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심순화 카타리나 作
뫄지라이(Mwajirai~식사 하셨습니까?)
선교지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교우 한 분이 손을 건네며 악수를 청하기에 저도 같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악수를 끝내자 그 사람이 또다시 또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왜 악수를 두 번 하냐고 물으니 한번은 상대의 안부를 다른 한 번은 자신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랍니다.
어느 날 모래를 실으러 가기 위해 트럭에 필요한 공구들을 싣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총회장이 지나가면서 “뫄지라이!” 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잘 모르는 인사말이라 고맙다고 응답하자 옆에 있던 교우들이 웃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뜻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도 다른 사람에게 “뫄지라이~” 하고 인사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아뇨!” 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밥을 사줘야 하나?’ 하고 당황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잠비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 한 끼 또는 두 끼로 식사를 해결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여러 가지 풍토병 때문에 영아 사망률이 높고(평균수명 38세) 낙후된 농업기술과 열악한 자연환경으로 끼니를 충분히 채우기 어려운 이들의 삶이 人事 文化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듯합니다. 만일 제가 교우들이 내민 두 번째 손을 내치거나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에게 식사를 했냐며 매번 묻는다면 그들에게 저의 안부 인사는 기쁨이 아닌 당혹스러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선교지의 다양한 문화 안에서 자신보다 먼저 활동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체험을 존중하며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밝게 빛나는 천국과 뜨겁게 불타는 지옥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교회에 나오면 천국에 갈 수 있다며 열정적인 설교를 했는데, 원주민들이 모두 떠나갔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보여준 천국과 지옥 그림에는 모두 백인들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는 10월의 마지막 前 주일을 전교 주일로 기억하며 자신의 선교 사명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선교사가 되며 (「평신도 그리스도인」 35항 참조) 교구 사제들은 선교 활동의 1차적 책임자인 주교단의 협력자로서 자기 교구, 국가, 예법의 경계를 넘어 어디서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교회의 선교사명」 67항).
“뫄지라이? 여러분 모두 식사는 하셨습니까?” 미사 안에서 영적인 양식으로 주린 배를 채운 우리는 세상을 향해 파견된 선교사입니다. 내가 체험한 기쁜 소식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는 성령께 의지하며, 언제나 사도들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우리의 “발”을 아름답게 가꾸어 갑시다(로마 10,15 참조).
글 : 김종용 프란치스코 신부 – 잠비아 선교사제
남 탓하기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를 하와의 탓으로 돌렸고, 하와는 뱀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주님께 자신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를 남 탓으로 돌렸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남 탓을 하면 우선 쉽고 빠르게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반성하는 시간도 회피할 수 있으며, 자신의 단점을 모르는 채 어쩌면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은 편하게 지내면 되는데, 굳이 자기반성까지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 노력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남 탓하는 것은 매우 쉬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남 탓을 계속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개인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언이나 교훈을 얻을 기회가 없습니다. 더욱이 모든 일에 남 탓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개인은 점점 무기력해질 뿐입니다. 남 탓만 하다 보니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 탓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책임 회피’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개인이 느껴야 할 불편한 ‘감정 회피’ 일수도 있습니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할 수도 없고, 어느 날엔가 갑자기 삶의 고통을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약점과 결점이 있다 보니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겸손해야 하며,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자각하고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일은 실수함으로써 올바르게 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 때문에 고통을 무조건 최소화하려고 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책임을 감당하려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남 탓하기를 멈추라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탓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된 결과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 하나만을 가지고 문제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남 탓만 계속하게 되면 사랑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포기하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보다는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누구의 탓이든 간에 문제가 생긴 현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을 통해 창조해낸 놀라운 기적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지금부터라도 남 탓하기보다, 우리가 한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께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마다 언제나 우리를 용서해 준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글; 황미구 비아 / 헬로 스마일 심리 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