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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 Air On The G String
/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D장조 중 제2악장 아리아
/ Bach's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 Ⅱ. Air"
- 편곡: 아우구스트 빌헬름 / August Wilhelmj
-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 / Johann Strauss Orchestra
- 지휘 겸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 / Andre Rieu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독일 태생으로 음악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음악 공부에만 전념하였습니다. 바흐의 저서인 '건반악기 연주법에 대한 소고'에 대해서 교황곡의 아버지인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극찬할 만한 논서'라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어(Klavier)라는 악기를 배웠고 명 오르간니스트(Organist)가 되었으며 18세기까지의 음악의 모든 경향을 한데 모아 비약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오르간 작품으로 '전주곡과 푸가(Prelude And Fugue, BWV-531~552)', '토카타(Toccatas, BWV-910~916)', '46곡의 오르겔 뷔힐라인 코랄 전주곡(Das Orgelbuchlein Chorale Prelude, BWV-599~644)', '6곡의 슈블러 코랄집 코랄 전주곡(Six Schubler Chorales Chorale Preludes, BWV-645~650)', '18곡의 라이프치히 코랄집 코랄 전주곡(Eighteen Leipzig Chorales Chorale Preludes, BWV-651~668)', '17곡의 독일 오르간 미사 코랄 전주곡(Seventeen German Organ Mass Chole Preludes, BWV-669~689)', '키른베르거 코랄집 코랄 전주곡(The Kirnberger Organ Chorales Chorale Preludes, BWV-690~713)', '기타의 코랄 전주곡(Miscellaneous Chorale Preludes, BWV-714~740)', '그 밖의 코랄 전주곡(Other Chorale Preludes, BWV-741~765, BWV-1085)' 등이 중요한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오르간을 벗어나 악기와 곡 형식의 전반에 걸친 집대성 작업을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구조가 복잡하였고 엄격하면서 종교적인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게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실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사상 최대의 교회음악가로 평가되었으며 그의 사후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 등에게 독일 음악의 터전을 마련해준 대 음악가이며 학자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활약한 쾨텐(Kothen) 시대는 바이마르(Weimar) 궁정의 쾨텐 궁정 악장 시절인 1717년에서 1723년 사이를 말합니다. 그는 이 시기에 세속음악 특히 기악곡에 열정을 보였고 주요 작품으로 3개의 '바이올린 협주곡(Concerto For Violin, BWV-1041~1043)', '브란덴부르크 협주곡(Brandenburg Concerto, BWV-1046~1051)',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The Sonatas And Partitas For Violin Solo, BWV-1001~1006)', '무반주 첼로 모음곡(Suites For Cello Solo, BWV-1007~1012)', '관현악 모음곡(Orchestral Suite, BWV-1066~1071)' 등이 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The Sonatas And Partitas For Violin Solo, BWV-1001~1006)' 모음곡은 쾨텐 시대인 1720년경에 작곡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1번 G단조(소나타 제1번) BWV-1001 / Unaccompanied Sonata, No.1 In G Minor(Sonata, No.1) BWV-1001', '제2번 B단조(파르티타 제1번) BWV-1002 / Unaccompanied Sonata, No.2 In B Minor(Partita, No1) BWV-1002', '제3번 A단조(소나타 제2번) BWV-1003 / Unaccompanied Sonata, No.3 In A Minor(Sonata, No.2) BWV-1003', '제4번 D단조(파르티타 제2번) BWV-1004 / Unaccompanied Sonata, No.4 In D Minor(Partita, No.2) BWV-1004', '제5번 C장조(소나타 제3번) BWV-1005 / Unaccompanied Sonata, No.5 In C Major(Sonata, No.3) BWV-1005', '제6번 E장조(파르티타 제3번) BWV-1006 / Unaccompanied Sonata, No.6 In E Major(Partita, No.3) BWV-1006'로 구성된 이 작품은 