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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이해
목 차
제 1 장 서 론 - 머리말’을 대신하여 · 1 목차
제 2 장 형성과 기원- 무속과 수술은 하늘과 땅으로 통하는 원천이다.
1. 원시사유 - 신비적, 원논리적 ‘서로 스밈’ 2. 교감무술 ·
3. 신비한 ‘수’ 4. 복서,《주역》, 팔괘와 음양오행학설
5.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과 ‘예의가 무너지고 음악이 파괴됨’
제 3 장 옛날 천문학- 위로 하늘을, 아래로 사물을 살핀다
1. 천문학과 별점 보는 법 2. ‘하늘과 인간은 서로 감응한다’
3. 별자리의 구역과 땅의 배분 4. 별자리로 운명 보는 법
제 4 장 옛날 역법학- 좋은 날이란 어느 때인가?
1. 역법과 역법에서의 꺼림 2. 옛날 역법의 바뀌기
3. 간지의 처음과 끝 4. 좋은 날 고르기
제 5 장 옛날 풍수 보는 법- 용 ․ 맥 ․ 사 ․ 혈은 감여 이다
1. 풍수의 뿌리 2. 용·혈·사·수·기타
3. 집과 도시 자리와 묘자리(양택과 음택) 4. 풍수의 미분성
제 6 장 옛날 운명 보는 법 - 운명은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는 것이다 ·
1. ‘운명’의 불확실성 2. 납갑으로 괘를 만든다 - 옛날의 점치는 법
3. 네 기둥과 여덟 글자 - 운명의 비밀 번호 4.옛날 관상 보는 법- 관상을 보면 사람을 안다
5. 옛날 이름 짓는 법- 글자속에는 하늘의 괘와 땅의 괘가 있다 6. ‘숙명’의 불확실성
제 7 장 옛날 꿈 점치는 법-꿈속에는 스스로 현묘한 기밀이 있다
1. 꿈 점치는 법의 연기 - 신령적인 계시
2. 꿈 점치는 법의 옛날 끌어옴과 이론화 - ‘주공이 꿈을 풀이하다’
3. 꿈 점치는 법의 정치화와 세속화 4. 꿈 점치는 법의 내용과 방법
제 8 장 수술과 예의 제도-예의와 수는 늘 하늘과 땅의 질서이다
1. 예의의 연원 - 예의와 수는 본래 같은 뿌리였다
2. 수술과 예의의 정치화- ‘여덟 줄의 춤’ 3.수술과 예의의 이론화- ‘삼년상’의 이치
제 9 장 수술과 악율- 율려는 음과 양을 조절하고 하늘과 땅을 화합시킨다
1. 옛날 음악의 근원 - 음악은 신과 통한다
2. 음율의 수 -운율은 부는 것이고 소리는 듣는 것이다
3. 시로 요사함을 알고 노래로 미래를 예측한다
제 10 장 수술과 중국 의학- 약으로 쓰이는 자황은 목숨을 늘이는 법이다
1. 무술과 의술은 뿌리가 같다 2. 의술과 역술은 이치가 같다
3. 의료상의 거리낌 4. 의료전문가는 점복을 친다
제 11 장 수술과 수학-구구계산 법을 가볍게 보지 마라
1. 점치는 것과 계산의 뿌리 2. 구구계산 법 3. 점치며 계산하는 수학
참고 문헌 ·
[ 부 록 ] 구중회 고대 중국 간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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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기원과 형성
-무巫와 수數는 땅과 하늘로 통하는 원천이다-
‘머리말’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옛날 사람들이 수술1)을 신과 사람 사이의 통로와 중개로 본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통도와 중개와 더불어 신비롭고 알 수 없는 세계를 타진하게 된다. 이렇게 얻은 세계의 계시에서 자기의 행위 가운데 길함을 추구하고 흉함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더욱이나 수술 관념 및 행위 조작이 고대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문화의 발전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것도 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전히 질문할 것이다. 수술 관념 및 행위 조작은 도대체 어떻게 발생하고 형성되었는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수술의 기원과 형성의 정황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1. 원시사유2)
-신비적 · 원논리적3) ‘호삼’
원시인이라 하면, 머리에 섬광처럼 이런 그림이 떠오를 것이다. 야외의 동굴에서 살았다. 털이 달린 채 먹었고 생혈을 마셨다. 옷은 입지 않았다. 배를 채우지 못했다. 삶은 전전긍긍하여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대자연의 위력 아래서 엎드려 기었다.......
