불이여,
여래는 오직 이 한 가지 가르침을 펼치고자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다른 가르침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두 가지나 세 가지 가르침이겠습니까.
사리불이여,
시방(十方)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전부가 또한 이러합니다.
“사리불이여,
과거의 부처님들이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因緣)과
온갖 비유(譬喩)와 다양한 언사(言辭)로 중생들에게 모든 이치를
펼쳐 자세하게 설했으나, 이 설법 모두가 오직 한 가지 가르침을
펼치기 위함이었으니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들로부터 이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구경(究竟)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깨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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