1802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기교적인 면이나 악상으로 보아 바이올린의 특성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고한 기풍과 정교한 음악적 기법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경건하고 심오한 예술세계가 하나로 응축된 작품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제1번, 제3번, 제5번은 푸가를 포함한 소나타 형식이며 제2번, 제4번, 제6번은 무도 모음곡의 구성으로 이를 따로 파르티타(Partit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720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첫 번째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Maria Barbara Bach, 1684-1720)'가 갑작스럽게 죽었고 1721년에 두 번째 아내 '안나 박달레나 바흐(Anna Magdalena Bach, 1701-1760)'와 재혼하였으며 그녀를 위해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1725년의 클라비어 뷔힐라인 중 12개의 아리아와 가곡(Arias And Songs From 1725 Klavier buchlein For Anna Magdalena Bach, BWV-508~518)'을 작곡하였습니다. 그의 장남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Wilhelm Friedemann Bach, 1710-1784)'을 위해서는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뷔힐라인 곡집 중 9개의 작은 전주곡(Little Preludes From The Klavierbuchlein Fur Wilhelm Friedemann Bach, BWV-924~932)'을 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Das Wohltemperierte Klavier, BWV-846~869)',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2권(Das Wohltemperierte Klavier, BWV-870~893)', '영국 모음곡(Englishe Suite, BWV-806~811)', 프랑스 모음곡(Franzosische Suite, BWV-812~817)' 등도 정비를 하였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723년에 라이프치히(Leipzig)의 성 토마스 교회(St. Thomas Church)의 칸토르(Cantor)에 취임하였고 그가 사망한 1750년까지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1723년부터 그가 사망한 1750년까지의 27년간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라이프치히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 시기는 그의 창작활동 중에서 가장 활발한 시대였고 '교회 칸타타(Sacred Cantatas, BWV-1~10, BWV-12-200)', '세속 칸타타(Secular Cantatas, BWV-134a, BWV-173a, BWV-198, BWV-201~216)', '위작 칸타타(Spurious Cantatas, BWV-217~224)', '미사, 라틴 교회음악(Masses, Latin Church Music, BWV-232~242, BWV-1081~1083)', '오라토리오(Oratorios, BWV-11, BWV-248~249)', '수난곡(Passion, BWV-244~247, BWV-1088)' 등 성악의 대작과 합창곡 그리고 오르간곡 등을 많이 작곡한 시기였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730년경에 '관현악 모음곡 제3번 D장조 중 제2악장 아리아(Bach's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Ⅱ. Air)'를 작곡하였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내린 소낙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가난한 집에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자녀들이 많은 대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 그들 집에 있는 바이올린을 건네주며 연주를 부탁하였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연주를 위해 그들의 바이올린을 받아들었으나 그 바이올린에는 G-D-A-E 4현 중 G선만이 걸려있었고 다른 선들은 모두 끊어지고 없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할 수 없이 이들에게 제일 낮은 G선 한 현으로만 연주를 해주었습니다. 이 곡이 바로 유명한 관현학 모음곡 제3번 D장조 중 제2악장 아리아(Air)'의 탄생 일화라고 전합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D장조는 총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악장 서곡(Overture), 제2악장 아리아(Air), 제3악장 가보테Ⅰ, 가보테Ⅱ(Gavotte|& Gavotte∥), 제4악장 부레(Bourree), 제5악장 지그(Gigue)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사망한 후 가장 혜택 받은 음악가로 칭송 받는 '멘델스존(Bartholdy Felix Mendelssohn, 1809-1847)'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명곡입니다.