그러한 [원시인의] 생존 상황과 형태는 현대인에게는 감개가 없지 않다. 인류는 맹수와 신 사이에 끼어 있어서 난감한 위치가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인류] 스스로의 비하와 스스로의 호사가 교차되면서 일어나는 느낌은 인류가 감내하면서 음미해야 할 일이다. 이는 우리들이 분명히 도달해야 할 바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양상의 길을 걸어왔고 또 걸어 갈 것이다. 비록 미래의 어느 하루에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이런 길을 걸어가면서 또 감내와 음미해야 할 일이 있다. 비록 뽕나루 밭이 바다가 되고 세상 일이 변천하더라도, 인류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고 이를 겪어낸 행위가 그것이다. 인류는 스스로 칭하여 ‘사람’이며, 개체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고고성을 울리고 어린이, 청년,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른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이지 ‘나’가 아니고 ‘남’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성장, 발전, 변화에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부분은 아마 우리 어린 시절에 이미 형성되고, 정형화되었을 것이다.
수술을 예로 들어본다. 수술의 기본 관념 및 조작 행위는 먼 고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적 근원은 저명한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 부룰列維 ‧ 布留爾4)이 말한 ‘원시사유’일 터이다.
그럼, 이런 원시사유는 도대체 하나의 어떤 사유인가?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만약 원시사유를 표상적 의미로 본다면 응당 ‘신비적 사유’라고 불러야 하지만, 표상적 관련으로 볼 때는 응당 ‘원논리적 사유’라고 불러야 한다. 원시사회의 한 가지 기본원칙은 ‘호삼율’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원시사유에서 객체 ‧ 존재물 ‧ 현상 따위가 그들 자신일 수 있는 동시에 다른 물건이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면, 남아메리카의 파나나인들은 자신들을 일종 금강앵무라는 새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에게 붙인 이름인 것이 아니고 또 파나나인이 죽은 후 금강앵무새로 변한다는 것도 아니다. 또는 금강앵무새가 죽은 후 파나나인으로 변한다는 것도 아니고 금강앵무새가 그들의 선조라는 것도 아니다. 그들과 금강앵무새가 사실은 동일한 세계이라는 의미이고 혹은 동일한 본질의 변할 수 없는 표현인 것이다.
얼마 전에 북아메리카의 만단인과 생활했던 화가 한 분을 만난 바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무의巫医이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존재물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수령과 두 개의 지점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그들은 그 초상의 눈이 움직이면 그들도 미소 짓고 크게 웃는다고 하였다. 초상이 웃는다면 웃을 수 있고, 또는 말하고 싶다면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안에 꼭 무슨 생명의 요소가 있을 뿐이다.”
이것과 유사한 현상으로 대다수 인디아인들은5) 자기의 초상을 그리지 못하게 하고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받쳐야 한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초상을 장악하고 있는 두령에게 자기의 의지가 위치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밖에 꿈결, 이름자, 그림자, 도구, 무기, 수공제품…… 총체적으로 이를 말한다면, 원시인 생활세계의 일체가 모두 그들과 모종의 신비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주위의 사물과 상호작용하고 상호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떤 시간과 공간에도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마을의 어떤 구성원이 질병에 걸리게 된 것은 그 구성원이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죽은 어떤 무당6)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전사들이 사냥이나 혹은 전쟁에서 일어나는 행운이나 불행은 장막 속에 있는 그들 아내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 혹은 먹지 않았는가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부류와 원론리적 사유는 현대인이 볼 때 불가사의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호삼율’의 지배를 받던 원시 사유로 말할 때 그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레비 부룰의 ‘원시사유’에 관한 학설은 학계에서 광범한 인정을 받았다. 우리는 ‘원시사유’가 중국 초창기의 인류에게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그런 신비적 원론리적 ‘호삼’의 원칙은 이미 이후의 수술의 기본 관념을 배태한 것이라 추측된다.
2. 교감무술
앞의 ‘머리말’에서 제기한 것처럼, 수술의 ‘술’은 우선 무술巫術을 나타낸다.8) 동시에 무술의 요소인 신비주의 방법과 기술이다. 그러나 무술 관념은 바로 원시 사유에서 탈태해 유래한 것이다.
