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
추석 친족모임 설교 원고
룻3:18, 4:16~17
이스라엘 초대수상은 “다비드 벤 구리온”입니다. 그 뜻은 “구리온의 아들 다비드”란 뜻입니다. 구리온의 아들이니까 아버지의 이름이 구리온이란 뜻입니까?
아닙니다. “구리온”이 아버지의 이름인지, 할아버지의 이름인지, 증조부의 이름인지, 고조부의 이름인지, 아니면 시조의 이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문화에서는 후손들을 모두 “아들”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유교문화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서열문화입니다. 그래서 후손에게도 서열을 세웁니다.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등등...
서열문화에서는 선후배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서열을 깼다가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 “예의 없는 놈” 등등 왕따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좀 껄끄러워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내 딸아”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정겹고 듣기 좋습니까? 며느리도 딸입니다.
히브리어로 딸은 바트(בַּת)입니다. 며느리는 칼라(כַּלָה)인데 그 뜻은 “법적인 딸”입니다. 며느리도 법적으로는 엄연한 “딸”입니다. 그러니까 미혜(며느리)는 제 큰 딸이고 수진이는 작은 딸입니다. (며느리를 “아들의 아내”라고 표현할 때도 있음)
김 장로님, 성경적으로 보면 선우 아빠는 내 사위가 아닙니다. “내 아들”입니다. 선우는요? 손자가 아닙니다. 선우도 “내 아들”입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을 보면,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면 나오미 입장에서는 손자를 본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며 축하해주었습니다. 손자가 아닙니다.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는데 “오벳(숭배받을 사람)”이라고 지어주었는데 이 오벳의 손자가 바로 다윗 왕입니다.
한국에서는 서열문화 때문에 가정이 경직됩니다.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고,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합니다. 저기 아랫동네에 가면 이런 문화가 굉장히 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가정에서는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가 다 “내 아들”, “내 딸”입니다. 이러니 가족이란 공동체가 얼마나 정겹고 단단해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