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처녀’는 이별노래다. 영산강은 전남 담양군 용면 용추봉에서 발원해 광주·나주·함평·영암을 지나 목포로 흘러간다. 영산강이란 이름은 영산서원에서 유래한다. 영산은 한 효부의 이름이었다. 고을 원님의 시기·질투에 말려들어 강물에 빠뜨린 여의주를 찾아야 하는 시아버지를 위해, 잉어를 사다가 배를 갈라 여의주를 찾게 한 며느리를 기념하고자 설립한 것이 영산서원이다.
영산강 구비 도는 푸른 물결 다시 오건만
똑딱선 서울 간 님 똑딱선 서울 간 님
기다리는 영산강 처녀
못 믿을 세월 속에 안타까운 청춘만 가네
길이 멀어 못 오시나 오기 싫어 아니 오시나
아 푸른 물결 너는 알지 말을 해다오.
(송춘희 ‘영산강 처녀’ 가사 1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담양 바심재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흐르면 담양호로, 서쪽으로 흐르면 장성호로 흘러들어간다. 이 두줄기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하나로 합쳐져 서해로 흐른다. 영산강은 문학의 강이요, 사유의 강이다. 또한 영산강은 이별의 강이기도 하다. 남녘으로 유배를 명받은 선비들이 이 강을 따라 걸었다. 정도전과 송시열이 그랬고, 황사영 백서사건에 몰린 정약용·정약전 형제가 그랬다. 귀양길의 형제가 어느 날 도착한 곳은 나주 율정점이다. 이곳에서 형제는 하룻밤을 지내고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형제가 헤어질 때 정약용이 지은 시가 이별시 ‘율정별리(栗亭別離)’다. 송춘희의 ‘영산강 처녀’도 현대판 이별노래다.
‘영산강 처녀’를 부른 송춘희는 1930년대 평안도 영변에서 태어났다. 1963년 ‘삼다도 편지’로 데뷔했다. 히트곡은 ‘영산강 처녀’를 비롯해 ‘수덕사의 여승’ ‘영덕은 내 고향’ 등이다. 백련장학회장으로 18년을 역임하면서 교도소·군부대 봉사활동을 했고 월남에 파병된 장병의 위문공연도 4차례나 다녀왔다. 그녀는 197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1983년 다시 귀국했다. 이때 시애틀에서 잠시 행자(行者)생활을 했지만 다시 속세로 나왔다. 이것이 찬불가를 부르는 계기가 됐다.
영산강하면 영산포다. 나주 영산포에 가면 지금도 1915년에 건립한 강변등대의 형체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강변등대다. 이곳엔 흑산도에서 홍어를 실은 배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유차영<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