인류학자 프레이저弗雷澤9)의 연구에 의하면, 무술은 사상의 원칙을 따라 세운다면 두 가지 유형으로 귀결지을 수 있다. 첫째, 같은 ‘원인’이 같은 ‘결과’를 낳는다. 혹은 서로 유사한 사물이 서로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상사율’10)이라 말했다. 둘째, 물체가 상호접촉하면 실제접촉을 끊은 후에도 계속 먼 거리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접촉율’11)이라 하였다. 첫째 원칙에서 출발하면 원시인과 무당들은 모방활동을 통하여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모방 활동이 ‘모의무술’12)이다. 둘째 원칙에서 출발하면 원시인과 무사들은 전에 어떤 사람이 접촉했던 물체와의 접촉을 통하여 이 사람에 대해 영향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인류의 무술활동은 ‘접촉무술’13)이다.
그는 위의 두 가지 무술을 총칭하여 ‘교감무술’이라 했다. 그것은 양자가 모두 사물의 사이에 모종의 신비한 감응을 통하면 시간을 초월할 수 있고 거리를 초월하면서 상호 작용할 수 있으며 한 사물의 활력을 다른 사물에게 전송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술의 ‘교감’과 원시 사유의 ‘호삼’은 양자가 모종의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생긴다.
《홍루몽紅樓夢》14)에서 가보옥賈寶玉과 왕희봉王熙鳳은 조이랑趙姨娘의 질투와 원한을 샀다. 그래서 조이낭은 한 사람의 마도파를 불러 그들을 해치도록 했다. 이 마도파는 보옥과 희봉의 생신팔자를 2개의 작은 종이 사람에 각각 쓰고, 이어서 몇 개의 종이로 얼굴이 파랗고 머리가 흰 귀신을 만들었다. 이 물건들을 조이낭에게 각각 보옥과 왕희봉의 침대 아래에 숨겨놓게 했다. 그런 연후에 마도파는 자기 집에서 법술을 부렸다. 그 결과 보옥과 왕희봉은 귀신 들린 것처럼 의식이 불명하여 침대에 누워 있지 못하는가 하고 일어나서도 울고 웃고 하는가 하며 허튼소리를 해서 가씨 집이 혼란해져서 집안사람들의 마음을 당황하게 하였다.
소설속의 마도파는 여자 무당이다. 그의 법술에는 모의무술의 요소뿐만 아니라 접촉무술의 요소도 있다. 비록 소설이라 하지만 무술관념과 조작행위가 중국고대에 심각하고 거대한 영향을 끼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프레이저 등과 같은 사람의 연구에 근거하면 원시사회에서 무술 관념과 조작 행위는 훨씬 보편적으로 유행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각지에 있어서 각기 다른 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 성취를 위하여 세계를 파괴하고 유린하거나 혹은 상대의 우상을 상처내서 훼멸하거나 혹은 자기 상대를 소멸하려고 기도해 왔다. 그들은 본인들의 우상이 상처를 입는 것은 동시에 본인 자신도 상처를 입으며, 본인의 우상이 훼멸되면 동시에 본인도 죽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사율’의 가장 일반적인 응용일 터이다. 당연히 이것도 희망을 실현하는 데 소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출생를 돕거나, 혹은 불임 부인으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며 병통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따위이다. 수마트라섬의 파탑극인巴塔克人 가운데서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불임 부녀들은 나무로 아기를 만들어 무릎에 앉혔다. 절에 가서 돈을 놓고 기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황달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의무술 원칙에 근거하여 먼저 정심으로 모시는 의식을 치른다. 그것은 환자의 몸에서 노란색을 띤 가축 혹은 물건(예를 들면 태양빛)으로 전이시킴과 동시에 건강한 붉은 색을 활발하고 생명력이 강한 붉은 수송아지 몸에서 환자의 몸으로 전이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접촉무술에 있어서 모두가 가장 익숙한 것을 예로 들어 본다. 타인과 자신의 신체 어떤 부분 사이(예를 들면 머리카락 혹은 손톱)의 감응마력이 있다고 보았다. 어떤 사람이든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 혹은 손톱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머리카락 혹은 손톱을 통하여 거기에 소속되는 사람의 몸에 자기의 기원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양상의 관념과 조작 행위는 전 세계에 펴져 있다. 흥미가 있는 독자 친구들은 프레이저의 대작《황금가지金枝》15)에서 관계되는 장절을 읽어보라. 여기에서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여기까지 말하면 독자 친구들이 이런 것을 발견할 것이다. 모의무술이든지 접촉무술은 물론이고, 대략 교감무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의거한 사상원칙과 대응되는 조작행위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원시사유와 그 영역으로 인류활동이 매우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원시사유의 신비한, 원론리적 ‘호삼’은 반성없이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된다. 그런데 ‘호삼’은 쌍방과 관련된 직접적인 것이다. 무술 중에서 ‘교감’은 한층 사람에 의해 의식적인 목적에 이용되기 때문에 또 왕왕 중개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 북방의 많은 변경지구에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전승되는 샤마니즘薩滿敎16)의 습속이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역시 아주 옛날의 교감무술의 유풍이다. 이밖에 중국 고대의 전적에서도 무와 무술에 관련된 많은 기록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갑골문17) 중에서 ‘무巫’자가 나오고 또 무당 무사가 작법을 해서 비를 내리게 한다는 관계 기록이 있다. 기타 초기의 고문자 자료와 진秦나라18)와 한漢 나라19)의 전적 중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었다. 이런 자료들은 프레이저 등 학자의 연구와 서로 참고할 수 있기에 여기에서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3. 신비한 ‘수數’
수술 가운데의 ‘수’를 보자.
