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2023년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시편 56:1-13
(설교자: 마경훈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bV_JFgkQCE4
대망의 2023년도입니다. 2023년은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영과 혼과 몸과 가정과 관계와 생활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다 모든 면에서 평강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절망적인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상황은 벗어나고 싶은데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고 그렇다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길은 있습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절망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승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절망을 극복했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죽이려고 올 때 야곱은 강가에서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주셨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을 만나자 갑자기 형제애가 발동해서 야곱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죽이려던 야곱을 용서해주었습니다. 야곱은 절망 속에서 기적을 본 것입니다.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 아람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하였기 때문에 국민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나병이 발병한 것입니다. 몸이 썩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아만은 작은 여종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말에 순종해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었습니다. 나아만이 순종하자 그의 살이 어린 아이 피부처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나병은 인간에게는 절망입니다. 그 병은 권세로도, 돈으로도,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중병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통해서 절망에서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는 독자를 키웠는데 그 아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 죽고 말았습니다. 아들 하나 보고 살던 그 여인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말 그대로 절망이죠. 그런데 그녀의 아들의 관이 성문을 나가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그 청년의 관에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청년이 일어나 앉고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주님을 만남으로 절망에서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절대 절망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시편 56편은 다윗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록한 시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안에서 사울 왕을 피해서 도망을 다니다가 도저히 이스라엘 안에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다윗은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의 가드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알아봤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할 때 블레셋에게는 키가 3m나 되는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40일 동안 이스라엘을 희롱하였으나 이스라엘 군사 중에는 골리앗을 상대할만한 장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과 1:1로 싸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목자였습니다. 다윗은 양치기를 할 때 양을 잡아먹으려는 곰이나 사자를 잡던 물맷돌 실력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 여자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할 정도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장군이 되었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붙잡았습니다.
이때 다윗의 상황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보면 사람들이 다윗을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했습니다. 2절에 보면 다윗의 원수가 종일 다윗을 삼키려 했습니다. 교만하게 다윗을 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3절에 보니 그런 상황이 다윗에게는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5절에 보니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의 말을 곡해하며 다윗에 대하여 사악한 생각을 했습니다. 6절에 보니 다윗의 원수들은 기회만 되면 다윗을 죽이려고 다윗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8절에 보니 다윗은 유리방황하였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은 절망적이었고 주변에는 다윗을 도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도우셨고, 다윗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역전시키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설교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던 다윗이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절망 중에 무엇을 하였는지를 나누겠습니다. 이 설교를 듣는 저와 여러분도 모든 상황 중에서 다윗처럼 반응하셔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저와 여러분은 절망적인 순간을 만나면 그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때인 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보스톤에서 목회를 하던 고든(A.J. Gordon)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고든 목사님은 토요일 밤늦게까지 설교를 준비하다가 너무 고단하여 서재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꿈속에서 힘들게 설교 준비를 마치고 예배당으로 달려갔습니다. 예배당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어떤 이상한 사람이 예배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안내 집사님이 인도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의 모습은 위엄이 있었고, 예배를 아주 신중하게 드렸습니다. 고든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마치 자기는 그 사람 하나를 향해서 설교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든 목사님은 예배가 끝나는 대로 곧 바로 그분을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고든 목사님은 인사를 하면서 나가는 교인들 속에서 아까 그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눈에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안내 집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갔어요?” 안내 집사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르세요?”, “글쎄요. 그 분이 누구시죠?” 안내 집사는 “목사님, 그 분이 예수님 아니십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고든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크게 한탄했습니다. “아! 그 분이 예수님이었다니, 하필이면 오늘같이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날 주님께서 오시다니...” 그러자 안내 집사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세요. 그 분이 가시면서 다음 주일 예배에도 또 오시겠다고 말씀을 했으니까요”