전체 모음곡 중에서 제2악장 아리아(Air)는 다음에 이어지는 리드미컬한 곡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고요하고 아름답게 연주되도록 작곡되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작곡된 곡이어서 선율이 매우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현악합주의 반주로도 연주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팝이나 재즈로도 편곡되어 자주 연주되기도 합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741년 베를린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작센(Sachsen)공으로부터 궁정 음악가의 칭호를 받으려고 했을 때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준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Hermann Karl Von Keyserlingk, 1696-1764)' 백작의 작곡 의뢰에 따라 '골트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988)'을 작곡하였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원래 이 곡에 붙인 명칭은 '여러가지 변주를 가진 아리아(Aria Mit Verschiedenen Veranderungen)'였습니다. 사실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 직접 작곡의뢰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섬기던 클라비어 연주에 뛰어난 '요한 테오필 골트베르크(Johann Theophil Goldberg, 1727-1756)'를 통해서 작곡을 의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역시 이 변주곡을 요한 테오필 골트베르크가 연주한다는 전제하에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연유로 인해서 이 곡의 명칭이 '골트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그의 나이 62세 때인 1747년에 베를린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Ⅱ, 1712-1786)' 대왕의 궁정에 초대되었던 것입니다. 대왕이 준 주제에 의하여 리체르카레(Ricercare)를 즉흥 연주하게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음악을 좋아하는 대왕으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해줬고 많은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제시했던 테마에 의해 카논 5곡, 카논풍 푸가 1곡을 인쇄하여 헌사와 함께 '음악의 헌정(Musikalisches Opfer, BWV-1079)'을 작곡하여 대왕에게 바쳤습니다. 이 작품은 다양한 대위법 형식의 13개 소품으로 이루어졌으며 프리드리히 대왕이 좋아하는 플루트, 바이올린,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전 4악장이 지극히 높은 기풍을 지니고 있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작품 중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e, BWV-1080)'과 더불어 만년의 원숙한 기법을 보여준 역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바로크 음악(Baroque Music)의 총괄자이기도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담백하고 힘차며 시종일관 변함없이 흘러내리는 선율은 흐트러지려는 인간의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흔들리기 쉬운 우리들의 마음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의 죽음을 경험했다고 하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 대하여 '바흐는 실개천이 아니라 대양이다'라고 평하였다고 합니다. 독일어로 '바흐(Bach)'는 '실개천'이란 뜻이어서 베토벤이 그렇게 표현했지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대양처럼 지구상에서 위대한 대음악가로 칭송을 받았고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749년 뇌졸증의 발작과 시력 감퇴로 인해 체력이 두드러지게 저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술과 치료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1750년 7월 28일 그의 나이 65세를 일기로 주옥 같은 불멸의 보물을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August Wilhelmj, 1845-1908)'은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계에 데뷔해 '악재'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천재 소년'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음악성이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이 7세 때인 1852년에 독일의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헨리에테 존타크(Henriette Sontag, 1806-1854)'가 그를 향해 '독일의 니콜로 파가니니가 될 것이다'라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세계적인 작곡가입니다. 그리고 그가 16세 때인 1861년에는 헝가리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가 아우구스트 빌헬름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독일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인 '페르디난트 다비트(Ferdinand David, 1810-1873)'에게 서신을 통해 '아우구스트 빌헬름을 장래의 니콜로 파가니니로 표기'할 정도로 극찬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1871년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D장조 중 제2악장 아리아(Bach's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Ⅱ. Air)'를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바이올린 독주 G선만으로 연주하도록 편곡하였습니다. 이후 이 음악을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바이올린 독주곡 'G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로 불리어지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리아'는 오늘날 일반화된 오페라의 '아리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로 느슨하게 연주되는 무곡을 뜻합니다.
바이올린의 4개 현 가운데 가장 낮은 현인 G선만으로 연주되는 'G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는 아름다운 선율로 이어지면서 장중한 분위를 흘러 넘치게 해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불멸의 명곡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선율에 귀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고요와 평화를 느끼게 해주는 감미로운 명곡인 것입니다.