‘수’의 산생과 응용은 인류 문화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의미심장한 발현이다. 인류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매우 많은 원시 민족들은 단독 명칭으로 사용하는 수가 1과 2, 간혹 3이 있다. 이 몇 개의 수를 넘어서면 그냥 ‘많다. 매우 많다, 아주 많다’이다. 아니면 3은 2 · 1, 4는 2 ·2, 5는 2 · 2 · 1 따위이다.
독자들은 원시인의 계산 능력이 매우 낮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원시인의 ‘계산’(우리가 이해하는 한) 능력은 ‘놀라운 것’, ‘기적적인 것’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 그들 한 무리가 사냥하고 방목하러 출발할 때 무슨 영문인지 그 중의 한 사람 혹은 몇 사람 혹은 가축이 따라 나오지 않았다. 같이 나온 사람 중의 어느 사람이든지 한 번 둘러보기만 하면 정확하게 착오가 없이 거기에 없는 사람이나 가축의 이름을 댈 수 있다.
도대체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전히 레비 브률이 말한 ‘원시사유’를 떠날 수 없다.
원시인의 사유 가운데에서 ‘숫자’는 후대에 사용될 개괄성과 추상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계산되는 물건과 연관되고 혹은 기타 실물에 의지해야만 계산할 수 있다. 만약 한 무리의 사람과 물건이 주의를 끌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무리의 일체 특징과 함께 그 무리를 기억할 것이다.
이는 원시인의 언어에서도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본다. 그들이 야생마를 잡아왔을 때 ‘몇 마리의 말을 집에 가져왔는가?’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집에 갖고 온 한 무리의 말은 얼마마한 자리를 차지하는가?’ 고 물었다. 만약 사물의 수를 결정하려 한다면, 그들은 일단의 작은 나무 막대기 혹은 자기의 신체부위를 이용했을 것이다. 예컨대 손가락, 발가락 따위이다.
이런 현상은 중국 고대에 오래 동안 지속되었다. 그 중 계산에 이용되는 작은 나무 막대기 혹은 참대 조각은 ‘산가지’20)라 불렸다. 그러나 대다수의 점을 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은 ‘겹지일산’21)이었다. 이는 12지지를 왼손의 마디와 손끝에 대응시켜 계산했을 것이다. 이는 옛날 습속과 관계가 될 것이다.