고든 목사님은 안내 집사님의 말을 듣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목사님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매번 설교를 할 때마다 주님은 예배에 함께 참석하셔서 나의 설교를 들으신다!” 이날 이후 목사님의 설교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모든 설교를 주님께서 다 듣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평생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3절에 보면 다윗은 두려운 날에 누구를 의지하겠다고 했습니까? 주를 의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큰 두려움이 자기를 온통 뒤덮어도 주님만 의지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4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인간이 자신을 어찌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자기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니 감히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해칠 수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돕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도울 힘이 없습니다. 시 146:3-4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능력도 생명도 유한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입니다. 심지어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변덕이 심합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하다가도 금방 마음이 변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총리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하루는 BBC방송과 인터뷰하기 위해 택시를 잡고 운전기사에게 급히 방송국까지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는 “미안하지만 손님, 다른 차를 이용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처칠이 이유를 묻자 기사는 “조금 후면 처칠 경의 특별방송이 있습니다. 그 방송을 듣고 움직이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기분이 좋아진 처칠은 거금을 집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기사가 시동을 걸며 말했답니다. “손님, 타세요. 처칠인지 개떡인지... 돈부터 벌고 봐야겠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간혹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호흡이 끊어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소원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약 200여년 전 영국에 윌버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네가 대영제국의 모든 노예들을 풀어줄 것을 원한다.” 그러나 윌버포스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곱사등을 가진 장애인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심하게 비틀려 있어서 당대의 한 작가는 그를 타래송곳에 비유할 정도였습니다. 윌버포스의 외모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적당치 않은 데다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노예 해방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안타깝게도 윌버포스는 살아생전에 노예해방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를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윌버포스의 장례식이 거행되던 날 영국 의회는 영국의 깃발 아래 사는 모든 노예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윗처럼 절망스런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와 여러분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예전에 행복전도사로 알려졌던 어느 유명 강사가 스스로 목숨 끓은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라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분입니다. 그런데 전신 홍방성 낭창(루푸스)와 세균성 폐렴으로 인한 고통을 당하니까 견딜 수 없어 자살해버렸습니다. 매일 웃으며 살자며 그렇게도 강조했던 행복전도사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자 자살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문제는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1절에 보니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7절을 보니 다윗은 하나님께 원수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하셔서 악인들을 심판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8절을 보니 다윗은 자신이 악인들 때문에 유리함과 삶의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시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잊지 마시고 반드시 응답해달라고 기도했니다. 9절을 보니 다윗은 자기가 기도하는 날에 원수들이 자신에게서 물러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신의 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겠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절망에 주저앉아있지 마시고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며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나라가 살려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복된 대한민국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절멸할 뻔했습니다. 영국군이 덩커르크 해안에 갇혀서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30만 영국군이 패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세는 완전히 독일로 넘어가게 되는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영국 왕과 처칠 수상이 온 국민에게 기도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지금 우리 영국군인 30만 명이 덩커르크 해안에 갇혀있는데 우리가 기도하여 저들이 무사히 거기서 탈출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영국국민들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독일군이 진격해오는 그곳에 폭우가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독일군 탱크가 진흙에 빠져서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영국군이 있던 덩커르크 해안 쪽에는 날이 맑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곳에는 태양이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영국 30만 군대는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그 후에 영국군은 다시 전열을 다듬어서 독일군과 싸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 개개인만 보살피는 분이 아닙니다. 가정도 교회도 심지어 국가와 열방도 보살피시는 분입니다.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성경에 기록된 것만 두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국가적인 문제였고 한 번은 개인적인 문제였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18만5천의 군대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신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천사를 보내셨고 천사가 하룻밤 사이에 18만5천이나 되는 앗수르 군대를 죽였습니다. 또 한 번은 히스기야가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가 떠난 후에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심히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세상에서 악한 자들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느냐인 것이죠.
