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총각네 야채가게
작성자 felias
알바하다보니, 점장님이 드물게 컴퓨터와 씨름을 하는게 보였다.
보니 '총각집 야채가게'라는 책이다.
팀장님이 직속으로 점장님한테만 내린 숙제로, 서평을 써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서평 숙제는 고딩/대딩 때만 하는게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감동의 휴먼스토리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점장님의 압력을 받으며 찾은 기사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이른바 한국형 마케팅 성공사례.
아는 사람은 알고, 나처럼 모르는 사람은 몰랐겠지만,
이 총각네 야채가게는 18평의 부지에 월 1억 5천의 수익을 올리는 곳이라고 한다.
예상하셨겠지만, 부지당 월 매출 대한민국 1위다.
그리고 그것을 일궈낸 사람은- 다름 아닌 겨우 30대의 총각과 그 일당들이다.
구미가 당겼다. 눈이 번쩍 띄였다.
내가 이런 책을 좀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생각없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랫글은 그 결과물로서,
2시간동안 책을 읽고 4시간동안 밤새 씨름한 흔적이다.
윗 글에 조금이라도 구미가 당겼다면, 읽어보시길.
물론 물론 아랫글이 아니라, 총각네 야채가게 그 책을 말이다.
홈페이지는 http://www.chonggakne.com
아참, 위에도 썼지만 판타지나 SF아니다. 마케팅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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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야채가게 때문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무엇 때문일까? 수입산 옥수수를 국산으로 속여 팔았나? 또 익지 않은 바나나에 색깔을 칠한 건가? 호기심에 슬그머니 신문을 집어 들자 인상 좋은 까만 얼굴의 청년이 나타났다. '야채가게도 벤처다'?신문의 한 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제목을 따라 깨알같은 활자들을 읽어 내려가니, 이제야 비로소 입가에 웃음이 맺히기 시작한다.
기사는 무일푼 행상서 시작하여 야채가게를 내어 백만장자가 된 한 사나이의 이야기였다. 크고 작은 역경을 딛고 10년 만에 누구보다도 번듯하게 버티고 선 <이영석> 이라는 이 남자의 이야기는 바닥의 바닥에 있는 소시민이라도 잘나갈 수 있다는 한자락 희망을 준다. 그 남자가 겨우 30대임을 생각하여 본다면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률이 날로 증가하는 이 때 청년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제시해줄 수도 있다. 야채가게라는 (아무도 하려 들지 않기 떄문에) 특이한 아이템으로 성공했다는 기사를 보여주면,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백수 아들도 뭔가 깨닫지 않겠는가. 물론 백수 아들은 한번 읽고 '나랑 이사람은 달라' 라며 기사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기사를 흘려 넘긴다.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 18평밖에 안되는 작은 가게 <자연의 모든 것> 이 대한민국 평당 최고 매출을 올리는 점포가 되는 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야채가게 벤처사업인 이영석씨를 모델로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일까?
한 면의 기사를 읽고 위와 같은 질문에 휩싸여 야채가게 주인 이영석씨를 찾은 김영한씨는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이영석씨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가 어떻게 이영석씨를 꼬드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침내 이영석씨가 10년 동안 일구어 놓은 성공 노하우가 고스란히 한권의 짧은 책 안에 담겼다. 책 제목은 <총각네 야채가게>. 총각네는 그동안 그의, 아니 총각들의 가게를 찾았던 손님들이 손수 붙여준 애칭이다. 마케팅의 전문가 김영한과 몸으로 마케팅을 익힌 남자 이영석. 이 두 사람이 만든 책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이 책은 독특하게 구성되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총각네 야채가게>에 보내는 찬사가 있고, 글쓴이 김영한의 짤막한 책머릿말이 있다. 그 뒤에 본격적으로 4개의 본문은 각각 <당신의 마음과 춤을 춰라>, <매일매일 맛있게>,<매일매일 즐겁게>,<매일매일 뜨겁게>의 제목으로서 있다. 그리고 책머릿말 못지 않게 짤막한 챕터로서 끝마무리를 맺는다. 큼지막한 글씨로 넓게 채우고도 겨우 170여 쪽이니, 지하철 안이나 짬시간을 이용하여 보기에는 딱 알맞다.
<총각네>에 쏟아진 찬사와 책을 쓰는 계기는 이미 앞서 이야기했으니, 휙 건너 뛰어 본문으로 가보도록 하자.