다른 방면으로 살펴보면, 원시인의 의식에서 ‘숫자’와 명칭은 어떤 종류의 신비한 속성과 매우 밀접하게 호삼되어 있다. 계산의 단위라기보다는 신비한 사실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가 방금 제기한 십이지지의 ‘십이’가 바로 그런 숫자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범위에서 보면, 이렇게 신비한 분위기에 싸인 숫자는 보통 열 개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
고대에서 특히 수술 관념과 조작 행위는 신비한 숫자에 대한 관념에 대해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예를 들면, ‘1’은 많은 대립 면으로써 보통 우주22) 시초의 혼돈23)과 철학 상의 ‘도’24), ‘태극25)’ 따위와 연결되어 있다. ‘2’는 천지의 개벽26)을 상징하고, 보통 음 ‧ 양27)과 연결되어 있다. ‘3’은 보통 하늘 ‧ 땅 ‧ 사람 ‘삼재28)’를 상징하고, 어떤 때는 일반적으로 ‘많다’라고도 한다. ‘4’는 보통 ‘사방29)’ ‧ ‘사시30)’ ‧ ‘사상31)’ 따위와 연결되어 있다. ‘5’는 보통 ‘오행32)’과 연결되어 있다. ‘6’은 ‘육합33)’과 ‘주역’과 괘상적 육효에 연결되어 있다. 그 외에 불교사상에서도 흔히 ‘6’과 관련된 관념이 있다. 예를 들면, ‘육근34)’ ‧ ‘육식35)’ ‧ ‘육경36)’ ‧ ‘육도윤회37)’ 따위이다. ‘7’은 보통 ‘칠성38)’(이십팔수를 네 방향으로 나누면 매 방향은 7이다. 혹은 북두칠성을 가리키고, 혹은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따위)과 연결되어 있다. ‘8’은 보통 팔괘 ‧ ‘팔음39)’(고대의 생황 ‧ 쇠 ‧ 돌 ‧ 흙 ‧ 가죽 ‧ 실 ‧ 나무 ‧ 바가지 ‧ 대나무 따위 8가지의 악기)과 연결되어 있다. ‘9’ 흔히 음양의 ‘양’ ‧ ‘구주40)’ ‧ ‘구궁41)’ 따위와 연결되어 있다. ‘10’은 숫자의 극대와 원만을 상징하고 또 십천간과 연결되어 있다.
사실상 이런 숫자의 신비한 내적 의미와의 연관은 아직도 많다. 이 책의 다음 모든 장절에서 이를 우리는 계속 제기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수술에서 신비한 숫자 관념의 유래가 깊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 또한 광범하고 거대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은 것이다.
4. 복서 ‧ ‘주역’ ‧ 팔괘와 음양오행학설
우리는 이미 ‘머리말’에서 상商 나라의 점치기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그것이 일종 ‘술’이라는 것도 지적한 바 있다. 그럼 지금 다른 일종의 ‘술’인 점서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흔히 ‘복卜’과 ‘서筮’를 동등하게 불렀다. 그것은 ‘복’과 ‘서’가 모두 교감의 중개이고 또 발생학 상에서도 앞뒤의 계승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 두 가지는 조작 방법이나 점단占斷에서 실은 크게 다르다. 점복은 갑골을 사용하나 점서45)는 시초46) 막대기 50개를 사용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시초는 천지의 영기를 얻었기 때문에 백 년을 넘게 산다고 한다. 점복은 갑골경첩착甲骨經鉆鑿으로 불에 태운 후의 갈라진 형상에 의거 의거하지만 점서는 시초경을 계산한 후에 형성된 괘상에 의거한다. 그 운산 과정은 대체로 아래와 같다.
우선 50개의 풀막대기에서 하나는 뽑아서 옆에 두고 사용하지 않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태극’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다음 남은 49개를 자유롭게 두 등분해서 두 손에 잡는다. 이것은 ‘양의47)’를 상징한다. 다시 말하면 음양, 혹은 천지의 상징인 것이다. 오른손에 있는 것에서 하나를 뽑아서 무명지와 새끼손가락 가운데 끼운다. 이는 ‘괘 1로 3을 나타내는 것’으로 삼재에서 사람을 상징한다. 그 다음 양손에 남은 풀막대기를 4개씩 한 조로 나누어 배열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것은 ‘4 계절’을 상징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를 ‘첫 번째 출연’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은 ‘두 번째 출연’을 시작한다. 나머지 숫자 즉 양 손에 남은 4개 안되는 혹은 마침 4개가 되는 풀막대기의 합계를 4 혹은 8로 하여 던져버리고 이미 나누어 놓은 풀막대기와 ‘괘 1’한 그 하나의 풀막대기를 합하여 첫 번째 출연의 방법에 따라 또 자유롭게 두 등분하여 왼손과 오른손에 쥔다. 다음 ‘괘 1로 3을 나타내고’ 나머지를 다시 4개씩 한 조로 나누어 짝수와 남어지수를 얻는다.
그 다음 여기에 의하면 ‘세 번째 출연’을 완성하게 된다.