어느 분이 60대이신데 자신이 20대 때와 지금 다른 게 뭔가 관찰을 하셨답니다. 그분은 20대 때는 혼자 돌아다니셨는데 요즘은 자꾸 아내를 따라다니려고 하신답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자꾸 아내를 불러본답니다. 배가 고파서 아내를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아내를 자꾸 불러본답니다. 그분은 아내가 없으면 궁금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신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이렇게 찾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찾으세요.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여! 주여!”하며 주님을 찾는 것이 기도입니다. 거기다가 내용을 조금 더 붙이면 기도가 길어집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도와주세요. 주여! 사랑합니다. 주여 풀어주세요”
저와 여러분은 늘 주님의 임재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으면 “주여!”하고 부르세요. 특히 절망 중에 빠질 때는 좀 더 간절함을 가지고,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주여! 주여! 주여!”하며 주님을 부르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봅시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풍선장수가 풍선을 팔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빨간 색, 파란 색, 노란 색 여러 가지 색깔의 풍선에 헬륨가스를 넣어 팔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흑인 아이가 다가왔습니다. “아저씨, 까만 풍선도 하늘로 올라갈 수 있나요?” 그 아이는 피부가 검은 것 때문에 마음에 한이 된 아이었습니다. 풍선장수는 그 아이에게 “얘야, 풍선이 빨갛고 노래서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란다. 풍선이 하늘을 나는 것은 풍선 속에 공기 보다 가벼운 가스가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이 얘기를 들은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답니다. 흑인으로 피부가 깜했던 아이는 풍선장수의 말을 듣고는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인권운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시 젝슨 목사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다에도 길을 내시고 광야에도 강을 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어떤 절망도 극복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먼저 미래에 대한 좋은 그림을 그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그림대로 역사해주십니다. 여호수아서 18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점령하지 못한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하려고 할 때 먼저 정탐꾼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그 땅의 그림을 그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점령하게 했습니다.
9절에 보면 다윗은 지금은 원수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원수들이 물러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원수가 물러가므로 하나님이 자기편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2절을 보면 자기가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감사제를 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그는 주의 전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엔가는 주의 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는 긍정적인 모습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다윗이 세 가지를 바라봤습니다. ①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사망의 세력에서 건져 주실 것을 바라봤습니다. ②주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실 것을 바라봤습니다. ③주님께서 자신의 발을 실족하지 않게 지켜주실 것을 바라봤습니다. 이 시편을 기록할 때 다윗은 원수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봤기 때문에 완료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실상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빌 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십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소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소원을 따라 행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상황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일 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눈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과는 그가 믿음으로 바라봤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그를 점점 왕성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는 절망 중에 미래의 희망을 바라봤고 그가 바라 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는 일이 힘들어도 희망을 바라보고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모두가 나른한 오후 지하철에 가방을 든 50대가 탔습니다. 이분이 주변을 살피며,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가방을 내려놓고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쉽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는 가시는 걸음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이렇게 나섰습니다. 물건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아, 플라스틱 머리에 솔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치잇솔입니다. 이걸 뭐 할라고 가지고 나왔을까여? 팔려고 나왔습니다. 처어넌입니다. 뒷면 돌려봅니다. 영어 써있습니다. made in korea! 이게 무슨 뜻일까여?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됐을까여? 망했쉽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하나씩 돌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칫솔을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사람들은 너무 황당해서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칫솔을 다 돌리고 나서 아저씨는 다시 말을 합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여?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저씨는 돌면서 칫솔과 돈을 회수한 후에 다시 말을 시작했습니다. “자 여러분! 칫솔 네 개 팔았습니다. 얼마나 벌었을까요? 4천 원 벌었쉽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여? 안 했을까여? 예, 실망했쉽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쉽니까? 다음 칸 갑니다!” 하면서 아저씨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갔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뒤집어졌습니다. 그날 지하철 사건의 주제는 희망입니다. 왜요 다음 칸이 있으니까요. 우리의 삶도 다음 칸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다음 칸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은 “2023년은 절망에서 희망으로”라는 제목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힌 다윗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보인 반응을 통해서 우리가 절망 중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봤습니다.
1.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 좋으신 아버지를 의지합시다.
2.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3.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봅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