첫번째 본문 <당신의 마음과 춤을 춰라> 에서는 야채 가게 <자연의 모든 것>을 내기 전까지 이경석씨가 겪은 일을 말한다. 이영석씨는 노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대학에서도 마케팅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사람들처럼 술이나 고스톱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고자 하였다. 이렇게 각종 방법으로 '함께 놀 거리'를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 기쁨이었는데, 이는 나중에 일을 놀이처럼 행하고 손님도 직원도 즐겁게 다니는 가게를 계획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영석씨는 마케팅 회사에 입사한 뒤에도 일은 힘들고 보수는 적었지만 경험을 쌓는다는 마음에 열심히 일했다. 한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공들여 계획한 기획안을 선배가 가로챈 것이었다. 그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이후 그의 머리에 맴돌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즐겁고 정직한 일은 없을까?' '고민하고, 노력한만큼 보상 받을 수 있고 항상 즐겁게 움직일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어느날 깜짝놀랄 경험을 한다. 한강 둔치에서 만난 오징어 장수에게서 오징어를 사들여 장난삼아 팔아보았는데 2만원으로 2시간 만에 8만원을 번 것이다. 이 때 그는 장사는 정직하다는 것을, 품질로 승부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평생의 직업으로 삼기로 작정한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이다. 당시 장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경석씨는 그 때 만난 오징어 행상을 쫓아다니며 장사의 기본을 배운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 목 좋은 자리를 찾는 법...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 이론으로 배우는 것을 그는 실전에서 익힌 셈이다.
장사에도 단계가 있다는 생각에 충실하며 일년간 열심히 일을 배운 이영석씨는 드디어 혼자서 떠돌이 장사를 시작하는데, 이 때 배운 기술은 금싸라기보다 더 귀중한 것이었다. 그는 가락시장을 돌아다니며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을 익혔고, 또한 트럭 행상을 통해서 트럭을 점포로서 활용하는 방법과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방법을 스스로 익혔다. 모두 몸으로 뛰어가며 간신히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트럭차가 정시에 올 거라고 생각을 하며, 어느 트럭 상인이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바나나를 팔려고 든단 말인가.
그러나 반짝이는 아이디어 뒤에는 큰 역경이 숨어 있다. 세간에서는 드라마틱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숙련되게 해내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떠올리려면- 깡으로 악으로 이겨내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는 곱지않게 바라보는 가락시장의 상인들에게 맞았고, 노점상들과의 자리 다툼으로 맞았고, 부천으로 옮겨간 뒤로는 조직폭력배들에게 맞았다. 구청 단속공무원들도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니, 한번 물건을 뺏기면 벌금을 20만원씩이나 줘야 했다. 이후 그는 일을 할 때 49%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과 51%의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1%로 해내어 나간다고 했는데, 이 때 만큼은 이 차이가 1% 조차도 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야채장사를 하면 딸을 주지 않겠다는 아버님, 어머님의 말을 들었을 때는 더더욱.
그러나 그는 역경을 견디어냈다. 반항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받아냈다. 한사람 두사람 포기하고 그를 인정해주면서 그는 조금씩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성공한 지금 그는 말한다. 장사를 돈벌이가 아닌 평생의 일로 삼겠다고 스스로 정했으며, 그것을 자신의 마음이 원했노라고. 이 장의 제목 <당신의 마음과 춤을 춰라>는 정해진 마음의 손을 결코 놓지 말라는, 그리고 그것을 기쁘고 즐겁게 행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영석씨가 전하는 가장 큰 메세지이다.