‘세 번째 출연’이 끝난 후 여수를 던져버리고 나누어 놓았던 짝의 풀막대기를 합친다. 그 총수는 다음 4가지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36개 혹은 32개 혹은 28개 혹은 24개이다. 다음 그것을 4로 나누면 4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9 ‧ 8 ‧ 7 ‧ 6이다.《주역》의 숫자 관념에 의하면, 그것은 각각 노양 ‧ 소음 ‧ 소양 ‧ 노음48) 따위로 귀결된다. 부호로 표시하면, 9·7기記로 ‘一’을 만들어 양효49)라 하고 8·6기記로 ‘--’을 만들어 음효50)라 한다.
‘세 번째 출연’을 거쳐 단지 초효를 얻었을 뿐이다. 곧 제일 아래의 일효이다. 다시 이런 방법으로 다섯 번까지 출연한다. 모두 여섯 개의 효를 내놓을 수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괘상을 구성한다. 이 괘상은 점단의 기본 근거이다. 이러한 괘상은 64가지가 있는데[표 1] 그 중에서 8개의 괘상이 비교적 특수하다.
[표 1] 분궁 64괘이름, 괘상卦象
乾宮 (금) | 震宮 (목) | 坎宮 (수) | 艮宮 (토) | 坤宮 (토) | 巽宮 (목) | 離宮 (화) | 兌宮 (금) | |
本宮卦 | 乾 | 震 | 坎 | 艮 | 坤 | 巽 | 離 | 兌 |
一世卦 | 逅 | 豫 | 節 | 貪 | 復 | 小畜 | 旅 | 困 |
二世卦 | 遁 | 解 | 屯 | 大畜 | 臨 | 家人 | 鼎 | 萃 |
三世卦 | 否 | 恒 | 旣濟 | 損 | 泰 | 益 | 未濟 | 咸 |
四世卦 | 觀 | 升 | 革 | 睽 | 大壯 | 无妄 | 蒙 | 蹇 |
五世卦 | 剝 | 井 | 豊 | 履 | 夬 | 噬嗑 | 渙 | 謙 |
游魂卦 | 晋 | 大過 | 明夷 | 中孚 | 需 | 頤 | 訟 | 小過 |
歸魂卦 | 大有 | 隨 | 師 | 漸 | 比 | 蛊? | 同人 | 歸妹 |
그것들의 각자의 상삼효와 하삼효는 완전히 서로 같다. 다시 말해서 만약 이 8개 괘상의 각자 반을 한 짝의 독립적인 부호로 볼 때, 이 한 짝의 부호를 각자 겹치게 하면 위의 8개의 괘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말하면, 이 한 조의 부호를 서로 겹치면 또 다른 56개의 괘상을 얻게 된다. 때문에 육십사괘도 이 한 조 독립적인 부호가 각자 서로 겹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고대에서는 사람들이 이 한 조의 독립적인 부호를 ‘팔경괘八經卦’라 했는데 줄여서 팔괘라고 하였다.
[표 2] 팔괘대계八卦大系
乾 | 坤 | 震 | 巽 | 坎 | 離 | 艮 | 兌 |
天 | 地 | 雷 | 風 | 水 | 火 | 山 | 澤 |
健 | 順 | 動 | 入 | 陷 | 麗 | 止 | 說 |
馬 | 牛 | 龍 | 鷄 | 豕 | 雉 | 狗 | 羊 |
父 | 母 | 長男 | 長女 | 中男 | 中女 | 少男 | 少女 |
首 | 腹 | 足 | 股 | 耳 | 目 | 手 | 口 |
...... | ...... | ...... | ...... | ...... | ...... | ...... | ...... |
그러나 그것이 겹쳐서 형성된 64괘는 ‘별괘’51)라고 한다. 8괘의 명칭은 그것들 각자의 중괘한 명칭과 서로 같다. 처음에 그것들은 각각 ‘하늘天 ‧ 땅地 ‧ 우뢰雷 ‧ 바람風 ‧ 물水 ‧ 불火 ‧ 산山 ‧ 연못澤’ 따위의 자연 현상을 대표했고 그 후에 변하지 않는 속성으로 부여되었다.[표 2]
우리가 아래에서 말하고자 하는 음양오행학설과 같이 수술 계통에서 8괘의 지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8괘는 방위52)를 대표한다. 그중에서 후천팔괘를 방위로 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위의 추연 과정에서 볼 때, 점복과 달리 점서는 ‘수’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앞에서 제기한 신비한 숫자가 여기에서도 많이 나타난다고 할 것이다. 이로 말하면, 점서는 일종의 ‘수’로서 가장 먼저 완전무결한 ‘수술’인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점서는 상商 나라(BC 1500년경)에 이미 나타났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의 조작방법은 서주西周 나라(1100년경~771 BC)의 초기에 와서야 조금씩 명확해지기 시작하였고 또 대량의 점서 기록을 남겼다. 이런 점서 기록이 책으로 편집되어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내려 온 것이《주역》이다. 춘추전국 시기(BC 860~AD 379)에 이르러《주역》은 ‘경’으로 존중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경’에 대해 해석하고 설명하였다. 대체로 서한西漢 초년에 이르러 이런 해석과 설명이《주역》으로 편집되었다. 넓은 의미에서《주역》은《역경易經》과《역전易傳》두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주역》, 특히《역전》의 출현은 술수 발전 과정에서 하나의 의의를 제공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음양학설이 그 후에 술수 이론상 기초의 하나로 되었기 때문이다.
