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 : 12 – 17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특별히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상대는 많습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비롯해서 스승님들과 고마운 분들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교인들에게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7)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 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성도들에게도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라고 하는 ‘너희’는 어떤 존재인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1절에서부터 15절까지 열 번이나 ‘너희’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12)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는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인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비롯한 지상 교회의 모든 성도입니다.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2:9)이라고 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지옥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 마땅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사랑받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기 전에 먼저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13).
감사의 반대는 불평과 원망입니다. 불만이 있거든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고, 평강이 마음을 주장할 때 감사해야 합니다(13,15). 불만을 품은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은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없기 대문입니다.
자녀들이 자신을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커서도 감사할 줄 모를 뿐 아니라 부모님을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바로의 학대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 주셨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 두 달 반 만에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식량과 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출16:2,3). 모세는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16:8)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민14:34). 우리가 누구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불만이 있거든 용납하고 용서하고 평강이 마음을 주장할 때 ‘너희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가 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우리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16)고 말씀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찬양입니다. 성도들이 교육과 권면과 전도도 해야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찬양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며 감사를 나태 내는 최고의 행위가 찬양입니다. 성도들의 찬양은 성령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엡5: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시간에 성도들이 마음으로 주님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찬송합시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바치는 제사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다섯 가지 제사 중에서 농사한 것을 감사하는 ‘소제’와 감사할 일이 있어서 제물을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화목제’는 감사 제사입니다.
성경에는 유월절과 맥추절(오순절, 성령강림절)과 추수절(수장절, 초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23:14-19).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재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날에 드릴지니”(레23: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적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유례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 미국을 발견하고 정착하여 개간하였습니다.
그들의 절반이 병들어 죽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이 겨우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첫해 수확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 예배를 드린 것에서부터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추수감사절을 성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농사를 지을 때 봄에는 수확한 보리를 바치며 맥추감사절을 지켰고, 가을에는 수확한 벼를 바치며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된 현대의 한국교회는 농사하지 않은 성도들이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을 진정한 감사절이 되지 못하고 감사헌금 하는 정도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절기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헌금을 얼마를 해야 하는 것도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언제든지 감사할 마음이 있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은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1:4).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부자의 헌금과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것이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중에서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12:44).
예수님께서 ‘그가 가진 모든 소유 전부를 넣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과 비교해서 가난한 과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12:44).
중요한 것은 감사 예물의 크고 작음(많음과 적은)은 빈부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예물을 바치는 것은 사람마다 자신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각각 바쳐야 합니다.
언젠가 해인사를 관광하면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입구에 기와장을 접수하는 그 옆에 가득 쌓아 놓은 기와장을 보았습니다. 기와장마다 헌납한 자의 가족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행사 때마다 등을 달 때나 불공드릴 때도 함께 오지 않은 남편과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전 가족의 이름으로 예물을 바칩니다. 제물을 바치며 온 가족이 복을 받게 된다는 미신적인 신앙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
바치면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으로 믿고 바치는 예물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땅에 것을 생각하는 것은 입니다. 그러나 위에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남편(아내)이 감사헌금을 하면서 아내(남편)의 이름을 나란히 써서 감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의 이름을 덤으로 올린 것은 아닌 땅에 것을 생각하는 미신적인 신앙입니다.
그의 아내(남편)가 스스로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습니다(삼상1:4,5). 이 말씀은 엘가나가 아내 브닌나와 한나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각각 제물을 바치도록 가르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추석 명절 때 외지에 나갔던 젊은 부부가 어린 남매를 가운데 앉히고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헌금할 때 어린아이들이 두 손으로 헌금을 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헌금할 돈을 주면서 그들이 스스로가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너희는 각각 제물을 드리라’(레23:37)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은 입은 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거룩하게 됨을 받은 자요, 극진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각각 자기 믿음으로 받습니다. 남편(아내)의 믿음으로 아내(남편)가 덤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헌금도 각각 자기 손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남이 하는데 덧붙여서 덤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내(남편)가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도 자기 이름으로 감사헌금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일생에 한 번도 자기 손으로 감사헌금을 드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세 전에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보혈 공로도 속죄함을 받은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으르부터 용서함을 받은 것처럼 누구에게든지 불만을 품지 말고 용납하고 용서하고 평강이 주장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15).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16).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17). 우리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자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시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 감추어졌던 우리의 생명이 주님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영생합시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은 더 높아만 가고 바람은 부쩍 차가워지며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들에 가을 정취가 가득하네요.
계절의 작은 변화에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시면서 오늘도 아름답고 힘차게 파이팅 하시길 기원하며
웃는얼굴 넓은 마음으로 행복을 담고 사랑을 담아 웃음보 터지는 아름다운 하룻길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