첫 장 <당신의 마음과 춤을 춰라>가 이영석씨의 성공기이자 의미론적인 성공론을 담았다면, 두번째장 <매일매일 맛있게>와 <매일매일 즐겁게>, <매일매일 뜨겁게>는 야채가게 총각네의 성공기이자 방법론을 담았다. 이전의 의미론도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회사적 차원에서는 총각네의 방법론을 통해 다양한 벤처 마킹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맛있게>는 장사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 즉 맛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무리 주인이 친절하고 총각들이 이뻐보여도 물건이 좋지 않으면 손님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 당연하다. 최소한 물건이 좋지 않으면 가격이라도 싸야 한다. 그래야 정직하고, 스스로가 물건을 팔면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윤을 남기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서 총각네는 최상품의 물건만을 그것에 알맞은 가격으로 파는 것을 택했다. 최상품의 물건을 취급한다는 이 뚜렷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세세한 방향과 방법이 제시된다. 먼저 미리 시장조사를 통해 가격의 변동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고 상품의 물건을 선호하는 강남을 대상으로 택했다. 이후 낸 은마점이나 다른 점포 역시 강남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가락시장에 들러 가장 최상급의 물건만을 구매한다. 이를 위해서 이영석씨가 가락시장내의 모든 가게의 물건을 다 맛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락도 받지않고 과일을 자르고, 상자를 뒤짚어 엎는 등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현찰로 단번에 많이 구매하여 가락시장내에서도 이영석씨는 주요한 인물이다. 한 종류 당 3,4개의 과실을 먹어 확인하니 이경석씨에게 과일 고르기란 과일과의 전쟁과 다름없다. 이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루어도 맛이 없다고 판단되는 제품은 아예 들여놓지 않는다. 이정도면 손님들이 물건의 질을 따지지 않고 바로 사가는 이유를 알만하지 않은가. 신뢰는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즐겁게>는 이렇게 구입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판매 전략이다. 10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대강 3가지의 전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 중심 전략은 "총각도 손님도 즐겁게" 이다. 이 장의 제목인 <매일매일 즐겁게>와 가장 크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손님이 즐거워야 총각이 즐거워진다. 직원이 즐거우면 손님 또한 즐겁다. 이러한 선순환이 이어지도록 총각들은 서로 머리를 짜내어 아이디어를 낸다. "사장총각 맞선 기념 대박세일!"이라던지, 채소나 과일에 붙여진 재미있는 이름 - 이문세가 젤 좋아하는 채소 당근, 오메 징하게 맵네 청량고추 - 는 직원도 손님도 웃음짓게 만든다. 이런 이름표는 매주 부지런히 바꾸니, 이 이름표를 보러 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다. 억지로 외우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손님의 데이터를 200명 정도 기억하는 총각들이 있어, 손님은 가게에 올 때마다 사소한 일에 신경써주고 가족보다 더 챙겨주는 총각들을 만날 수 있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아줌마는 특히나 더 총각을 좋아하는 법이다. 이처럼 총각네는 야채, 과일, 생선만 파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판다.
두 번째 전략은 환상적인 총각들의 팀플레이다.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감독등의 숙련도를 지닌 이들은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10명의 총각들은 각 자리에서 맡은 일을 행하고, 혹시나 한쪽이 바쁘면 근처의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재빠른 유동성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총각네에서는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딜레이가 없고, 손님이 편안하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세 번째 전략은 99%의 감성에 덧붙이는 1%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냉동창고를 없애 생선을 확실히 당일로 판매한다는 것을 보이고, 과일이 상했을 시에 전자제품을 A/S를 하듯 또다시 배달/환불하여 준다. "재고 0%에 도전한다!"는 손님에게 보이는 총각네의 약속이다. 이렇게 1%로서 총각네와 손님간에 신뢰가 생기고 나면- 나머지는 앞의 전략과 총각네의 방향에 따라 "손님도 즐겁고 총각도 즐겁게" 일하면 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뜨겁게>는 총각네 총각들의 화합성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예전에 이영석씨가 혼자서 트럭을 몰고 다니던 때와는 달리,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다. 적어도 10명의 뛰어난 아이디어맨이 그와 함께 한다. 총각네를 거쳐간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중 몇몇은 새로 점포를 얻어 총각네와 같은 <자연의 모든 것> 간판을 올렸다. 총각들 사이에서 주인과 피혜자라는 개념은 없다. 모두가 내가 주인이다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총각들은 성실히 일하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하여 즐겁게 일하고, 이후 들어온 사람을 이전 사람이 기꺼이 가르쳐준다. 이영석씨는 총각의 인생상담은 물론, 직원 한사람 한사람을 중요시 여긴다. 야채가게이면서 4대 보험에 가입한 곳이 얼마나 될까? 이것은 총각네 총각들이 이 서로에게 가지는 각별한 애정의 일각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책은 <싱싱~생생~ 에너지가 폭발한다>로 끝맺고 있다. 총각네 야채가게를 이끄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처음에 반신반의 하던 사람들이 어째서 총각네에 가면 고개를 끄덕이고, 매료되는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던 마케팅의 비법이 이곳에서는 어째서 자연스럽게 실현되는가?
답은 바로 젊음과 열정이다. 일과 놀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총각네 야채가게에는 항상 열정이 가득하다. 오죽하면 놀면서 일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있어야할 곳에서, 젊을 때 발산하는 그 빛나는 열정을 아낌없이 나타낼 뿐이다. 또한 총각네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상행위 장소가 아니라 기쁨과 열정을 나누는 장소로 새로이 태어나, 언제나 즐거움이 함께할 것이다.
생각보다 좋게 써놨다. 밤에 써서 그런지 감정 실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삽질이지만 뭐, 즐기며 했으니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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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글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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