음과 양은 본래 매우 일반적인 자연현상이다. 인류는 대략 몽매 상태를 벗어났을 때, 이미 서로 대응되는 일부 자연현상을 발견하였다. 낮와 밤, 맑은 날씨와 흐린 날씨, 양지와 음지 따위가 그것이다. 그것은 매우 예사롭고 소박한 감각과 지각이었다.
그러나 원시 사유의 스밈과 시간의 함양을 거쳐, 사람들은 점점 일종의 ‘대응’ 연상을 낳게 되었다. 이 오색영롱한 대천세계大千世界도 대응되는 사물에 의해 구성되었을까? 보라,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가 있다....... 반대로 말해도 그러하다. 그래서 계속 생각하다 보면 거둬드리지 못하게 된다. 춘추전국시기에 이르러 개념으로 되는 음양, 그리고 관계되는 대립과 통일의 사상으로 자리를 잡게 되였다. 맨 먼저의 기록은《노자》53)(춘추말기)와《주역》(역경 부분 주문왕周文王<BC 11세기경>, 역전 부분 공자孔子 <BC 551~ BC 479>)에서 비롯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비록《노자》는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의 음 ‧ 양과 같이 이원대립을 나타냈다. 그러나 명확하게 음 ‧ 양을 제기한 것은 극히 적었다. 그러나《주역》중 음 ‧ 양 두 글자는 빈번히 대응되어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분량의 이원대립를 통할하는 부분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에 이르러 학설이 음양사상으로 나타났고 일부 지식인에 의하여 자연, 사회, 인생의 현상을 해석하는 데 사용되었고 이런 이들을 우리는 ‘음양가’라 부른다.
대략 음양학설과 동시에 오행학설이 나타났다. ‘오행’이란 단어를 가장 먼저 나타낸 것이 선진의 옛날 책《상서》54)(공자와 그의 제자 6~5세기 BC)에서였다. 본래는 자연계의 5가지의 기본 성질을 목 ‧ 화 ‧ 토 ‧ 금 ‧ 수 따위로 이해했다. 전국시기에 이르러 오행 관념이 복잡화되었다. 우선 이들 사이에 상극상생하는 관계가 부여되었고, 그 다음 추연鄒衍55)(약 305년~240년 BC)이라는 사람이 오행상극의 원리를 이용해 고대에서 주(BC 1030년~AD 256) 나라에 이르러 역사를 해석했다. 이것이 ‘오덕종시설’56)이다. 이로부터 오행정치화와 이론화의 시작이 비롯되었다.
그후 오행학설은 더욱더 음양학설과 합쳐지고 또 각종 무술 활동과 서로 결합되어 자연과 인사의 화복길흉을 해석하는데 이용되었다. 이런 기운은 한(BC 206~AD 220년) 나라에 이르러 여전히 흥행했다. 이미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수술의 주요 형태는 서한西漢 시기에 이미 나타났고 또 비교적 계통적인 이론 저작도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지금 와서 보면 이것은 하나의 자연적 결과인 것이다.