19세기 전 세계 음악계의 시선을 한몸에 안기도 하였던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세계적인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이 곡 외에도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의 '유모레스크(Humoresques Op. 101-7)', '슈베르트(Fran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아베 마리아(Ave Maria D. 839)', '쇼팽(Fryderyk Chopin, 1810-1849)'의 '녹턴(Nocturn) / 야상곡(夜想曲)' 등의 곡을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편곡하였으며 많은 인기와 함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1894년에 영국 런던의 시립 '길드홀 음악 연극학교(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그의 문하에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나한 프랑코(Nahan Franko, 1861-1930)', 캐나다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도널드 하인즈(Donald Heins, 1878-1949)', 호주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아일머 부에스트(Aylmer Buesst, 1883-1970)' 등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앙드레 류(Andre Rieu, 1949-)'는 1949년에 네델란드의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Netherlands)에서 태어났습니다. 네델란드 마스트리히트 심포니 오케스트라(The Maastricht Symphony Orchestra)의 지휘자로 활동한 그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마스트리히트 음악대학(Conservatorium Maastricht)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벨기에 브뤼셀 왕립음악원(Royal Conservatory Of Brussels)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그는 1975년에 현재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Andre Rieu And His Johann Strauss Orchestra)'의 프로덕션 매니저(Production Manager)로 활약하고 있는 '마조리 류(Marjorie Rieu, 1951-)'와 결혼하였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는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 1870-1948)'의 오페라 '금과 은(Gold And Silver)'을 관람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1978년에 마스트리히트 살롱 오케스트라(Maastricht Salon Orchestra)를 결성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림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The Limburg Symphony Orchestra)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앙드레 류는 1987년에 마스트리히트를 거점으로 12명의 단원으로 구성하여 출범한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를 창단하였습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서 편곡, 지휘, 사회까지 맡아 연주활동을 펼치면서 점차 단원을 늘려나갔습니다. 지금은 40~50명의 단원으로 늘려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는 네델란드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는 세계적인 로맨틱 클래식의 행복 전도사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Andre Rieu And His Johann Strauss Orchestra)'는 주로 '요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ssⅡ(1825-1899)'의 왈츠를 연주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라고 불렀고 앙드레 류에게는 '왈츠의 왕(The Waltz King)'이라고 불렀습니다.
앙드레 류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는 기존의 왈츠를 새롭고 재미있는 왈츠로 편곡하여 연주하였습니다. 클래식의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Th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 Wiener Philharmoniker)'의 신년 음악회에서의 왈츠 연주는 춤보다는 음악 자체에 치중하는 연주회용 음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앙드레 류가 지휘하는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The Johann Strauss Orchestra)'의 왈츠 연주는 연주회용 음악보다는 춤을 추면서 즐길 수 있는 축제나 파티용 음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 앙드레 류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도중 가벼운 춤 스탭을 밟기도 하였고 유머로 관객들과 소통을 하는 등 춤을 곁들인 음악 한마당을 벌였으며 흥겹고 신바람 나게 콘서트를 이끌어갔습니다. 이는 그가 '클래식 음악은 모든 이들의 것이고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휴식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의 첫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이올린 연주는 물론 편곡,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세계적인 만능 지휘자로 지구촌 곳곳에 그의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는 그의 감성있는 지휘는 물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사회까지 맡아 진행하면서 열정적인 전 세계 투어 콘서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앙드레 류는 화려하면서 친숙한 무대 매너로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냈으며 모든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습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 뿐만 아니라 대중 음악, 민속 음악, 영화 음악 등 여러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팝 콘서트 못지 않은 화려한 조명과 여자 연주자들의 바로크 시대 의상 착용 등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는데 충분했습니다.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아이스하키 팀 홈경기장에서 열리는 'HP 퍼빌리온(Hewlett-Packard Pavilion At San Jose)' 콘서트를 비롯해서 유럽, 북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의 운동장, 고성, 교회 등에서 150여 회의 콘서트를 열고 있으며 80여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앙드레 류와 그의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는 2001년 일본 투어 콘서트를 가졌고 한국에는 2004년 10월 8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콘서트에 이어 2005년 10월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그는 1996년과 199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세계음악상(World Music Awards)을 수상했으며 '현대판 요한스트라우스'로 칭송받고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이며 지휘자입니다.
첫댓글 참 좋습니다.
나리분지 선생님 완연한 가을입니다. 건안 건필하시고 문운장구하시면서 최고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