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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판치는대로#1] "대학 문턱 너머, 비로소 마주한 지혜"
언젠가부터 나는 지식이라는 옷자락에 너무 쉽게 물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지식을 가르친다 자부하는, 흔히 ‘교수’라 불리는 이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다. 젊은 날에는 그저 내키지 않는 마음 정도였는데, 돌이켜보니 대한민국의 교수들 중 참다운 교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저마다 ‘나는 참된 교수라’고 내세우지도 않고, 또 내세울 수도 없을 테지만, 어딘가 '낭중지추'처럼 언행에서 스며나는 분들도 드물게나마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교수 중 대부분은 세상 앞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위선의 말만 늘어놓다가, 어느새 정치인이 되고 청와대로 들어가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마치 지식을 팔아 생계를 삼는 장사꾼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풍경을 보면서, 내가 일찌감치 '이런 교수들에게 물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되뇌곤 한다.
나는 결국 대학교를 미련 없이 떠났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낙방하여 결국 차선 군법무관 시험을 보았다. 당시 이대 학생이 주장했던 군 가산점 제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덕분에,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장교가 될 길이 열렸다. 학사 학위가 없어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경력이 장교 임용에 대신 쓰였다. 그렇게 나는 군대에 들어가 수많은 군인을 만났다. 하사부터 장군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며, 변호 서류를 만들어 주고 기쁨도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법규와 상식을 어그러뜨리는, 아주 안타까운 모습을 곧잘 마주했다. 군법무관이란 이들이 법문대로도, 법의 정신에 비추어서도 처분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감정이나 무지, 실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로 치장한 처분을 내리는 장면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그들은 대개 ‘군법의 전문가’로 칭송받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이렇듯 모순이 드러났다. 이들의 잘못을 어찌 바로잡아야 할지,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하면 그들을 합리와 정의의 자리에 다시 세울 수 있을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군에서 제대한 뒤 변호사가 되어 3천 건이 넘는 군 관련 사건을 다루면서, 내게 정말 값진 경험이 쌓였다. 서울대 출신이라 똑똑하다고 알려진 군 법무관과도 합판 승부를 벌여, 적지 않게 이기고 나니, 이제는 그들 또한 겁 없이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그렇게 군 법무관으로 13년, 변호사로 9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교단에서 주입되는 지식이나 교수와의 인연보다도, 삶 한가운데서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순간들을 통해 깨우치는 지혜가 훨씬 값지다는 걸 체감했다. 최근에는 군사법 개혁을 위해 군 검사들과 맞섰던 일에서 나아가,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동영상을 찍고 있다. 군대나 사회나 ‘똑똑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위선으로 점철된 언행을 할 때, 사람들은 쉽게 혼란에 빠지고 분열된다. 문제의 본질은 한결같으니, 이에 맞설 힘과 지혜를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낀다.
이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시대, 암기한 지식 몇 줄로 사람 우열을 가리는 구태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 삶의 여정 곳곳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욕망과 유혹을 어떻게 절제하고, 그 지식을 공동체의 이익과 민주적 가치를 위해 쓸 수 있느냐가 진정한 실력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아직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능 점수 몇 점으로 희비가 엇갈린다. 교육부 장관이며 관료들이 ‘학벌 경제’에 편승한 채 돈벌이에만 골몰하는 기득권에게 휘둘리고,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지만,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하바드를 졸업하건 서울대를 나오건, 고착화된 기득권 구조 속에서는 쉽사리 주체성을 잃고 하수인 노릇을 할 위험이 크다. 단지 외운 쓰레기 같은 지식으로 인재를 가른다는 발상 자체가 더는 통할 수 없을 텐데도, 아직 많은 이들이 그 굴레 안에 갇혀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학벌과 간판만 내세우는 사람보다, 진짜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올곧은 마음을 갖춘 사람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런 인재가 세상에 나오려 하면 기득권이 떼로 달려들어 억누르고 부수려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이겨낼 힘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 비로소 우리는 대학과 교수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아침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문득 돌아보니, 나는 대학을 중퇴하고 교수에게서, 그들이 가르치는 지식에서 한 발 비켜나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진정 삶에 필요한 문제 해결의 지혜’를 조금씩 얻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깨달음이 늦여름 찬 이슬처럼 가슴 한 켠에 맺혀, 나는 오늘 아침 이 이야기를 조용히 적어둔다.