5.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57)과 ‘예의와 음악이 무너짐’58)
원시사유의 신비하고 원논리적인 호삼과 무술의 교감에서 신비한 숫자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또 전국 ‧ 진한 사이 음양오행학설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대략 수술의 기원과 형성 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많은 불가사의한 인소로 채워져 있다. 이런 ‘신비’ 인소 가운데 그 일부는 이미 ‘신령’으로 인격화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 과정도 수술 자체도 분명하지 않아 마치 그 맥락이 서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수술의 기원에 대해 자의적이고 신비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소위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황제黃帝59) 시대에 인간과 신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그래서 신은 물론 자유로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릴 수 있으며 사람도 하늘 사다리(예를 들면 곤륜산60) 따위.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는 황제를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를 통해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이것은 신과 사람으로 말하면 모두 일종의 편리이다. 그러나 얼마간의 문제가 초래되었다. 예를 들면 치우61)가 예전에 많은 하늘의 선仙과 땅 위의 산정수괴와 연합하여 황제와 맞섰다. 치우의 반란으로 땅 위의 사람들이 까닭 없이 화를 당했다. 그들 중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많은 자들이 적은 자들을 해치고 가혹한 형벌이 범람했고 살육이 끝이 없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신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었으나 이때부터는 재난과 변란의 고통으로 인하여 더욱더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 했다. 그 결과 국민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고 제품이 부족해지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 점을 고려하여 황제의 계승자인 전욱제顓頊帝62)가 천지간의 질서에 대한 한 차례 큰 정돈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이다. 전욱은 자기의 손자 중重에게 양 손으로 하늘을 높게 받치도록, 다른 손자 여黎에게 양 손으로 땅을 누르도록 했다. 이렇게 되어 천지간의 거리가 점차 멀어졌고, 결국은 곤륜의 하늘 사다리를 제외한 천지간의 모든 통로가 끊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 전욱제가 또한 중과 여에게 명령을 내려 공동으로 하늘 사다리를 관리하게 했다. 중에게는 하늘의 여러 신들에 관한 사무를 분담하여 관리하게 하고, 여에게는 땅 위의 신들과 사람에 관한 사무를 분담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그 후부터 천지간의 신과 사람은 중 ‧ 여의 허가가 없으면, 마음대로 천지간을 오르내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상서》‧《국어》63)‧《산해경》64) 따위의 옛날 책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고 그 내용도 대체로 같아서 차이가 없다. 그러고 보면,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은 고대에서 매우 유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의 추단에 의하면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의 이야기가 밝히려는 것은 고대문화와 문명이 발생한 전후(약 2600~ 2000년 BC)에 겪은 한 차례의 중대한 변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변혁의 결과는 일종의 새로운 ‘세계질서’의 건립이었다. 이런 질서에서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고 신령과 섞여 통하는 따위의 사무는 전담자가 규제하고 있고 일반인은 이에 손을 대거나 의문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만한 것은 이 이야기를 기록한 몇 권의 서적이 만들어진 연대가 모두 전국시기부터 진한시기까지였다. 이것이 바로 술수의 기원과 형성의 시대이다.
그러나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 이후 확립한 ‘세계질서’ 다시 한 차례의 거대한 변혁을 겪었다. 이것이 춘추전국 시기의 사회대동란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예의와 음악이 무너짐’이라고 하였다. ‘예의와 음악이 무너짐’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은 전담자가 규제하고 장악했던 신들과 사람들 사이에 섞여 통하는 각종 수단이 민간에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민간에서 일부 총명하고 지혜로운 지사들이 나타나 신과 사람의 통신의 능력을 구비하여 이것이 술수의 기원과 형성을 초래했던 것이다.
때문에 수술 활동은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이 확립한 세계질서가 ‘예의와 음악이 무너짐’의 변혁을 겪은 후 사람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고 신령과 교통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 들인 노력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상 우리는 술수의 기원과 형성 과정에 대하여 대략적인 정리를 한 셈이다. 이런 정리는 완전히 깊이 술수 관념과 조작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런 정의는 두세 마디로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닌 연유이다. 그 어려움은 수술 자체의 복잡성에서 온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수술의 기원과 형성이 한 과정 한 과정이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이다. 그중 일부분은 또 문자가 없는 역사 이전 시기인 탓도 있다. 때문에 이 과정에 대한 해설은 어느 정도의 추측의 요소가 개입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리와 해설을 통해 독자들은 술수의 기원과 형성의 일부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수술의 기본 관점과 초기 조작 행위에 대해 하나의 거시적인 믿음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본장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